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읍 향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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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읍의 지명에 대한 설화는 인장묘발지지(寅葬卯發之地), 당릉(唐陵), 열희을 등에 관한 것이 전해진다. 주로 인재가 많이 나오는 곳이라는 점, 당나라의 태자가 이곳에 와서 불로초를 구했다는 전설, 그리고 여우의 여자되기 이야기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지금 마을 주민들은 이에 대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자세히 알고 있는 분이 없다. 마을의 내력을 자세히 알기 위해 『납읍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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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읍의 마을 주변 지세가 지닌 풍수적 관점을 무엇일까? 사실 주민들 중에서는 이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하는 사람들이 드물다. 하지만 『납읍 향토지』에는 다음과 같은 해석이 나온다. 즉 마을의 지세로 보아 고내봉은 마을을 향하여 서 있으니 신관을 맞이하는 형이요, 곽지봉은 북쪽을 향하여 돌아서 있기에 무관을 배웅하는 형국이며, 곽지봉의 형국이 마을로 이어져 어사화를 꽂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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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읍 향토지』에 수록된 납읍 향사 기록에 따르면, 애월읍 납읍리에 사람들이 정착해서 마을을 형성한 시기는 고려 충렬왕 26년(1300)경, 지금으로부터 약 7백 년 전으로 추정된다. 조선 태종 16년(1416) 안무사 오식의 계청에 의하여 산북을 제주목으로 하고 목사를 두게 되었는데 납읍은 제주목 산하의 곽남이 되었다. 이 곽남이라는 마을명이 와음이 되어 과납으로 통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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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을 이어가기 위한 마을 사람들의 노력은 “학교살리기운동”에 그치지 않았다. 또 다른 또다른 노력의 결과로 『납읍 향토지』가 발간되었다. 『납읍 향토지』의 발간은 18명의 편집위원회가 주무를 맡았는데, 집필에만 4년이 걸렸고, 납읍 주민들과 편집위원들이 10개월 이상 교열 및 교정 작업을 하여, 장장 5년만에 결실을 맺었다. 이 책에는 납읍마을의 역사와 삶이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