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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0815
한자 朴泳孝
영어음역 Park Yeonghyo
이칭/별칭 자순(子純),춘고(春皐),현현거사(玄玄居士),박무량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시대 근대/개항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유배인
출신지 경기도 수원
성별
생년 1861년(철종 12)연표보기
몰년 1939년연표보기
본관 반남
대표경력 동아일보 사장

[정의]

조선 말기 제주에 유배된 문신.

[개설]

본관은 반남. 자는 자순(子純), 호는 춘고(春皐) 또는 현현거사(玄玄居士). 초명은 박무량(朴無量)이다. 아버지는 공조판서를 역임한 박원양(朴元陽)이며, 어머니는 전주이씨이다. 한말 개화파를 대변하는 인물로 개화 운동을 이끌었으나, 한일합방 후에는 일제의 후작 작위를 받는 등 일제강점기 동안 친일파로 활동하였다.

[활동사항]

1872년(고종 9) 철종의 부마가 되었으나 3개월 만에 사별하였다. 1884년(고종 21) 12월 갑신정변을 일으켰다가 실패로 돌아가자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1894년(고종 31) 8월 귀국하여 1895년(고종 32) 제2차 갑오개혁을 주도하였으나 1895년 7월 역모 혐의를 받아 다시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1907년(순종 1) 비공식적으로 귀국하여 부산에 체류하다가 상경하여 궁내부 고문 가토(加藤增雄)의 중재로 고종의 특사 조칙을 받아 정계에 복귀하였다. 고종이 강제로 양위되자 군부 내의 반양위파(反讓位派)와 공모하여 고종의 양위에 찬성한 대신들을 암살하려 했다는 혐의를 받아 1907년 8월 27일 제주도로 유배되었다.

제주로 유배와서 처음에는 조천리 출신 김희주(金熙冑)의 집에 거처하다가 제주읍 구남동 독질골 과수원에 정착하여 3년 간 지냈다. 제주의 근대 교육에 관심을 가져 1907년 의신학교를 세울 때 의연금 100원을 지원하였다. 1907년(순종 1) 제주 선교에 나선 이기풍(李基豊) 목사에게 교회 설립 자금을 지원하였고, 1909년(순종 3) 개교한 신성여학교의 설립에도 협조하였다.

[저술 및 작품]

『사화기략(使和記略)』이 있는데, 1882년(고종 19) 특명전권대사 겸 수신사로 일본에 다녀와서 쓴 사행록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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