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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2252
한자 趙貞喆
영어음역 Jo Jeongcheol
이칭/별칭 성경(成卿),태성(台城),정헌(靜軒),대릉(大陵)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양진건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유배인|제주목사
성별
생년 1751년(영조 27)연표보기
몰년 1831년(순조 31)연표보기
본관 양주
대표관직 형조판서|좌참찬|대사헌|지중추부사

[정의]

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양주. 자는 성경(成卿)·태성(台城), 호는 정헌(靜軒)·대릉(大陵). 우의정 조태채(趙泰采)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조겸빈(趙謙彬), 아버지는 이조참판 조영순(趙榮順)이며, 어머니는 김시눌(金時訥)의 딸이다. 부인은 홍지해(洪趾海)의 딸이다.

[활동사항]

1775년(영조 51) 별시 문과에 을과(乙科)로 급제하여 별검(別檢)이 되었다. 1777년(정조 1) 강용휘(姜龍輝) 등이 정조를 시해하고 그의 이복동생을 옹립하려는 음모에 연루되어 죄가 참형에 해당되었으나 우의정 조태채의 증손임이 참작되어 제주도에 유배되었다.

1781년(정조 5) 할아버지 때부터 원수지간이던 소론의 김시구(金蓍耉)가 제주목사로 부임하였다. 김시구조정철을 죽일 수 있는 새로운 죄목을 캐기 위해 염탐하던 중, 귀양지에 홍윤애(洪允愛)가 출입하는 것을 알고 그녀를 잡아다가 음모 여부를 문초하였다. 그러나 홍윤애는 모든 사실을 부인하였고 끝내 죽음으로 조정철을 변호하였다.

김시구는 죄상을 밝힐 증거도 없이 사람을 죽인 사실을 은폐하기 위하여 제주도 유배인이 역모를 꾸민다는 허위 보고를 올렸다. 이에 조정은 제주목사 및 대정현감, 정의현감을 새로 임명하고, 어사를 파견하여 조사하였다.

조정철은 혹독한 심문 끝에 결국 무혐의가 밝혀졌고, 1782년(정조 6)에 정의현 김윤재, 김응귀의 집으로 귀양지를 옮겼으며 1788년(정조 12) 나주로 유배지를 옮겼다. 1790년(정조 14) 9월 추자도로 이배되어 13년을 보냈으며 1805년(순조 5) 유배가 풀렸다.

1809년(순조 9) 관직에 다시 기용되어 정언·동래부사 등을 거쳐 충청도관찰사·형조판서·좌참찬·대사헌·지중추부사 등을 지냈다. 1811년(순조 11) 제주목사에 부임하자, 자신을 위해 죽은 홍윤애를 기리고 홍윤애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을 만났다.

제주목사 재임 중 정의현에 사는 김창언(金昌彦)의 처 오씨 가문에 정표하였으며, 제주성의 동성(東城)과 서성의 외곽을 정비, 개건하고 12과원(果園)을 설치하여 각각 과원에 관리를 두어 과수나무를 관리, 재배하도록 하였다.

[저술 및 작품]

저술에는 유배 생활 동안에 시가와 제주의 풍속, 기후, 산물 등을 기록한 『정헌영해처감록(靜軒瀛海處坎錄)』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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