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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11532
한자 濟州牧
영어음역 Jeju-mok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김동전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의 조선시대 행정구역.

[개설]

제주의 옛 이름은 탐라(耽羅)·탁라(乇羅)·탐모라(耽毛羅)·동영주(東瀛洲)이다.

[변천]

1295년(충렬왕 21) 제주의 행정단위는 제주목으로 개편되었다. 목(牧)은 경(京)과 도호부의 격을 지닌 행정단위와 더불어 계수관(界首官) 지역으로 일컬어졌다. 계수관 지역은 최상의 독자적·개별적 행정단위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고려 말기에 이르러서는 도(道)가 명실상부하게 중앙과 지방을 연결하는 중간기구로 정착해 극히 짧은 기간에만 그 역할을 수행했다.

제주 지역도 제주목으로 개편된 이후부터는 오늘날의 도(道)와 같은 위상을 지닌 고려의 최상급 지방 행정단위가 되었고, 그 어느 때보다도 관품이 높으며, 많은 수의 외관을 맞게 되었다.

그 후 1300년(충렬왕 26)에 이르러서는 제주목에 속했던 촌 가운데서 14개 촌이 동·서 방향으로 나뉘어, 각각의 군·현으로 개편되어 현존하는 마을의 틀과 명칭이 생겨나게 되었다.

조선시대 초인 1416년(태종 16)에 제주도는 고려 시대의 행정조직이었던 동·서도현(東·西道縣) 제도를 폐지하고, 3읍 행정조직을 도입, 대폭적인 개편을 단행하였다. 당시 제주목사 오식(吳湜)의 건의에 의해서 정비된 행정구역을 보면 한라산 동서로 뻗은 분수령을 경계로 북반면을 제주목으로 하고, 남반면은 이를 다시 동서로 양분하여 동쪽을 정의현, 서쪽을 대정현으로 하였다.

이 3읍 행정조직은 조선시대 말까지 이어졌고, 이에 따른 하부조직의 개편은 1609년(광해군 1)에 이르러 3읍8면이었다. 이 하부조직은 조선시대 후기에 제주목 우면이 신우면과 구우면으로 분면되는 등 부분적 개정이 있었으나, 고종 때까지는 큰 변화 없이 이어졌다.

이 후 1864년(고종 1) 8월 30일 조정에서는 제주목의 정의현과 대정현 2개 현을 군으로 승격시키면서, 제주목사의 관할에서 분리시켜 직접 전라도 관찰사의 관할 아래 두게 하였다.

하지만 두 현이 제주목사의 지휘권에서 벗어난 결과 점차 체통이 문란해지고, 과폐(科弊)가 일어나는 등 문제점이 지적되면서 1880년(고종 17) 1월 27일 다시 예전대로 정의현·대정현으로 환원시켜 제주목사의 관할 아래 귀속시켰다.

[관련 기록]

『세종실록지리지』 제151권 27장에는 제주목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다.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제주목은 전라도의 남쪽 바다 가운데 있다. 제주에 대한 옛 기록에 따르면 ‘태초에는 사람이 없었는데 신인 세 사람이 땅으로부터 솟아 나왔다. 지금도 주산 북쪽 기슭에 모흥이라 하는 구멍이 있는데 이 곳이 바로 그 곳이다.

…15대 손에 이르러 고후·고청의 형제 세 사람이 배를 만들어 타고 바다를 건너 탐진에 이르렀는데, 신라가 번성할 때였다.…읍의 이름을 탐라라고 하니 대개 신라 때에 처음으로 탐진에 이른 까닭이었다.…

백제 476년(문주왕 2)에 탐라국 사자에게 은솔이란 벼슬을 주었고, 498년(동성왕 20)에 탐라에서 공부를 바치지 않는다 하여 임금이 친히 무진주에까지 이르렀는데 탐라에서 이를 듣고 사신을 보내어 죄를 빌었으므로 이에 중지하였다.’ 하였다.

…고려 1105년(숙종 10)에 탁라를 고쳐서 탐라군으로 하였고, 의종 때 현령관으로 하였다. 1270년(원종 11)에 역적 김통정이 삼별초를 거느리고 탐라에 들어가서 난을 일으켰는데, 4년이 지난 계유년에 시중 김방경에게 명하여 토벌하여 평정하게 하였다.

1277년(충렬왕 3) 정축에 원나라 조정에서 목마장으로 삼았는데 1295년(충렬왕 21)에 임금이 원나라에 들어가 탐라를 돌려주기를 청하니, 원나라 승상 완택 등이 상주하여 그 탐라를 고려에 돌려주는 것이 옳겠다는 성지를 받았고, 이듬해에 탐라를 고쳐 제주로 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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