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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11652
한자 濟州-
영어의미역 Islands of Jeju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강만익

[개설]

제주시에는 우도·비양도·추자도 등의 유인도와 차귀도·관탈섬·토끼섬 등의 무인도가 있다. 우도·비양도·난도·차귀도는 신생대 제4기에 형성된 화산섬이지만, 한반도 남해안과 제주도 사이의 제주해협 중간에 위치하고 있는 추자군도는 백악기 응회암으로 구성되어 있어 제주도와는 전혀 다른 지질 구조이다.

2006년 현재 제주시 지역에는 51개의 섬이 있으며, 이 중 유인도는 6개(우도·비양도·상추자도·하추자도·횡간도·추포도), 무인도 45개가 있다. 유인도에는 2,000여 세대에 4,800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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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주의 섬

[화산 박물관, 비양도]

비양도제주시 한림읍 협재리 앞에 있는 화산섬이다. 한림항에서 북서쪽 3㎞, 협재리에서 1.5㎞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서 길이 1,020m, 남북 길이 1,130m이다. 비양도의 중심부에 자리한 비양봉은 용암 분출로 형성된 오름(측화산)으로 해발 114m이다. 해안선 길이는 3.5㎞이며, 협재리비양도 간에는 수심이 10m 정도로 매우 빠른 조류가 통과하고 있다. 1988년 7월에 각 가정에 개인 수도가 설치되어 물 문제가 없는 섬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약 5천년 전의 토기편들이 남서쪽 해안 단애의 표토층으로부터 발견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탐라순력도』에 의하면, 이 곳에는 양과 사슴이 방목되기도 했다.『지영록』, 『남사록』, 『탐라지』에는 비양도에 화살용 대나무가 많다고 기록하고 있다.

비양도에는 130여 년 전부터 마을이 형성되어 남쪽 포구(압개)를 중심으로 입지하고 있다. 이것은 겨울철 북서풍 영향을 최소화하고 한림리협재리의 대안적(對岸的) 위치이기 때문이다. 1876년(고종 13)에 서씨(徐氏)가 제일 먼저 정착하면서 대나무들을 베고 농경을 시작했으며 이후 협재리에 거주했던 윤씨(尹氏)가 이주하여 동남쪽의 비탈을 개간하여 농사를 했다고 한다. 비양도의 가구 수와 인구 수를 보면, 1973년에 57가구, 266명(남 106, 여 160), 1990년에 67가구, 291명(남 142, 여 149), 2001년에 48가구, 80여 명이 거주했다.

2002년 7월에 비양도의 생성 연도를 1002년으로 보고 ‘비양도 탄생 1000년 기념비’를 세웠다. 이것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1002년(고려 목종 5) 6월에 산이 바다 한가운데서 솟았다. 산에 네 구멍이 터지고 붉은 물을 5일 동안 내뿜고 그쳤다”는 기록에 근거하고 있다. 일본인 지질학자가 이때 탄생한 섬을 비양도라고 확인한 것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나 논란이 있다.

비양도는 화산 박물관이라 할 만하다. 화산성 염습지(펄랑), 호니토, 화산탄, 시스텍, 분석구(스코리아콘) 등이 발달하여 있다. 지질 구조를 보면, 용암 분출에 의해 형성된 비양봉 조면현무암과 스코리아(송이) 분출에 의해 형성된 비양봉 분석구로 구성되어 있다.

비양봉 정상에는 쌍둥이 분화구(twin volcano)인 ‘큰 암메’, ‘은 암메’가 있다. 오름(측화산)인 비양봉은 물이 없는-분화구로의 유입이 차단된- 환경에서 만들어졌다. 즉 1차적으로 현무암 대지가 만들어지면서 해수 유입 차단 후 분화 활동이 재개되어 비양봉이 형성된 것이다. 비양도에는 제주도 기념물 제48호로 지정된 비양나무가 ‘은 암메’ 분화구 바닥에 자생하고 있다.

비양도 어민들은 대부분 어선 어업에 종사하고 있다. 비양도민들이 보유하고 있는 배는 약 40척 정도로, 연승, 채낚이, 분초기망, 유자망, 통발 어업을 하고 있다. 해녀는 20여 명 남아 있으며, 과거에는 여수, 거제도, 고군산군도, 흑산도 바다에 출가하기도 했다. 마을 앞 선창 바다는 비양도 해녀만 전복, 소라, 미역을 채취할 수 있다. 그런데 이곳을 제외한 비양도 바다는 인근 9개리 해녀들이 공동으로 이용하는 어장이다. 이것은 설촌(設村) 이전부터 인근 마을 해녀들이 비양도 바다에서 작업을 해온 전통에 기인한다.

비양도에도 주민들의 믿음 터로 술일당과 포제단이 있다. ‘펄랑’(염습지)이 시작되는 곳에 포제단이 있다. 포제는 유교식 의례로 주로 정월 보름날에 지낸다. 술일당에서는 해마다 영등굿을 한다. 사철나무를 신목(神木)으로 삼고 있으며, 지전(紙錢)·물색(物色)·명사(命絲) 등을 걸어놓고 있다. 당신(堂神)으로 ‘종남머리 술일한집’을 모신다.

전력난 해소를 위해 1987년에 소규모 자가발전소가 만들어졌다. 비양도에 도항선이 처음 운행한 것은 1967~1968년경으로 당시에는 목선(木船)이 이용되었으나 현재는 도항선인 비양호가 정기적으로 운항하고 있다.

비양도 내에는 자녀들의 교육을 위한 한림초등학교 비양분교장이 있다. 최근에 제주시청(과거의 북제주군청)에서는 비양도를 관광지로 개발하기 위해 산책로 설치와 해안 정비 등을 추진하였다. 2006년 10월에는 해양수산부에 의해 ‘아름다운 어촌’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아름다운 관광의 섬, 우도]

우도는 제주도 동쪽 성산포항으로부터 북동쪽으로 3.8㎞ 떨어져 위치한 화산섬이다. 현무암질 용암 위에 수성화산체인 소머리오름 응회구가 존재하며 이 응회구의 화구 속에 분석구를 갖고 있는 이중 화산에 해당한다. 종달리와 성산포항에서 우도로 이어지는 우도수도(牛島水道)의 수심은 20~30m이며, 연안으로부터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을 뿐 아니라 기반은 주로 견고한 암반형이고 갯골이 발달해 있다.

우도에는 고인돌과 동굴 집자리 유적이 남아 있으며, 사람들이 정착하여 살기 시작한 것은 1843년(헌종 9)경부터이다. 우도에서 생산되는 해산물을 채취하기 위해 인근 마을 주민들의 왕래가 있었다.

특히 1697년에 말을 사육하기 위한 국영 목장인 우도장(牛島場)이 설치되면서부터 국마를 사육하기 위해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했다. 그 후 1823년(순조 23)부터 인근 백성들이 우도 개간을 조정에 요청하자 1842년(헌종 8)에 개경 허가가 내려졌다. 이에 따라 1843년(헌종 9) 봄부터 우도 개간과 이주가 이루어기 시작했다. 1844년(헌종 10)에 김석린 진사 일행이 들어가 동남쪽 들에 정착한 것이 우도 역사의 시작으로 알려져 있다.

우도는 물소가 머리를 내민 모양(牛頭形) 또는 누워 있는 모양(臥牛形)이라 해서 ‘소섬’ 즉 우도로 명명되었다. 1900년에는 향교 훈장 오유학이 물에 뜬 두둑이라는 뜻의 ‘연평도’으로 개명하여 현재까지 연평리로 불리고 있다. 1986년 4월 1일에는 구좌읍 연평출장소가 우도면으로 승격되었다.

현재는 4개 행정리에 12개 자연 부락으로 나누어져 있다. 4개 행정리는 천진리, 서광리, 오봉리, 조일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면사무소, 숙박 시설, 종교 시설, 등대박물관, 연평초중학교, 보건소 등의 촌락 유지 시설이 입지하고 있다. 반농반어(半農半漁)의 전형적인 농어촌 마을로 2006년 말 현재 725세대 1,799명(남 856명, 여 943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우도의 전체 면적은 6.05㎢(경지 면적 71%, 임야 15%, 기타 14%)이며, 밭농사를 지을 수 있는 경지 면적은 우도 전체 면적의 약 71%로 마늘, 땅콩 등을 재배하고 있다. 해녀들에 의한 해산물 채취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우도의 해녀들은 일찍부터 가정 경제를 책임졌으며 물질을 하기 위해 우리나라 서남 동해안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 해안까지 진출하기도 했다.

식수 공급을 위해 우도에서 지하수를 개발한 결과 약간의 염분이 포함된 지하수가 개발되었다. 그러나 염분이 포함된 지하수는 식수로 이용하기엔 적당하지 않아 역삼투압 방식에 의한 탈염을 실시하여 1일 1천 톤 규모의 먹는 물을 생산하여 주민과 관광객들에게 양질의 생명수를 공급하고 있다.

우도는 섬 자체가 하나의 면소재지이다. 그리고 소머리오름(우도봉), 해식동굴, 해수욕장 등으로 대표되는 ‘우도8경’이라는 다양한 관광 자원으로 인해 최근 관광객들로 넘쳐나고 있다. 쇠머리오름이 바다 속에서 분출한 후 형성된 해안성 식물 군락인 갈대로 이루어진 화석지가 발견되었으며, 우도봉 아래 검멀래 해안의 해식동굴에서는 동굴음악회가 열리기도 했다.

우목동 해안에는 ‘산호사 해수욕장’으로 알려진 홍조단괴 해수욕장이 발달하고 있는데 이것은 바다 속 홍조단괴 덩어리들이 해안으로 밀려와 퇴적되어 형성된 것이다. 홍조단괴 퇴적물은 내륙까지 해빈과 사구를 형성하며 넓게 발달되어 있으나 최근 해수욕장을 따라 개설된 호안 시설과 해안도로 공사로 인해 홍조단괴의 유실이 심각하게 일어나고 있다.

1992년 6월 제주와 우도를 연결하는 도항선이 대형화되기 시작한 이후 매년 입도 관광객이 증가하고 있다. 2006년에는 무려 52만 명이 우도를 관광했다. 이에 따라 홍조단괴 해수욕장과 검멀래 주변 등에 펜션과 고급 민박 등 숙박 시설이 집단적으로 들어서고 있으며, 버스나 자전거 등으로 쉽게 우도 일주가 가능할 만큼 해안도로가 잘 개설되어 있다. 관광객 편의를 위해 도로나 민박 시설이 불가피하지만 우도의 아름다운 원시 자연 환경을 보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계절 낚시의 섬, 추자도]

추자도(楸子島)는 반도부와 제주도의 중간 해상에 위치하고 있는 섬으로, 비교적 어촌 경관이 잘 유지되고 있는 지역적 특성을 지닌다. 행정구역상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추자면에 속하며 총 면적은 7.02㎢이다. 면적상으로는 우도면(6.04㎢)보다 크며 따라서 제주도의 부속 도서 중에서는 가장 큰 섬이라 할 수 있다.

목포항으로부터 61마일(약 98㎞), 제주항으로부터 28마일(약 45㎞) 정도 떨어진 섬이다. 도서별 마을 구성에서는 상추자도(1.3㎢)가 대서리(160㏊)와 영흥리(65㏊)로, 하추자도(4.2㎢)가 묵리(143㏊), 신양 1리, 신양 2리(222㏊) 및 예초리(119㏊)로 구성돼 있다. 아울러 유인도인 횡간도(0.6㎢)는 대서리, 그리고 추포도(0.1㎢)는 예초리에 포함돼 있다.

추자군도는 상추자·하추자·추포도·횡간도 등 4개의 유인도와 청도·수덕도·외곽도·화도·소머리섬·수령섬 등 38개의 무인도 등 42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 42개 유·무인도의 주변 해역은 마을 어장으로서 해조류와 패류를 채취하거나 연안 어선들이 조업하는 과정에서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상추자도·하추자도 주변에 산재한 38개의 무인도는 어촌 주민들이 톳과 소라, 전복을 채취하는 마을(공동) 어장으로서 뿐만 아니라 사계절 관광 낚시 어선의 활동 무대가 되고 있다.

추자도의 기후는 대체로 남해안 지방과 유사하며, 연평균 기온이 14℃로 온화한 해양성 기후를 보인다. 연평균 강수량은 900㎜ 정도로 제주도와 완도에 비해서는 적은 편이다. 난류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연중 조업이 가능하다. 추자도 해역은 황해난류의 주 공급 해역으로서 제주도의 서부 해역을 돌아 회유해 오는 난류성 어류의 길목이기 때문에 어류가 매우 풍부한 어장이라 할 수 있다.

추자도제주항 사이에는 제주해협은 추자도의 근해 유자망 어선들의 주요 활동 무대가 되고 있다. 추자도 인근 해상에서의 여름철 냉수의 출현은 궁극적으로 추자 주변 해역의 수온을 낮추는 역할을 함으로써, 수온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삼치·멸치·문어의 경우는 어군(魚群) 형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조업에 많은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 이에 따라 추자도는 여름철에 대부분의 어선이 휴식을 취하는 휴어기(休漁期)가 되고 있는 것이다.

추자도의 인구는 2001년에는 총 3,214명으로, 이 중 남자는 1,719명으로 전체의 53.48%, 여자는 1,495명으로 46.52%를 차지했다. 성비(性比)를 보면 100 : 114로 여자보다 남자가 많은 남초(男超) 지역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남성 노동력을 많이 요구하는 어선 어업의 성격과 깊은 관련성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추자도 인구의 대부분은 상추자도에 집중되어 있다. 이것은 상추자도추자도의 최대 항구인 추자항이 입지하고 뿐만 아니라, 면사무소·수협·우체국이 들어서 있음은 물론 그 외에도 해군부대, 초등학교, 저수지(3개), 내연발전소, 민박집, 다방, 횟집 등 생활 편익 시설과 서비스업 시설들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2006년 현재 추자도에는 1,288세대에 2,890명(남 1566명, 여 1324명)이 거주하고 있다.

어로 작업에 필수적인 항·포구의 시설을 보면, 해양수산부장관이 관리하는 연안항인 추자항은 제주와 목포, 완도 여객선의 기항지이며 동시에 어업의 전진 기지가 되고 있다. 대서리영흥리의 해안을 끼고 있는 항구로서 북서쪽으로 발달된 산줄기가 겨울철 북서풍을 막아 주고 있어 천연적 양항(良港)이라 할 수 있다.

항구와 포구, 마을과 마을을 연결해 주는 섬 내의 교통 수단은 공영 버스로 추자교통(楸子交通)에서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연도교(連島橋)였던 추자교(楸子橋)는 1971년에 건설되어 상추자도·하추자도 간의 주민 통합에 기여해 왔으나, 1993년 4월 교량이 붕괴되는 참사를 겪었다. 이후 1995년 5월에 동일 위치에서 새로운 교량이 준공됨으로써 상추자도·하추자도 간의 생활 교류와 물류 유통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물 공급은 충분하지 못한 상황이나 담수 정수장이 하추자도 예초리에 건설되어 식수를 공급하고 있다. 추자도가 전국적으로 낚시터로 알려지면서 낚시객들이 연중 입도하면서 민박업도 활기를 띠고 있다.

마을별로 조직된 어촌계에서는 마을 어장을 관리하는 동시에 톳과 소라, 전복을 채취하여 수입을 올리고 있으며, 마을 주민들의 어업 활동에 필요한 시설인 수산물 공동창고, 냉동·냉장시설, 잠수 탈의장, 어촌 민박 시설 및 공동 작업장 등도 운영하고 있다.

[무인도]

제주시 관내의 무인도에는 차귀도·관탈섬·난도(토끼섬) 등이 있다. 차귀도(遮歸島)제주시 한경면 고산리에 속하며, 차귀도·와도·죽도로 구성되어 있다. 제주도에서는 가장 서쪽에 위치한 섬으로 고산리 속칭 ‘자구네’에서 2㎞ 정도 서쪽에 있으며 면적은 105,145㎡이다. 동서 길이가 1.72㎞, 남북길이 0.7㎞로 동서로 길쭉한 섬이다.

배가 닿는 남동쪽 해안에는 높이 10~50㎝ 정도의 포획암과 단층이 나타나고 있어 지각 변동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방파제가 있는 해안에는 붉은색 현무암으로 구성된 용암류가 5~20㎝ 정도의 단애를 구성하고 있다. 와도(누운 섬)는 제주 본섬과 차귀도 사이에 위치하며 면적은 5,058㎡이다. 죽도는 면적이 2,281㎡로 차귀도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관탈섬(冠脫島)은 행정구역상 추자면 묵리 144번지에 해당한다. 제주 본섬과 추자도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제주항에서 27.5㎞, 상추자도에서 25㎞ 떨어져 있는 섬으로 추자군도의 가장 남쪽에 위치한 섬이다. 석영안산암질 암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중앙부의 정상(81m)을 정점으로 경사도 40~60%의 급경사로 되어 있다. 면적은 44,600㎡이다.

북쪽에는 정상에 위치한 등대로 올라가는 계단이 놓여져 있고 석영안산암질 암석 중에 포획된 화강암력이 관찰된다. 큰 관탈섬에서 남서쪽으로 8.5㎞ 정도 떨어진 거리에는 작은 관탈섬이 있다. 행정구역상 추자면 묵리 143번지에 해당한다. 면적은 2,172㎡에 불과하며 정상은 30m 정도이다. 섬 전체가 급경사를 이루는 단애로 형성되어 배가 정박하기 어렵다.

난도(蘭島)는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 355번지[해맞이해안로 1852]에 위치한 섬이다. 하도리 굴동포구에서 통통배로 5분이면 갈 수 있고 전체 면적운 10만 3천 950㎡의 섬이다. 해안 주변은 현무암으로 둘러싸여 있고 안쪽에는 모래[貝砂]가 20~40㎝ 두께로 덮여 있다.

한국 유일의 문주란(文珠蘭) 자생지로, 1962년 12월 3일 천연기념물 제19호로 지정되었다. 6~8월의 개화기에는 섬 전체가 하얗게 덮여 멀리서 바라보면 토끼처럼 보이므로 ‘토끼섬’이라고도 하며, 바깥쪽에 있는 작은 섬이라는 뜻으로 ‘난들여’라고도 부른다. 이 섬에는 문주란 이외에도 해녀콩·갯메꽃·갯금불초·갯방풍·모래지치 등이 있다. 간조시에는 도보로 왕래가 가능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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