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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신촌동에 있는 효자 김창환의 유허비. 김창환(金昌煥)의 효행을 기리고자 세운 유허비(遺墟碑)이다. 김창환은 김해김씨(金海金氏)로 관직은 동몽교관(童蒙敎官)과 조봉대부(行朝奉大夫)를 역임하고 이조참판(吏曹叅判)에 증직(贈職)되었다. 기우만(奇宇萬)이 명(銘)을 짓고 오준선(吳駿善)이 찬(撰)하였다. 이중권(李重權)이 글을 짓고, 이재춘(李載春)이 글씨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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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명도동에 있는 나주오씨 3대의 효행을 기려 세운 비. 나주오씨(羅州吳氏) 오상림(吳相霖), 오상림의 아들 오덕환(吳德煥)과 오직환(吳直煥), 오상림의 손자 오영기(吳永基) 등 3대의 효행을 기록한 비이다. 명도동 지역은 원래 조선시대에 나주목 적량면에 속하였는데, 행정구역이 바뀌면서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편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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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동호동에 있는 류희달의 신도비. 류희달(柳希達)[1571~1631]은 임진왜란 때 공을 세워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책록(策錄)되었고 덕림사(德林祠)에 배향되었다. 신도비(神道碑)가 있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동호동은 조선시대 때 나주목 장본면 지역이었고, 1906년 함평군으로 편입되었다. 1914년 나주군으로 다시 편입되어 본량면 동호리라 하였다. 194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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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덕림동에 있는 류재만의 행적비와 모선기실비. 문화류씨(文化柳氏) 류재만(柳在萬)[1909~?]의 지극한 효성과 위선(爲先)의 정성을 기리기 위해 세운 행적비(行蹟碑)와 모선기실비(慕先紀實碑)이다. 류재만은 양일묵(梁鎰默), 오필선(吳弼善)의 문하이고 선조(先祖) 현창(顯彰)에 헌신하였다. 1964년 모친상, 1968년 부친상을 당하여 예를 다하였다. 현재 덕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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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신룡동에 있는 조선 전기의 성리학자 기진의 유허비. 덕성군물재기공유허비(德城君勿齋奇公遺墟碑)는 입향조(入鄕祖)인 기진(奇進)[1487~1555]을 기념하기 위해 행주기씨(幸州奇氏) 덕성군(德城君) 문중에서 세웠다. 기진은 기대승(奇大升)의 아버지로 본관은 행주(幸州), 자는 자순(子順), 호는 물재(勿齋)이다. 기묘사화(己卯士禍) 이후 전라도 광주 지역으로 입향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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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산수동 입석마을에 있는 선정비. 한 바위면에 구획을 하고 나주목사(羅州牧使) 2인의 비를 새긴 선정비(善政碑)와 유애비(遺愛碑)이다. 민치성(閔致成)은 1820년(순조 20) 4월 2일 나주목에 도임하여 1822년(순조 22) 7월까지 재임하였다. 이지연(李止淵)은 1830년(순조 30) 10월 1일에 도임하여 1831년(순조 31) 1월까지 재임하다가 한성판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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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왕동에 있는 오자치를 기려 세운 신도비. 오자치(吳自治)[1426~?]는 조선 전기의 무신으로 1467년(성종 8) 이시애(李施愛)의 난이 발발하자 도총사(都摠使) 이준(李浚) 휘하의 군관(軍官)으로 토벌에 참가하였다. 오자치는 난이 진압된 이후 사직을 지킨 공로로 적개공신(敵愾功臣) 2등에 책봉되었다. 이후 의흥위(義興衛) 호군(護軍), 평안도(平安道) 조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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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덕림동에 있는 밀양박씨의 효열비. 유인(孺人) 밀양박씨(密陽朴氏)의 효행과 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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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신룡동에 있는 청주한씨 부인의 효열비. 청주한씨(淸州韓氏)는 29세 때 남편이 괴질에 걸리자 성심껏 간호를 하였고, 남편이 운명하려 하자 살을 베고 피를 주어 며칠을 연명하게 하였다. 남편이 운명하자 본인도 따르려 하였으나, 나이든 시부모를 모시기 위해 상례를 잘 치렀다. 시어머니가 병이 들자 극진히 간호하였고, 좌우 손가락을 베고[斷指] 피를 입으로 넣어 연명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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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비아동에 있는 조선시대 문신 조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유허비. 취병조형유허비(翠屛趙珩遺墟碑)는 조형의 6대손 조운한(趙澐漢)이 광주목사로 부임하여 선조인 조형(趙珩)[1606~1679]을 기리기 위하여 조형이 태어난 옛터에 1873년(고종 10)에 세운 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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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지산동에 있는 평택임씨 삼강유허비. 평택임씨(平澤林氏) 임영수(林英秀)와 임영수의 아내, 임영수의 아들 임계(林桂)와 임계의 아내, 임영수의 손자 임광윤(林光胤), 임영수의 증손자 임은(林嶾)과 임두(林㞳) 등 4대에 걸친 충·효·열 삼강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기우만(奇宇萬)이 1915년에 비문을 지었고, 후손 임철주(林哲周)가 1941년에 비문 글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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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안청동에 있는 박노술의 광복을 염원하는 글을 새긴 석대. 풍천대(風泉臺)는 박노술(朴魯述)[1851~1917]의 항일 의적(義蹟)을 기념하는 삼층 석대(石臺)이다. 박노술은 조선 후기의 학자로 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안청동에서 태어났다. 기정진(奇正鎭) 문하에서 학업을 닦았다. 항일의식 각성을 촉구하였고, 1917년 6월 광주경찰서에 끌려갔다가 사흘 만에 의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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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본덕동에 있는 진주강씨의 효행을 기려 세운 비. 진주강씨(晋州姜氏)는 강이회(姜以會)의 딸로 부모를 지극한 효성으로 섬겼다. 반두명(潘斗明)에게 출가하여 시부모를 잘 봉양하였고, 반두명이 세상을 먼저 떠나자 예를 갖춰 장례를 치렀다. 낮에는 땔감을 하고 밤에는 길쌈을 하여 어려운 시가를 일으키고 시부모를 공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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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광산구 대산동에 있는 효자 김기삼을 기려 세운 비. 김기삼(金基三)의 효행을 기리고자 세운 기적비(紀蹟碑)이다. 비각 안에 있으며 비각 상량문의 글은 오동수(吳東洙)가 지었다. 김기삼은 어른들의 상을 당하여 시묘살이를 하였는데, 이때 동물들이 호위를 해 주었고 시묘 지역에는 풀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