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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1914
한자 濟州特別自治道-聯盟
영어공식명칭 Korean Amatuer Boxing Federation, Jeju Branch
영어음역 Jeju Teukbyeol Jachido Amatyueo Boksing Yeonmaeng
이칭/별칭 제주도 아마튜어복싱연맹
분야 문화·교육/체육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라1동 1163-4 종합경기장 야구장 내 복식장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찬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체육단체
설립연도/일시 1955년 9월 8일연표보기
설립자 고완천[초대 회장]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라1동에 있는 복싱을 보급·발전시키기 위한 단체.

[설립목적]

아마추어 복싱 경기를 도민에게 널리 보급하여 도민 체력을 향상시키며, 건전하고 명랑한 사회 기풍을 진작하는 한편 산하 단체를 통할 지도하고 우수한 복싱 선수를 양성하여 제주 체육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변천]

복싱이 제주 지역에 들어온 것은 1945년 해방 이후 일본 관서 지방 웰터급 챔피언이었던 한림읍 한림리 출신 고창기가 귀국, 칠성통에 제주권투회를 창설하여 후진을 양성하면서부터이다.

그후 애월읍 곽지리 출신으로 일본 관서 지방 밴텀급 챔피언인 박두경이 귀국하여 1947년부터 중앙시장 내 미군부대 대한청년단사무소에서 고창기와 함께 권투를 하면서 복싱 붐을 일으켰다.

1947년 10월 24일 제주극장 특설 링에서 제주권투회 사범 고창기와 광주권투구락부 사범 설약한의 10회전 경기가 펼쳐져 제주의 복싱 팬을 확보하였으며, 이 경기에서는 고창기가 승리하였다.

이처럼 열기가 확산되었던 제주 지역 복싱은 한국전쟁으로 한때 주춤했으나 1952년 9월 23일 제주시에서 북한 피난민 한·미친선권투대회가 열리면서 재개되기 시작하였다.

1955년 9월 8일 제주 권투 동호인들이 회합을 갖고 제주도 권투협회를 창립하였으며 초대 회장에 고완천, 사범에 박두경과 김영호를 각각 선임하였다. 이후 제주도 체육회 사무실에서 김재훈 외 7명이 모여 제주도 권투협회를 재편성하며 결성된 제주도 아마튜어복싱연맹은 1965년 8월 7일 경기 단체 조직 승인을 받았다.

제주도 아마튜어복싱연맹은 1978년 제11대 현상흡 회장 당시 경기 시설인 조립식 링을 구입하여 1979년 5월 27일 제1회 연맹회장배 쟁탈 전도복싱대회를 개최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1979년 8월 9일 교육감배 쟁탈 전도복싱대회를 창설하여 제주 지역 복싱 발전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으며, 이들 대회는 매년 개최되고 있다.

1985년 제14대 회장으로 취임한 고영일은 1987년 5월 제주공설운동장 야구장 스탠드 밑에 도대표선수 복싱 전용 훈련장을 마련하여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에 기여하였다.

서귀포 출신으로 1986년 아시아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 국가 대표 선수들 지도했던 김성은은 2001년 제주도 아마튜어복싱연맹 회장에 선임되었다. 2006년 7월 제주특별자치도 출범에 따라 제주도 아마튜어복싱연맹에서 제주특별자치도 아마튜어복싱연맹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주요사업과 업무]

첫째, 각종 국내·외 경기 대회의 개최 및 참가를 담당한다. 둘째, 회원 단체의 관리 및 감독을 담당한다. 셋째, 복싱 선수 및 심판, 운영 요원 등의 양성을 담당한다. 넷째, 복싱 경기에 관한 자료 수집 및 조사, 통계를 담당한다. 다섯째, 복싱 경기에 관한 선전 및 계몽 등을 담당한다.

[활동사항]

1962년 7월 21일 칠성통 중앙극장 특설 링에서 제주도 권투협회 주최로 전도권투대회가 개최되었는데, 이 대회에서는 이경환과 백전형의 시범 경기가 펼쳐졌으며 이대성(플라이급), 강창문(밴텀급), 강구(페터급), 김태익(라이트급) 등이 각 체급별 우승자가 되었다.

1963년 4월 28일에는 전일본 페더급 챔피언인 서귀포 서홍리 출신 한규철이 광양공설운동장 특설 링에서 인천 출신 한국 웰터급 1위인 이교상과 10회전 시합을 벌여 도민들에게 복싱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한규철이 대회 수익금을 지역 발전 기금으로 기탁함에 따라 당시 김영관 제주도지사는 제주시에 체육관 건립을 약속하여 제주시민회관을 건립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1964년 11월 제주시민회관에서 제주·부산 친선복싱대회가 국가 대표를 지낸 고산 출신 이성언(라이트급)의 은퇴 시합으로 주선되었는데, 이 대회에는 고덕칠·이경환 코치의 지도로 이성언·백광진·고창구·양종구·김신일·정참봉 선수가 출전하였다.

제주 복싱의 전국체육대회 출전은 1964년 제45회 인천전국체육대회부터 시작되었는데, 선수로는 백광진·고창구·양종구·김영식 등 4명이 출전하였다.

196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이경환이 중앙도장을 차려 후진을 양성하였다. 제주시 지역에는 김상환·김청일·박복규·고생근·이현주·고희룡·김근우·김장섭·한영택·이창윤 등이 선수활동과 함께 후배들 육성에도 이바지하였다.

서귀포 지역에서는 양종구·양종찬·박충웅·정춘식·김홍민·강문신·김종대·김용남·김대환 등이 활약했으며, 북제주군 한림 지역에서는 강창문·홍국남·김기종·조용신·문성호 등과, 애월읍 곽지에서는 진영부가 후진을 양성을 하였다.

교사인 진영부는 애월상업고등학교에서 복싱부를 창설, 애월중학교 선수까지 포함하여 직접 지도로 도대회 7연패 기록을 달성했고, 1984년 제주에서 열린 제13회 전국소년체전에선 중등부 플라이급 최병선(애월중)이 은메달 획득에 기여하는 등 선수 발굴 육성에 힘썼다.

제주 출신 국가 대표 선수로는 김성은·고생근·고희룡·이창윤 등을 들 수 있다. 서귀포 출신인 김성은은 1961년 대경상업고등학교 1학년 때 복싱을 시작하여 5·6회 아시안게임과 2·3·4회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였고, 1968년 제19회 멕시코올림픽에서도 출전하였다.

김성은은 선수 은퇴 후 지도자로 활약, 1983년 제3회 월드컵복싱대회에서 금메달, 1984년 LA올림픽에서 최초의 금메달 획득,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에는 12개 전 체급을 석권하는 데 기여했으며,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도 금메달 2개를 획득하는 지도 실력을 발휘하였다.

표선 출신 고생근은 1969년 제1회 아시아 청소년복싱선수권대회에서 플라이급 금메달, 1971년 제5회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밴텀급 금메달을 획득한 뒤 국가 대표로 발탁되어 1972년 뮌헨올림픽에 출전하였다. 고생근은 1973년 프로로 전향하여 한국 챔피온이 되었으며, 1979년 제주에 돌아와 후진 양성에 힘썼다.

구좌읍 하도리 출신 고희룡은 1980년 동래공업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복싱에 입문하여 1984년 핀란드에서 개최된 제5회 템마컵국제대회에서 금메달, 같은 해 일본에서 시작된 제1회 재팬컵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고희룡은 전국체육대회에서도 은메달과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이창윤은 제주서중학교 1학년 때부터 복싱을 시작하여 제1회 파키스탄 국제복싱대회에서 금메달, 제2회 동아시아국제복싱대회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제주도 내 선수중 전국대회 중등부·고등부·대학부·일반부 등을 통해 최다 메달을 획득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하였다.

제주도 아마튜어복싱연맹에서는 1978년 4월 29일 지도자와 심판 자질 향상을 위하여 제1차 국제심판 초청 심판강습회를 개최한데 이어 1987년, 1989년, 1997년에 각각 국제심판초청 강습회를 실시해 심판 자질 향상과 양성에 힘썼다.

이에 따라 1979년에는 진영부, 1984년에는 김상옥, 그후 홍국남과 고희룡 등의 제주 출신이 중앙 심판 자격을 취득하여 전국 대회 심판원 및 지역 심판원으로 활동하는 계기가 되었다.

[현황]

2006년 12월 현재 회장(김성은) 1명, 부회장 5명, 이사 17명, 감사 2명 등 총 25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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