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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1543
한자 尹久東
영어음역 Yun Gudong
이칭/별칭 치항(稚恒)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나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제주목사
성별
생년 1754년(영조 30)연표보기
몰년 1823년(순조 23)연표보기
본관 해평(海平)
대표관직 사간원정언|홍문관교리|세자시강원필선|제주목사|순흥부사|형조참의

[정의]

조선 후기 제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치항(稚恒). 아버지는 유선(諭善) 윤득부(尹得孚), 어머니는 이보만(李普萬)의 딸이다.

[활동사항]

1801년(순조 1) 식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사간원정언·홍문관교리를 거쳐 1811년(순조 1) 순흥부사에 임명되었다. 1612년(순조 12) 순흥부사를 사임한 이후 세자시강원의 필선·문학·사서 등을 지냈으며, 1815년(순조 15) 5월에 허명(許溟)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여 1817년(순조 17) 10월에 형조참의에 임명되자 제주를 떠났다.

제주목사 재임 중 공피전(供彼錢) 1,800냥으로 공피창을 설치하여 이양선(異樣船)이 표류하여 왔을 때 민폐를 없애기 위해 그들에게 연료 및 식량 등을 제공하기 위한 금전을 비축하였다. 후일 이를 환모조(還耗粗)로 바꾸어 1,088석을 비축하여 재해에 대비하였다.

1817년 제주도에 흉년이 들어 호남지방에서 곡식을 가져와 도민을 구제하였으며 환모조 2,500석을 미리 준비하여 두었고, 홍경래의 난을 듣고 의병을 일으키려던 대정현 사람 구제국(具濟國)[1766~1831]·양위경(梁渭慶)[1767~1852] 가문에 부역을 면제해 주었다.

[상훈과 추모]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외도동 월대에 건립연대를 알 수 없는 「사상윤공구동휼민선정비(使相尹公久東恤民善政碑)」가 세워져 있다. 또한 1817년(순조 17) 11월에 세워진 「사상윤공구동휼민선정비(使相尹公久東恤民善政碑)」가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수산리 731번지[중산간도로 3336] 앞 도로에 있으며, 1818년(순조 18) 1월에 세워진 「목사윤공구동청덕선정비(牧使尹公久東淸德善政碑)」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동 비석거리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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