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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0075
한자 康潤錫
영어음역 Kang Yunseok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1동 4059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나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항일운동가
출신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1동 4059 지도보기
성별
생년 1911년연표보기
몰년 1946년연표보기
본관 곡산

[정의]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개설]

아버지 강기업(康基業)은 민족 교육에 뜻을 두고 화북사립보통학교 설립에 기여한 인물이었다.

[활동사항]

광주보통고등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항일운동이 일어나자, 300여 명의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 시위대의 선두에 서서 투쟁하였다. 이 사건으로 1930년 2월 26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징역 4개월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출감 후에는 제주청년동맹 화북지부의 간부로 활동하였다. 1930년 3월 5일 제주청년동맹 화북지부 간부 임삼호(任三浩)와 함께 “화북학교에 숨어 있는 밀정 교사 강경진·한상용·이창하·고경수·강원형 등을 추방하고 교내에는 경찰권의 침입을 철저히 저지하라”는 내용의 전단을 작성하여 마을 곳곳에 붙였다.

1931년 2월 12일 화북보통학교 4학년 학생 신승군(愼承根)이 사망하여 교정에서 장지까지 장례 행렬이 진행될 때, 강윤석을 비롯한 제주청년동맹원들은 학생들에게 적기가(赤旗歌) 등 혁명가를 반복하여 부르도록 하였다.

이 사건으로 강윤석·부병훈·임삼호·김윤옥(金潤玉) 등은 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1931년 7월 31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강윤석과 부병훈은 징역 10개월을, 임삼호와 김윤옥은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다.

판사의 선고가 끝나자마자 “우리들은 독립이 오는 날까지 싸우겠노라”고 연호하며 ‘공산당 만세’를 불러서 일본 경찰에 의해 즉시 퇴정되었다. 부병훈·임삼호·김윤옥 등은 불복 항소하여 대구복심법원으로 넘겨졌으나, 강윤석은 항소하지 않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무장 투쟁을 하기 위해 만주로 건너갔으나 소식이 두절되었다.

[상훈과 추모]

1994년 광복절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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