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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1053
한자 三義岳陣地
영어음역 Samuiak Jinji
영어의미역 Samuiak Military Position
이칭/별칭 새미오름 진지,삼의양오름 진지,삼의양악 진지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동 산 24-2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이윤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군사 유적
건립시기/연도 1944년~1945년연표보기
길이 250여m 주진지 등 12곳
소재지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동 산 24-2 지도보기
소유자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동에 있는 태평양전쟁 무렵 일본군이 구축한 군사 방어 시설.

[개설]

새미오름으로도 불리는 삼의악은 제주시 산천단을 갓 벗어난 5·16도로변에 위치한 오름이다. 삼의악 진지는 관음사 진입로를 따라 1.1㎞쯤 가면 나오는 도깨비도로 일대 계곡 단애면의 단단한 암반과 송이층을 뚫고 만들어졌다.

이곳을 중심으로 한 삼의악 일대에는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 제96사단 292연대 주력부대가 주둔했다고 전해지는데, 삼의악 진지는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 제96사단 예하 부대의 배치 상태와 실체를 규명할 수 있는 중요한 곳으로 평가받고 있다.

[건립경위]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1944년 7월 사이판이 함락되고, 그 해 10월 미군이 필리핀에 상륙하자 제주도의 방비 문제를 긴급 중대 현안으로 인식한다. 곧이어 1945년 2월에 유황도가 함락되는 등 전세가 불리하게 전개되자, 그 해 3월 일본 대본영은 미군이 제주도에 상륙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이를 대비하기 위해 ‘결7호 작전’을 수립한다.

이에 따라 제주도를 독자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제58군사령부를 신설, 주둔시키고 96사단·111사단·121사단·108여단 등을 만주 및 일본에서 제주도로 이동, 배치시킨다. 이렇게 하여 1945년 8월 15일 종전이 선언될 때까지 제주에 주둔한 일본군은 무려 7만 5천여 명에 이르렀는데, 이들은 한라산 고지대를 비롯하여 해안가와 오름에 갱도진지 등 각종 군사 시설을 구축한다.

삼의악 진지는 이 때 만들어진 것으로, 이와 같은 일본군 군사 시설 구축에는 제주도민은 물론 육지의 민간인들까지 강제 징용돼 아무런 보상도 없이 육체적·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다. 일본군이 삼의악 진지를 비롯하여 제주에 많은 군사 시설을 구축한 것은 일본 본토를 사수하기 위해 제주도를 제2의 오키나와화 하려는 옥쇄 전략에서 비롯되었다.

[위치]

삼의악 진지는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동 산 24-2번지에 있는 삼의악 계곡 단애면에 구축되어 있다.

[형태]

삼의악 주진지는 45m에 이르는 입구 통로를 따라 진입하면 주통로가 나타나고 좌우로 10여 개의 공간이 만들어져 있다. 암반을 뚫고 만든 갱도 역시 좌우에 10m 안팎의 공간을 만드는 등 완성도가 높다.

[현황]

2백여m 길이의 주진지 갱도 내부는 일부 무너져 있으나 대체적으로 양호한 상태이며 1백여m 갱도는 온갖 쓰레기 등이 나뒹구는 등 제대로 관리가 되고 있지 않다.

[의의와 평가]

삼의악 진지를 중심으로 산천단관음사 일대에는 일본군 제96사단 사령부와 야전 병원 등이 배치되어 있었고, 삼의악 진지는 제96사단 예하의 연대급 병력이 주둔했던 주 저항 진지의 하나였다. 삼의악 진지는 제96사단 등 일본군의 당시 실태와 갱도구축 양상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곳으로 정밀조사와 보존대책이 필요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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