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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매일신보 제주 지사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0558
한자 大韓每日申報濟州支社
영어음역 Daehan Maeil Sinbo Jeju Jisa
영어의미역 Korean Daily News, Jeju Branch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이문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언론 기관
설립연도/일시 1907년연표보기
해체연도/일시 1910년 8월 28일연표보기
설립자 배설(裵說, Ernest Thomas Bethell)

[정의]

1907년 제주 지역에 설립된 『대한매일신보』 지사.

[개설]

『대한매일신보』는 노일 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한국에 특파되었던 영국 『데일리 크로니클(Daily Chronicle)』지의 특별 통신원 배설(裵說, Ernest Thomas Bethell)이 같은 신문사 특별 통신원이었던 토마스 코웬(Thomas C. Cowen), 그리고 영어에 능통하고 친분이 있던 양기탁(梁起鐸)이 함께 한영 합자 회사로 설립하여 1904년 7월 18일 창간하였다.

『대한매일신보』는 창간 당시 한글 2쪽, 영문 4쪽의 한글과 영문으로 합간하였다가 1905년 8월 11일 영문판 『Korea Daily News』를 독립 신문으로 발행하고, 『대한매일신보』는 한글·한문 혼용으로 발행하였다. 그 후 인쇄 시설을 보강하여 1907년 5월 23일 한글 전용 신문을 창간함으로써 국한문판·영문판·한글판 3종의 신문을 발행하게 되었다.

『대한매일신보』 창간에는 고종(高宗)이 비밀리에 자금을 지원하였으며 많은 애국지사들이 의연금을 출연하였는데, 『대한매일신보』가 강력한 항일 논조를 펴는 한편, 보급 부수가 증가하고 보급망이 전국적으로 확대됨에 따라 일본 통감부의 탄압을 받기 시작하였다.

전국 지사는 1907년 25개 지사에서 1908년 34개 지사, 1910년 8월 종간 당시에는 59개 지사에 이르렀다. 발행 부수는 1908년 5월 현재 국한문판 8,143부, 한글판 4,650부, 영문판 463부로 총 13,256부였는데, 발행 부수 가운데 지방에 보급된 부수는 약 50%인 6,593부에 이르렀다.

1907년 전국적으로 국채 보상 운동이 전개되자 대한매일신보는 회사에 국채 보상 지원금 총합소(國債報償支援金總合所)를 설치하고, 신문사 총무인 양기탁을 회계로 선임하였다.

1908년 5월 27일 대한매일신보의 발행인이 만함(A. W. Marnham)으로 바뀌었으며, 배설 추방을 기도해 온 통감부는 배설을 고소하여 1908년 6월 재판에 회부하고 3주일간 금고형을 선고하였다. 또한, 1908년 7월 국채 보상금 횡령 혐의로 양기탁을 구속하여 재판에 회부하였으나 양기탁은 무죄 판결을 받았다.

통감부는 한일 합방 3개월 전인 1910년 5월 21일 700파운드를 주고 만함으로부터 대한매일신보를 인수했는데, 이러한 사실을 비밀리에 부치고 있다가 1910년 6월 14일 발행인과 편집인 명의만 이장훈(李章薰)으로 바꾸었다. 이후 1910년 8월 29일 한일 합방이 공포됨에 따라 제호를 『매일신보(每日申報)』로 바꾸어 해방될 때까지 총독부의 기관지로 발행하였다.

[설립 목적]

제주 지역 독자들에게 『대한매일신보』를 보급하는 한편 『대한매일신보』의 창간 취지인 국민의 문명 지식을 계발하고, 세계 각국의 진보된 풍물을 도입하여 널리 알리며, 국내외 뉴스를 신속하게 보도하여 나라의 정세를 감시하는 역할을 하고, 시사의 이해를 조장하여 국민의 혼미함을 깨우쳐 여론을 환기시키고자 하는 목적에서 설립되었다.

[변천]

『대한매일신보』는 창간 3년 뒤인 1907년 9월 18일자 신문에 사고(社告)를 통해 전국 25개 지사 설치 지역을 발표했는데, 이때 대한매일신보 제주 지사 설치 사실도 함께 발표했다.

대한매일신보 제주 지사는 설립 당시 고형래가 운영하다 1910년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로 개편된 이후 제주읍 남문로에서 고성주(高性柱)가 매일신보 제주 지사를 운영했으며, 그 후에는 한상호(韓相鎬) 등이 운영했다.

[활동 사항]

『대한매일신보』의 제주 지역 보급 부수에 관한 자료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독자들 가운데는 『대한매일신보』의 강력한 항일 논조에 동조하는 지식인과 국채 보상 운동에 관여한 지도층이나 단체 회원들이 많았을 것이다.

국채 보상 운동은 1906년 이래 4회에 걸쳐 일본으로부터 차입한 국채 1,300만 원을 하루 빨리 상환하여 국권을 회복하자는 국민적 운동이었는데, 이 운동에는 민족지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모금 캠페인을 전개했으며, 대한매일신보에서는 의연금 접수 창구를 개설했다.

제주 지역에서도 홍평규(洪平圭), 송문옥(宋文玉) 등이 앞장서 제주 의성회(濟州義成會)를 결성하여 의연금 모금 활동을 전개했는데 대한매일신보 제주 지사와 제주 의성회는 긴밀한 유대를 갖고 모금 활동을 전개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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