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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2661
한자 洪重周
영어음역 Hong Jungju
이칭/별칭 성범(聖範)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나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제주목사
성별
생년 1659년(효종 10)연표보기
몰년 미상
본관 풍산(豊山)
대표관직 사간원정언|사헌부장령|제주목사

[정의]

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성범(聖範). 아버지는 홍만운(洪萬運)이다.

[활동사항]

1691년(숙종 17) 증광시 문과에서 병과로 급제하였다. 1694년(숙종 20) 사간원정언에 임명되었는데 재임 중 사형을 면하고 제주도로 유배된 장희재(張希載)[?~1701]의 일을 거론하다가 교체되었으며, 1709년(숙종 35) 사헌부장령이 되었다.

1716년(숙종 42) 3월 변시태(邊是泰)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고 1717년(숙종 43) 9월에 체포되어 떠나니, 관직 생활은 제주목사로 끝맺었다. 제주는 홍중주가 부임하기 전부터 계속 흉년이 들어 굶주리는 백성들이 먹은 이전미를 9백 명에게 탕감해 주는 조치를 내렸다.

그런데 홍중주의 탕감 조치에 미급한 바가 있었다고 전라좌도암행어사 홍계적(洪啓迪)[1680~1722]이 조정에 알려 체포되었던 것이다. 제주별견어사 황구하(黃龜河)[1672~1728]가 부임할 때 조 3만여 섬을 가져와 도민을 구제하였으며, 아사한 수천 명의 시체를 잘 묻고 특별히 제사를 올려 원혼을 위로하였다.

또한 황구하는 민심을 수습하기 위하여 과거 시험을 실시하여 고처량(高處亮)[1688~1762], 정창선(鄭廠選)[1683~1746], 고만갑(高萬甲)[1681~?] 등 3명을 급제시켰으며, 차귀진(遮歸鎭)[지금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을 격하하여 만호 대신 조방장(助防將)을 두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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