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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7호 작전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0115
한자 決-號作戰
영어음역 Gyeol Chilho Jakjeon
영어의미역 Gyeol 7th Operation
이칭/별칭 옥쇄작전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강순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군사 작전
발생(시작)연도/일시 1945년 2월 9일연표보기
종결연도/일시 1945년 8월 15일연표보기
발생(시작)장소 제주도
관련인물/단체 히로히토|도조|나가쓰 사비주

[정의]

1945년 제주도에서 일제가 준비했던 일본 본토 방어 작전.

[개설]

태평양 전쟁에서 수세에 몰리게 된 일본은 1945년 2월부터 일본 본토 사수를 위해 일본 내 6개 지역, 일본 외 1개 지역(제주도) 등 모두 7개 지역에서 결호 작전을 준비한다.

이중 제주도에서의 작전은 결7호 작전이라 이름 붙여졌으며, 작전을 독자적으로 수행할 제58군이 신설되고, 예하에 제96사단, 제111사단, 제121사단, 독립 혼성제 108여단 등 모두 7만 5,000여 명의 병력을 두어 미군과의 결전을 위한 진지를 구축하고 부대를 배치하는 등 결전 준비를 진행했다.

[역사적 배경]

1910년 한국을 강점한 데 이어 1937년 중국 대륙에까지 진출한 일본에게 제주도는 중국의 상하이[上海]와 난징[南京] 등을 폭격할 수 있는 최단 거리의 전략 요충지였다. 이로 인해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에 일본 해군 비행장(일명 알뜨르 비행장)이 건설되어 1937년 8월 중순부터 중국 남부를 폭격하기 위한 도양 폭격 기지로 활용되었다.

일본의 상하이 점령 이후 제주도의 전략적 가치는 줄어들었지만,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이 수세에 몰리기 시작하면서 제주도는 또다시 전략적 요충지로 그 가치가 높아졌다.

1942년 6월 미드웨이 해전을 계기로 미군이 공세로 전환하면서 전투는 점차 일본 본토로 접근하여 갔고, 1944년 봄부터는 미군 잠수함이 일본 근해까지 진출하기 시작하였다. 일제는 수송선 침몰이 이어져 동남아시아와 남태평양에서의 물자 수송이 어렵게 되자 또 다른 유력 물자 보급 기지인 한반도 및 중국 대륙 간의 보급로 확보는 절체절명의 과제로 대두되었다.

제주도는 지리적으로 일본의 남단 큐슈[九州] 지방과 중국 남부를 연결하는 직선상에 위치하면서 필리핀과 한반도 사이에 놓여 있어 지정학적으로 미국과 중국, 일본 3국의 군사 전략적 요충지가 되었던 것이다. 제주도를 미군에게 점령당하면 일본은 대륙으로부터의 물자 공급 및 관동군 차단, 일본 본토에 대한 직접 공격이 이루어질 수 있어 전쟁 수행 능력을 사실상 상실할 우려가 큰 상황이었다.

[목적]

결7호 작전을 수행하는 제58군 주력 부대를 미군이 상륙할 것으로 예상되는 지점에 투입, 사전에 그 지역을 확보하고, 미군이 제주도 상륙 작전을 전개할 경우 전력을 기울여 이를 격멸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

[발단]

1944년 7월 미군에게 사이판이 함락되면서 일본 본토가 미군기의 공습 가시권에 들어가게 되자 일본은 미군의 일본 본토 상륙에 대한 방어를 준비하였다. 이때 일본은 미군의 상륙 방향을 두 가지 경로로 예측하였다.

하나는 사이판과 괌을 기지로 삼아 일본 동남부의 오가사와라[小笠原] 제도를 점령하고 간토[關東] 평야에 직접 상륙하는 것이었다. 또 하나는 필리핀에서 오키나와[沖繩] 열도를 거쳐 일본 서남부의 큐슈 방면에 상륙하는 것이었다.

만일 큐슈 방면에 상륙할 경우 미군의 전략상 제주도를 점령한 후 공·해군 기지를 설치, 일본 본토를 공격하는 전진 거점으로 삼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되었다. 미군이 일본 큐슈에 상륙할 경우, 동시에 중국 대륙에 있는 일본군 최정예 부대인 관동군의 일본 본토 합류를 차단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미군이 필리핀에 이어 1945년 2월 이오[硫黃] 섬을 함락시키자 오키나와와 큐슈 등 일본 남서부 지역에 상륙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에 따라 일본의 최고전쟁지도회의인 대본영은 1945년 3월 12일 각 군 작전 주임 참모 회합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는 결호작전 지역 중에서 미군의 예상 상륙 지점으로 제주도와 홋카이도[北海道]가 유력하다고 판단하여 결1호 작전과 결7호 작전이 보다 강도 높게 다뤄졌다.

[경과]

일본 대본영의 작전 주임 참모 회합 결과에 따라 1945년 3월 20일 제주도를 중심으로 한 결7호 작전 준비 요강이 당시 한반도를 관할하던 일본군 제17방면군에게 하달된다.

준비 요강의 내용을 살펴보면 작전 명칭을 결7호 작전으로 정하고, 제주도에 제58군, 제96사단, 제111사단, 독립 혼성제 108여단, 독립 속사포 제32대대, 제1특설 근무대를 배치하도록 되어 있다.

또 기동 병단으로 한반도에 제121사단을 대기시키고, 포병과 전차 부대를 중국과 만주 등지서 이동, 제58군에 직할시키고 있다. 이와 함께 실제 결7호 작전이 진행될 경우 중국에 주둔하고 있는 관동군과 중국 방면군에서 2~3개 사단을 증강토록 했다. 이에 따라 1945년 4월 15일 전투 서열이 정해지고 제58군 병력이 제주도로 진출, 결7호 작전 준비에 돌입한다.

그러나 오키나와가 미군에게 함락되기 직전에 이르는 등의 정세 변화에 따라 일본은 미군이 월등한 항공력을 바탕으로 제주도나 한반도 남부 지방에 상륙할 것이라 판단, 한반도 남부 해안과 제주도에 집중적으로 병력을 보강하였다. 제주도에는 기동 병단인 제121사단을 추가로 배치하고 군산에는 제120사단과 제320사단을 집결시키도록 하였다.

오키나와 함락 이후 급변하는 전황 속에서 일본은 미군이 일본 서부 지역으로 상륙하기 위해 항공 기지를 오키나와, 또는 상하이 부근으로 진출시키거나 일본 본토를 직접 공격할 것이라 전망하였다.

또한 주된 상륙 지점은 큐슈 남부, 또는 큐슈 북부일 것이며, 큐슈 북부에 상륙할 경우 기지 설정을 위한 제주도 공략이 필연적이라고 판단하였다. 이에 따라 제주도에서의 결전 준비가 더욱 중요하게 부각되어 기동 병단인 제120사단의 제주도 배치가 결정되었다.

[결과]

제주도에서의 결7호 작전 준비는 3단계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1단계는 전투 서열이 정해지던 1945년 4월에서 5월 중순까지의 시기로, 제주도 전역을 3개 구역으로 나누어 애월~한림~한경~대정~안덕 등 서부 지역을 주진 지대,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공격 준비 진지대, 조천~구좌~성산~표선~남원 등 동부 지역을 유격 진지대 등으로 설정하였다.

주진 지대에는 제111사단, 공격 준비 진지대와 유격 진지대 북부 지역, 즉 제주시와 조천~구좌~성산 지역에는 결7호 작전 지휘부인 제58군사령부와 제96사단, 공격 준비 진지대와 유격 진지대 남부 지역, 즉 서귀포시와 표선~남원 지역에는 독립 혼성 제108여단이 배치되었다.

2단계는 오키나와 함락이 임박한 상황에서 제121사단이 추가로 제주도에 배치되는 1945년 5월 하순에서 6월 중순까지의 시기다. 미군의 상륙 지점으로 유력시되는 제주도 서부 지역을 남북으로 나누어 남부, 즉 한경~대정~안덕 지역은 제111사단, 북부, 즉 한림~애월 지역은 제121사단, 제주시와 서귀포시 지역은 제96사단, 동부 지역은 독립 혼성 제108여단을 배치하였다.

3단계는 오키나와 함락으로 결7호 작전 개시가 임박했다고 판단하는 1945년 6월 25일 이후 시기이다. 작전 구역은 2단계와 동일하나 서부 지역, 그중에서도 서남부지역인 한경~대정~안덕 지역에 기존 제111사단과 함께 제12포병 사령부, 독립 야포병 제6연대, 야전 중포병 제15연대, 박격포 제29대대 등을 집중 배치시켰다.

동시에 1945년 7월 말에는 제120사단을 제주도로 진출시켜 주력을 서부 지구의 전면에 배치토록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나 제120사단은 제주도에 배치되기 전에 종전이 됨으로써 실제 제주도에 진출하지는 않았다.

[의의와 평가]

결7호 작전은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 제주도를 희생양으로 내몰았던 사건이다. 비록 준비 단계에서 종전으로 종결되었지만 제주도와 상황이 매우 비슷했던 오키나와 전투를 보면, 일본군과 미군을 합해 군인 전사자가 8만~15만 명, 현지 주민 전사자가 10만 명 이상으로 추산되고 있다. 제주도에서 실제 결7호 작전이 진행되었을 경우 오키나와에 필적하는 엄청난 인적, 물적 피해를 가져왔을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일본이 제주도에서 결7호 작전을 준비한 것은 제주도가 가지는 지정학적 위치의 중요성 때문이며, 이러한 지정학적 위치는 현재에도 유효하다고 볼 수 있다. 또 결7호 작전을 위해 제주도 전역에서 진행된 군사 시설의 구축과 주민들의 강제 동원 및 공출은 전쟁의 참상과 평화의 중요성을 실감 있게 전해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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