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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1315
한자 梁斗玉
영어음역 Yang Duok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신창리 314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항일운동가|청년운동가
출신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신창리 314 지도보기
성별
생년 1914년연표보기
몰년 1966년연표보기
본관 제주

[정의]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활동사항]

1928년 2월 신창리의 야광소년단에 입단하였으며 1928년 3월 한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31년 3월 제주공립농업학교 졸업 사정회에서 학교 당국은 졸업 예정자 김원요(金源堯)를 제적하고, 신창진(愼昌珍)양두옥에게는 유급 조치를 내렸다. 평소 학교 행사에서 일황의 칙서가 낭독될 때 묵념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1931년 3월 9일 양두옥신창진과 함께 유급 조치의 부당함을 항변하다가 일본인 교사 모리다[森田親厚]를 구타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양두옥신창진과 함께 「폭력 행위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으로 체포되어 1932년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미결 기간 동안 옥고를 치렀다.

1932년 3월 5일 출감하여 김정맹(金精孟)·좌응신(左應信)·김두진(金斗珍)·고자화(高子華) 등과 함께 5인 결사라는 모임을 조직하였다. 이들은 1932년 8월 일제가 황민화 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신창서당을 공립보통학교로 승격하려고 하자 반대 운동을 벌였다. 또한 공산주의 사회의 실현으로 일제를 타도할 것을 결의하였으나 양두옥·고자화·좌응신 등은 일본으로 건너가고, 김두진이 이탈할 조짐을 보여 운동이 침체되었다.

그러나 김정맹이 진순행을 새로이 교육시켜 결사에 가입시켰고, 양두옥이 일본의 오사카에서 자동차 조수로 일하다가 1933년 8월에 귀향하여 1933년 10월 상순에 결사를 정비하여 책임 겸 연락부는 양두옥이, 소년부는 김정맹이, 농민부는 진순행이 담당하였다. 결사를 재정비한 이후 체육회와 결혼식 등이 있을 때마다 마을 청년들에게 민족 의식과 계급 의식을 고취시켰다.

1934년 8월 표선면 성읍리에 있는 서당에서 교사로 재임하였으며, 1934년 10월 18일부터 20일까지 청년운동가 80여 명이 검거되었을 때 혁명적 제주도농민조합이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1937년 4월 「치안유지법」위반으로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징역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93년 4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74주년 기념일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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