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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1547
한자 尹奇玉
영어음역 Yun Giok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허호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항일운동가
출신지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영풍리 603 지도보기
성별
생년 1911년연표보기
몰년 1988년연표보기
본관 해남(海南)

[정의]

일제강점기 제주에서 활동한 항일운동가.

[개설]

본관은 해남(海南). 아버지는 윤덕언(尹德彦)이다.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영풍리 603번지에서 태어났으며, 어릴 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동 193번지로 이주한 후 제주에서 활동하였다.

[활동사항]

제주 시내 중앙이발관의 이발사로 일하였고, 1939년부터 천주교를 믿어 제주성당에 다녔다. 제주에서 천주교의 항일 운동은 신부 패트릭 도슨(Patrick Dawson)[일명 손 신부], 오스틴 스위니(Austin Swneey)[일명 서 신부], 토마스 라이언(Thomas Ryan)[일명 나 신부] 등 세 명이 주도하고 있었다.

이들은 중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면 동양에서 천주교의 포교는 불가능해질 것으로 판단하고 1939년부터 신문과 라디오 방송이 일본의 전과를 과다하게 부풀려 보도하는 것을 비판하였다. 이에 일제는 선교사들과 천주교 신도들을 탄압하기 시작하였다.

윤기옥은 1941년 4월 이발관에서 “제주도는 위험한 지대인데 만약 일본과 미국이 개전한다면 우선 제주도를 공략할 것이고, 제주도는 식량도 많고 항공기지로서는 최적지이기 때문에 이 섬을 근거지로 하여 일본 및 조선 본토를 공격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1941년 12월 9일에는 패트릭 도슨 신부 집에서 신자 허봉학(許鳳鶴) 등과 함께 “미국·영국·일본의 싸움이 장기화된다면 일본은 재력도 없고 병력도 적어서 경제적인 타격으로 지게 될 것이다. 그때에는 조선도 독립이 가능하다”는 말을 하였다.

윤기옥은 군사 기밀 및 유언비어를 유포하였다는 이유로 1941년 10월 손 신부 등과 함께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였고, 1942년 10월 24일 광주지방법원에서 해군형법 위반 및 불경죄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1988년 12월 17일 고향인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영풍리에서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3년 8월에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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