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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조선 전기에 홍화각 등의 건물을 다시 지은 경위를 밝히기 위해 쓰여진 글. 공조참판 최해산은 1434년(세종 16) 제주절제사로 부임한 이후, 소실된 절제사영(節制使營)의 건축을 뒤로 미루고 우선 백성들을 구휼하여 민심을 안정시켰다. 1435년(세종 17)에는 제주도에 풍년이 들어 백성이 즐거워하자, 못 쓰게 된 사찰의 재목과 기와 등을 가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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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에 간행된 조선 후기 문신이자 학자인 이형상이 쓴 제주의 인문지리지. 이형상(李衡祥)[1653~1733]은 조선 후기 숙종, 정조 때의 문신이자 국학자이며 실학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효령대군의 10대손으로 호는 병와(甁窩)·순옹(順翁)이다. 『남환박물(南宦博物)』은 1702년 3월부터 1703년 6월까지 제주목사를 역임한 뒤에 1704년 경상북도 영천의 호연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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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3년에 간행된 조선 중기 문신 이원진이 쓴 제주목·정의현·대정현의 읍지. 『탐라지(耽羅誌)』는 이원진(李元鎭)[1594~1665]이 제주목사로 있던 1653년에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과 김정(金淨)의 『제주풍토록(濟州風土錄)』을 참고하여 제주도 내의 상황을 수집, 편찬하고, 제주의 석학 고흥진의 감수로 완성된 읍지이다. 『탐라지』와 같은 읍지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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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3월 3일 제주도에서 의병장 고승천과 이중심의 주도하에 전개하려던 항일 의병 운동. 의병이란 국가가 외침을 받아 위급할 때 조정의 명령이나 징발을 기다리지 않고 백성 스스로가 일어나 조직하는 일종의 민군(民軍)을 말한다. 의병 운동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는 임진왜란과 한말이라 할 수 있다. 한말의 의병은 1894년의 청일 전쟁과 갑오개혁을 통하여 일제의 침략이 노골화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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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4·3사건과 관련한 유적. 1. 잃어버린 마을: 1948년 11월 이후 토벌대에 의해 전소된 후 현재까지 복구되지 않은 마을이다. 당시 가호수가 10호 이상인 마을을 이 범주에 넣었다. 2. 성: 1948년 12월 이후 무장대의 침입을 막기 위해 마을 주변에 쌓은 성을 쌓았다. 성은 당시 쌓았던 것 중에서 현재 남아 있는 곳을 지칭한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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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제주 지역에 부과된 여섯 가지 직역(職役). 제주도는 면적이 좁고 인구가 적은 데 비하여 잡역·잡세가 많아 도민들이 져야 할 역(役)이 너무 많았다. 예를 들어 공마, 귤, 약재 및 해산물, 산짐승 등의 진상 공물은 물론, 지방 관아의 지공(支供)·목자(牧子)·과원직(果園直)·선격역(船格役)을 모두 부담해야 하였기 때문에 한 사람이 10역(役)을 겸하는 상황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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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지방의 목장 업무를 담당하던 관직. 지방에서 목장에 관한 총괄적인 일을 관장하던 종6품의 외관직이다. 조선 전기에 몇 차례에 걸쳐 정비되었던 마정 조직의 가장 큰 문제점은 목장 관리에 어느 정도 경험을 가진 지방 토착인들을 기용할 것인가, 아니면 중앙에서 파견한 관리에게 그 책임을 맡길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조선 전기에는 제주비장의 토착인들을 감고(監考) 등에 임명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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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 지역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일본군이 만든 군사 시설. 일본군이 제주도에서 결7호작전을 준비하면서 제주의 오름이나, 해안가, 한라산 고지대 깊숙한 곳에 구축해 놓은 방어 시설이다. 일본군은 위장 진지, 전진 거점, 주저항 진지, 복곽 진지 등 네 종류의 진지를 구축하였다. 우선 위장 진지는 적의 포 폭격의 흡수, 교란 등 적의 전투 진행 방향을 교란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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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를 시조로 하고 신명려를 입도조로 하는 제주의 세거 성씨. 거창신씨 시조 공헌공(恭憲公) 신수(愼修)는 송나라 개봉부(開封府) 사람으로 고려 문종 때 귀화했는데 학식이 깊고 의술에 능했다. 1075년 시어사(侍御史)가 되고 숙종조에 이르러 수사공(守司空) 우복야(右僕射)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올랐다. 신수 그의 아들 신안지(愼安之)도 문종 때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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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1875년(고종 12) 제주목사 이희충(李熙忠)에 의해 창건되어 선비들이 유교 경전을 공부하며 서로 교류하던 장소. 이희충이 기록한 『경신재섬학전(敬信齋 贍學錢)』 「절목(節目)」에는 “이 재에는 월봉이 지극히 박해서 해마다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므로 약간의 세금을 거두어서는 지출을 감당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접(接)을 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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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순왕을 시조로 하고 김검룡을 입도조로 하는 제주의 세거 성씨. 제주입도조 김검룡(金儉龍)은 경순왕(敬順王)의 넷째 왕자 안동군 김은열(金殷說)의 16세손이며, 김녕군 김시흥(金時興)의 10세손이다. 아버지는 익화군 김인찬(金仁贊)으로 조선개국 일등공신이며 의정부좌찬성의 요직에 있었다. 경주김씨의 도시조(都始祖)는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56대 경순왕(敬順王)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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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알평을 시조로 하고 이미와 이희관을 입도조로 하는 제주의 세거 성씨. 경주이씨의 시조는 신라 초기 6촌중의 하나인 알천양산촌의 촌장 표암공(瓢岩公) 이알평(李謁平)이며, 소판공(蘇判公) 이거명(李居明)이 중시조이다. 표암공(瓢岩公)에 연원을 두고 있는 가문이 경주이씨 말고도 여럿 있는데 합천이씨(陜川李氏)·원주이씨(原州李氏)·아산이씨(牙山李氏)·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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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에 있는 조선 시대 애월진 소속의 봉수. 고내봉수는 북동쪽으로 수산봉수(직선 거리 4.5㎞)와 남서쪽의 도내봉수(직선 거리 5.6㎞)와 교신하였으며, 동쪽으로 남두연대, 서쪽으로 애월연대와도 교신하였다. 소속 별장 6명, 봉수 24명이 배치되었다.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 해안가에서 남쪽으로 약 1㎞ 떨어진 해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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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 지역에서 1차 사료로서의 유일한 가치를 갖는 필사된 기록. 고문서는 현재 문서 자체의 권리·의무 등의 실제적 효력은 이미 상실하였지만 문서의 내용이 다른 것을 베낀 것이 아닌 그 자체로 고유한 내용을 담고 있는 원천적이고 근본적인 자료이다. 고문서에는 교지(敎旨)·관문(關文)·첩문(帖文)·준호구(準戶口)·소지(所志)·명문(明文)·상환기(相換記)·시권(試券)·분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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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조를 시조로 하고 이세번과 이세택을 입도조로 하는 제주의 세거 성씨. 고부이씨의 시조 이경조(李敬祖)는 고려 때 한림학사를 거쳐 문하평장사와 검교좌정승을 지냈다. 후손 가운데 조선 성종 때 별시 문과에 올라 경기도관찰사를 지낸 이희맹(李希孟)이 우뚝하다. 태종 때 대과에 올라 주서와 교수를 지낸 이백첨(李伯瞻), 그리고 숙종 때 식년 문과에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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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제주에서 의병을 일으킨 유생. 본관은 제주. 자는 경지(景志), 호는 초광(樵㹰), 초명은 고구훈(高龜訓)이다. 일명 고승천(高承天)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유학(幼學) 고영길(高永吉)이다. 고사훈은 나이 30살에 이르러서야 한학에 열중하고 북학을 배워 이용후생을 실천하려 하였다. 1905년(고종 42) 을사조약이 일제의 강압에 의하여 체결되자 육지에서 의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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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에 있었던 조선 중기 북수구(北水口)의 문루. 1652년(효종 3) 8월 심한 비바람으로 남수구와 북수구가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자, 당시 제주목사 이원진(李元鎭)이 그 해 겨울부터 공사에 들어가 이듬해 3월 11일 북수구를 다시 만들고, 그 위에 정자를 세워 공진루라고 이름하였다. 그 후 공진루는 관리들이 세운(世運)을 기원하는 장소로, 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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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조선 시대에 행해지던 관리 선발 시험 제도 제주 지역에서는 문·무 외방별시가 시행되었다. 문과의 외방별시는 승보시라고도 하였으며, 무과에는 외방별시 외에도 마병도시와 포과가 있었다. 제주에서 시행된 것은 아니지만 제주와 관련된 과거의 일종으로 황감제가 있었다. 제주인의 과거 입격은 이미 고려 시대의 고유·고조기·고적 등에서 찾아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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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조선 시대에 감귤 및 과실의 진헌을 위해 조성, 관리되던 과수원. 조선 시대 과원 제도는 1394년(태조 3) 7월에 동산색(東山色)을 상림원으로 바꾼 점으로 미루어 보아, 고려 시대부터 내려오던 과원 제도를 이어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경국대전(經國大典)』 공전(工典) 「재식조(栽植條)」의 기록에 따르면 과원의 과일 나무 수를 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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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때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1559년(명종 14)에 경원부사를 지냈는데, 재임 중 청렴하다고 하여 명종으로부터 옷 한 벌을 받았다. 전라도병마절도사 재임 중인 1565년(명종 20) 12월에 변협(邊協)[1528~1590]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였으며, 1568년(선조 1) 6월에 대호군에 임명되어 떠나자 백성들이 명관이라고 칭하였다. 변협이 제주목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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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신숙청(辛淑晴) 제주목사가 창건한 관덕정 앞 광장. 관덕정 광장은 병사들을 훈련시키기 위하여 1448년(세종 30) 신숙청 제주목사가 창건한 관덕정 앞 광장이다. 관덕정은 제주도를 상징하는 건물로서 제주목 관아가 자리한 이 일대는 제주 정치의 중심지였다. 1901년(광무 5)에 외국인 신부의 위세를 믿고 범법(犯法)을 자행하던 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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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광을 시조로 하고 김윤조를 입향조로 하는 제주의 세거 성씨. 광산김씨의 시조는 신라 왕자 김흥광(金興光)이다. 『광산김씨대동보』에 의하면 신라 말 종묘 사직이 안정되지 못하고 도처에서 민란이 일어나 민심이 흉흉하므로 산자수명한 무주현 서일동(西一洞)에서 은거 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제주 입도 시조 김윤조(金胤祖)는 시조 김흥광(金興光)의 17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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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1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예절 바르고 스스로 탐구하며 더불어 사는 어린이를 육성하는 것이며 교훈은 ‘성실하게, 슬기롭게, 씩씩하게’이다. 해방 이후 제주읍 이도리·도남리·아라리·오동리 지역에는 680여 호 약 3,000여 명의 인구가 밀집되어 있었다. 이도리·도남리·아라리·오동리 지역에 거주하던 아동들은 제주 남 국민학교와 아라 국민학교 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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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7년(인조 15) 조선 15대 국왕인 광해군이 폐위되어 제주로 유배된 사건. 1575년(선조 8) 선조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조선의 제15대 국왕이 되었다. 1623년 3월 13일에 일어난 인조반정으로 폐위되어 강화도로 유배되었다가,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태안으로 이배되었다가 다시 강화도로 옮겨졌다. 병자호란이 일어난 이듬해인 1637년(인조 15)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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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조선 중기 광해군의 적소로 전해져 온 터. 광해군은 조선조 15대 임금으로, 재위 15년인 1623년에 인조반정으로 왕위에서 쫓겨나 광해군으로 강봉되었다. 강화도에 잠시 유배된 뒤 1637년(인조 15) 5월에 제주도로 이배되었다. 광해군이 위리안치되었던 곳은 서성 안이라는 설과 남성 안이라는 설 두 가지가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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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숙귀를 시조로 하고 오석현을 입도조로 하는 제주의 세거 성씨. 도시조 오첨(吳瞻)의 24세손인 동복군(同福君) 오현좌(吳賢佐)의 둘째 아들 오숙귀(吳淑貴)를 시조로 하고 있다. 오숙귀(吳淑貴)는 고려 숙종 때 19세의 어린 나이로 문과에 올라 호부상서(戶部尙書)를 지내고 군위군(軍威君)에 봉해졌다. 오숙귀(吳淑貴)의 후손들이 군위에 정착 세거하여 동복오씨(同福吳氏)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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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귀덕리에 있는 조선 시대 명월진 소속의 연대. 귀덕연대는 동쪽으로는 애월연대[직선 거리는 3.2㎞], 서쪽으로는 도내봉수[직선 거리 2.7㎞] 와 교신하였으며, 소속 별장 6명, 봉군 12명이 배치되었다. 주변 해안과 비교하여 완만하게 안으로 들어온 속칭 ‘복덕개’라 부르는 포구 가까이 귀덕 초등학교가 있으며, 이 초등학교 교내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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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2년과 1729년에 간행된 조선 중기의 학자 이건의 시문집. 이건(李健)[1614~1662]은 선조의 손자로서 인성군(仁城君) 이공(李珙)의 아들이다. 1628년 인성군이 역모 혐의로 대역 처분을 받았을 때 두 형과 함께 15세의 나이로 제주도에 유배되었다. 인조의 특별한 배려로 1635년 제주도에서 울진으로 이배되고, 1637년에는 귀양에서 풀려나 해원군(海原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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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제주에서 토산물인 감귤을 공물로 바치던 제도. 감귤은 제주에서 주로 생산되는 과실로서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제주의 중요한 진상품이었다. 제주도에서는 11세기부터 진상품으로서 감귤 재배가 이루어졌는데, 조선 시대로 들어서며 귤과 유를 별공으로 해서 공납하게 하였다. 1408년(태종 8) 진상제인 공부제가 실시되면서 감귤 재배가 적극 권장되어, 각 지방마다 과원을 설치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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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2동에 있는 조선 시대 관아 건물. 이원조의 『귤림당중수기(橘林堂重修記)』에는 “이 땅에 귤명(橘名)된 국과원(國果園)이 모두 36곳인데, 홀로 이 귤림당만이 연희각 가까이에 있다. 입추(立秋) 이후가 되면 서리가 내려서 많은 알갱이가 누렇게 익는다. 공무를 보는 여가에 지팡이를 짚고 과원을 산책하노라면 맑은 향기가 코를 찌르고,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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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1동 오현단 안에 있는 조선 시대 유교 교육 기관. 귤림서원은 조선 시대 초기 및 중기에 제주에 유배되었거나 방어사로 부임했던 오현(五賢), 곧 충암 김정·규암 송인수·동계 정온·청음 김상헌·우암 송시열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후학을 양성하던 유교 교육 기관이었다. 초기의 학생수는 20여 명 정도였으나 이후 35명까지 늘어났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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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에서 노끈이나 실, 쇠줄 따위로 여러 코의 구멍이 나게 얽어 날짐승이나 물고기 따위를 잡는 데 쓰는 물건. 제주도의 어로 기술은 낚시와 그물로 대별된다. 어로 기술은 일정할 수 없다. 어로 문화 집단인 어촌 마을마다 그들이 처한 환경에 순응하면서 기술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다. 제주목사를 역임한 이형상(李衡祥)[1653~1733]은 『남환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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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돌이나 쇠붙이에 새겨 넣은 글씨나 그림. 금석에 새겨진 문자나 도형은 쉽사리 마모되지 않고 오랜 세월 견뎌내기 때문에 내구성이 높아 과거의 사실을 고증하는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가진다. 금석문은 크게 금문(金文)과 석문(石文)으로 구분된다. 금문은 금속제의 용기, 악기, 무기, 화폐, 인장(印章), 경감(鏡鑑), 범종(梵鐘), 도량형 등에 주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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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1동에 있는 조선시대 무과에 급제한 제주 지역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한 인명록. 1720년경에 처음으로 만들어졌으며 서문, 절목, 명단의 순으로 되어 있다. 1558년에 무과에 급제한 양연(梁淵)으로부터 1815년에 급제한 이윤방(李潤邦)까지는 급제연대가 기록되어 있고, 그 후 좌인호(佐仁豪)까지는 연대 기록 없이 성명만 기록되어 있으며 수록된 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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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에 있는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에 설치되어 학문을 가르치던 사학(私學)의 터. 김녕정사는 동서학당(東西學堂)으로 명칭이 바뀌기도 하였으나 철폐된 시기는 분명하지 않다. 향교의 유생(儒生)들로 하여금 글공부에 정진하게 하고, 학식과 덕망이 있는 사람을 학장(學長)으로 삼았다. 김녕정사터는 김녕포(金寧浦) 위에 있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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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제주어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안동. 자는 숙도(叔度), 호는 청음(淸陰), 시호는 문정(文正). 일명 서간노인(西磵老人)·석실산인(石室山人)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돈녕부 도정(都正)이었던 김극효(金克孝)이며, 우의정 김상용(金常容)[1561~1637]의 동생이다. 1590년(선조 23)에 진사가 되었으며, 1596년(선조 29) 임진왜란 중에 실시된 정시 문과에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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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 제주 출신의 한학자이자 향토사학자. 본관은 광산. 자는 윤경(胤卿)·윤경(允敬)·홍점(鴻漸), 호는 심재(心齋)·일소도인(一笑道人)·해상실사(海上佚史). 초명은 김석조(金錫祚)이다. 아버지는 김창규(金昌圭)이며, 조선 말기에 의병운동을 벌였던 김석윤(金錫允)[1877~1949]의 동생이다. 여덟 살 때부터 할아버지로부터 한문의 기초를 배웠으며, 열세 살 때 할아버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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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일도동에 있는 김윤식이 제주도에 유배되어 5년여 동안 적거했던 유허지. 외무대신으로 갑오개혁을 주도했던 운양 김윤식은 을미사변 뒤 1989년(광무 1) 제주도에 유배되어 1901년 5월 이재수의 난을 계기로 전라남도 지도로 이배될 때까지 제주에서만 5년 가까이 유배 생활을 하였다. 유배 생활을 하면서 그는 『속음청사(續陰晴史)』를 저술하고, ‘귤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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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제주에 유배된 문신. 충암 김정은 중종 때 여러 관직을 거쳐 대사헌·형조판서 등을 역임하며, 조광조와 함께 미신타파·향약시행 등에 힘썼으나 기묘사화 때 제주에 안치되었다가 사사되었다.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원충(元冲), 호는 충암(冲菴), 시호는 문간(文簡). 김정은 1504년(연산군 10)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했고, 1507년(중종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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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에 유배된 문신. 조선 후기의 서화가·문신·문인·금석학자이다. 1819년(순조 19)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대사성·이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학문에서는 실사구시를 주장하였고, 서예에서는 독특한 추사체를 대성시켰으며, 특히 예서·행서에 새 경지를 이룩하였다.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원춘(元春), 호 완당(阮堂)·추사(秋史)·예당(禮堂)·시암(詩庵)·과파(果坡)·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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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로왕을 시조로 하고 김만희·김돈·김응주 등을 입도조로 하는 제주의 세거 성씨. 김해김씨(金海金氏)는 시조 김수로왕(金首露王)의 제12세손 김유신(金庾信)을 중시조(中始祖)로 하여 대소 98파로 나뉘는데, 그 가운데 김유신의 직계종파(直系宗派)는 고려의 김목경(金牧卿)을 중시조로 하는 경파(京派)와 김목경(金牧卿)의 아우 김익경(金益卿)을 중시조로 하는 사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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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발을 시조로 하고 김인충을 입도조로 하는 제주의 세거 성씨. 나주김씨는 신라 경순왕의 왕자 김황(金湟)의 두 아들 중 장자인 김운발(金雲發)이 나주군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나주를 본으로 삼았다. 제주입도조 김인충(金仁忠)은 시조 김운발(金雲發)의 14세손으로 고려 말에 무신으로 과거에 급제하고 강화진 좌령랑장(左領郎將)을 역임하였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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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가축의 개체를 식별하기 위해 가축의 일정 부위에 인위적으로 표시하는 것. 육지에서는 소의 목에 방울을, 그리고 제주도에서는 소의 엉덩이에 낙인을 새겼다. 우마의 목에 달린 ‘소리로의 전달’ 도구인 방울은, 소리를 내어 주인에게 우마의 위치를 알리는 것에 지니지 않았다. 그러나 제주도 우마들의 엉덩이에 새긴 낙인은, 산과 들을 오르고 내리는 모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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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2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튼튼한 몸으로 바르게 생각하며 자기의 희망과 행복을 가꾸어 가는 어린이를 육성하는 것이며 교훈은 ‘열심히 배우자, 참되게 행하자, 튼튼히 자라자’이다. 도심지의 과대 규모화, 2부제 수업, 이도 아파트 단지 조성, 이도2동 택지 개발 등에 따른 유입 인구 증가와 모체 학교인 광양 국민학교까지의 원거리 통학에 따른 불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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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연동에 있는 사립 일반계 고등학교. 인간성과 창의성을 겸비한 실력인을 육성하는 것이며 교훈은 ‘박문 독행[博文篤行: 학문을 널리 닦고 성실히 실천하라]’이다. 1985년 2월 21일 학교 법인 남녕 학원의 설립 인가를 받아 3월 13일 초대 이사장에 설립자인 백이남이 취임하였다. 이어 7월 19일 남녕 고등학교 교사동 기공식을 가졌으며 12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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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신엄리에 있는 조선 시대 애월진 소속의 연대. 남두연대는 동쪽으로 수산봉수(직선 거리 2.5㎞), 서쪽으로 고내봉수(직선 거리 2.7㎞)와 교신하였으며, 별장 6명, 봉군 12명을 배치하였다. 해안 도로가 시작되는 구엄리에서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2㎞ 정도를 가면 ‘남뜨르’라 불리는 동산 위에 남두연대가 있다. 이 연대는 197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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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7(선조 10)~1578년(선조 11) 임제(林悌)가 제주를 여행하며 저술한 사찬 문서. 임제는 1577년(선조 10) 과거 시험에 합격하고 동년 11월 제주목사로 와 있던 부친 임진(林晋)을 찾아 왔다가 다음해 3월에 돌아갔다. 『남명소승(南溟小乘)』은 임제가 고향을 출발하여 제주에 머물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약 4개월 동안의 여정을 기록한 일기체 한문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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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2동에 있는 조선 시대 제주읍성의 남문 터. 남문지는 제주읍성의 남문이 있던 자리로, 제주시 이도2동의 속칭 남문통에 있다. 제주읍성은 제주목사가 근무하던 제주목 관아와 그 주변을 둘러서 쌓은 성을 말한다. 동쪽·남쪽·서쪽에 문이 나 있고, 남쪽과 북쪽으로 수문이 있었다. 제주읍성은 탐라국 때부터 축성된 것으로 추정되나 정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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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9년경에 간행된 조선 중기의 문신 김상헌의 제주 기행문. 『남사록(南槎錄)』은 일종의 일기체 형태로 서술된 책으로, 김상헌(金尙憲)[1570~1652]이 1601년(선조 34)에 안무어사로 제주에 파견되어 기록한 일종의 기행문이다. 『남사록』은 규장각 도서번호 147270번 2권 1책과 147271번 2권 1책이 같이 합철되어 있다. 즉 앞의 2권 1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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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인 이증이 제주안핵경순무어사로서 활동할 때의 일을 일기체로 수록한 책. 이증(李增)[1628~1686]은 1678년(숙종 4) 증광시 병과에 입격한 이듬해인 조선 숙종 5년 제주안핵경순무어사로 파견되었다. 『남사일록(南槎日錄)』은 1679년 9월 한양을 떠나 제주에 도착한 경위와 그 뒤의 행적, 귀경 과정을 일기체로 수록한 기록문이다. 당시 우의정이자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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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열을 시조로 하고 홍윤강을 입도조로 하는 제주의 세거 성씨. 남양홍씨는 세칭 당홍(唐洪) 집과 토홍(土洪) 집으로 구분되고 있는데 당홍은 고려 초기에 당나라의 문화 사절로 입국했다가 귀화하여 삼중대광태사(三重大匡太師)가 된 홍은열(洪殷悅)을 시조로 하고 있으며, 토홍은 그보다 훨씬 뒤인 고려 고종 때 금오위별장(金吾衛別將)을 지낸 홍선행(洪先幸)을 시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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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9년 김성구가 정의현감 재임시에 저술한 일기체 형식의 문헌. 김성구(金聲久)[1641~1707]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의성이며 호는 팔오헌(八吾軒) 혹은 해촌(海村)이다. 1662년(현종 3) 사마시를 거쳐 1669년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무안현감·직강·정언 등을 거쳤으며 1679년(숙종 5) 정의현감으로 부임하였다. 정권에서 멀어져 있던 김성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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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다성을 시조로 하고 문탁과 문신공을 입도조로 하는 제주의 세거 성씨. 남평문씨는 고려 1197년(명종 24)에 제주에 입도한 기록으로 보아 고·양·부 3개 성씨를 제외하고는 제일 먼저 입도한 성씨임을 알 수 있다. 남평문씨의 시조는 신라 자비왕(慈悲王) 때 사람인 문다성(文多省)이다. 문다성(文多省)의 출생에 대해서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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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노형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고운 심성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어린이, 새 시대의 정보를 알차게 처리하는 어린이, 자기 주도적으로 계획하고 실천하는 어린이, 몸과 마음이 굳센 어린이를 육성하는 것이며, 교훈은 ‘바르게·슬기롭게·튼튼하게’이다. 1910년 한일 병합과 함께 일제는 제국주의적 침탈을 통해 천황 숭배와 군국주의를 결합한 국가 신도를 앞세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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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에 있던 조선 시대 활터. 달관대는 조선 후기에 제주목사 김정[1670~1737]이 돌에 달관대(達觀臺)라 새기고 그 위에 과녁을 설치해서 활을 쏘는 장소로 삼았던 곳이다. 신광수(申光洙)가 지은 『탐라록(耽羅錄)』에 ‘재삼천서당방(在三泉書堂傍)’이라고 쓰여 있듯, 근처에 역시 김정 목사가 설립한 삼천서당이 자리했던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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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관둔답(官屯畓)을 경작하는 사람. 답한이란 제주 지역에서만 특이하게 나타나는 직역명이다. 이 역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관둔답의 존재로 볼 때 조선 전기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답한은 관둔답이 소속된 관청에 따라 영답한(營畓漢)·목답한(牧畓漢)·삼성사답한(三姓祠畓漢)·답한(畓漢) 등으로 나뉘었다. 즉 영답한은 제주목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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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에 있는 조선 시대 차귀진 소속의 봉수가 있었던 터. 당산봉수는 동쪽으로 대정현 저별봉수 또는 모슬봉수, 서쪽으로 제주 만조봉수(직선거리 10.7㎞)와 연락을 취하였으며, 동쪽으로 대정현 서림연대, 서쪽으로 대정현 우두연대와도 교신하였다. 소속 별장 6명, 봉군 12명을 배치하였다. 지리적 위치는 동경 126° 10′, 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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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봉개동에 있는 사립 일반계 고등학교. 첫째, 나라를 사랑하고 전통문화를 숭상하며 우리 고장의 발전에 기여하는 자주인을 육성하는 것이다. 둘째, 바른 인성으로 예절을 존중하고 근검절약하며 정직하고 질서를 생활화하는 도덕인을 육성하는 것이다. 셋째, 기초 학력을 증진하고 적성과 소질을 발견하며 창의력을 키워 자기 주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창조인을 육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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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금릉리에 있는 조선 시대 명월진 소속의 연대가 있었던 터. 대포연대는 동쪽으로 배령연대(직선거리 4.4㎞), 서쪽으로 두모연대(직선거리 873m)와 교신하였으며, 소속 병장 6명, 봉군 12명을 배치하였다. 판포리의 민가가 밀집된 마을에서 두모리(頭毛里) 쪽으로 일주 도로를 따라 500m 정도 떨어진 곳에 이르면 주변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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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순력도』는 이형상 제주목사가 재임할 당시 제주도를 동-남-서-북으로 한 달 간 걸쳐 순력(巡歷)하고 돌아와서 그간의 여러 가지 상황들을 28폭의 그림에 담아낸 총 41면으로 된 도첩(圖帖)으로, 채색화이자 기록화이다. 기록화는 특정한 사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그 내용을 시각적으로 전달한 그림을 말한다. 중앙에서는 도화서 화원(畵員)들이 의궤도를 비롯한 기록화를 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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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도남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예의 바르고 부지런한 어린이를 육성하는 것이며 교훈은 ‘올바르게·슬기롭게·건강하게’이다. 1970년대 이후 도남동에 신시가지가 조성되기 시작하고 1980년대 초 인구가 폭증하게 되면서 국민학교 설립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1983년 1월 15일 도남 오거리 남쪽 도남동 845-1번지[도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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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금성리에 있는 조선 시대 명월진 소속의 봉수. 도내봉수는 북동쪽으로 고내봉수(직선 거리 5.3㎞), 남서쪽으로 만조봉수(직선 거리 7.5㎞)와 교신했으며, 동쪽으로 귀덕연대, 서쪽으로 우지연대와도 교신하였다. 소속 별장 6명, 4봉수 24명을 배치하였다. 제주시 한림읍 귀덕리 해안에서 남동쪽으로 약 3.8㎞ 떨어진 해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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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도두1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튼튼한 몸과 바른 마음으로 스스로 탐구하는 창의적인 어린이를 육성하는 것이며 교훈은 ‘바르게·슬기롭게·튼튼하게’이다. 1921년 7월 2일 제주시 도두동에서 진신 학숙이 개교하였다. 이후 1936년 2월 사립 도두 보통학교 승격 기성회를 조직하고 1936년 9월 24일 4년제로 설립 인가를 받았다. 1938년 4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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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도평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성실한 마음과 튼튼한 몸으로 슬기롭게 배우고 익혀 국제자유도시를 이끌어 갈 창의적인 어린이를 육성하는 것이며 교훈은 ‘성실하게·슬기롭게·튼튼하게’이다. 1947년 4월 12일 도평 공립 국민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았으나 4·3 사건으로 1949년 1월 2일 교사가 전소되어 외도 국민학교로 병합되었다. 통학의 불편함을 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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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일도2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성실한 마음과 튼튼한 몸으로 즐겁고 슬기롭게 미래의 꿈을 키우는 창의적인 어린이를 육성하는 것이며 교훈은 ‘성실하게, 슬기롭게, 건강하게’이다. 제주시 일도2동 남동쪽 천수동에 주공 우성 아파트 등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인구 유입이 증가함에 따라 국민학교 설립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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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회문을 시조로 하고 정형창과 정윤강을 입도조로 하는 제주의 세거 성씨. 동래정씨의 시조는 신라 때 안일호장(安逸戶長)을 지낸 정회문(鄭繪文)이다. 동래정씨가 조선왕조에서 배출한 정승은 17명으로 전주이씨(22명), 안동김씨(29명) 다음으로 많았다. 또 대제학 3명, 대과 급제자 198명을 낳은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명문이다. 정형창(鄭亨昌)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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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에 있는 조선 시대 제주읍성의 동문 터. 동문지는 제주읍성의 동문 터로서, 동문지에는 제중루(濟衆樓)라고 불리는 동문루가 있었다. 제주읍성은 제주목사가 근무하던 제주목 관아와 그 주변을 둘러서 쌓은 성을 말한다. 동쪽·남쪽·서쪽에 문이 나 있고, 남쪽과 북쪽으로 수문이 있었는데, 동문지는 동쪽에 있던 동문 자리를 말한다. 제주읍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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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2동에 있는 동헌 앞에 세웠던 표지석. 하마비는 본래 1413년(태종 13) 종묘와 궐문 앞에 세운 것이 우리나라의 시초라고 한다. 그 후 문묘와 지방 관부 등에도 이 하마비가 세워지기 시작했다. 하마비는 통행인의 하마(下馬)를 명령하는 데 그치지 않고, 관청의 표석으로도 쓰였다. 비석에는 건립 연대가 새겨져 있지 않고, 옛 문헌 등에도 이에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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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1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바른 마음과 튼튼한 몸으로 큰 뜻을 세워 즐겁게 공부하는 슬기로운 어린이를 육성하는 것이며 교훈은 ‘참되게, 슬기롭게, 튼튼하게’이다. 1994년 대한 주택 공사에서 화북동과 삼양동 경계에 택지 개발과 함께 화북 주공 아파트 단지 조성 사업을 추진함에 따라 화북동 일대에 인구 유입이 증가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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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두모리에 있는 조선 시대 명월진 소속의 연대. 두모연대는 동쪽으로는 대포연대(직선 거리873m), 서쪽으로는 우두연대(직선 거리 3.9㎞)와 교신했으며, 소속 별장 6명, 봉군 12명이 배치되었다. 두모리 일주 도로에서 북서쪽으로 500m를 가면 주위 해안보다 돌출된 지역 포구와 인접한 곳에 있다. 두모연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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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1동에 있었던 둑신(纛神)을 모시는 사당. 둑신묘(纛神廟)는 대가(大駕) 앞이나 군대의 대장 앞에 세우는 군기인 둑기(纛旗)를 제사 지내던 곳으로, 남성(南城) 안에 있었다. 둑기는 군법의 신인 치우(蚩尤)의 머리를 상징한 것으로, 군대에서 쓰이던 둑도(纛刀)와 같은 모양의 것이나 커다란 삼지창에 붉은색의 털을 많이 달았다. 병사들이 행진할 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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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한림리에 있는 조선 시대 명월진 소속의 연대가 있었던 터. 마두연대는 동쪽으로 죽도연대(직선거리 1.1㎞), 서쪽으로 배령연대(4.3㎞)와 교신하였으며, 소속 별장 6명, 봉군 12명을 배치하였다. 마두연대는 마두포 대안(對岸)에 있었다고 하는데, 마두포의 위치는 옛 지도에 의하면 독포 동쪽이고, 그 동쪽이 잠수포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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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1동에 있는 말의 수호신인 방성(房星)에 제사 지냈던 마조단의 옛 터. 방성은 천사성이라고도 하며 곧 말의 조상을 의미하는데 마조단에서 지내던 제를 마조제라고 하며, 제주 지역에서는 인류에게 유용하게 쓰인 말에 대한 감사와 기원을 담아 제를 지냈다. 제주 지역에서 언제부터 말의 조상신인 방성에 대해 제를 지내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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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상명리에 있는 조선 시대 명월진 소속의 봉수. 만조봉수는 동북쪽의 도내봉수(직선 거리 7.5㎞)와 남서쪽의 당산봉수(직선 거리 10.7㎞)와 교신하였으며, 서쪽으로 배령연대와도 연락을 취하였다. 소속 별장 5명, 봉군 24명이 배치되었다. 제주시 한림읍 금능리 해안가에서 남동쪽으로 4.8㎞ 떨어진 해발 225m의 느지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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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1동의 제주목 관아 안에 있던 조선 시대 누각. 망경루는 조선 시대에 지방의 20개 목(牧) 가운데 ‘제주목’에만 유일하게 존재했던 2층 누각으로, 바다 건너 멀리 떨어진 변방에서 임금이 있는 한양을 바라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망경루는 특히 제주 앞바다로 침범하는 왜구를 감시하는 망루 역할도 하였다. 망경루는 155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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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명월리에 있는 조선 말기의 석대(石帶). 명월대는 옛 선비들이 모여 시회(詩會)를 베풀고 한량들이 모여 주연을 베풀던 수려한 경승지로 알려져 있다. 숲과 바위로 이뤄진 제주 특유의 계곡으로 냇가를 따라 수백 년이나 되는 팽나무 60여 그루가 우거져 경관이 빼어난 곳이다. 또한 한 여름철 더위를 식히며 놀이를 즐기던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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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동명리에 있는 1510년(중종 5)에 목사 장림(張琳)이 명월포(明月浦)에 쌓았던 성터. 비양도 인근에 출몰하는 왜구를 방어하기 위해 목성으로 축조한 진성으로, 1976년 9월 9일 제주도 기념물 제29호로 지정되었다. 1510년(중종 5)에 장림 제주목사는 비양도를 왜구가 침공하기 쉬운 곳이라 판단하여 이곳에 목성을 쌓았다.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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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동명리에 있는 조선 시대 성곽. 명월진성은 왜구의 침공에 대비하여 목성(木城)으로 만들었다가 훗날 석성(石城)으로 쌓은 조선 시대 성곽이다. 명월진성이 있는 명월포는 고려 후기인 1374년(공민왕 23) 제주에 살던 목호(牧胡: 원나라가 운영하던 국영 목장 관리자)가 반란을 일으키자 최영 장군이 상륙하여 난을 진압하고 돌아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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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 사라봉 공원 안에 1977년 제주도민들이 성금을 모아 세운 사당. 모충사는 1977년 제주도민들이 성금을 모아서 세운 사당이다. 조선 후기 흉년으로 도탄에 빠진 제주도민을 구휼한 김만덕과, 일제 강점기 조국의 독립을 위해 순국한 열사들의 충성스런 마음을 사모한다는 뜻으로 ‘모충사’라고 이름하였다. 모충사에는 1909년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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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에 있는 조선 시대 별방진에 소속의 연대가 있었던 터. 무주연대는 동쪽으로 좌가마연대(직선 거리 4.7㎞), 서쪽으로 입산봉수(직선 거리 2.5㎞)와 교신하였다. 소속 별장 6명, 봉군 12명을 배치하였다. 월정리 일주 도로와 인접하여 취락 구조 개선 마을이 있으며, 북서쪽으로 1㎞ 정도를 가면 월정리 마을과 김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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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제주특별자치도 북제주군에서 문과와 무과의 과거시험에 합격한 사람. 제주인의 과거 입격은 이미 고려 시대 인물인 고유·고조기·고적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제주에서 실시한 과거에 합격한 것이 아니라, 고려 조정에 상경하여 과거에 합격한 경우이다. 조선이 개창된 이후에 전국이 8도로 개편되고 난 후 제주인들의 문·무 향시(鄕試) 지역은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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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었던 조선 말기 서당인 문연서당이 있던 터. 1891년(고종 28) 귤암 이기온이 칠봉서당을 창설하고 노사 기정진의 문인이며 성균관 교수로 있던 고성겸을 강사로 초빙하여 교육을 개시했다. 1899년(광무 3) 화재로 고성겸과 제자 한 명이 불에 타 숨지고 칠봉서당이 소실되는 불행을 겪었다. 그 뒤 이 자리에 다시 문연서당을 세우고 아들 이응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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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정신적, 심미적 가치와 정체성을 보존하고 있는 유산. 조상들이 남긴 문화 유산 중 문화재적 가치가 있고 희귀성과 역사성, 예술성과 학술성이 있는 문화 유산을 문화재라 한다. 유네스코의 국제 협약 내용에 따르면 문화재란 고고학·선사학·역사학·문화·예술, 또는 과학적으로 중요하거나, 국가가 종교적 또는 세속적인 근거에 의하여 지정된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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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언침을 시조로 하고 박자호 등을 입도조로 하는 제주의 세거 성씨. 전체 박씨의 도시조는 신라의 박혁거세이며, 그 후로 파사왕(婆娑王)계와 일성(逸聖)계로 나누어 졌고, 일성왕계는 다시 경명왕계와 경애왕계로 분파되었는데 밀양박씨를 비롯하여 일명 팔대군파(八大君派)로 부르는 박씨는 경명왕의 후손들이다. 그 가운데서도 밀양박씨는 박씨의 대종을 이루고 있으면서도 장파[八大君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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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갑신정변을 주도했던 박영효의 적거 터. 1907년 8월 일제에 의한 고종의 선위가 강행되자 박영효는 궁내부 대신으로서 이를 반대하다가 일본 경찰에 의해 제주도에 감금되었다. 1년의 감금형이 풀린 뒤에도 박영효는 독짓골에 과원을 조성하여 제주도민에게 원예 작물 재배를 권장하고 근대교육과 근대 사상 계몽에 힘쓰다가 1910년 6월에 제주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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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외부의 침략에 대비해 제주 지역에 축조한 유적. 제주 해안 방어의 중요한 목적은 왜구의 빈번한 침입을 막는 데 있었다. 제주는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중국으로 가는 길에 위치해 왜구들이 땔감과 물·식량을 확보할 수 있는 가장 유리한 지역이었다. 그래서 왜구는 고려 말부터 제주에 자주 침입하여 방화·약탈 및 인명 살상을 일삼았다. 더구나 추자도 근해에 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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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제주 지역의 방어 요충지에 설치된 진(鎭). 방호소는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침입이 예상되는 요충지에 설치하여 방호 임무를 수행하던 군대의 경계 감시소이다. 각종 읍지나 『제주계록』에는 ‘진(鎭)’으로 표기되기도 한다. 방호소에 관해서는 『세종실록』에 “도내 군인이 주둔하는 곳은 본주 동쪽은 김녕·조천관, 서쪽은 도근천·애월·명월이며, 대정현 서쪽은 차귀, 동쪽은 동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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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금능리에 있는 조선 시대 명월진 소속의 연대. 배령연대는 동쪽으로 만조봉수(4.3㎞)., 서쪽으로 대포연대(직선 거리 4.4㎞)와 교신했으며, 소속 별장 6명, 봉군 12명을 배치하였다. 배령연대는 옹포리에서 협재리까지 해안선이 일직선으로 오다가 금릉리에서 밖으로 돌출되는 곳에 위치했다. 1996년 조사 당시 배령연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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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노형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미래 사회를 이끌어 갈 창의적이고 바른 인성을 지닌 건강한 어린이를 육성하는 것이며, 교훈은 ‘새롭게·바르게·힘차게’이다. 1999년 12월 20일 노형 택지 개발 사업 지구가 지정되고, 2005년 3월 30일 가칭 신 노형 초등학교 신축 공사가 착공되었다. 2006년 1월 5일 신노형 초등학교에서 노형 북 초등학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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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1동에 있는, 국어국문학을 연구하는 학회. 제주 전역에 대한 학술 조사를 통하여 제주 지역의 특수성을 알리고, 이를 바탕으로 국어국문학 연구와 한국 어문 연구를 발전시키는 데 기여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백록어문학회의 모체는 제주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의 국어교육연구회이며, 『백록어문』은 현지 조사 내용과 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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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에 설치한 외부 침략에 대비한 방어유적. 별방진은 1510년(중종 5) 장림(張琳) 목사가 우도에 왜구가 접근하기 쉬우므로 이를 방어하기 위해 김녕방호소를 이 곳, 하도리로 옮겨놓은 진(鎭)이다. 1973년 4월 13일 제주도 기념물 제24호로 지정된 9진 가운데 하나이다. 조선 중종 때 제주목사 장림(張琳)이 김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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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봉개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나를 찾아 소중히 하고,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할 줄 알며 기초·기본 학습력과 체력을 튼실히 하여 미래 사회를 대비하는 심성 고운 어린이를 육성하는 것이며 교훈은 ‘열린 생각·바른 행동·굳센 의지’이다. 1934년 강명보의 처 고열녀가 현금 300원을 부지 매입비로 희사하여 김대흥·김향진·임원명·고윤문 등의 주도로 봉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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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제주 지역의 관에서 변경의 정세를 중앙에 전하던 군사통신 조직. 봉수는 말 그대로 밤에는 봉(烽:횃불), 낮에는 수(燧:연기)로 급보를 전하던 통신 방법이다. 군사적 목적으로 설치된 봉수제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기록상에 나타난 시기는 고려 중기(12~13세기)이다. 그러나 서로 바라볼 수 있는 높은 산꼭대기에서 횃불과 연기로 의사를 전달하던 지혜는 일찍부터 발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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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제주군은 제주특별자치도 북부와 부속 도서를 포함하는 지역이다. 1946년 8월 1일에 시작되어 2006년 6월까지 존속했던 행정구역으로 2006년 7월 1일 제주도가 제주특별자치도로 출범하면서 제주시에 통합되었다. 탁라(乇羅)라 불리면서 5세기 후반부터 한반도 내 고대국가와 관계를 가졌던 제주 지역은 백제·신라에 이어 고려와 속국의 관계를 맺고 있었으나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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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생원, 진사 등 사마시에 합격한 유생들이 모여 학문을 연마하던 사마재의 터. 학문 연마를 목적으로 세워진 사마재에 1876년(고종 16) 8월에 유배 온 이세직이 세를 내어 살면서 학생들을 모아 일본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학문 연마, 강독 강론과 대과 준비를 위하여 1876년(고종 16)에 제주목사 백낙연이 사마재를 창건하였다. 당시 제주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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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1동에 있는, 제주목사가 사직(社稷)을 배향하여 제사 지내던 사직단의 옛 터. 사직단이란 토지의 신인 사(社)와 곡식의 신인 직(稷)을 모셔 제사 지내던 곳인데, 사직에 대한 제사는 곧 농업 국가로서 국가 경제의 기초를 지켜주는 신에 대한 제사라는 의미를 갖고 있었다. 사직단은 왕이 있는 한성부에만 설치한 것이 아니라 각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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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중산간 지방에서 재배되는 밭벼. 많은 물이 없이도 자라는 밭에 심는 벼로, 뿌리는 깊이 내리며 잔뿌리가 많아 가뭄에 견디는 힘이 논벼보다 강하다. 제주도에 전승되어 온 산듸 품종은 뒈시리, 갈산듸, 원산듸, 산듸 등 네 가지인데 줄기와 낟알, 이삭의 색깔과 가시락(까끄라기)의 수가 각기 다르다. 뒈사리는 낟알과 이삭이 붉은색, 갈산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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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1동에 있는 한라산 산신제를 비롯하여 여러 제사를 봉행했던 산천단의 옛 터. 한라산 산신제의 내력을 살펴보면, 옛날에는 명산대천에 제 드리는 일을 아주 중요한 국사로 삼아 모든 산천을 하나하나 등재하고, 격식을 갖추어 『오례의』라는 책을 만들었는데 한라산은 제외되어 있었다. 이에 1703년(숙종 29) 당시 제주목사 이형상(李衡祥)이 조정에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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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혜적인 수려한 자연 경관으로 제주도는 일생에 한 번은 꼭 찾아보고 싶은 곳 중의 하나로 꼽히는 ‘환상의 섬’이다. 21세기 해양 시대를 맞아 세계의 많은 학자들은 소위 베세토(beseto) 라인의 중심축에 제주가 위치하고 있어 동북아시아의 중심 지역으로 제주가 부상할 것이라 예견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제주의 이면에는 제주인들의 처절한 항쟁의 역사가 자리잡고 있다. 항쟁의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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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동에 있는 탐라국의 신화와 관련된 유적. 삼사석은 탐라국의 시조인 고(高)·양(良)·부(夫) 세 신인(神人)이 벽랑국(碧浪國)의 세 공주를 배필로 정한 뒤, 살아갈 땅을 정하기 위해 화살을 쏘았을 때 그 화살이 꽂혔던 돌이다. 그 장소를 일도리(一徒里)·이도리(二徒里)·삼도리(三徒里)라고 하였다고 하며, 현재의 제주시 행정 구역인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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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1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새로운 세계의 변화에 대응하는 교육, 사랑과 꿈을 키우는 즐거운 학교, 활기찬 미래를 창조하는 어린이를 육성하는 것이며, 교훈은 ‘참되게·슬기롭게·씩씩하게’이다. 1969년 제주시 중앙로 개통 이래 1970년대 중앙로 부근으로 신도시가 급속히 늘어나면서 유입 인구가 증가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1981년 5월 6일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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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삼성(三姓) 신인들을 모시는 사당. 삼성사는 고·양·부 삼성 신인들을 모시는 사당으로서, 제례는 향교의 석전과 제복을 갖추어 매년 4월 10일에 춘제, 10월 10일 추제를 지낸다. 삼헌관은 고·양·부 세 성씨가 윤번제로 하고, 12월 10일 건시제(乾始祭)는 제주 도민제로 모시었다. 초헌관은 지방 장관, 아헌관과 종헌관은 기관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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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양2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즐거운 학교에서 꿈을 가지고 그 꿈의 실현에 최선을 다하는 어린이를 육성하는 것이며 교훈은 ‘성실하게·슬기롭게·튼튼하게’이다. 나라 잃은 설움과 일제 강점기하에서도 굴하지 않고, 빈곤과 굶주림 속에서도 후세 교육의 터전을 마련하고자 지역 인사들의 열과 성의가 삼양동 마을 안에서 일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뜻이 해외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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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1동에 있는 조선 시대 제주읍성의 서문 터. 서문지(西門址)는 제주읍성의 서문 터로서, 백호루(白虎樓)라고 불리는 서문루가 있었다. 제주읍성은 제주목사가 근무하던 제주목 관아와 그 주변을 둘러서 쌓은 성을 말한다. 동쪽·남쪽·서쪽에 문이 나 있고, 남쪽과 북쪽으로 수문이 있었는데, 서문지는 그 중 서쪽에 나 있던 서문 자리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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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에 있는 조선 시대 조천진 소속의 봉수가 있었던 터. 서산봉수는 동쪽으로 입산봉수(직선 거리 7.5㎞), 서쪽으로 원당봉수(직선 거리 7.6㎞)와 교신을 했으며, 소속 별장 6명, 봉군 24명이 배치되었다. 서산봉수는 조천진에 소속된 봉수로서, 동쪽으로 입산봉수와 서쪽으로 원당봉수와 연락을 취하였으며, 서쪽으로 함덕연대와도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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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2동 제주목 관아 안에 있었던 조선 시대 정자. 소행정은 조선 중기인 1660년(현종 1) 당시 제주목사로 재직하던 이회가 제주목 관아 안에 세운 정자로서, 연희각 동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원조가 지은 『탐라지초본(耽羅誌草本)』에 “연희각 동현묘에 있었는데 경자년에 목사 이희건이 건립한 것이다. 지금은 폐허가 되었다.(在延曦閣東懸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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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7년 조선 중기 인조가 소현 세자빈의 세 아들을 제주도로 유배시킨 사건. 조선 인조 때 소현 세자빈 강씨가 인조의 후궁 조소용(趙昭容)과 반목함에 따라 조소용은 세자빈이 왕실을 저주한다고 모함하였다. 결국 1646년(인조 24) 3월 소현 세자빈은 사약을 받고 죽었고, 다음 해인 1647년 5월 세자빈의 아들 삼형제까지 제주로 유배당했다. 인조의 세자인 소현 세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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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조선 후기 우암 송시열이 적거했던 유허지. 노론의 영수였던 우암 송시열은 1689년(숙종 15) 왕세자 책봉을 반대하다가 제주도에 유배되었다. 그의 적거 기간은 불과 3개월에 불과하지만 귤림서원과 산지천에 있는 경천암에 제를 올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제주 지역에서는 오현의 한 사람으로 추앙되고 있다. 나이 83세에 제주도로 유배된 송시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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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제주 지역 인접 바다에서 국방과 치안을 담당한 군대. 제주 지역에 대한 왜구의 빈번한 침입은 제주 방어에 대한 새로운 방안을 필요로 하는 계기가 되었다. 고려 말 봉수제의 설치나 1408년(태종 8)에 10척의 병선을 제주에 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취해진 조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제주도의 관방시설에 대한 대대적인 정비는 1439년(세종 21)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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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수산리에 있는 조선 시대 제주성(濟州城) 소속의 봉수. 수산봉수는 북동쪽의 도원봉수(직선 거리 8.7㎞)와 남서쪽의 고내봉수(직선 거리 4.3㎞)와 교신을 하였으며, 조부연대와 남두연대에 서로 교신하였다. 소속 별장 6명, 봉군 24명을 배치하였다. 수산봉수는 제주시 애월읍 구엄리 해안가에서 남동쪽으로 약 1.2㎞ 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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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자미를 시조로 하고 안수도·안득경·안수억을 입향 시조로 하는 제주의 세거 성씨. 시조 안자미는 고려 신종 때 흥위위보승별장(興威衛保勝別將)을 지내고 흥령현(興零縣)[순흥의 별칭]에 정착 세거하였으며 신호위상호군 (神虎衛上護軍)에 추봉되었으므로 후손들은 순흥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왔다. 안자미의 세 아들 안영유(安永儒)·안영린(安永麟)·안영화(安永和) 등을 파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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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연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예절 바르고 슬기롭게 공부하며 미래를 열어갈 창의적인 어린이를 육성하는 것이며 교훈은 ‘알차게·바르게·굳세게’이다. 1977년 신제주 건설 이후 신제주 국민학교만으로는 학생 수용이 어려짐에 따라 1985년 연동과 도두동 일부를 학구로 하는 신광 국민학교 설립 승인을 받았다. 이에 따라 1989년 3월 1일 초대 좌태민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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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설립되었던 근대식 사립 여학교. 제주 성당에서 활동하던 라크르(Lacrouts, Marcel)[1871~1929] 신부는 포교 활동의 일환으로 1909년 10월 18일 신성 여학교 설립 인가를 받고 1910년 5월 제주 읍내에 약 40명의 학생을 모아 신성 여학교[현 신성 여자 중학교·신성 여자 고등학교]를 개교하였다. 라크르 신부는 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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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연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마음가짐이 바르며, 고운 꿈을 이루어 가는 건강하고 슬기로운 어린이를 육성하는 것이며 교훈은 ‘바르게, 슬기롭게, 씩씩하게’이다. 1977년 3월 9일 건설부 고시 제20호에 의하여 신제주 건설이 완료되고 제주도청을 비롯한 주요 기관들이 새 청사로 이전해 왔으며 제원 아파트가 준공되었다. 이에 따라 유입 인구가 급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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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경을 시조로 하고 강영을 입도조로 하는 제주의 세거 성씨. 시조 강호경(康虎景)은 고려 태조 왕건의 외(外) 6대조이고, 강호경(康虎景)의 4세손 강보육(康寶育)은 왕건의 외고조부로서 왕덕대왕(王德大王)으로 추존된 인물이다. 강씨의 실질적인 시조라고 할 중시조(中始祖: 1세)는 충렬공(忠烈公) 강지연(康之淵)으로 강지연(康之淵)은 몽골 침입 때 고려 고종(高宗)을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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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신촌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건물. 제주도의 관문이었던 조천포구가 있는 조천마을과 이웃한 신촌에 신촌향사가 있는데, 이곳은 조선 후기에 지방의 공무를 처리하던 곳이다. 신촌향사가 언제 설치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이 건물은 원래 신촌마을의 중동 길가 왼쪽에 있었으나, 그 위치가 적당하지 않아 1805년(순조 5)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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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제주목사를 지낸 무신. 1883년(고종 20) 5월 박선양(朴善陽)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였다. 1883년(고종 20) 6월 제주 유배인 백낙관(白樂寬)이 서울로 이송, 의금부의 남간(南間)에 수감되었다. 1883년 7월 함덕포 해변에 표착한 일본 상선의 선장과 선원 4명을 조사하여 보고하였다. 1883년 10월 삼읍(제주목·대정현·정의현)의 마병도시(馬兵都試)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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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2동에 있는 공립 중학교. 첫째, 바르게 생활하고 책임을 다하는 사람 둘째, 창의적인 사고로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 셋째, 민주적인 생활 태도로 공익에 공헌하는 사람 넷째, 심신 건강으로 진로를 스스로 개척하는 사람을 육성하는 것이며 교훈은 ‘굳센 의지·착한 마음·성실한 행동’이다. 아라 중학교는 제주시 인구 증가 및 학생 수 증가로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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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1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예의 바르고 새롭게 생각하며 자주적으로 행동하는 건강한 어린이를 육성하는 것이며 교훈은 ‘성실하게·슬기롭게·건강하게’이다. 아라동 인다라 마을 김영종의 자택에서 개설했던 개량 서당을 아라1동 1698-2번지[중앙로 585]로 이설하면서 육영 서숙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1933년 4월 육영 서숙을 5년제 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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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애월리에 있는 조선 시대 애월진 소속의 연대. 애월연대는 동쪽으로 고내봉수(직선 거리 2.7㎞), 서쪽으로 귀덕연대(직선 거리 3.2㎞)와 교신하였으며, 소속 별장 6명, 봉군 12명이 배치되었다. 애월연대는 애월진이 있었던 애월초등학교에서 서쪽으로 6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으며, 속칭 ‘연디왓’이라 불린다. 밖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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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에 있는 조선 중기의 진성. 애월진성에는 조방장 1명, 치총 2명, 성정군 84명, 유직군 86명, 서기 7명 등 총 180명이 병력이 있었다. 관할은 1봉수(고내 봉수), 2연대(남두 연대, 애월 연대)였다. 애월진성은 처음에는 고려 원종 때 삼별초가 들어와서 관군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목성(木城)이었다. 이를 방어 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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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선문(許宣文)을 시조로 하고, 허손(許愻)을 입도조로 하는 제주의 세거 성씨. 양천허씨의 시조 허선문(許宣文)은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의 견훤을 정벌할 때 군량을 조달해 준 공으로 허선문(許宣文)이 세거해온 공암의 공암촌주(孔巖村主)로 봉해져 그곳을 식읍으로 받았다. 양천허씨를 일명 공암허씨(孔巖許氏)라 함은 이에 연유된 것이다. 후손인 허성(許筬)은 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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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유익을 시조로 하고 송자보 등을 입도조로 하는 제주의 세거 성씨. 『송씨상계세보』에 보면 우리나라 전본송씨(全本宋氏)의 시조는 당나라의 호부상서였던 송주은(宋柱殷)으로 전해 오고 있으나 어떠한 연유로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밝혀져 있지 않다. 송주은(宋柱殷)의 6세손 송순공(宋舜恭)의 후손인 송자영(宋自英)에게 세 아들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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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군역을 져야 했던 제주 지역의 여성들. 조선시대 제주 지방의 군인들은 마대(馬隊)·속오군·아병(牙兵)·별아병(別牙兵) 등의 병종으로 나뉘어 편성되어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 편성된 군인의 숫자는 제주도민 전체의 숫자와 거의 맞먹을 정도였다. 김상헌의 『남사록(南槎錄)』(1601)의 기록을 보면, 당시 제주의 거의 모든 남성이 평생 동안 군역을 졌으며, 본래 군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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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2동에 있었던 조선 후기 세워진 교육 기관. 역학당은 관덕정 동쪽 좌위랑에 위치해 있던 서당으로, 18세기 이후 등장했던 개량서당 교육 기관이었다. 이원진의 『탐라지(耽羅誌)』에 의하면, “재관덕정좌위랑 역학왜학동거 배제번삼 학생일백칠십육명(在觀德亭左衛廊 譯學倭學同居 排除番三 學生一百七十六名)”이라 하여 다수의 학생들이 수학하고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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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에 있던 조선 후기 누각. 연교정은 제주목사 김정이 1737년(영조 13)에 세운 누각으로, 임금의 교서를 받들고 전문(箋文)을 올릴 때에 그 의식을 행하던 곳이다. 전문은 길사나 흉사가 있을 때에 지방관이 왕에게 아뢰는 사륙 문체의 글을 말한다. 정조의 대전탄일(大殿誕日)에 지방관이 축하하는 전문을 올렸다는 기록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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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에 있던 조선 중기의 정자. 연무정은 1636년(인조 14) 제주목사 신경호가 병사들을 훈련하고 군관청과 판관 사후처(伺候處)로서 사용하기 위해 세운 건물이다. 『탐라지(耽羅誌)』에, 연무정을 건립할 당시 제주목사 신경호가 “제주에는 온 섬에 악석(惡石)이 널려 있으나 오직 이 곳은 풀 하나 없고 평평하기가 손바닥과 같아서 하늘이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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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한 제주도 사람들의 이름을 연대순으로 수록한 인명록. 『사마선생안(司馬先生案)』이라고도 부르는 『연방록(蓮榜錄)』은 조선 시대 사마시인 생원과 진사과의 향시(鄕試)·회시(會試)에 합격한 사람의 성명을 적은 명부이다. 연방은 생원과 진사를 달리 이르는 말로, 사마라고도 하였다. 1892년(고종 29) 윤 6월 18일에 이루어졌으며 편자는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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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에 있는 조선 중기의 정자. 연북정은 원래 조천성 바깥에 있던 객사로 처음 축조한 연대는 알 수 없다. 선조 23년(1590) 이옥 절제사가 성을 동북쪽으로 돌려 쌓은 다음에 정자를 그 위에 옮겨 세워서 ‘쌍벽정’이라 했다고 한다. ‘쌍벽’이란 말은 청산도 푸르고 녹수도 푸르러서 쌍쌍이 푸르기 때문이라는, 제주도의 유다른 풍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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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담윤을 시조로 하고 현사경 등을 입도조로하는 제주의 세거 성씨. 현씨는 전국이 단일본으로서 그 본향은 연주(延州)이다. 한때 현씨의 본관이 연주(延州)·창원(昌原)·성주(星州) 등 여러 곳인 것처럼 알려졌던 적도 있었지만, 모두 연주현씨의 시조인 현담윤(玄覃胤)의 자손이요, 그 분파임이 알려져 통합되었다. 현씨는 그 본향인 평안도 지방에 가장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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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청(政廳: 업무를 보는 관청). 건축 연대는 전해지지 않는다. 연희각은 안무사(按撫使), 절제사(節制使), 목사(牧使), 관찰사(觀察使), 군수(郡守) 등의 집정당(執政堂)으로서, 이곳에서 제주 사람의 안위가 결정되었기 때문에 속칭 상아동헌(上衙東軒)이라고도 불렸다. 이후 제주도청이 건축될 당시에 일제에 의해 철훼되었다가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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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지역에서 조선시대에 정절을 지켰던 여자. 유교에서 중요시한 덕목 가운데에는 효(孝)와 열(烈)이 있는데, 효는 자식이 부모를 잘 섬기는 것이며 열은 아내가 남편을 잘 섬기는 것이다. 조선조에 태조가 즉위하면서 그 해 7월에 발표된 「즉위 교서」에는 충신, 효자, 의부, 절부의 일은 풍속에 관계되는 것이므로 이를 널리 권장하고 문려(門閭: 동네 어귀에 세운 문)를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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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에 있던 조선 말기의 정자. 영은정은 1904년 제주목사 홍종우가 세운 정자이다. 영은정과 관련하여 1905년 사법(司法) 홍진국(洪鎭菊)이 쓴 「영은정기(泳恩亭記)」가 남아 있다. 현재 유적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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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대학로에 있는 사립 실업계 고등학교. 자주성과 도덕성 및 창조성을 고루 갖춘 인재를 육성하는 것이며 교훈은 ‘자주, 협동, 봉사’이다. 1994년 8월 29일 제주 공업 고등학교 24학급으로 설립 인가를 받아 1995년 3월 1일 개교하였다. 2000년 9월 26일 서울 유한 공업 고등학교와 자매결연을 맺었으며 2001년 11월 10일에는 중국 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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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2동의 제주목 관아 안에 있던 조선 시대 객사 대청 터. 영주관은 조선 시대 제주목에서 객사 대청으로 사용하던 건물이었다. 객관이라고도 불렀던 객사 대청에는 왕을 상징하는 전패(殿牌)와 궐패(闕牌)를 모시고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대궐을 향해 예를 올렸다. 예부터 객관은 외국 사신이나 중앙에서 내려오는 관리들의 숙소로도 사용되었는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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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1동에 있는, 국어국문학을 연구하는 전국적인 학회. 국어국문학 자료를 발굴 정리하여 연구하고 그 결과의 평가를 통해 이론을 정립하여 국어국문학 연구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93년 발족한 제주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재학생과 졸업생들로 구성된 영주어문연구회를 2001년 영주어문학회로 개편하였다. 정기적으로 기관지인 『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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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내지 조선 전기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제주의 삼성신화(三姓神話)가 수록된 문헌. 『영주지(瀛洲志)』의 저자는 미상이나 유창한 문장으로 보아 한문학에 조예가 깊은 사람의 저작임을 알 수 있으며 사서의 기록과 부합되는 구체적인 사실도 있기 때문에 『영주지』가 다만 전설을 들어서 기술하였다고만 볼 수는 없다. 한 가지 예를 든다면 피의(皮衣) 육식(肉食)과 혈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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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영평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마음가짐이 바르고, 고운 꿈을 이루어 가는 슬기로운 어린이를 육성하는 것이며 교훈은 ‘올바르게·슬기롭게·씩씩하게’이다. 영평 국민학교는 1946년 3월 개교하였다가 1948년 12월 4·3 사건으로 폐교되었다. 1968년 3월 1일 아라 국민학교 영평 분교장이 설립되었고, 1969년 3월 1일 영평 국민학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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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1동에 있던 조선 시대의 사당. 영혜사는 조선 중기인 1669년(현종 10) 제주목사 이연이 제주목사 출신의 유학자들을 배향하기 위해 귤림서원 동쪽에 세운 사당이다. 창건 당시에는 이약동·이회를 배향하였는데, 1819년(순조 19) 제주목사 조의진의 유장(儒狀)에 따라 이형상과 김정을 배향하였으며, 1831년(순조 31)에는 제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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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라2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마음가짐이 바르며 고운 꿈을 이루어 가는 슬기로운 어린이를 육성하는 것이며 교훈은 ‘올바르게 행하고 부지런히 배우며 튼튼하게 자라자’이다. 1946년 2월 1일 오라 공립 국민학교가 개교하였다가 4·3 사건으로 1948년 12월 6일 폐교되었다. 1950년 7월 3일 제주 남 국민학교 오라 분교장으로 인가되었다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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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귤림서원에 배향되었던 제주의 다섯 명의 현인(賢人). 서원은 사학(私學)을 대표하는 교육기관이면서도 각 지방 군현의 향청과 더불어 향촌 사림의 집결소로서 정치·사회적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귤림서원은 문묘 종사였던 충암묘와 인재 양성을 위해 설치되었던 장수당에 연원을 두고 있다. 귤림서원에 김정·송인수·김상헌·정온·송시열 이렇게 다섯 명의 유현이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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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1동에 있는 사립 일반계 고등학교. 발랄한 창의력을 지닌 생활인, 풍부한 인간성을 지닌 사회인, 역사적 사명감을 지닌 봉사인을 육성하는 것이며 교훈은 ‘학행일치’이다. 이는 이론으로 배운 학문의 진리와 품행이 일치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1946년 2월 15일 황순하가 제주 제일 중학교를 설립하여 10월 22일 교명을 오현 초급 중학교로 바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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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1동에 있는 사립 중학교. 건전한 인성 함양을 통하여 사회에 기여하는 오현인, 자기 주도적 학습을 통하여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오현인, 적성과 소질을 계발하여 21세기 주역이 될 오현인을 육성하는 것이며 교훈은 ‘학행일치(學行一致)’이다. 일제 강점기 학병으로 끌려갔다가 광복과 함께 조국으로 돌아온 사람과 제주 지역 내 지식인 청년들이 중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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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조선 시대 제주에 유배되었거나 방어사로 부임하여 이 지방 발전에 공헌한 다섯 사람을 배향한 옛 터. 1871년(고종 8)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귤림서원이 헐린 후, 1892년(고종 29) 제주 유림들의 건의에 의해 귤림서원에 배향되었던 오현을 기리기 위해 마련한 제단이다. 이곳에는 지금도 오현의 위패를 상징하는 높이 43~45㎝, 너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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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한동리에 있는 조선시대 별방진 소속의 봉수가 있었던 터. 별방진 소속의 왕가봉수 는 동쪽으로는 지미봉수, 서쪽으로는 입산봉수와 연락을 취하였다. 그리고 동쪽으로 입두연대와 서쪽으로 좌가마연대와도 교신하였다. 제주시 구좌읍 한동리 해안에서 남서쪽으로 1㎞ 떨어진 한동리와 월정리를 잇는 구 일주 도로변의 동쪽, 매우 낮은 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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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해안 지역에 침입하여 약탈을 일삼았던 옛 일본 해적. 13세기에서 16세기에 걸쳐 우리나라와 중국 연안에서 약탈을 일삼았던 일본인 해적을 총칭한다. 흔히 고려 후기까지의 왜구를 전기 왜구, 그 이후의 왜구를 후기 왜구로 구분하기도 한다. 전기 왜구가 우리나라를 주요 약탈 대상으로 삼았다면, 후기 왜구는 약탈의 대상지가 중국과 동남아 지역으로 확대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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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신흥리에 있는 조선시대 조천진 소속의 연대. 조천진에 소속된 왜포연대(일명 고포연대)는 동쪽으로 함덕연대(직선 거리 1.4㎞), 서쪽으로 조천연대(직선거리 1.4㎞)와 교신하였으며, 소속 별장 6인, 봉군 12명이 배치되었다. 왜포연대는 함덕정보산업고등학교에서 바다 쪽으로 800m 정도를 가면 포구의 서쪽 해안 가까이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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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외도2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성실한 마음과 튼튼한 몸으로 슬기롭게 배우고 익혀 국제자유도시를 이끌어 갈 창의적인 어린이를 육성하는 것이며 교훈은 ‘성실하게·슬기롭게·튼튼하게’이다. 외도, 내도, 도평, 해안, 이호 등 제주 서부 지역 주민들에 의해 1939년 5월 26일 외도 공립 심상소학교 설립 인가를 받고 6월 3일 외도1리 공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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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문과에 급제한 제주도 사람들의 이름을 연대순으로 수록한 인명록. 1892년에 쓰여진 것으로 보이는 『용방록(龍榜錄)』은 1414년에 급제한 고득종으로부터 1863년에 급제한 한석윤까지 총 56명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용방은 『매천야록(梅泉野錄)』 갑우이전조(甲牛以前條)에 “문과를 용방, 무과를 호방, 소과를 연방, 대과를 주방이라 한다.”고 한 것처럼 문과를 달리 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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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한천 하류의 계곡 바위벽에 새겨진 마애명. 용연(龍淵) 마애명(磨崖銘)은 영주 12경의 하나로 손꼽히는 용연야범(龍淵夜泛)의 계곡, 즉 용연(龍淵)에 새겨진 마애명이다. 조선시대 제주도에 부임한 제주목사들은 방선문에서의 봄꽃놀이와 용연의 밤뱃놀이를 최고의 풍류로 쳤는데, 바로 그 용연에서의 밤뱃놀이를 용연야범(龍淵夜泛)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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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에 있는 도립 도서관. 제주도민의 지식 및 정보 욕구를 충족시키고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제주 지역에서 제4대 도지사를 지낸 우당 김용하 선생의 교육 정신, 제주 애향 정신을 기리기 위해 김귀중, 김우중 등 5형제가 뜻을 모아 건립, 기증하였다. 1984년 개관 이후, 1985년 7월 8일 도서관 건물 및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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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에 있는 조선시대 차귀진 소속의 연대. 우두연대는 북쪽으로 두모연대(직선 거리 3.9㎞), 남쪽으로 대정현의 당산봉수(직선거리 1.9㎞)와 교신하였으며, 소속 별장 6명, 봉군 12명을 배치하였다. 우두연대는 용수리(龍水里) 일주 도로에서 해안 쪽으로 1.4㎞ 정도 떨어진 ‘쇠머리 동산’이라 불리는 곳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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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귀덕2리에 있는 조선시대 명월진에 소속된 연대. 우지연대는 동쪽으로 도내봉수(직선거리 3.2㎞), 서쪽으로 죽도연대(직선거리 2.3㎞)와 교신하였으며, 소속 별장은 6명, 봉군은 12명을 배치하였다. 귀덕초등학교 입구에서 일주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1.6㎞를 가다 보면 북쪽으로 70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주민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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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원당봉에 위치한 조선 시대 위급을 알리던 원당봉수대의 터. 제주도 내에는 25개의 봉수대와 38개의 연대가 설치되어 유사시의 통신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원당봉수대에서는 동쪽으로 서산(西山)봉수대, 서쪽으로 사라봉수대와 교신하였다. 원당봉수는 조천연대와도 교신하였다. 평시에는 한 번, 적선이 나타나면 두 번, 해안에 접근하면 세 번, 상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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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변씨(邉氏) 일가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금개판 이야기」는 500여 년 전 제주에 들어와 뿌리를 내린 원주변씨의 입도조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원주변씨의 시조 변안렬은 공민왕과 노국공주가 1351년 고려에 환국할때 수장(首將)으로 따라와 공민왕의 외척 원주원씨와 혼인하여 고려에 정착한 장수이다. 역성혁명을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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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명월리에 있던 조선 시대 교육 기관. 월계정사는 1545년(인종 원년) 제주목사 임형수가 벽지 자제의 교육을 위하여 명월성 서쪽에 세운 서당이다. 월계정사에서는 고을 사람 중에서 학문이 뛰어난 자를 가려 사장(師長)으로 삼고, 주변에 거주하는 자제들을 모아 교육을 시켰다. 명월성 서쪽에 있다고 해서 서학(西學)으로 부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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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6년(명종 1) 유대용이 채록한 제주 사람 박손(朴孫) 일행의 유구국 표류 기록문. 『유구풍토기(琉球風土記)』는 제주 사람인 박손 일행이 오끼나와로 추정되는 유구국에 표류하였다가 돌아와 유대용이 표류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 내용을 간접 기록한 표류 기록문이다. 『명종실록』 제3권 명종 1년(1546) 기사에는 박손 일행의 문견 사건에 대해 ‘표류하여 유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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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죄를 지어 그 형벌로 제주 지역으로 귀양 왔던 사람들. 유배는 오형(五刑) 가운데 하나로 죄인을 귀양 보내던 형벌인데, 유배인을 귀양 보낼 때는 죄의 가볍고 무거움에 따라 원근(遠近)의 등급이 있었다. 제주도는 조선왕조 500년을 통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귀양살이 했던 곳이다. 조선시대는 왕족이나 중신 그 누구를 막론하고 왕명을 거역하거나 정사에 과실이 있을 경우, 그 경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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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5년(명종 10) 왜구가 제주도 화북포 일대에 침입한 사건. 을묘왜변은 두 차례에 걸쳐 발생했는데, 1555년(명종 10) 왜구 선박 70여 척이 1차로 전라도 영암·강진·진도 일대를, 2차로 제주도를 휩쓸며 약탈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조선과 일본 원활하지 못한 외교 관계와 일본 내의 혼란으로 말미암아 발생하였다. 즉, 1510년 삼포왜란(三浦倭亂)이 일어난 이래 조선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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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에 간행된 조선 후기의 문신인 이원조가 쓴 글을 합본한 전집. 이원조(李源祚)[1792~1872]의 호는 응와(凝窩)로, 1809년(순조 9)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850년(철종 1) 경주부윤에 오르고, 1854년 대사간에 이어 공조판서를 지냈다. 『응와전집』에는 이원조의 글을 묶은 『응와문집(凝窩文集)』 22권, 『응와속집(凝窩續集)』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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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에 있는 목장. 1954년 4월 콜룸반 외방 선교회 소속으로 제주도에 온 아일랜드 출신의 패트릭 제임스 맥그린치(P. J. Mcglinchey) 신부가 가난한 제주도민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한라산 중산간 지대의 드넓은 황무지를 목초지로 개간하여 1961년 11월 성 이시돌의 이름을 따서 중앙 실습 목장을 건립하였다. 1964년 4월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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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1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제주목사 이형상을 기리는 비. 이형상 기념비는 1702년(숙종 18) 6월 제주목사로 부임하였다가 1703년(숙종 29) 6월에 파직된 이형상(李衡祥)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조선 후기 문신으로 제주목사 겸 방어사로 제주에 부임했던 이형상은 목민관으로서 학문을 진흥하고 미신적인 인습과 악습을 타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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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금용을 시조로 하고 장보한 등을 입도조로 하는 제주의 세거 성씨. 시조 장금용(張金用)은 고려 때 삼중대광에 올라 신호위 상장군을 역임했고, 장금용(張金用)의 아들 장선(張善)이 고려 문종조에서 금오위 상장군을 지냈다. 그 후 자손들이 본향지인 인동현에 세거하면서 본관을 인동으로 삼게 되었다. ① 장윤태(張允泰)는 시조 장금용(張金用)의 21세손이다. 1605년(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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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선조의 왕자 인성군 가족이 제주로 유배되어온 사건. 1628년 모반의 혐의로 선조의 일곱 번째 아들인 인성군이 진도로 유배당한 뒤 죽고, 부인 윤씨와 아들 삼형제, 두 딸은 제주도로 유배당한 사건이다. 인성군은 선조의 일곱 번째 왕자이다. 정빈 민씨의 소생으로서 어릴 적부터 총명하여 선조의 사랑을 받았다. 12세에 인성군에 책봉되었고, 커서는 사옹원과 종부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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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일도2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자기 주도적 활동으로 21세기를 이끌어 갈 창의적인 어린이를 육성하는 것이며 교훈은 ‘인화(人和)’이다. 1970년대 후반 제주 동 국민학교와 일도 국민학교에서는 학생수가 수용 규모를 넘어선 상태였고 인화동이 개발되면서 국민학교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인화 국민학교는 1980년 5월 9일 설립 인가를 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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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일도2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예절 바르며 미래를 열어갈 창의적인 어린이를 육성하는 것이며, 교훈은 ‘열린 생각, 바른 마음, 굳센 의지’이다. 1968년 3월 1일 일도 국민학교는 제주 동 국민학교에서 분리되어 설립 인가를 받고 18학급으로 편성되어 1968년 3월 2일 개교하였다. 1969년 8월 16일 제주 북 국민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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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에 제주에 사는 내섬시의 노복 정회이가 일본으로 표류했다가 돌아온 일을 기록한 글. 정회이(棖廻伊)는 조선 중기인 1499년(연산군 5년) 제주에서 육지로 나오다가 바람을 잘못 만나 일본으로 떠내려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1년 넘게 머물다 돌아온 뒤, 일본 호족 평순치(平順治)의 집에서 얻어먹으며 보고들은 내용을 예조에서 적어 올린 것이 「일본풍토기(日本風土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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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시대에 다른 지역에서 제주도에 들어와서 정착한 최초의 동일 성씨 선조. 제주의 토착 성씨인 고씨·부씨·양씨를 제외하면 제주의 성씨는 모두 다른 지역에서 건너온 성씨들이다. 이들이 어떠한 이유로 제주에 들어와 정착했든 그 후손들은 제주에 최초로 정착한 선조를 입도조라 칭하였다. ○ 제주입도조 가운데는 유배된 사람들이 많다.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로 조선 개국에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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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에 있는 조선시대 별방진 소속의 연대가 있었던 터. 입두연대는 동쪽으로 정의현지미봉수(직선 거리 5.4㎞), 서쪽으로 왕가봉수(직선 거리 3.3㎞)와 서로 교신이 가능하였으며, 소속 별장 6명, 봉군 12명을 배치하였다.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에 동동에서 제주 삼성연합의원으로부터 서남쪽 150m 지점에 위치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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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동김녕리에 있는 조선시대 별방진 소속의 봉수가 있었던 터. 입산봉수는 동쪽으로 왕가봉수(직선 거리 6.0㎞), 서쪽으로는 서산봉수(직선 거리 7.5㎞)와 교신하였으며, 소속 별장 6명, 봉수 24명을 배치하였다. 별방진 소속의 입산봉수는 동쪽으로 무주연대와도 교신하였다. 입산봉수는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 해수욕장에서 남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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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적지는 제주이나 일제강점기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에서 거주하는 제주 사람. 대판 지역을 중심으로 재일 제주인 사회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1910년을 전후하여 제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생활하면서부터이다. 일제강점기 제주인을 비롯한 한국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는 동기는 일제의 수탈 정책에 의해 토지를 잃거나 생활 기반을 상실한 농민들이 노동 시장에 취업하기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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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저지리에 있는 문화 예술인 마을. 저지예술인마을은 현장 경험과 예술 교육을 바탕으로 지역 주민들이 문화 예술을 이해할 수 있고 정서를 순화시키며, 지역 개발 효과 유발 및 관광 자원화와 함께 제주 지역 문화 예술의 발전에 일익을 담당하기 위해 1999년 건립이 계획되었다. 착공 이후 저지예술인마을은 지역 주민과 관광객 및 개인,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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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제주 지역에 두었던 하급 관직. 조선 시대 향리는 지방행정 실무를 담당할 능력을 상실하고 있었는데, 이에 안무사 조원(趙原)은 양민 가운데 글자를 아는 사람 30여 명을 선출하여 ‘전리’라 칭하고 말단 지방 행정의 실무를 담당케 하였다. 전리는 30명 규모였으며, 이들은 토관직의 최하위직이지만 천호(千戶)·백호(百戶)로의 진출을 갈망하였다. 조원이 도안무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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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을 시조로 하고 이팽형 등을 입도조로 하는 제주의 세거 성씨. 전주이씨의 시조는 신라 때 사공(司空) 벼슬을 지낸 이한(李翰)으로, 태종무열왕의 10세손인 김은의(金殷義)의 딸을 아내로 맞아 일가를 이룬 우리나라 성씨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대성(大姓)이다. ① 이행은 시조 이한(李翰)의 28세손이며 중시조 이성규(李成楏)의 7세손이다. 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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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에 있는 조선 말기 절부(節婦) 고씨(高氏)의 절개를 기리는 바위. 절부암은 1981년 8월 26일 제주도 기념물 제9호로 지정된 바위로서,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조난당한 남편을 기다리다 못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고씨 부인의 비통한 사연이 전해오는 곳이다. 옛날 용수리 마을에 강사철과 고씨 처녀가 살고 있었는데, 이 처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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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라2동에 있는 공립 과학 고등학교. 창의적 사고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 건전한 가치관으로 공익에 기여하는 덕성을 가진 사람, 나라를 사랑하고 심신이 건강한 사람을 육성하는 것이며 교훈은 ‘자주·창의·봉사’이다. 제주 지역의 과학 영재들을 조기에 발굴하고 잠재적인 영재성과 창의성을 길러 고급 과학 인력 양성의 기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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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노형동에 있는 공립 실업계 고등학교. 미래 사회를 이끌어 나갈 도덕적이고 창의적인 인재를 육성하는 것이며 교훈은 ‘성실·근면·창조’이다. 1910년 제주 공립 농림 학교로 개교하여 1912년 제주 공립 농업 학교로 명칭을 바꾸었다. 1951년 8월 31일 「교육법」 개정에 따라 제주 농업 고등학교 9학급 및 제주 제일 중학교 12학급을 분리하였고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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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정자. 병사들을 훈련시키기 위하여 1448년(세종 30) 신숙정 목사가 창건하였다. 좌우에 관아 시설이 위치해 있어서 관덕정은 제주도를 상징하는 건물이었으며 호남제일정(湖南第一亭: 현재의 글씨는 1882년(고종 19) 박선양 목사의 글씨)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관덕’이란 이름은 “활을 쏘는 것은 높고 훌륭한 덕을 쌓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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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2동에 있는 어린이 전용 도서관. 어린이 전용 도서관으로서 제주 지역 어린이들의 학습장이자 휴게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되고 있고, 정기 휴일은 매주 월요일이다. 정보와 문화 서비스 시설로서 표준적인 도서관 운영을 목표로 설립되었다. 전국 각지에 세워진 ‘기적의 도서관’은 어린이들이 정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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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2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심성이 곱고 몸과 마음이 건강하며 스스로 공부하는 창의적인 어린이를 육성하는 것이며 교훈은 ‘바르게, 새롭게, 굳세게’이다. 광복 후, 제주읍 내 일본인이 설립했던 국민학교를 인수하여 1945년 10월 1일 설립 인가를 받고 1946년 1월 23일 제주읍 삼도리 136-1에 제주 남 국민학교를 개교하였다. 19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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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1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예의 바르며, 꿈을 가지고 미래를 개척하는 창의적인 어린이를 육성하는 것이며 교훈은 ‘슬기롭고 자랑스런 꿈을 키우자’이다. 1974년 3월 1일 「교육법」 제126조의 교육을 실지로 연구·실습하기 위하여 교육 대학에 부속 국민학교를 설치한다는 법규 및 「국립학교 설치령」 제20조의 규정에 의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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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3동에 있는 공립 일반계 고등학교 국제화를 선도할 경쟁력을 갖춘 인재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며, 교훈은 독학 역행(篤學 力行)이다. 중등 교육의 실시, 중등 교육의 연구와 실험, 교육 실습생의 지도를 목표로 하고 있다. 2001년 3월 1일 제주 대학교 사범 대학 부속 고등학교에서 제주 대학교 사범 대학 부설 고등학교로 명칭을 바꾸었다. 독서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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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3동에 있는 공립 중학교. 교훈은 ‘독학 역행(篤學 力行: 배움에 힘쓰고 실천하자)’이다. 중등 교육의 실시, 중등 교육의 연구와 실험, 교육 실습생의 지도를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84년 3월 1일 교육 인적 자원부 상설 연구 시범 학교로 지정되었고, 2001년 3월 2일 제주 대학교 사범 대학 부속 중학교에서 제주 대학교 사범 대학 부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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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연삼로에 있는 공립 도서관. 6·25전쟁 이후 사회가 안정을 찾아가면서 도 당국은 제주도민의 정서 함양과 학습을 지원하기 위하여 도립 도서관 설치를 구상하고, 국립 도서관 제주 순회 문고를 설치할 건물을 물색하였다. 그러다가 독지가 박종실의 도움으로 1957년 5월 남문통 근처에 새로운 도서관 건물을 준공하여 6월 1일 기증식을 가졌다. 195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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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2동에 있는 공립 여자 중학교. 자율성과 바른 인성을 지니고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을 기른다[자주인, 도덕인], 스스로 배우고 탐구하며 창의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을 기른다[실력인, 창조인], 나라를 사랑하고 심신이 건강한 사람을 기른다[애국인, 건강인]는 교육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1982년 2월 26일 현 교사로 신축, 이전하였고,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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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1동에 있는 공립 중학교. ‘밝은 인성과 창의성을 지닌 인재 육성’을 목표로 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교훈은 ‘성실, 창조’이다. 제주 지역 남녀 중학생의 급격한 증가로 학생들이 과다 수용되어 교수·학습 활동에 지장을 초래하자 과다한 학급 인원수를 줄이고, 학생 수용을 원활하게 하기 위하여 남녀 공학 중학교를 설립하게 되었다.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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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예의 바르고 스스로 배우며 슬기롭게 꿈을 열어가는 어린이를 기른다’를 교육 목표로 정하고 있으며, 교훈은 ‘착실·규율·명랑’이다. 1941년 3월 31일 제주 북교 부설 용담 간이 학교가 용담동에 개설, 운영되어 오다가 1943년 3월 31일 제주 서 공립 국민학교로 승격되어 같은 해 7월 31일 이도동으로 학교를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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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2동에 있던 평생 교육 시설. 세계 평화 통일 가정 연합[구 통일교] 지원 하에 운영되던 제주 향토 학교에서 독립하여 1992년 개교한 야간 학교였다. 제주 등하 학교는 비정규 야간 학교였다가 2002년 3월 5일 평생 교육 시설로 인가되었다. 중등 교육 수준의 교양과 지식을 습득하고, 평생 교육을 지속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학습 동기를 부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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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제주목을 맡아 다스린 정3품 외직 문관. 제주 목사는 형옥·소송의 처리, 부세의 징수, 군마(軍馬)의 고찰, 왜구의 방비 등 제주 지방에 대한 모든 행정을 집행하였던 정3품 당상관에 해당한 관직이었다. 제주도에 목사를 파견한 것은 고려 1295년(충렬왕 21)부터 간헐적으로 이루어져왔으나,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 의하면 제주목의 설치는 1397년(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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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2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신명나는 학교, 꿈이 크는 교실’을 교육 목표로 삼고 있으며, 교훈은 ‘나날이 배워 익히고 날로 생각하며 새로워라’이다. 1907년 제주 군수 윤원구는 나라의 운명은 신학문을 배운 인재를 많이 배출하는 데 있다고 역설하면서 학교를 세워야 한다는 교육 정책을 수립하였다. 이에 따라 나이가 많은 사람은 의신 학교, 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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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동에 있는 탐라국의 신화와 관련된 유적. 제주 삼성혈은 제주도의 고(高)·양(梁)·부(夫)씨의 시조인 고을나(高乙那)·양을나(良乙那·梁乙那)·부을나(夫乙那) 세 신인(神人)이 솟아났다는 신화가 전하는 3개의 구멍이다. 모흥혈(毛興穴)이라고도 한다. 제주 삼성혈의 성역화는 1526년(중종 21) 이수동(李壽童) 제주 목사가 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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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연동에 있는 공립 중학교. ‘성실과 창의를 바탕으로 21세기 지식 기반 사회를 주도할 참되고 창조적이며 역량있는 인간을 육성한다’는 교육 목표를 가지고 있으며, 교훈은 ‘성실·창의’이다. 1980년대 들어 정부는 중등 교육의 핵심 정책으로 중학교 의무 교육화의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학교 신설을 추진하였다. 이 과정에서 제주시 내에 네 개의 중학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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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2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올바르게 행동하고 창의적으로 공부하며 고운 꿈을 키워가는 몸과 마음이 튼튼한 어린이’를 교육 목표로 삼고 있고 교훈은 ‘올바르게, 슬기롭게, 튼튼하게’이다. 1938년 5월 10일 1학급 2년제 용담간이학교가 설립되어 70명 정도의 어린이가 다니고 있었으나 해방되기 전에 폐교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자 용담동에도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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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영평동에 있는 사립 일반계 고등학교. ‘지혜롭게 판단, 행동하며 책임을 다하는 사람을 기른다, 남을 존중하고 서로 도와주는 사람을 기른다, 건강하고 명랑하며 활력이 넘치는 사람을 기른다’는 교육 목표를 가지고 있다. 교훈은 ‘경천애인(敬天愛人: 하느님을 공경하고 이웃을 사랑하자)’이다. 1916년 7월 25일 일제의 탄압과 교사 불법 명도령으로 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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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영평동에 있는 사립 중학교. ‘알찬 실력을 갖추고 창의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로 생활하는 사람을 기르자, 자율적이고 심신이 건강하고 21세기 변화하는 사회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른다, 올바른 가치관과 좋은 습관으로 사회와 국가에 책임을 다할 사람을 기른다’를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경천애인(敬天愛人: 하느님을 공경하고 이웃을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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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1동에 있는 사립 일반계 고등학교. ‘미래 사회를 주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을 기른다, 예의 바르고 지혜로운 사람을 기른다, 심신이 건강한 사람을 기른다’라는 교육 목표를 세워 실천하고 있으며, 교훈은 ‘성실, 근면, 창조’이다. 체육 활동에 중점을 두어 배트민턴을 가르치고 있으며 배구장, 농구장, 골프 연습장 등이 있다. 1946년 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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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에 있는 공립 실업계 고등학교. ‘더불어 사는 창의적인 민주 시민 육성’을 교육 목표로 삼고 있으며 교훈은 ‘착한 성격, 알찬 실력, 곧은 행동’이다. 1969년 11월 22일 제주 여자 실업 고등학교에서 제주 여자 상업 고등학교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972년 12월 18일 현 위치로 교사를 이전하였다. 다양한 사무 능력 기능 자격 취득을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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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1동에 있는 사립 중학교. ‘참된 인성을 갖추고 새 시대를 열어갈 창의적인 인간 육성’을 교육 목표로 삼고 있으며, 교훈은 ‘겸허, 경애, 수련’이다. 1949년 12월 30일 제주 고등 여학교에서 제주 여자 중학교로 명칭을 바꾸었고, 1953년 4월 14일 제주시 이도1동으로 이전하였다. 1956년 1월 31이 재단 법인 제주 여자 학원을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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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2동에 있는 공립 특수 학교. ‘명랑하고 힘차게 살자’라는 교훈 아래 자주적인 학생 양성의 교육 목표를 실천하고 있다. 6·25 전쟁 때 피난민 맹·농아들을 수용, 교육하기 위해 1951년 8월 제주 북 초등학교 맹아 분교장이 설립되었다. 1969년 9월 1일 일도 초등학교 맹아 분교장으로 명칭을 변경, 설치하였고, 1971년 4월 8일 제주 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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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에 있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별장. 1957년 이승만 대통령과 벤 플리트 UN사령관의 제주 방문시 축조하기로 협의하여 미군의 자재 지원을 받으며 국군 공병대가 축조한 건물이다. 이 건물은 벽돌조 박공지붕 형태의 지상 1층 건물로, 연면적이 99㎡인 소규모 귀빈 숙사이다. 구좌읍 송당리 송당목장 안에 있으며, 민오름 가는 길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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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노형동에 있는 공립 일반계 고등학교.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자주인, 창조인, 협동인을 육성한다’는 교육 목표를 지니고 있다. 교훈은 ‘자주, 창조, 협동’이다. 1975년 4월 6일 제주 제일 고등학교 부설 방송 통신 고등학교를 개교하였고, 1978년 3월 6일 병설 제주 제일 중학교를 다른 부지로 이전하였다. 1983년 1월 5일 광양 구 교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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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노형동에 있는 제주 제일 고등학교 부설 방송 통신 고등학교. 과학 기술의 발달과 사회, 문화의 급속한 변동에 따라 유능한 직업인을 양성하며, 경제적 여건 등으로 일반 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교육 대상자에게 고교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교육 목표로 삼고 있다. 방송 통신 고등학교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청소년과 성인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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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2동에 있는 공립 중학교. ‘올바른 인성을 지니고 꿈을 키워가는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능력을 지닌 건강한 인간 육성’을 교육 목표로 정하고 있으며, 교훈은 ‘자율, 성실, 창조’이다. 1951년 2월 교육법 일부가 개정되어 종래의 6·6·4제와 6·4·4제의 복선형에서 6·3·3·4제의 단선형으로 학제가 개편되었다. 이때 제주 지역 유일의 6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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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봉로에 있는 사립 실업계 고등학교. ‘자율적·도덕적·창의적인 민주 시민을 육성하기 위한 사랑과 믿음의 교육’을 목표로 삼고 있고, 교훈은 ‘신망·성실·창조’이다. 1967년 3월 31일 학교 법인 제주 명륜 학원이 설립 인가되었다. 1984년 8월 30일 월평동으로 교사를 신축, 이설하였다. 1987년 9월 30일 학교 법인 신기 학원에서 인수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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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2동에 있는 공립 일반계 고등학교. 자기 주도적인 탐구 학습 능력을 신장시키고, 자율적인 교육 과정 속에서 자율인을 양성하는 것을 교육 목표로 정하고 있다. 교훈은 ‘곧은 마음, 바른 길’이다. 학생 자율 독서·논술 위원회를 조직하여 자기 주도적 능력의 보충 및 심화 학습을 실시하기 위한 자율 독서·논술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또한 전 교과와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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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2동에 있는 공립 중학교. ‘21세기를 주도할 풍부한 인간미를 지닌 창의적이고 정직한 인간 육성’이라는 교육 목표를 정하고 있다. 교훈은 ‘날로 새로워라’이다. 제주시 내에 공립 여성 교육 기관이 없던 가운데 공립 여자 중학교 설립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시민들의 여론에 따라 1965년 12월 28일 제주도 교육 위원회에서 제주 제일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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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연동에 있는 공립 중학교. ‘예절 바르고, 올바른 가치를 추구하는 도덕적 성품을 기른다, 법과 질서를 지키고, 국가 사회에 기여하는 공동체 정신을 기른다, 소질과 적성을 계발하고,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기른다, 자연을 사랑하고, 미래 사회에 대비하는 심신이 건강한 사람을 기른다’는 교육 목표를 세우고 있다. 교훈은 ‘성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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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1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예의 바르며 스스로 생각하는 건강한 어린이를 기른다’라는 교육 목표를 가지고 있으며, 교훈은 ‘참되고 바르게, 부지런히, 슬기롭게’이다. 신시가지 계획 정리에 의해 서사라 지구가 주거 지역으로 결정되면서 인구가 증가하였다. 이에 따라 도시의 균형 발전을 위해 1972년 10월 21일 서사라 국민학교가 설립 인가를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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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1동에 있는 사립 중학교. ‘미래를 준비하는 교육, 기본이 바로 선 학교’라는 교육 목표를 가지고 있으며, 교훈은 ‘명륜(明倫), 창조(創造), 건강(健康)’이다. 전통적 교육의 전당인 제주 향교에서 출발하여 해방 직후인 1945년 12월 1일 제주 중학원으로 개설하였다. 이듬해인 1946년 12월 1일 제주 초급 중학교 설립 인가를 받았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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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지역의 여러 청년회 대표들이 모여 설립한 사회주의 단체. 제주 청년 연합회는 사회주의 이념을 수용한 청년들에 의해 제주 지역의 청년회를 하나로 연대시키고 전국적 조직인 제주 청년 총동맹과의 연합을 위해 설립되었다. 1925년 9월 23일 설립된 제주 청년 연합회에는 가파청년회·모슬포 청년회·온평 청년회·서귀포 청년회·함덕 협성 청년회·신촌 청년회·화북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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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 지역 사회 운동의 선구적 역할을 담당했던 청년 단체. 제주 청년회는 조선 민중 해방 운동의 선구가 되기를 기도한 18세 이상 40세 이내 청년의 통일 단결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청년이라는 개념이 사용되지 않았으며 한국 사회에서 청년 단체라는 말을 쓰기 시작한 것은 일제 침략기부터이다. 최초의 청년 단체는 1918년 제주읍 내 유력자 집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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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부터 조선 초기 제주 지역에 설치된 특수 관직. 토관은 제주도를 비롯한 평안도·함경도 등의 일부 지역의 토착 세력에게 특별하게 주었던 관직이다. 제주도에 토관제가 언제부터 설치·운영되었는지 알 수 있는 문헌 기록은 없다. 조선 시대 제주도의 토관제에 관한 첫 기록은 1394년(태조 3)에 나타나는데, 이 기록에 의하면 그 전에 이미 제주도에 토관제가 설치·운영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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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부터 1917년까지 일본이 우리나라에서 시행한 대규모의 국토 조사 사업. 제주도에서의 토지 조사 사업은 1913년부터 2년 동안에 걸쳐 토지 소유주로부터 신고를 받아 처리하고 불복 신고(不服申告)를 받아 재결(裁決) 결과를 처리하였으며 1917년 일제의 강권으로 완료되었다. 제주 지역에서는 세부 측량(細部測量)이란 명칭으로 통용하여 왔다. 일제는 우리나라 전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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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제주 지역의 행정·군정 실무를 담당한 종5품 관직. 판관은 중앙의 상서원·내자시·군자감 등 17개 관청에, 지방에는 각 도·유수부·대도호부·목·도호부에 설치되어 있었다. 지방에 설치된 판관은 지방 장관을 보좌하는 일종의 부관(副官)으로 지방 장관을 도와 행정·군정에 참여하였다. 제주 지역의 경우, 제주 목사가 제주도의 실질적인 책임자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정의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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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에 있는 삼별초가 최후까지 대몽항쟁을 벌인 유적지. 13세기에 고려를 침략한 몽고군에 저항하여 싸운 삼별초의 최후의 항쟁지이다. 1271년(원종 12) 5월 삼별초를 이끌고 제주도에 들어온 김통정 장군은 이곳에 내·외성으로 된 항파두성을 축조했다. 외성은 길이가 15㎞에 이르는 토성이었고, 내성은 둘레 800m의 석성이었다. 이 성을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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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6년 2월에서 1884년 10월 사이 제주목에서 조정에 보고한 계문을 비변사(의정부)에서 옮겨 기록한 자료집. 본서의 저본은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본이다. 5책으로, 대략 크기는 42×30㎝로 대소부동하다. 전체 분량의 절반을 번역한 번역본이 같은 이름으로 나와 있다. 각 책의 수록 연대를 연대순으로 정리하면, 제5책은 1846년 2월부터 1858년 9월까지, 제1책은 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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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을라를 시조로 하는 제주의 세거 성씨. 제주고씨(濟州高氏)는 탐라 개국 설화에 나오는 삼신인(三神人) 가운데 한 사람인 고을라(高乙那)를 시조로 하는 성씨이다. 제주고씨의 종파명을 살펴보면 성주공파(星主公派)·전서공파(典書公派)·영곡공파(靈谷公派)·문충공파(文忠公派)·장흥백파(長興伯派)·화전군파(花田君派)·문정공파(文禎公派)·상당군파(上黨君派)·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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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개최되는 학생과 학부모, 교사가 함께 하는 문화 축제. 제주교육문화축제는 제주특별자치도 교육청이 주최하고 제주교육문화축제 운영위원회와 제주시 교육청, 서귀포시 교육청이 주관하고 있는 문화 축제이다. 학생과 학부모, 교사가 함께 참여하는 문화 축제의 장으로서, 교육과 문화를 접목시켜 문화적 가치를 창출하고 공동체 의식을 배양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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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제주도에서 결성된 사회주의 비밀 조직 단체. 과거 지식인 중심에서 노동자·농민 중심의 조직을 결성하여 조선공산당의 재건을 목표로 설립되었다. 1930년 혁우동맹은 구좌면 일대에서 강창보를 중심으로 결성되었으나 뚜렷한 활동 사항은 없었다. 1931년 5월 15일 신우면 애월리 김원희의 결혼식에 참석한 강창보·신재홍·오대진·이익우·김한정 등은 그날 밤 김원희의 방에서 숙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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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영평동에 있는 사회복지시설. 제주모자원은 「모자복지법」 제4조의 규정에 의한 모(母)로서 18세 미만(취학시에는 20세 미만)의 아동을 양육하는 무주택 저소득 모자가정과 미혼모시설 퇴소자 중 스스로 아동을 양육하는 미혼모를 입소 대상으로 하고 있는 사회복지시설이다. 제주모자원은 저소득층 모자가정의 여성과 18세 미만의 자녀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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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의 조선시대 행정구역. 제주의 옛 이름은 탐라(耽羅)·탁라(乇羅)·탐모라(耽毛羅)·동영주(東瀛洲)이다. 1295년(충렬왕 21) 제주의 행정단위는 제주목으로 개편되었다. 목(牧)은 경(京)과 도호부의 격을 지닌 행정단위와 더불어 계수관(界首官) 지역으로 일컬어졌다. 계수관 지역은 최상의 독자적·개별적 행정단위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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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2동에 있는 조선시대 제주목 관아. 제주목 관아는 조선시대 제주 지방 통치의 중심지로서, 지금의 관덕정을 포함하는 주변 일대에 들어서 있던 관아 시설을 말한다. 1991년부터 발굴 조사가 이루어져 탐라국으로부터 조선과 근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시기의 유구와 문화층이 확인되었다. 특히 조선시대 관아 시설인 동헌과 내아의 건물지 등이 확인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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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3년(철종 14) 3월에 작성한 1862년에 발생한 제주민란에 대한 죄인 심문 기록. 1862년(철종 13) 2월 임술(壬戌)년에 제주에서 민란이 발생했다. 그러자 조정에서는 부호군(副護軍) 이건필(李建弼)을 안핵겸찰리사로 파견하였는데, 그때 사건 전말을 공초(供招)한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이 등록은 철종 13년(1862) 2월에 임헌대(任憲大) 제주목사가 부임하였는데 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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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양3동에 있는 사립 민속 박물관 1964년 순수 민간 박물관으로 출발하여 1979년 지금의 삼양3동 자리로 옮겼다. 민속자료 3천여 점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연구 기관인 제주민속연구소에서는 제주의 무형·유형문화재 1만여 점을 수집하여 민속·신화·전설·민요·무가 등으로 분류하여 18권의 『제주민속총서』를 펴냈다. 대지 3,960㎡, 연건축면적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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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내도동에 있는 사회복지시설. 제주보육원은 「아동복지법」 제1조, 제2조 1항과 2항에 근거하여 18세 미만의 아동 중 보호자가 없거나 보호자로부터 이탈된 아동, 양육하기에 부적당하거나 양육할 능력이 없는 경우의 아동을 보호하고 양육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51년 4월 1일 제주시 제주 삼성혈에 설립(설립자 허천만)되었다. 같은 해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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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을라를 시조로 하는 제주의 세거 성씨. 제주부씨(濟州夫氏)는 탐라 개국 설화에 나오는 삼신인(三神人) 가운데 한사람인 부을라(夫乙那)를 시조로 하는 제주 토성이다. 중시조(中始祖) 부계량(夫繼良)은 시조 부을라왕의 세손으로서 왕자작 탐라국 안무사이다. 태종무열왕 때 탐라국 사신으로써 광순사(廣巡使) 양탕(梁宕)과 함께 신라에 입조하여 왕으로부터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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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1동에 있는 삼국시대 탐라국 수부(首府)의 성곽으로 축성된 성터. 제주성은 삼국 시대 탐라국 수부의 성곽으로 축성되었으나 원래의 규모와 축성 연대는 밝혀지지 않았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읍석성(邑石城)의 둘레는 910보”라고 하였고,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읍성은 석축으로 둘레가 4,394척이고 높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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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동 제주시청에 있는 17세기 후반인 조선 숙종(肅宗)[1661~1720] 때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제주 지역 속오군의 소속과 신원을 적어 놓은 명부. 속오군은 조선 후기 속오법(束伍法)에 따라 편성된 예비군 조직인 지방 군대이며 속오군적부는 지금의 병적기록부와 같은 속오군의 명부 자료이다. 『제주속오군적부』는 화첩인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보물 제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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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남광로에 있는 지방 교육행정기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지역의 교육 행정을 담당하기 위해 제주특별자치도 교육청 산하에 하급 교육행정기관인 제주시 교육지원청을 두고 있다. 1952년부터 시행되었던 교육 자치제는 5·16쿠데타가 일어나는 바람에 「교육에 관한 임시특례법」(1962. 2. 1)에 따라 폐지되어, 시·군 단위의 교육 자치제는 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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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에 있는 청소년 복지시설. 2002년 10월에 복지 증진과 각종 예체능, 수련 활동 등을 통하여 창조적이며 진취적인 기상으로 탐구하며 사색하는 건전한 인격체로 청소년들을 육성시키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제주시 청소년수련관은 부지 면적 6,074㎡, 건물 면적 3,954㎡으로 지하 1층, 지상 2층 건물 규모로 되어 있다. 내부 시설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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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에 있는 평생 교육 기관. 평생 교육은 기존의 학교 교육을 제외한 영역에서 학습자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일상생활과 관련된 내용을 중심으로 학습자의 참여와 경험을 존중하는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평생 교육에는 유아부터 노인까지의 모든 계층에 대한 문화·예술·가정, 체육·건강·레크리에이션, 언어, 시민교육, IT관련교육, 인문·사회, 교육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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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을라를 시조로 하는 제주의 세거 성씨. 제주양씨(濟州梁氏)는 탐라 개국 설화에 나오는 삼신인(三神人) 가운데 한사람인 양을라(梁乙那)를 시조로 하는 성씨이다. 중시조(中始祖) 양탕(梁宕)은 시조 탁라왕 양을라(良乙那)의 세손이다. 탐라국광순사(耽羅國廣巡使)로서 신라에 입조하여 광순사를 지냈으며, 383년(신라 내물왕 28)에 탐라 광순사로 안무사인 부계량(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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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제주목사가 근무하던 제주목 관아와 그 주변을 둘러싸던 성. 제주읍성은 1105년(숙종 10) 탐라군이 설치되면서 축성되었다. 당시의 읍성은 이미 존재하고 있던 탐라국 시대의 성곽을 활용하여 축성된 것으로 보인다. 제주읍성은 행정적인 목적 외에도 군사적인 기능도 지니고 있었다. 유사시에 적의 침입으로부터 읍성을 보호해야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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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사람들의 조상으로 추정되는 원주족. 제주도에 언제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고, 그 선사인은 어디에서 왔으며, 어떤 종족인가에 관하여는 많은 주장이 있다. 제주도의 원주족과 관련한 논란은 많으나 아직까지 명확한 결론은 나오지 않은 상태이다. 제주도에서 가장 오래된 선사 유적은 애월읍 어음리에 있는 어음동굴 유적이다. 1973년에 처음 발견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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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학자인 이건이 제주에서 유배 생활을 하면서 지은 풍토기. 이건(李健)[1614~1662]은 선조의 손자로서 인성군(仁城君) 이공(李珙)의 아들이다. 1628년 인성군이 역모 혐의로 대역 처분을 받았을 때 두 형과 함께 15세의 나이로 제주도에 유배되었다. 시·서·화에 뛰어나 삼절(三絶)이라 하였는데, 특히 송죽(松竹)과 영모(翎毛)에 능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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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김정이 제주도에서 유배 생활을 하면서 쓴 글. 김정(金淨)[1486~1520]은 1519년(중종 14) 11월에 일어난 기묘사회로 인해 진도로 유배를 갔다가 다음해인 1520년 8월 제주도로 이배되었다. 「제주풍토록」은 김정이 1521년 10월에 사사될 때까지 체험한 제주의 풍토와 상황을 사실적으로 기록한 글이다. 문집인 『충암집』 권4에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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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 지역에서 작성된 고문서. 『제주하원리호적중초』는 하원리에 있는 고문서 중의 일부로서, 호주를 중심으로 그 호의 구성원에 대한 사항을 기록한 호적 대장을 작성하기 위한 초본이었다. 기재 양식은 지역명, 작통의 차례, 통수(統首)의 직책, 편호의 차례, 주호와 협호의 차례로 이루어져 있다. 주호는 직책, 혹은 신분·성명·나이·본관을 기입한 후 삼대의 성명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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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제주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조사·연구를 수행하는 연구소. 1997년 10월 4일 제주 지역 내 역사·언어·문학·민속·경제 등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이 제주 지역의 역사·문화 등 제반 사항에 대한 조사 연구를 추진하여 제주학 진흥을 목적으로 설립한 사단법인이다. 설립 이래 정기적으로 마을 조사를 시행하고 있으며, 조사된 연구 결과를 연 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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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1동에 있는 조선 시대 지방 관립 학교. 제주향교는 1392년(태조 원년) 현유의 위패를 봉안·배향하고, 제주민을 교화·교육하기 위해 창건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노비 등을 지급받았고, 교수관 1명이 정원 70명의 교생을 가르쳤다.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과 가을에 석전(釋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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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1동 제주향교 입구에 있는 표지석. 하마비는 본래 1413년(태종 13) 종묘와 궐문 앞에 세운 것이 우리 나라의 시초라고 한다. 그 후 문묘와 지방 관부 등에도 이 하마비가 세워지기 시작했다. 하마비 앞에서는 누구를 막론하고 모두 말에서 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제주향교 하마비는 계급의 상하를 막론하고 성현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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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1동에 있는 화교 소학교. 교훈은 ‘애국애민(愛國愛民)·돈풍려학(敦風勵學)’으로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고, 학업에 매진하자는 의미이다. ‘중국 사람은 중국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화교들이 함께 힘을 모아 1965년 대만의 승인을 받고 같은 해 현 위치에 제주화교소학교를 설립하였다. 처음에는 6학급으로 개설되었으나 2006년 현재 3학급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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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제주 지역에서 주장(主將)을 도와 적의 침입을 방어한 종9품 관직. 조방장(助防將)은 제주진관 소속 9개 방호소 가운데 명월방호소를 제외한 방호소의 책임자로 모두 8명이었다. 조선 전기 방호소의 책임자는 여수(旅帥)였으며, 변란이 생길 경우 영군관이 파견되어 방어에 임하였다. 그러나 17세기 후반에는 각 방호소에 성을 쌓았으며, 조방장을 파견하여 방어에 대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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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제주의 역사. . 조선 시대 제주는 독립성을 상실한 채 중앙 정부의 지배를 받았다. 제주는 말의 특산지로 부각되면서 경제적으로 중요한 지역으로 인식되어, 중앙 정부에 의해 과중한 경제적 수탈이 이루어졌다. 특히 제주도 중산간 지역을 목장으로 만들어 개간을 금지했기 때문에 제주인들은 해변 지역의 일부 땅만을 이용해 농사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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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에 있는 옛 관리들의 기록을 적은 비(碑)들이 모여 있는 곳. 조천 포구 입구에 자리 잡은 조천 비석거리는 1976년 9월 9일 제주도 기념물 제31호로 지정된, 제주목사나 제주판관 등 지방 관리들의 부임, 또는 이임시 이들의 공적과 석별의 뜻을 기리는 의미에서 건립한 비 7기가 남아 있는 곳을 말한다. 제주시 조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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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홍수의 재앙을 막아달라고 하늘에 기원하던 신앙적 성격의 비. 산지천에 세워진 조천석과 경천암(擎天岩)은 재앙을 막아달라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조두석(俎豆石)이다. 조천석은 자연석 위에 세워져 있었는데, 이 바위를 경천암이라 한다. ‘경천’이란 ‘하늘을 받친다’는 의미로서, ‘하늘을 받쳐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재앙을 막는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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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에 있는 조선시대 조천진 소속의 연대. 조천연대는 서쪽으로 원당봉수(직선 거리 3.3㎞), 동쪽으로 왜포연대(직선 거리 1.4㎞)와 교신했으며, 소속 별장 6명, 봉군 12명을 배치하였다. 조천리 일주 도로에서 북쪽으로 가면 포구와 접하여 타원형으로 된 조천성과 함께 연북정이 있으며, 북동쪽으로 300m 정도를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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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에 있는 조선 시대 수산진 소속의 연대. 종달연대는 동쪽으로 오조연대, 서쪽으로는 지미봉수와 교신하였으며. 소속 별장 6명, 봉군 12명이 배치되었다.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 해안도로에 위치하며 종달리 해피휴펜션으로부터 남서쪽 80m지점에 있다. 지미봉 북동쪽에 해안가에 자리잡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미봉수(직선거리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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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2동에 있는 조선 시대 종루 터. 종루는 진해루(鎭海樓)·포정사(布政司)·종각(鐘閣)이라고도 불리던 곳으로, 제주목의 관아를 둘러서 쌓은 제주성 안에 있었다. 아침저녁으로 제주성 문을 열고 닫을 때 종을 쳐서 시각을 알리던 곳이다. 조선조 세종 때 불에 타서 없어지자 새로 새워서 진해루라 이름하였고, 1699년(숙종 25) 제주목사 남지훈이 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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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제주 지역에서 세습되던 작위. 제주에서는 성주(星主)·왕자(王子)의 작위가 고려 1105년(숙종 11) 군(郡)으로 편제된 뒤에도 여전히 존재하여 대대로 세습하며 조선 초기까지 내려왔다. 그러나 1402년(태종 2) 성주 고봉례(高鳳禮)와 왕자 문충세(文忠世)가 입조한 뒤, 분수에 넘치는 칭호를 사용하고 있으니 이를 개칭해줄 것을 중앙에 청하였다. 이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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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한동리에 있는 조선 시대 별방진 소속의 연대. 좌가연대는 동쪽으로 왕가봉수(직선 거리1.2㎞), 서쪽의 무주연대(직선 거리 4.7㎞)와 서로 교신을 하였으며, 소속 별장 6명, 봉군 12명이 배치되었다. 좌가연대는 한동리 일주 도로에서 서하동(西下洞) 북서쪽으로 가면 해안과 조금 떨어져 주위보다 조금 높은 동산 위에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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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에 있던 조선 시대 누각. 좌연각은 『탐라지(耽羅誌)』에 “재연무정지북(在演武亭之北)”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연무정 북쪽에 자리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인 1848년(헌종 14)에 판관 탁종술이 세웠고, 액자는 김정희가 썼다. 좌연각이 있던 자리는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 제주동초등학교 북편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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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한수리에 있는 조선 시대 명월진 소속의 연대가 있었던 터. 죽도연대는 동쪽은 우지연대(직선거리 2.3㎞), 서쪽은 마두연대(직선거리 1.1㎞)와 교신하였다. 소속 별장 6명, 봉군 12명이 배치되었다. 제주시 한림읍 한수리에 위치한 죽도연대는 잠수포(潛水浦) 대섬코지[竹島]에 있었다. 대섬코지는 예전에는 밀물 때 섬이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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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에 있던 조선 시대 북수구의 누정. 임진왜란 후인 1599년(성종 32) 제주목사 성윤문이 제주성을 개축할 때, 남수구와 북수구에 무지개다리(홍예)를 놓고 그 위에 각각 제이각과 죽서루를 건립하여 남수각과 북수각으로 불렀다고 한다. 『탐라지초본(耽羅誌草本)』과 『연려실기술(練藜室記述)』 등에 죽서루와 관련한 기록이 남아 있다. 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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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에 있는 조선 시대 수산진 소속의 봉수가 있었던 터. 수산진 소속의 지미봉수는 남동쪽의 성산봉수(직선 거리 5.4㎞), 북서쪽의 왕가봉수(직선 거리 8.3㎞)와 교신하였으며, 동쪽으로 종달연대와 서쪽으로 입두연대와도 교신하였다. 소속 별장은 6명, 봉군 12명이 배치되었다.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 해안에 접한 해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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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제주 지역의 지방관이 왕에게 의례적으로 바친 특산물. 진상은 원래부터 납세의 의무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각 도(道) 단위로 지방관이 한 달에 한 번씩 상납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각 주·현에 그 부담이 배정되었고, 이것이 다시 각 민호에 배정되었다. 조선 시대 제주의 진상물 품목으로는 말·귤·전복·버섯·한약재 등을 들 수 있다. 『탐라지』(제주목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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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식을 시조로 하고 강윤희 등을 입도조로 하는 제주의 세거 성씨. 진주강씨 시조 강이식(姜以式)은 고구려에서 병마원수를 지냈다고 하는데 『증보문헌비고』에 따르면 수나라 양제가 고구려와의 전쟁 때 수나라를 방어한 장군이라 하기도 하고, 일설에는 고구려 정벌에 종군한 수나라 원수로서 수나라의 정국이 혼미하므로 돌아가지 않고 귀화해 살았다고 한다. 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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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 지역에서 흉년이 들었을 때 백성을 구제하기 위해 두었던 제도. 진휼곡은 춘궁기에 종곡(種穀)을 나누어주고 추수기에 거두어들이던 곡식 또는 제도를 일컫는다. 진휼곡은 1668년(헌종 9) 제주목사 이인(李寅)에 의해 설치되었는데, 진대구휼(賑貸救恤)의 기능을 담당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거듭된 자연재해로 원곡(元穀)이 줄어드는 결과가 초래되어 운영에 어려움이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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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에 있는 조선 중기 왜구를 방비하기 위해 설치된 군사 시설. 차귀진은 고려 충렬왕 때부터 공민왕 23년까지 원나라 목마(牧馬) 관리자인 목호가 말을 기르기 위해 서아막(목축 관리소)을 설치했던 곳이다. 1652년(효종 3) 이원진 목사가 차귀도를 의지삼아 침략하는 왜구를 방어하기 위해 진을 설치했다. 제주의 9진성 가운데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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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2년 왜구가 제주 천미포(川尾浦)에 들어와 난동을 부린 사건. 1552년(명종 7) 5월에 포르투갈인을 포함한 왜적 200여 명이 천미포에 침입하였다. 그들은 주민을 살상하고 재물을 약탈하였는데, 지역 백성들이 대항하여 물리쳤다. 천미포에 침입한 200여 명의 왜구 중 70여 명은 직접 상륙하여 약탈을 자행하였다. 이 전투는 이틀 동안 계속되었으며, 결국 인근의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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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락을 시조로 하고 전우선을 입도조로 하는 제주의 세거 성씨. 전씨의 도시조는 백제의 10대 개국공신의 한 사람인 전섭(全聶)이다. 『전씨세보』에 의하면 고구려 동명왕 주몽의 셋째 아들인 온조가 열 사람의 막료(幕僚)를 이끌고 남으로 내려와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백제를 건국하였는데, 환성군(歡城君) 전섭(全聶)도 그들 공신의 한사람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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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 북수구성 위에 있던 조선 시대 누정. 천일정은 1847년(헌종 13) 제주목사 이의식이 북수구성을 성 밖으로 늘여 쌓고 그 위에 세운 누정이다. 비바람으로 무너졌다. 사라진 북성의 자취와 함께 천일정의 모습도 찾아볼 수 없다. 제주성 주변에 있던 유적과 유물들에 대한 자료를 모아 제주성의 옛 모습을 복원한다면 역사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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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형소를 시조와 입도조로 하는 제주의 세거 성씨. 좌씨의 연원은 중국 노(魯)나라 학자 좌구명(左丘明)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좌구명은 당시 대유(大儒)로서 좌구명(左丘明)이 주석한 『춘추좌씨전』은 『논어』와 『맹자』처럼 이름 있는 고전으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필독서이다. 좌씨가 우리나라에 들러오게 된 것은 1273년(원종 14)으로 여원연합군(麗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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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란을 시조로 하고 한천을 입도조로 하는 제주의 세거 성씨. 청주한씨(淸州韓氏)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거족(巨族)으로 이른바 삼한갑족(三韓甲族)이다. 한씨는 멀리 고조선 시대에 연원을 두고 있으며, 『청주한씨세보』에 따르면 기자조선의 마지막 왕인 준왕의 후대에 우성(友誠)·우평(友平)·우량(友諒)의 삼형제가 있어 각각 기씨(奇氏)·선우씨(鮮于氏)·한씨(韓氏)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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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1동에 있던 조선 시대 누각. 청풍대는 제주성 남문 안 서쪽에 있던 누각이다. 언제 창건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제주목사 심연원이 1536년(중종 31) 명륜당을 개축한 뒤 남긴「명륜당중수서(明倫堂重修序)」에 청풍대의 이름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조선 전기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정조 초에 제주목사 김영수가 노장대(老將臺)라고 명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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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면암 최익현이 유배되어 적거하던 곳. 최익현은 1868년(고종 5) 경복궁 중건의 중지, 당백전 발행에 따른 재정의 파탄 등 흥선대원군의 실정을 상소하였다가 사간원의 탄핵을 받아 관직을 삭탈당했다. 1873년 동부승지 때 반(反) 대원군 세력과 제휴, 서원 철폐 등 대원군의 정책과 실정 사례를 낱낱이 열거하며 왕의 친정, 대원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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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추자면 영흥리에 있는 조선 중기의 사당. 추자 처사각은 추자도에 유배되어 평생을 마친 처사 박인택의 유덕을 높이 기리기 위하여 세워진 사당으로, 그의 후손들이 건립하였다. 박인택은 태인박씨로 추자입도의 시조이다. 남달리 성품이 강직했던 박인택은 추자도에 유배된 이후 지금의 사당 뒤편 산기슭의 석간수가 흐르는 한적한 곳에서 적거하다가 말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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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에 있던 조선 시대 군사 유적. 쾌승정은 1592년(선조 25) 제주목사 이경록이 전승을 다짐하고 무운을 비는 뜻에서 성의 동북쪽에 위치한 해산대(海山臺)에 세운 군사 유적이다. 이원조가 1842년에 쓴 『탐라지초본(耽羅誌草本)』에 “쾌승정은, 즉 옛 해산대로서 동성 안의 산저천 위에 존재했으나 없어졌다(快勝亭 卽古之海山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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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노형동에 있는 공립 도서관. 관장을 중심으로 서무과와 열람과로 부서가 나누어져 있다. 교양 문화 시설의 지역간 분산, 향학열 향상에 따른 면학 공간 확보, 시민 문화 의식 향상을 위해 설립되었다. 1990년 1월 4일 독서 교실이 개설되었고, 1993년 5월 10일 이동 도서관이 개설되었다. 1996년 4월 1일 도서관 문화 학교가 개설되었고,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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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이원조(李源祚)가 남긴 제주 관련 문헌. 『탐라계록(耽羅啓錄)』은 제주목사로 있던 이원조가 내치(內治)의 중요함에 대하여 전라도관찰사 등에게 계품(啓禀), 계문(啓聞)한 것으로서 관청 공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탐라계록』은 퇴계학파제현집(退溪學派諸賢集) 편찬 사업으로 간행된 『응와전집(凝窩全集)』 전 4권 중 네 번째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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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기 말~10세기 백제·중국·일본 등과의 국제 교역을 하면서 ‘국(國)’을 형성 기반으로 하였던 제주의 옛 정치체. 탐라국은 ‘섬나라’라는 의미로서, 섬에 위치하여 오랫동안 독자적인 국가 형태로 존속하였던 국가이다. 탐라국에 관한 기록은 『구당서(舊唐書)』 「유인궤전(劉仁軌傳)」에 처음 등장한다. 그러나 이미 『후한서(後漢書)』에는 섭라(涉羅), 『북사(北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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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제주목에서 작성한 제주목 관아 시설 배치 상황 등이 나와 있는 지방 관찬문서. 편자 및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뒷표지 뒷면에 ‘제주 탐라방영총람 관덕정’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제주목에서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즉 수령을 보좌하는 육방 관속이 작성하여 신임 수령이 부임해 왔을 때, 해당 사항별로 수령에게 설명하거나 혹은 수령이 소속 읍을 순행할 당시에 향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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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4년(정조 18)에 제주도에서 시행한 문·무 양과의 급제자 명단과 과문을 모아 규장각에서 간행한 책. 1794년(정조 18) 제주 유생에게 문과시(文科試)를 치러 합격한 사람들의 글을 기록한 책을 내게 하여 『탐라빈흥록(耽羅賓興錄)』이라 하였다. 규장각에서 편집했으며 1책으로 되어 있다. 내용은 「윤음(綸音)」, 「장계(狀啓)」, 「방목(榜目)」, 「과문(科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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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의 통수권을 상징하는 군기(軍旗). 탐라제군사명기는 세로로 긴 종장 대기면서 군기에 속하며, 군기는 글자 그대로 군대에서 쓰는 기인데 제주목사로 도임할 때부터 사용하였다. 기는 교지와 함께 받아 부임시 사용하고, 위정(爲政)시 제주목사와 함께 하여 제주목사의 존재와 위엄을 표시하였다. 『탐라순력도』에서 보면 제주목사는 행렬시 주로 가마를 타고 가며 기(旗)는 높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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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조선 숙종 때 제작된 제주도 지도와 그 서문. 1709년(숙종 35)에 제주목사 이규성(李奎成)이 제작한 지도 1과 병서 2로 이루어진 지도로, 세로 125㎝, 가로 98㎝의 크기이다. 현존하는 조선 시대의 제주 지도 중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되어 1991년 6월 4일 제주유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되었다. 이 지도의 서문은 간략하게 정리되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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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토착하여 거주하던 씨족 집단의 성씨. 신라 말부터 본격적으로 정착하기 시작한 본관제는 고려를 지나면서 중앙의 지방 지배 및 일정한 지역에 주민을 정착시킴으로써 효율적인 신분 질서의 유지, 나아가 세금이나 역(役)을 효과적으로 거두기 위한 방편으로 더욱 활발하였다. 즉, 지방에 토착하고 있던 강력한 씨족 집단에게 그 지역 명을 본관으로 부여하게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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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신달을 시조로 하고 윤빈과 윤자경을 입도조로 하는 제주의 세거 성씨. 파평윤씨의 시조는 고려가 후삼국을 통합하는 데 공을 세워 개국공신이 된 윤신달(尹莘達)이다. 전설에 의하면 지금의 경기도 파주시 용연이라고 하는 연못에서 상서로운 하늘 기운을 타고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한다. 후손 중에 시조의 현손으로 고려 예종 때 문하시중을 지낸 윤관(尹瓘)이 있다. 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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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1동에 있던 조선 시대 제단. 포신단이라고 하는 포신묘는 신에게 액을 막고 복을 줄 것을 기원하던 제단이다. 제단이 세워진 정확한 연대는 확인되지 않으나 『탐라지초본(耽羅誌草本)』에 “포신묘 구재소림과원중 금이건우한라산신묘방(酺神廟 舊在小林果園中 今移建于漢拏山神廟傍)”이라 하여, 원래는 소림과원에 있었으나 ‘한라산 산신제’를 지내던 산천단 근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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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제주에서 전복과 물고기 등을 주로 잡아서 진상하는 임무를 맡은 사람. 예부터 제주의 바다에서 생산되는 특산물로는 전복·해삼·미역·옥돔 등 종류가 다양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특산물의 채취는 누구나 가능한 것이 아니어서 해산물의 진상을 위하여 포작인(혹은 포작)과 잠녀를 특별히 두어 이들로 하여금 진상에 필요한 해산물을 마련하도록 하였다. 1443년(세종 25)에 제주목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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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외국에서 항해 나왔다가 잘못되어 제주에 떠밀려 온 사람.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바다에 의지하고 살던 제주에서의 삶은 바람을 따라 파도에 쓸려 떠가기도 하고 떠밀려오는 경우가 많았다. 바람과 파도에 휩쓸려 원래의 목적지와는 다른 곳에 도착했다는 사실은 같지만 경로에 따라 부르는 명칭에 차이가 있었다. 표도인은 외국 사람들이 항해 중에 바람 등을 잘못 만나 제주에 떠밀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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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제주에서 항해를 나갔다가 잘못되어 다른 나라로 떠밀려갔다가 되돌아온 사람.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바다에 의지하고 살던 제주에서의 삶은 바람을 따라 파도에 쓸려 떠가기도 하고 떠밀려 오는 경우가 많았다, 바람과 파도에 휩쓸렸다는 사실은 같지만 경로에 따라 부르는 명칭에 차이가 있었다. 표류인을 제주 사람이 다른 지역으로 떠밀려 갔다가 다시 돌아온 경우이고, 표도인은 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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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필명을 시조로 하고 진계백을 입도조로 하는 제주의 세거 성씨. 풍기진씨의 시조 진필명(秦弼明)은 원래 당나라 태원(太原) 사람으로 당 고종 때 병부시랑으로서 소정방과 함께 당군(唐軍)을 이끌고 백제 정략에 참가했다가 백제를 멸한 뒤에도 돌아가지 않고 그대로 신라에 남아 정착한 것으로 전한다. 우리나라의 진씨는 모두 진필명(秦弼明)에게서 비롯되었다고 하므로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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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노형동에 있는 에너지의 효율적인 이용을 위해 설립된 법인 기업. 한국에너지공단 제주지사는 기후변화에 대비한 에너지 이용문화 창조, 에너지 이용 효율 향상 및 미래 에너지 기술 개발·보급 등 에너지이용 합리화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73년 10월 제1차 석유파동과 1978년 12월 제2차 석유파동 이후 1979년 12월에 에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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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노형동에 있는 공립 중학교. ‘심신이 건강하고 바르게 행동하며 스스로 탐구하는 창의적인 사람을 기른다’는 것을 교육 목표로 삼고 있고, 교훈은 ‘바른 마음, 바른 생각, 바른 행동’이다. 제주시 연동 지구 택지 개발 사업으로 인해 신제주로 유입되는 중학교 학령자를 수용하고, 제주시 내 중학교 학생 수용의 여건을 개선하기 위하여 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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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노형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바른 심성과 튼튼한 몸으로 미래를 개척하는 창의적인 어린이로 기른다"를 교육 목표로 정하여 미래 지향적인 인간 교육을 바탕으로 바른 인성을 함양하고 학생의 기초·기본 교육의 바탕 위에 창의적인 학생을 육성할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제주시 연동 택지 개발 사업 시행으로 인하여 이 지역에 대단위 주택이 건설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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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1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올바른 마음과 튼튼한 몸으로 미래의 꿈을 열어가는 성실하고 창의적인 어린이를 기른다’를 교육 목표로 삼고 있고, 교훈은 ‘슬기롭게 행하고, 부지런히 배우고, 튼튼하게 살자’이다. 지금 한천 초등학교가 자리한 학구는 본래 제주 서 국민학교와 제주 중앙 국민학교에 속해 있었는데, 인구 증가와 지역 사회의 고도 성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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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 3276번지에 위치한 조선 시대 조천진 소속의 연대. 함덕리 해안 서쪽에 위치한 제주도 기념물 제23-14호(1996.7.18지정)로 지정된 함덕연대는 동쪽으로 서산봉수(직선 거리 1.8㎞), 서쪽으로 왜포연대(직선 거리 1.4㎞)와 교신하였다. 고문헌을 살펴보면, 함덕연대는 제주읍성에서 동쪽으로 35리에 있으며, 소속 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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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지역에서 바다와 가까이 나 있는 도로. 제주도 해안 도로는 1983년 국비를 지원을 받아 도두-제주 국제공항-용두암을 잇는 4.2㎞의 해안 도로가 1984년 전국 소년 체전의 개최에 맞춰 준공되어 제주도 관광 자원이 되었다. 그 뒤 1989년부터 읍·면 지역에서도 관광 자원화 차원에서 군도개발 사업을 추진하면서 해안 도로가 본격적으로 개설되기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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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해안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배려심을 갖춘 예절 바른 어린이, 창의적이며 스스로 공부하는 어린이, 몸과 마음이 튼튼한 어린이를 육성하는 것이며, 교훈은 ‘참되게·슬기롭게·튼튼하게’이다. 8·15 해방 전까지 해안동에 거주하는 여유 있는 집안 어린이들은 제주시 북 국민학교로 다녔으나 대부분의 어린이들은 외도 공립 학교로 다녔다. 1948년 4·3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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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제주 지역에서 대물림으로 내려오던 아전(衙前). 향리라 부르는 이들은 수령을 보좌하며 지방 행정의 실질적인 업무를 담당하였다. 오늘날의 지방 공무원에 비견될 수 있다. 탐라국의 지배 세력은 고려 후기에 점차 와해되면서 일부는 토관 세력으로 진출하고 또 다른 일부는 향리 세력을 형성하였다. 조선 시대 제주도에 향교가 설치된 것은 태조와 태종 때이다. 그러나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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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1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정자. 향사당은 봄과 가을에 고을 사람들이 모여 향사음례(鄕射飮禮), 즉 활쏘기와 함께 잔치를 베풀던 곳이다. 향사당(鄕社堂)의 원래 이름은 향사당(鄕射堂)이었다. 여기서 ‘사(射)’는 공자가 “확상(矍相)의 들판에서 활을 쏘아 현인을 얻는다.”고 말한 것에서 유래하였다. 즉 옛날 어진 임금들이 몸소 인의(仁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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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1동에 있던 지방 교육 기관. 조선 중기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학교조(學校條)」 말미에 “우유향학당(又有鄕學堂)”, 즉 “또 향학당이 있었다”라고 한 것으로 보아 향학당은 고려 후기나 조선 전기에 이미 존재하고 있던 지방 교육 기관으로 파악된다. 『탐라지(耽羅誌)』의 「항교조(鄕校條)」 심연원 서에 의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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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1동에 있던 조선 시대 사당. 향현사는 1843년(헌종 9) 제주목사 이원조가 조선조 세종 때 한성판윤을 지낸 영곡공(靈谷公) 고득종을 봉향하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1849년(헌종 15)에 김진용을 추향하기도 했으나, 1871년(고종 8)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그 유허비가 현재 오현단에 남아 있는데, “고경준지(高景晙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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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향현사(鄕賢祠)의 유허지에 세워진 비석. 제주목사 이규원(李奎遠)이 1893년(고종 30) 정월에 향현사의 유허지에 세운 비석이다. 향현사는 1843년(헌종 9)에 이원조 제주목사가 세종 때 한성판윤을 지낸 영곡(靈谷) 고득종(高得宗)을 추향(追享)하기 위해 귤림서원 옆에 세운 사당을 말한다. 1849년(헌종 15)에는 참봉(參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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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제주도에서 마을 단위로 작성한 호적 자료. 호적이 작성되는 시기가 되면 각 집 안에서 작성한 호구단자를 수합하여 검토하고, 이를 다시 마을을 단위로 전체적으로 작성하였는데, 이때 마을 단위로 작성한 호적을 호적중초라고 한다. 호적중초는 육지의 다른 지역에 비해 제주도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되고 있는데, 특히 옛 대정현 지역에 치중되어 있다. 지금까지 확인된 대정현 지역의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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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유배된 선비 조정철(趙貞喆)을 위하여 순절한 홍윤애의 무덤 터. 조정철을 극진히 사랑했던 홍윤애는 연인의 죄를 추궁하는 제주목사의 가혹한 고문에도 끝까지 굴복하지 않고 목숨을 바쳐, 연인의 생명을 구해냈다. 그로부터 30년 뒤(1811) 조정철은 제주목사로 도임하여 손수 이 무덤을 단장하고 애절한 시비를 세웠다. 1940년 무덤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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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1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체·덕·지·거의 기본과 기초를 다지는 교육’을 목표로 삼고 있고, 교훈은 ‘튼튼하게, 올바르게, 슬기롭게’이다. 화북리에서는 1920년쯤에 개량 서당이 발전되었고 교육 개량 서당 형태인 건물이 지어짐에 따라 교육을 위한 공공 건물관이 좀더 발전하여 사숙의 형태로 발전하게 되었다. 화북 의숙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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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동에 있는 조선 시대의 진영 터. 화북진지는 조선 시대 제주도의 군사적 방어 시설인 화북진이 설치되어 있던 자리이다. 진(鎭)은 지방의 군사를 관리하던 지방 관제의 하나로 진영의 줄임말이다. 화북진의 서북쪽에는 제주목사 김정이 방파제를 쌓았다는 화북포구와 김정의 공적비가 있으며, 방파제와 연접한 공지에는 해신에게 바다에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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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 지역에서 화전(火田)에 징수하던 조세. 화전은 산골짜기의 궁핍한 주민들이 주인 없는 산에 불을 질러서 밭으로 만들어 곡식을 재배하던 농경법이다. 화전세는 이러한 밭에 징수하던 조세이다. 제주도는 화산섬으로 일찍부터 재앙의 섬, 천형(天刑)의 땅으로 알려진 곳이다. 지층은 현무암층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표토도 화산회토가 덮여 있어서 농사에 부적합한 토양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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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제주에서 진상한 귤을 나누어주고 치르게 했던 과거 제도. 조선 시대 제주에서 진상한 귤을 성균관과 사학(四學)의 유생들에게 나누어주고, 시험을 치르게 했는데, 시험은 주로 감귤이 진상되는 10~2월 사이에 집중적으로 실시되었다. 예로부터 제주목에서는 귤·유자·귤감을 진상해왔다. 그러면 종묘에 진상하고 각궁의 하인들과 가까이 모시는 신하들에게 이를 바쳤는데, 이를 치하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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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제주특별자치도 북제주군에서 부모를 극진히 잘 섬긴 자녀들. 조선 시대 제주도의 효자는 『조선왕조실록』·『탐라지』·『효열록』 등에 기록되어 있다. 이들은 해당 마을에 효자비를 남겨 후세에 귀감이 되었다. 효자비의 위치를 근거로 파악한 조선 시대 제주 효자들의 출신 지역과 대표적인 효자·효부들은 다음과 같다. 읍·면·리 지역에 효자들이 분포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