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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 가학리와 영암군 학산면 학계리 경계에 있는 산. 가학산(駕鶴山)[575m]은 험준한 바위산으로 유명하며, 계곡면의 진산(鎭山)이다. 호남정맥에서 분기한 땅끝기맥의 별뫼산에서 계곡면 남서쪽으로 길게 뻗어내려 동서 좌우로 벌린 흑석지맥(黑石支脈)에 위치한 산이다. 월출산국립공원 남쪽의 별뫼산에서 서쪽으로 질재·가학산·흑석산으로 이어지면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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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송호리에 있는 산. 한반도 최남단 땅끝에 위치한 산이다. 갈두산(葛頭山)[156m]은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산수관에 따르면 백두대간에서 뻗어내린 호남정맥의 한줄기인 땅끝기맥의 끝이다. 호남정맥 마루금인 화순 국사봉 바람재에서 남서쪽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를 땅끝기맥이라고 한다. 국사봉에서 시작하는 기맥은 월출산, 월각산, 흑석산, 서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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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송호리에 있었던 조선시대 포구. 갈산포(葛山浦)는 해남군 송지면 송호리 땅끝송호해변 끝에 있었던 갈산마을의 남쪽 해안에 있었다. 갈산포는 한반도의 최남단에 위치하였다. 갈산포에는 뱃사람들이 안전 항해를 기원하는 당집이 있었다. 당집은 풍선으로 항해하던 시기에 빠른 물살로 뱃길이 험한 명량해협을 무사히 통과하기를 기원했던 해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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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의 읍면과 마을 또는 인접 시군을 연결하는 산 사이와 봉우리 사이의 낮은 부분. 해남에는 오래된 역사와 사연을 간직한 고개[재]들이 많다. 시대가 흐름에 따라서 재의 위치와 높이도 변경되기로 하고, 재 아래로 터널이 통과한다. 『대둔사지』[1823]에서는 높은 재를 령(嶺)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령(嶺)은 보통 ‘재’[예컨대 대관령]를 뜻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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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연곡리에 있었던 조선 전기 포구. 조선 초기 어란(於蘭)은 삼촌포[지금의 해남군 화산면 연곡리] 인근이다. 수군의 병선이 옮겨가자 삼촌포의 어란은 고어란(古於蘭)이 되었다. 고어란에는 병선들이 배치되어 해상에서 근무하였으므로 육지부에서 유적을 찾을 수 없다. 다만 구룡포들에서 청자편과 백자편이 출토된다. 1988년 고천암방조제 준공으로 바닷물이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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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 고현리에 있는 다리. 고현교(古縣橋)는 해남군 현산면 고현리에 세워진 4차선의 다리로서 국도 제13호선 노선상에 위치하여 있다. 고현교의 전신인 다한교(多恨橋)는 고현마을 서쪽 어귀에 있었으며, 태식천(太息川)에 놓여 있었다. 고려 때에 해남현은 현산면에 있다가 1357년 왜구의 침략을 받았다. 그 후 조선에 들어와 왜구의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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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관동리와 무학리에 걸쳐 있는 산. 관두산(館頭山)[177m]은 해남군 화산면 해안가에 있으며, 조선시대에 봉수대가 있었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봉수가 있다. 두륜산에서 뻗어 나온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지도서』 봉수 조에 의하면 관두산의 봉수는 서쪽으로는 진도의 여귀산(女貴山) 봉수로 신호를 보내고, 남쪽으로의 영암의 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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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관동리 관두산 정상에 있는 조선시대 봉수 터. 봉수는 삼국시대 이래로 연안을 방호하는 관방 시스템의 하나로 운영되었다. 그러나 해남 지역에 설치된 봉수에 대한 기록은 조선시대에 들어와 확인된다. 조선시대 해남현에는 화산 관두산(館頭山)[177m]을 비롯하여 일성산(日星山), 금강산(金剛山)에 있었고, 강진현 좌곡산, 영암군의 갈두와 달마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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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관동리에 있었던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포구. 관두포(舘頭浦)는 관두량, 관두, 관머리라고도 칭하며 조선시대 제주를 왕래하는 관리들이 이용했던 포구이다. 관리들의 편의를 위하여 관을 설치하였다. 인근에는 봉화, 관터, 영터(營터)가 있었다고 전한다. 관두포 관터는 화산면 관동리 944-2 쌍봉수산 인근이며, 선창은 동쪽 갯고랑이다. 관두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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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원호리와 일신리에 걸쳐져 있는 산. 풍수지리에서 나라의 국사(國師)가 나올 만한 터가 있는 산이라 한 데서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땅끝기맥에서 뻗어내린 화원지맥에 속한다. 원호천의 발원지이다. 지층은 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되었고, 분류산성암층 산성분류암질 응회암이며, 대표암상은 산성분류암질 응회암이다. 국사봉(國師峰)의 높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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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읍 구교리, 수성리, 해리와 마산면 장촌리의 경계에 있는 산. 금강산(金剛山)[488m]은 해남읍의 500여 년의 역사를 지켜 온 해남읍의 진산(鎭山)이다. 마산면의 맹진과 화내를 경계 짓는 만대산(萬垈山)과 옥천면과 해남읍을 경계 짓는 만대산은 금강산의 줄기에서 갈라진 산들이다. 조선 전기 문신 유희춘(柳希春)[1513~1577]의 호가 미암(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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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현산면, 북평면에 걸쳐 있는 달마산에 둘레길이 만들어진 과정과 4개 코스를 걸으며 만나는 풍경. 달마산은 백두대간에서 시작한 호남정맥이 한반도 최남단 땅끝으로 가기 전 일구어 놓은 산이다. 달마산의 능선은 공룡의 등줄기처럼 울퉁불퉁 솟아있으며, 능선을 따라 오르면 아름다운 완도와 진도의 다도해가 시원스럽게 조망되고, 날씨가 좋은 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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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남리리에 있었던 역. 남리역(南利驛)은 지금의 해남군 황산면 남리리에 설치되었던 역이다. 고려시대에는 승라주도에 속하였고, 조선시대에는 장흥의 벽사도역에 소속되었다. 고려 말 왜구로 인하여 폐지되었다가 조선시대 들어와 다시 복설되었다. 조선시대에 한양으로 향할 때 진도군에서 출발하여 벽파진~삼지원~남리역~적량원~만희원~맹진~별진역을 거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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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읍내리에 있었던 조선 후기의 다리. 남천교는 남천에 세워져 남천교라 칭하게 되었다. 남천교는 해남읍성의 남문에서 나와 남천을 건너 동쪽에 있는 삼산면이나 강진, 영암으로 왕래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남천교는 조선시대 석교였으나 일제강점기에 콘크리트교로 개축되었다. 지금의 남천교는 해남읍 읍내리에서 해남천을 건너 평동리와 삼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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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 읍호리에 있었던 고려시대 포구. 남포(南浦)는 해남군 현산면 고현리 앞을 흐르는 태식천의 하류에 있었던 옛 포구이다. 고려 때 남경 간 사신들과 석별의 눈물을 흘렸다는 설화가 전하는 포구이다. 고려 때에 해남현은 현산면 고현리에 있다가 1412년에 삼산면 녹산역 터로 옮기게 되었다. 이 시기에 남포는 중국 남송 가는 뱃길의 출항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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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평활리 나범마을과 해남읍 신안리에 있었던 역 녹산역(淥山驛)은 고려시대에는 승라주도에 속하고, 조선시대에는 장흥의 벽사도 역에 소속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삼산면에, 조선시대에는 해남읍에 있었다. 조선시대에 한양으로 향할 때 해남의 녹산역을 출발하여 옥천면의 영신원을 거쳐 별진역에 이른 다음 영암의 영보역으로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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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에 설치되었던 조선시대 수군진. 달량진(達梁鎭)은 완도의 관문에 해당하는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 동쪽 해변에 위치한다. 달량진은 해남군과 완도군 달도(達島) 사이의 물목에 설치되었던 조선 시대의 수군진으로 전라우수영에 편성되었다. 관련 기록은 조선 건국 후인 1406년(태종 6)에 처음 등장한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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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3년·1552년·1555년 세 차례에 걸쳐 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 달량진에 왜구가 상륙하여 침탈하였던 사건. 달량진은 현재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에 설치되었던 조선시대의 수군진이다. 1406년(태종 6)에 이미 기록에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이른 시기에 설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달량의 원래 지명은 달도였는데 완도의 달도와 구분하려고 고달도(古達島)라 칭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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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 송지면 서정리와 북평면 서홍리에 걸쳐 있는 산. 달마산(達磨山)[470m]은 호남정맥에서 뻗는 기맥이 한반도 최남단으로 가기 전 해남군 남단에서 암릉(巖陵)으로 솟은 산이며, 송지천의 발원지이다. 달마산에 관한 최초의 지리지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영암군 산천조이다. 달마산은 이미 고려시대 이전에도 그 명성이 중국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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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이진리 및 남창리와 현산면 월송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 닭골재를 경계로 해남군 북평면과 현산면이 나누어진다. 큰닭골재[68m]는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에서 현산면 월송리로 넘어오는 재이며, 원닭골재[100m]는 북평면 이진리에서 현산면 월송리로 넘어오는 재이다. 원닭골재는 월송에서 북평 이진마을로 넘어 다녔던 작은 재다. 지금은 임도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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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양화리와 목포시 달동 달리도 사이의 물길. 지금의 해남 구 목포구(木浦口) 등대 인근에 있는 대진(大津)은 나주와 영암 등 영산강 인근 지역으로 진입하려는 배들이 통과하는 곳이었다. 조선시대에는 물길이 세어 영산강으로 진입하려는 배들이 통과하기 어려웠으나, 현재는 영산강 하굿둑 등 간척으로 인하여 물길이 느려졌다. 옛날 세곡을 실은 배가 대나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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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대흥사와 두륜산의 여덟 군데 아름다운 경치. 해남 출신 시조 시인 김연태[1917~1986]가 해남 두륜산의 자연환경과 두륜산 자락에 있는 대흥사의 아름다움을 대흥팔경(大興八景)으로 명명하고 시로 남겼다. 팔경(八景)이란 아름다운 자연경관의 대명사이며, 중국 송나라 때 명승지인 호남성 소상에 있는 동정호 남쪽 언덕 소수와 상강이 합수되는 근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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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삼산면 상가리·옥천면 영춘리에 걸쳐 있는 산. 덕음산(德陰山)은 옥천천(玉泉川)의 발원지이고, 해남읍 연동리(蓮洞里)의 주산(主山)이다. 덕음산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덤벙산으로 부른다. 덤벙산을 한자로 차자하여 덕음산(德陰山)이라고 명명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덕음산은 땅끝기맥에서 뻗어내린 화원지맥에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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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북평면·현산면·북일면·옥천면에 걸쳐 있는 도립공원. 자연보호 및 두륜산(頭輪山)[700m] 일대의 산수미와 사찰, 남해를 조망할 수 있는 지리적인 조건, 사계절 휴양 가능 등으로 인하여 1979년 12월 두륜산도립공원[면적 33.39㎢, 2018년 면적 32.91㎢]으로 지정되었다. 1971년 5월에 국민관광지[교통부고시 제98호]로, 197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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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구림리 모래섬 등산진에 설치되었던 원. 등산원(登山院)은 조선시대에 한양과 해남과 진도 지방을 연결하던 교통 및 통신 제도로 조선 후기 등산진에 설치된 원이다. 등산진은 해남현의 화원반도에서 무안 목포진과 통하는 나루였다. 등산원은 벼슬아치들이 배나 바람을 기다리는 장소로 이용되었다. 등산진은 모래섬[사도, 별칭 마래섬]에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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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구림리 모래섬에 있었던 조선시대 나루. 등산진(登山津)은 해남현의 화원반도에서 무안 목포진과 통하는조선시대의 나루였으며 일제강점기까지도 이용되었다. 등산진에는 등산원이 설치되어 관리들이 배를 기다리는 장소로 이용되었다. 당시 등산진의 나룻배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해남, 진도, 강진 등에 많은 나머지, 배 순번 또는 바람과 물때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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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해리, 옥천면 영신리와 마산면 장촌리, 송석리, 맹진리에 걸쳐 있는 산 만대산(萬代山)은 해남읍의 진산인 금강산과 이어지는 산인데, 봉우리가 서로 떨어져 두 군데에 걸쳐 있다. 『대동지지』[1865]에 처음으로 나온다. 『호남읍지』[1872]에 따르면 “현의 북쪽 13리[약 5.11㎞]에 있다. 금강산에서 꿈틀거려서 나와서 북으로 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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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 학의리 육일시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원. 만희원은 조선시대 한양과 해남지역의 교통과 통신을 원만히 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에 만희원은 “현의 서쪽 12리[4.71㎞]에 있다.”라고 하는 것이 마지막 기록이다. 『여지도서(輿地圖書)』 이후의 지리지에서는 만희원은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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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서상리 망해산 정상에 있는 조선 후기 누정. 망해루(望海樓)는 해남군 문내면 서상리 망해산 정상에 있는 전라우수영의 망루이다. 전라우수영 망루는 망해루 외에도 구 충무사의 남장대[정해루(靜梅樓)]와 북장대가 더 있었다. 망해루는 서상리 망해산 정상에 있는데 성과 함께 성루로 건설되었다. 건립된 시기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밝혀진 건립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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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 맹진리에 있었던 옛 나루. 맹진(孟津)은 으뜸나루로 남리역(南利驛)과 별진역(別珍驛)을 연결하는 역로에 있었다. 맹진교를 건너거나 노두로 건너기도 하였다. 인근에 세곡을 받는 시설이 있었다. 맹진(孟津)은 으뜸나루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매진 즉, 침향을 묻은 매향리와 같은 의미이기도 하다. 조선 초에는 매향 의례가 있었다. 마을의 서쪽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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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 맹진리에 있는 다리. 맹진교는 해남군 마산면 맹진리에 세워진 2차선 다리로서 지방도 제819호선의 노선상에 위치하여 있다. 조선 후기 맹진교(孟津橋)는 남리역과 별진역을 연결하는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 조수 등으로 인하여 맹진교가 붕괴되면 수시로 보수하였고, 징검다리를 놓아 썰물 때 건너기도 하였다. 조선시대 맹진은 으뜸나루로 남리역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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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학동리와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 사이에 있는 해협. 해남 우수영의 명량(鳴梁)은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이순신(李舜臣) 장군이 왜군의 선단과 싸워 승전한 명량대첩(鳴梁大捷)의 격전지이다. 명량해협(鳴梁海峽)은 조선시대에 해남의 우수영(右水營)과 진도의 녹진(鹿津)이 연결되었고, 해남의 삼지원(三枝院)은 진도의 벽파진(碧波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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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전라남도 해남 지역에 말을 방목하기 기르기 위하여 건물, 목책 등을 설치한 장소. 조선 초기에 중앙 정부는 말을 길러 국용을 조달하고 동시에 중국과 말 무역을 하였다. 전라도는 겨울철에도 춥지 않아서 목마용 풀을 얻기에 용이하였다. 이러한 기후 조건에다 제주도와 인접하여 전라도는 일찍부터 목장 후보지로 거론되었다. 특히 진도와 같이 물과 풀이 풍부한 섬과 바닷가 연안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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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 성진리에 있었던 역. 별진역(別珍驛)은 고려시대에는 승라주도에 속하였고, 조선시대에는 장흥의 벽사도 역에 소속되었다. 한양으로 향할 때 해남의 남리역에서 맹진을 통하여 별진역에 이른 다음 영암의 영보역으로, 해남의 녹산역에서 옥천면의 영신원을 거쳐 별진역에 이른 다음 영암의 영보역으로 향하는 역이다. 별진역은 지금의 해남군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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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 성진리에 있었던 조선시대 포구. 별진포는 지금의 계곡면 성진리에 있었다. 별나리포라고도 하였으며 별진역과 병존하였다. 마산면의 맹진에서 좁은 수로를 타고 약 3㎞ 올라가면 별진포에 이르렀다. 별진포에는 상선이 정박하였으며 관에서 세금을 징수하였다. 별진포에는 별진역이 있어 해로와 육로가 연결되었다. 계곡면 성진리 앞을 흐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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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장춘리와 청룡리 경계에 있는 고개. 고개가 어찌나 가파랐던지 병아리가 찔끔찔끔 울고 넘었다고 하여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삥아리 잔등’이라고도 부른다. 일성산 자락에 줄기에 위치한 고개이다. 고개 높이는 40m이다. 병아리재는 화원면 장춘리 사람들이 목포를 가거나 화원5일시장을 가기 위하여 넘어 다녔던 고개다. 지금은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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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 성산리와 강진군 도암면 지석리를 잇는 고개. 병치재(兵峙재)는 해발 100m의 고개로서, 해남과 강진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옥천면 성산리에서 병치재를 넘으면 바로 강진군 도암면이 나온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해남 옥천 성산뜰에서 의병과 왜군 사이에 전투가 일어났던 곳이다. 의병들과 중무장한 일본군과의 전투는 숱한 사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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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 만안리·구시리와 현산면 원진리·충리·송정리에 걸쳐 있는 산. 병풍산(屛風山)[310m]은 현산천의 지류인 문소천(聞簫川)의 발원지이다. 병풍산 자락 문소천과 수정동에서 발원한 물은 구시저수지에 유입된 후 현산천으로 유입된다. 산의 모양이 마치 병풍처럼 생겼다고 한 데서 병풍산 이름이 유래되었다. 병풍산은 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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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선두리에 있던 조선시대 전라우수영의 객사. 복파관은 전라우수영의 객사이다. 객사는 객관(客館)이라고도 하며 왕을 상징하는 전패(殿牌)를 모시고 망궐례 등을 행하는 곳으로 우수영 관아 중 가장 중요한 건물이다. 객사의 문은 운주루(運籌樓)였다. 복파관은 1440년 이후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된다. 1660년대 중반 절도사 김동흘이 고쳐 지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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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옥동리와 진도군 고군면 벽파리 간을 왕래하였던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나루. 삼지원(三枝院) 나루는 진도와 해남 사이에 있는 명량해협의 동단을 가로지르는 나루이다. 해남 삼지원[나루]의 진도 쪽 상대 나루는 벽파진으로 고려 때에는 대진(大津)이라 칭하였다. 나룻가에 있는 원정(院亭)은 바람과 물때를 기다리는 장소로 이용되었다. 198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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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옥동리에 있었던 옛 나루에 세워진 원(院). 삼지원(三支院)은 진도와 해남 사이에 있는 명량해협의 동단을 가로 지르는 나루에 세워진 원이다. 해협의 뱃길 거리는 직선으로 약 3㎞에 이른다. 삼지원은 진도군을 왕래하는 중심 나루이자 진도군 관문에 해당하는 중요한 원이다. 삼지원은 벽파진~남리역으로 연결되는 역로 상에 있다. 해남 삼지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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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일부에 있었던 진도군의 옛 땅. 삼촌면은 영암의 시종면에 있던 진도군이 1409년에 옮겨와 진도군 사람들이 살았던 고장이다. 1437년 진도군 고군면으로 옮겨간 이후에도 삼촌면은 1906년까지 진도군의 월경지였다. 18세기에 삼촌면 마을은 14개이며 인구는 1000여 명에 이르렀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서 삼촌면은 “진도군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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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해창리 인근에 있었던 조선시대 포구. 삼촌포(三村浦)는 지금의 삼산천의 하류인 화산면 해창리 인근에 있었으며, 조선 초기 기록에 보이는 오래된 포구이다. 해진군(海珍郡)의 관문이자 병선들의 정박처였고, 제주를 왕래할 때 이용하던 항구였다. 진도가 섬으로 옮겨 간 이후에는 진도군과 소통로 역할을 하였다. 조선시대 해남에 들어와 있던 진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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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 황죽리와 강진군 강진읍 서산리에 걸쳐 있는 산. 『해남군지』[1925]에 “군의 동쪽 30리[약 11.78㎞]에 있다. 강진 경계에 웅거하는데 사찰 유적이 많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해남의 가장 동쪽에서 해가 뜨는 곳으로 인식되어 서기산(瑞氣山)이라는 명칭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서기산[515.3m]에는 땅끝기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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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우항리에서 송호리까지 쌓은 조선시대 목장성. 송호리 목장성(松湖里牧場城)은 황원의 목마들을 방목하기 위하여 1454년 여러 곳의 수군들을 소집하여 축성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해남읍지(海南邑誌)』 등에서 확인되며, 지적도에 흔적이 남아 있다. 송호리 목장성은 해남군 황산면 우항리에서 송호리까지 연결된다. 송호리 목장성은 해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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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송정리에 있었던 조선 후기의 정자. 송호정(松湖亭)은 해남군 삼산면 송정리에 있는 정자로 조선시대 송호 백진남(白振南)[1564~1618]이 지었고 나중에 연안이씨의 소유가 되었다. 다른 이름으로 송호당(松湖堂)이라고도 한다. 송호정은 석천 임억령 등 저명한 풍류객들이 묵어 간 곳으로 관련 내용이 시로 전한다. 정자가 있던 큰 소나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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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일면 흥촌리에서 북평면 동해리로 넘어 가는 고개. 쇠노재(金弩재)는 옛날 숲이 깊고 길이 좁아 도적과 호랑이가 많았다고 한다. 호랑이를 잡기 위하여 쇠로 만든 덫을 놓았다 하여 쇠 금(金) 자와 덫 노(弩) 자를 써서 쇠노재 명칭이 유래되었다. 원래 쇠노재[197m]는 두륜산 봉우리 중 하나인 투구봉 아래를 지나 북일면 삼성마을로 연결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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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전라남도 해남군 인근 바다에서 국방과 치안을 맡아보던 병선이나 수군이 머무르던 진지. 조선시대 해남군 지역에는 건국 초기부터 어란과 달량 그리고 주량에 병선이 배치되었다. 1440년(세종 22)에는 전라수영이 목포의 당포에서 해남우수영으로 이전하여 오면서 해남은 전라도 바다를 관장하는 수군진(水軍鎭)의 본영이 되었다. 1479(성종 10)년에는 전라좌수영이 여수로 분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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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일원 전라우수영의 여덟 군데 아름다운 경치. 수영 팔경(水營八景)은 조선시대 전라우수영 지역의 아름다운 팔경을 뜻한다. 해남 우수영에 거주하는 향토 사학자 정춘원(鄭春元)[1949~]이 우수영에 구전되어 내려오는 팔경을 발굴하였다. 전라우수영이 있던 해남 화원반도의 남쪽 해안 지역 주위에는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지로 유명한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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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구교리 학동마을에서 마산면 장촌리로 넘어가는 고개. 조선시대 마산면 장촌리에는 해남을 좌지우지하는 토호세력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해남에 부임해온 현감들은 토호세력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하여 매일 아침 아침재를 넘어 문안인사를 다녔다고 한다. 현감들이 아침마다 문안 인사를 가기 위하여 넘어 다녔다고 하는 데서 아침재 이름이 유래되었다. 조치(朝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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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어란리에 설치되었던 조선시대 수군진. 어란진(於蘭鎭)은 조선 건국 초기에 해남반도 해진군의 방어를 위하여 삼촌포[지금의 해남군 화산면 연곡리]에 병선을 배치한 것이 시초이다. 그러나 삼촌포의 어란 병선은 남쪽 바다의 섬으로 이동하였다가 지금의 해남군 송지면 어란리에 수군진성을 쌓고 수군진으로 정착하였다. 왜구의 침탈을 벗어나기 위한 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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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어란리에 있었던 포구. 어란(於蘭) 지명은 2차례 이동되었다. 조선 초기에는 해진군의 남쪽 삼촌포에 어란이 있었으며, 어란에 배치된 병선이 어란도 섬을 거쳐 지금의 송지면 어란리에 수군만호진이 정착하면서 어란 지명도 현재로 고정되었다. 조선 전기 어란은 병선이 배치된 수군진이면서 제주를 오가는 입출항지이기도 하였다. 이에 제주도 관승의 자제를 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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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봉학리에 있었던 다리. 어성교 지명은 대둔산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어성천에서 유래한다. 현재의 어성교는 일제강점기인 1933년에 해남읍에서 화산면과 현산면을 왕래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다. 『해동지도(海東地圖)』 등을 보면 어성교가 그려져 있다. 당시의 어성교는 어성천의 하류에 석교로 건설되었으며, 현재 삼산면 원진리와 옹암마을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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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봉학리에 있었던 포구. 어성포는 어성천[지금의 삼산천]의 하류에 있었던 옛 포구이다. 1906년 행정구역 개편 이전에는 진도에 속하였던 삼촌면의 경계에 있었다. 어성천의 하류이자 고천암 바다 동쪽에 있어 민물과 바닷물이 합류한 지점으로 어산물이 풍성한 곳이었다. 특히 민물장어가 많이 잡혔고, 어성교 인근은 장어식당으로 유명하였다. 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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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 지역과 관련된 역사. 해남군의 역사는 구석기로 올라간다. 고대에는 고대 연안 해로와 관련하여 신미제국의 중심인 침미다례(忱彌多禮), 지미(止迷), 침명현(浸溟縣)으로 이어진다. 고려에 들어와 해남현(海南縣)이 등장하고 지금의 산이면 진산리 청자 가마터[사적 제310호 해남 진산리 청자 요지(海南珍山里靑磁窯址)]와 화원면 신덕리 청자 가마터[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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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전라남도 해남군에서 개성이나 한양을 연결하였던 교통 및 통신 제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벼슬아치가 이동하거나 공문을 전달할 때 마필(馬匹)이나 필요한 물품을 공급하는 일을 보던 곳을 역(驛)이라 하고, 숙식 편의를 제공하던 공공 숙소를 원(院)이라 하였다. 이를 합하여 역원(驛院)이라 칭한다. 이칭 역참(驛站)이라고도 하였다. 고려시대 해남군 지역에는 3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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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평활리와 옥천면 용동리에서 북일면 흥촌리로 넘어 가는 재 오소재(烏巢峙)[170m]는 오시미재, 오소재(烏所峙)라고도 한다. 오소재는 넓게 보아 두륜산과 주작산의 경계를 이루며, 오소재 정상은 두륜산과 주작산을 오르는 산행 들머리다. 오소재에서 두륜산도립공원 자락에 있는 북미륵암으로 넘어가는 재를 오심재(悟心峙)[쇄기재]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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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옥동리와 문내면 용암리 경계에 있는 산. 옥매산은 지질학적으로 진도의 해양판과 화원반도의 등줄맥이 갈라지는 분기점에 해당한다고 한다. 옥매산은 조선시대에 옥(玉)을 생산하고, 전라우수영의 관아나 군함를 만드는 데 필요한 목재를 공급하는 국가 봉산(封山)이었다. 또 명량대첩의 승전지로 잘 알려진 울돌목의 입구에 있어 왜적의 동태를 감시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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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읍 해리와 옥천면 영춘리 경계에 있는 고개. 우슬재는 해남읍 해리와 옥천면 영춘리 경계에 있는 고개이다. 우슬재[牛膝峙]에 대한 기록은 1925년 편찬 『해남군지』에 “군의 동쪽 10리[약 3.93㎞]에 있다. 즉 금강의 중맥으로 금강 즉 군의 진산인 미암의 상맥이다. 옛날의 관로는 군의 경계인 가치현(加峙峴)[지금의 삼산면 상가리 구렁목재]이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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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금평리·영호리·후산리에 경계에 있는 산. 운거산(雲居山)은 항상 산이 구름 속에 잠겨 있다 하여 붙여졌다. 땅끝에서 뻗어 내린 화원지맥에 속한다. 청룡천과 후산천의 발원지이다. 산자락에 수백 년 묵은 울창한 비자나무 숲이 장관을 이룬다. 2011년 8월 26일 해남 서동사 동백나무·비자나무 숲(海南瑞洞寺冬柏나무·榧子나무숲)은 천연기념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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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해남 출신의 풍수가. 이의신(李懿信)[?~?]은 17세기 전반에 활동했던 당대 최고의 풍수가였다. 해남군 마산면 맹진리 태생으로 관련 설화가 많이 전한다. 선조 때부터 왕가의 묏자리를 잡는 데 큰 역할을 했고, 선조는 이의신에게 벼슬을 내려 자신의 옆에 붙잡아 두었다. 광해군 때는 교하 천도설로 조정을 발칵 뒤집기도 하였다. 이의신의 본관은 원주(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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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이진리에 설치되었던 조선시대 수군진. 조선시대에는 제주를 왕래하는 관리들이 배를 타고 내리는 포구였다. 전라우수영에 속한 수군진으로 달량진왜변 직후에 종9품 권관진이었다가 1627년(인조 5) 만호진으로 승격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두 차례 머문 곳으로 동학농민전쟁 이후 1895년에 폐진되었다. 이진리는 지형이 배 모양의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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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고당리와 화원면 장춘리, 청룡리, 성산리에 걸쳐 있는 산. 일성산(日星山)[335m]은 호남정맥(湖南正脈)에서 분기한 땅끝기맥[土末岐脈]에서 뻗어내린 화원지맥(花源枝脈)에 속하며, 문내면 고당리와 화원면 장춘리, 성산리의 진산이다. 일성산이 높아서 해가 뜰 때 산 뒤에서 솟아오르는 것 같고, 별이 뜨면 별이 산 봉우리에 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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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대흥사 냇가에 건설된 다리들. 대흥사에 이르기 전에 장춘 자연마을의 인근에서 냇가를 여러 차례 건너야 한다. 장춘마을 냇가에 다리가 건설된 데서 명칭이 유래하였다. 대흥사 관내 장춘마을 인근에 건설된 여러 석교를 말한다. 기록에 따른 장춘교(長春橋)의 시작은 피안교이며, 중건 기록에 의하면 1750년 무렵에 석교로 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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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원호리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원. 적량원(赤良院)은 조선시대 남리역과 녹산역을 연결하는 교통, 통신을 위하여 설치된 숙소로서, 통행하는 관리들의 편의를 제공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에서 적량원은 “현의 서쪽 23리[약 9.03㎞]에 있다.”라고 하였으나 『여지도서(輿地圖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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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학동리 명량마을에 있었던 조선시대와 개항기 나루. 주량(周梁)은 조선시대의 포구이자 나루였다. 『세종실록(世宗實錄)』,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등 여러 지리지 기록에서 확인되지만 나루로서의 기능은 완전히 소멸되었다. 명량마을 주변에 있는 나루에서 명칭이 유래되었다. 조선시대 주량에는 해남군 문내면 학동리 명량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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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옥천면, 북일면과 강진군 신전면, 도암면에 경계에 있는 산. 주작산(朱雀山)[429.5m]은 긴 바위능선이 많고 정상에서 다도해가 한눈에 보이는 산이다. 해남군 북일면 흥촌리 오소재에서부터 시작한다. 능선을 따라 용굴바위, 강진 신전면 주작산 정상, 기름바위, 주작산자연휴양림, 덕룡산까지 이어진다. 능선의 길이는 약 12㎞이며 기암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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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학동리와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 사이의 명량해협에 놓인 다리. 진도대교는 명량해협[울돌목]에 건설되었다. 제1진도대교는 1980년 12월에 착공하여 1984년 10월에 준공되었으며, 제2진도대교는 2001년 12월에 착공하여 2005년 12월에 준공되었다. 진도대교는 해남군과 섬인 진도군을 연결하므로 진도대교라 칭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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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서상리 우수영 성안에 있었던 조선시대 누정. 태평정은 태평장으로 잘못 알려져 있었다. 언제 초설되어 언제 훼철되었는지 자세히 알 수 없다. 다만 전라수영이 1440년(세종 22) 전라남도 무안 당포에서 옮겨오고 성(城)의 망루처로 건축되었으므로 15세기 중반에 성과 동시에 건설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태평정은 우수영 성 남쪽 돌출부에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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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 지역의 바다에 배가 드나드는 개의 어귀. 해남군 지역의 포구는 나루와 포구를 혼용하여 쓰기도 하지만 각기 다른 용례로 쓰이기도 한다. 즉, 나루는 상대 나루로 건너가는 작은 규모의 선착장이 있는 지점을 지칭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포구는 바다로 통하는 출입구로서 포구 주위에 마을 내지 도시가 형성된 것을 지칭하는 경향이 있다. 나루는 다시 진(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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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한글학회가 간행한 『한국지명총람』 중 해남 지역을 다룬 편. 『한국지명총람』은 한글학회가 1964년부터 조사 정리하여 1966년에 제1권 「서울편」을 시작으로 하여 1986년 제20권 「경기편·하」로 완간한 우리나라의 모든 땅 이름을 수록한 사전이다. 『큰사전』과 함께 한글학회의 2대 편찬사업으로 1964년 간행 작업을 시작하여 22년 만에 완성하였다.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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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의 여덟 군데 아름다운 경치. 해남 산하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해남 팔경(海南八景)으로 금강폭포(金剛瀑布)[해남 금강골], 미암청풍(眉岩淸風)[금강산 미암산], 홍교유수(紅橋流水)[해남읍 홍교], 호산명천(葫山名泉)[호산 문필봉], 연봉제월(蓮峰霽月)[덕음산], 두륜귀운(頭輪歸雲)[두륜산], 남포귀범(藍浦歸帆)[어성교], 은사효종(隱寺曉種)[은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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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에 있었던 조선 후기 누정. 해월루는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에 있으며 조선 시대에 제주를 왕래하는 사객들이 바람을 기다리는 건물이다. 영암군에서는 사객을 뒷바라지하기 위하여 남창(南倉)과 6방을 설치하였다. 해월루는 1821~1850년 사이에 지어졌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순조 때 개조되었다고 한다. 5칸 건물이었던 해월루는 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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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해창리에 있었던 조선 후기 포구. 해창(海倉)은 조선 후기에 해남현의 전세를 보관하고 출발하는 포구였으나 사실상 해남현의 관문 역할을 하였다. 전세나 대동미를 싣고 한양으로 출발하였다. 17세기 중반에 대동법을 실시하게 되면서 해남현에 설치한 세곡 창고였고, 동시에 세곡을 싣고 한양으로 출발하는 포구이기도 하였다. 전세와 대동미를 2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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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 남송마을과 해남읍 안동리 사이에 있는 산. 호산(葫山)[193m]은 해남읍 연동리 남송마을과 안동리의 진산이며, 풍수지리상 옥녀탄금형(玉女彈琴形) 형국을 보이는 해남읍의 안산(案山)에 해당한다. 『호남읍지(湖南邑誌)』에 “군의 남쪽 5리[약 1.86㎞]에 있다. 군의 앞산 안산이다. 산 위에 소나무 세 그루가 있는데, 세칭 형제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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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청룡리에 1454년 설치되었던 목장. 화원목장(花源牧場)은 1445년(세종 27) 무렵 해남군 화원면에 설치되었고 영암군사가 관리하였다. 성종 무렵에는 1500여 필을 방목하였으며, 중종 때는 노화도와 소안도에서 방목하던 말까지 옮겨 방목하였다. 1454년(단종 2) 6월에는 황산면 송호리에 목장성을 축성하였으며, 17세기에는 진도의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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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장춘리 일성산 정상에 있는 조선시대 봉수. 황원 봉수(黃原烽燧)는 조선 초기에 개설되어 1894년 폐지되었다. 고려 시기 황원군의 진산인 일성산(日星山) 정상에 있어 일성산 봉수라고도 하였다. 황원 봉수를 감싸고 서쪽으로 테뫼식 석축성[산 정상부를 둘러가며 바깥쪽만 성돌을 쌓고 안쪽은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쌓은 성]이 조성되었으며, 남동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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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반도 일대에 설치된 목장. 황원목장(黃原牧場)은 현재의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반도[황산면, 문내면, 화원면]에 설치된 목장이다. 1445년 건립되었다. 1445년(세종 27) 10월 9일에 하삼도순찰사 김종서가 각지의 목장 적임지에 대해 아뢸 때 “영암군의 황원곶[黃原串]은 4,000필을 놓을 수 있는데, 거민 400여 호가 바닷가에 흩어져 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