탐라지초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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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3년에 간행된 조선 중기 문신 이원진이 쓴 제주목·정의현·대정현의 읍지. 『탐라지(耽羅誌)』는 이원진(李元鎭)[1594~1665]이 제주목사로 있던 1653년에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과 김정(金淨)의 『제주풍토록(濟州風土錄)』을 참고하여 제주도 내의 상황을 수집, 편찬하고, 제주의 석학 고흥진의 감수로 완성된 읍지이다. 『탐라지』와 같은 읍지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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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조선 전기 통신 시설. 『경국대전』에 의하면 봉수제(烽燧制)의 ‘봉’은 불을 피워서 통보하는 것을 뜻하고, ‘수’는 설나무에 불을 질러서 그 연기를 바라보게 하는 것으로서, 낮에는 연기, 밤에는 횃불을 들어 통보하는 제도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런 봉수제는 우역제(郵驛制)와 함께 신식 우편 제도와 전기 통신이 창시되기 이전의 근대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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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에 제주시에 있는 산 정상부에서 횃불과 연기로 급한 군사 소식을 전하던 조선 전기의 통신 수단. 『경국대전』에 의하면 봉(烽)은 불을 피워서 통보하는 것을 뜻하고, 수(燧)는 설나무에 불을 질러서 그 연기를 바라보게 하는 것이라 하며, 낮에는 연기, 밤에는 횃불을 들어 통보하는 제도라고 기록되어 있다. 특히 봉수는 높은 산이나 해안 구릉에 올라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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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2동에 있는 조선 시대 관아 건물. 이원조의 『귤림당중수기(橘林堂重修記)』에는 “이 땅에 귤명(橘名)된 국과원(國果園)이 모두 36곳인데, 홀로 이 귤림당만이 연희각 가까이에 있다. 입추(立秋) 이후가 되면 서리가 내려서 많은 알갱이가 누렇게 익는다. 공무를 보는 여가에 지팡이를 짚고 과원을 산책하노라면 맑은 향기가 코를 찌르고,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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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조선 전기의 횃불과 연기로써 급한 군사 소식을 전하던 통신 수단인 봉수의 하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별도봉수(別刀烽燧)는 “서쪽의 사라악에서 받아 동쪽의 원당악에 응답한다(西應沙羅岳 東應元堂岳)”고 하였으며, 『탐라방영총람』에서는 별도연대(別刀煙臺)는 “본주로부터의 거리는 동쪽으로 십일 리인데 화북진에 소속되었다. 별장 한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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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1동에 있는 조선 시대 제주읍성의 서문 터. 서문지(西門址)는 제주읍성의 서문 터로서, 백호루(白虎樓)라고 불리는 서문루가 있었다. 제주읍성은 제주목사가 근무하던 제주목 관아와 그 주변을 둘러서 쌓은 성을 말한다. 동쪽·남쪽·서쪽에 문이 나 있고, 남쪽과 북쪽으로 수문이 있었는데, 서문지는 그 중 서쪽에 나 있던 서문 자리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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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2동 제주목 관아 안에 있었던 조선 시대 정자. 소행정은 조선 중기인 1660년(현종 1) 당시 제주목사로 재직하던 이회가 제주목 관아 안에 세운 정자로서, 연희각 동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원조가 지은 『탐라지초본(耽羅誌草本)』에 “연희각 동현묘에 있었는데 경자년에 목사 이희건이 건립한 것이다. 지금은 폐허가 되었다.(在延曦閣東懸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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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에 있던 조선 후기 누각. 연교정은 제주목사 김정이 1737년(영조 13)에 세운 누각으로, 임금의 교서를 받들고 전문(箋文)을 올릴 때에 그 의식을 행하던 곳이다. 전문은 길사나 흉사가 있을 때에 지방관이 왕에게 아뢰는 사륙 문체의 글을 말한다. 정조의 대전탄일(大殿誕日)에 지방관이 축하하는 전문을 올렸다는 기록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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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에 있던 조선 중기의 정자. 연무정은 1636년(인조 14) 제주목사 신경호가 병사들을 훈련하고 군관청과 판관 사후처(伺候處)로서 사용하기 위해 세운 건물이다. 『탐라지(耽羅誌)』에, 연무정을 건립할 당시 제주목사 신경호가 “제주에는 온 섬에 악석(惡石)이 널려 있으나 오직 이 곳은 풀 하나 없고 평평하기가 손바닥과 같아서 하늘이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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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에 간행된 조선 후기의 문신인 이원조가 쓴 글을 합본한 전집. 이원조(李源祚)[1792~1872]의 호는 응와(凝窩)로, 1809년(순조 9)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850년(철종 1) 경주부윤에 오르고, 1854년 대사간에 이어 공조판서를 지냈다. 『응와전집』에는 이원조의 글을 묶은 『응와문집(凝窩文集)』 22권, 『응와속집(凝窩續集)』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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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주현(周賢), 호는 응와(凝窩), 초명은 이영조(李永祚). 생부는 이형진(李亨鎭)이며, 양부는 이규진(李圭鎭)이다. 1809년(순조 9)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837년(헌종 3) 사간원정언을 지냈으며 재임 중 극에 달한 사족의 사치와 흉년으로 인한 백성들의 곤궁한 생활에 대한 쇄신책 강구를 간하였다. 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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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제주 지역에서 주장(主將)을 도와 적의 침입을 방어한 종9품 관직. 조방장(助防將)은 제주진관 소속 9개 방호소 가운데 명월방호소를 제외한 방호소의 책임자로 모두 8명이었다. 조선 전기 방호소의 책임자는 여수(旅帥)였으며, 변란이 생길 경우 영군관이 파견되어 방어에 임하였다. 그러나 17세기 후반에는 각 방호소에 성을 쌓았으며, 조방장을 파견하여 방어에 대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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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에 있던 조선 시대 북수구의 누정. 임진왜란 후인 1599년(성종 32) 제주목사 성윤문이 제주성을 개축할 때, 남수구와 북수구에 무지개다리(홍예)를 놓고 그 위에 각각 제이각과 죽서루를 건립하여 남수각과 북수각으로 불렀다고 한다. 『탐라지초본(耽羅誌草本)』과 『연려실기술(練藜室記述)』 등에 죽서루와 관련한 기록이 남아 있다. 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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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제주 지역의 지방관이 왕에게 의례적으로 바친 특산물. 진상은 원래부터 납세의 의무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각 도(道) 단위로 지방관이 한 달에 한 번씩 상납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각 주·현에 그 부담이 배정되었고, 이것이 다시 각 민호에 배정되었다. 조선 시대 제주의 진상물 품목으로는 말·귤·전복·버섯·한약재 등을 들 수 있다. 『탐라지』(제주목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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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에 있던 조선 시대 군사 유적. 쾌승정은 1592년(선조 25) 제주목사 이경록이 전승을 다짐하고 무운을 비는 뜻에서 성의 동북쪽에 위치한 해산대(海山臺)에 세운 군사 유적이다. 이원조가 1842년에 쓴 『탐라지초본(耽羅誌草本)』에 “쾌승정은, 즉 옛 해산대로서 동성 안의 산저천 위에 존재했으나 없어졌다(快勝亭 卽古之海山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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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이원조(李源祚)가 남긴 제주 관련 문헌. 『탐라계록(耽羅啓錄)』은 제주목사로 있던 이원조가 내치(內治)의 중요함에 대하여 전라도관찰사 등에게 계품(啓禀), 계문(啓聞)한 것으로서 관청 공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탐라계록』은 퇴계학파제현집(退溪學派諸賢集) 편찬 사업으로 간행된 『응와전집(凝窩全集)』 전 4권 중 네 번째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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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1동에 있던 조선 시대 제단. 포신단이라고 하는 포신묘는 신에게 액을 막고 복을 줄 것을 기원하던 제단이다. 제단이 세워진 정확한 연대는 확인되지 않으나 『탐라지초본(耽羅誌草本)』에 “포신묘 구재소림과원중 금이건우한라산신묘방(酺神廟 舊在小林果園中 今移建于漢拏山神廟傍)”이라 하여, 원래는 소림과원에 있었으나 ‘한라산 산신제’를 지내던 산천단 근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