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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2659
한자 洪鍾時
영어음역 Hong Jongsi
이칭/별칭 중립(中立),연농(硏農)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시대 근대/개항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관리
생년 1857년(철종 8)연표보기
몰년 1936년연표보기
본관 남양
대표경력 제주읍장|제주관찰부 주사|제주지방재판소 판임관

[정의]

일제강점기 제주읍장을 지낸 관리.

[활동사항]

1894년(고종 31) 제주관찰부의 주사 및 제주지방재판소의 판임관으로 관리 생활을 시작하였다. 1905년(고종 42)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관직을 그만두었다. 1900년(고종 37)을 전후한 시기에 김윤식(金允植) 등의 유배인과 어울리면서 개화사상에 눈을 떴고 시 동인 모임인 귤회(橘會)의 회원으로 참여하였다.

김윤식홍종시에 대하여 『속음청사(續陰晴史)』에서 “제주의 홍종시는 집안에 좋은 글씨와 그림을 많이 간직하였으니 풍류가 넘치는 문사(文士)이다”라고 평하였다. 제주향교의 도훈장(都訓長)으로 후진을 양성하기도 하였다.

제주군수 윤원구(尹元求)의신학교 설립 운동을 전개할 때 정현구(鄭顯龜) 등 유지 13명과 함께 발기인이 되어 설립 자금 모금에 앞장섰다. 1919년 3·1운동 이후 일제가 문화 통치를 실시하면서 민족주의자들을 회유할 때 제주면장에 등용되었다. 1931년 제주면이 제주읍으로 승격되자 초대 읍장이 되었고 1934년 78세의 나이로 물러났다.

[작품 및 저술]

서화에 뛰어나서 그가 타계한 지 반세기가 지난 1989년에 『연농선생유묵집(硏農先生遺墨集)』이 발간되었다. 또한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일동 1313번지[삼성로 22]에 있는 제주 삼성혈 정문의 건시문(乾始門),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안성리 1661-1번지[추사로 44]에 있는 추사 적거지의 추사김선생적려유허비(秋史金先生謫廬遺墟碑),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외도동에 있는 외도천 가의 월대(月臺),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명월리에 있는 명월천 가의 명월대(明月臺) 등은 모두 그의 필적으로 쓰여 진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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