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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0838
한자 房星七
영어음역 Bang Seongchil
이칭/별칭 성칠(聲七),능헌(菱軒),방진두(房鎭斗),방갑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란주도자
출신지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
성별
생년 1849년(헌종 15)연표보기
몰년 1898년(고종 35)연표보기
본관 남양

[정의]

1898년에 일어난 제주민란의 주도자.

[가계]

본관은 남양. 자는 성칠(聲七), 호는 능헌(菱軒). 본명은 방진두(房鎭斗)이며 일명 방갑(房甲)이라도도 한다. 아버지는 방상규(房祥圭)이며 어머니는 전주이씨이다. 부인은 김해김씨이다.

[활동사항]

1898년(고종 35) 방성칠은 강벽곡(姜辟穀)·정세마(鄭洗馬) 등과 함께 남학당 교도 수백 명을 이끌고 전라도로부터 제주에 들어와서 능화동(현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라동)에 거주하며 화전민을 상대로 포교하였다.

1898년 2월 7일 방성칠은 수백 명을 이끌고 제주목 관아에 화전세·마장세(馬場稅)·호포(戶布)·환자(還上)의 지나친 징수를 시정할 것을 요구하는 소장을 제출하였다. 제주목사 이병휘(李秉輝)가 시정할 것을 약속하여 일단 해산하였다.

그러나 관아에서 방성칠을 잡아들이려고 하면서 봉기하게 되었다. 남학당 간부 방성칠·강벽곡·정세마 세 사람이 민란군 대장이 되었고, 심복 부대인 어남군(御南軍)은 200명으로 구성되었다. 당시 제주에 유배와 있던 김낙영(金洛榮)·최형순(崔亨淳)이 민란군 지도부에 합류하였다.

방성칠은 제주성을 장악하였고, 독립된 나라를 세워 스스로 법사(法司)가 되고자 하였다. 특히 제주의 유배인들로 하여금 육조(六曹)를 구성하게 하여 중앙 정부와 같은 체제를 만들려고 하였다. 그러나 토착 세력으로 구성된 반군이 전열을 정비하였고, 3월 13일 방성칠이 제주성을 비운 사이 진입하여 제주성을 장악하였다.

이에 방성칠 등은 일본에 소속되기를 청하였으나 실패하였고, 오히려 민란군에 참여한 사람들의 신뢰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사기가 떨어진 방성칠남학당은 제주군 귀일리로 퇴각하였다가 모두 궤멸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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