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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군산 지역을 중심으로 미곡·어물 등 각종 물산을 위탁 판매 등의 역할을 담당했던 상인 계층. 객주의 기원이나 연혁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고려 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객주란 객주 상인(客主商人)이라는 뜻이며, 주인이란 주선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말이다. 객주는 화물주(貨物主)에게 위탁 받은 상품을 판매함과 동시에 생산자에게 자금을 대여하고,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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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군산 지역의 미곡과 해산물을 매매·위탁 판매하며 상권 유지를 위한 활동 및 군산 지역 사회 주의 운동에 도움을 주었던 상인 단체. 군산항 개항 이후 대한 제국 정부는 자본력이 부족한 국내 상인의 보호를 통해 상권을 보호하고, 외국 상인과 맞서기 위하여 객주 중심의 상업 정책을 실시하였다. 대한 제국 정부의 이러한 의지는 상회사 설립으로 나타났고, 군산 지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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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회 중심 인물 우재룡(禹在龍)[일명 우리견]이 군산 지역 광복 회원들과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는 중 일본 경찰에 체포된 사건. 우리견은 우재룡(禹在龍), 김재수(金在洙), 김재서(金在瑞)라는 가명을 사용하며 의병 대장, 광복회(光復會), 주비단(籌備團) 등 독립 운동 단체를 조직하여 군산과 각지역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광복회에서 우리견은 지휘장을 맡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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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군산에서 노동자 이익·노동 운동의 효율성·공산주의 사회 운동 지속화를 위해 설립된 노동 운동 단체. 군산에서 노동 운동 단체를 설립하려는 움직임은 1920년부터 나타났고, 1926년 6월 전라북도에 있던 62개의 노동 운동 단체 가운데 군산에 약 30여 개가 있었다. 이렇게 노동 운동 단체가 많았던 배경으로는 일제의 자본 축적을 위한 공장 신설과 일본인 경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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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군산에 설치된 미곡 선물거래 기관. 미곡취인소는 미두장으로도 칭하는데 일제 강점기 미곡·대두와 같은 농산물이 선물거래 되던 장소였다. 이와 같은 미곡취인소는 1896년 인천 미두취인소가 처음 설립된 이후 1932년 조선 취인소령에 따라 군산·부산·대구 등지로 확대되었다. 1932년 1월 1일 설립된 군산미곡취인소는 1도(道) 1개 취인소 설치 원칙에 따라 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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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1930년대 초반 전라북도 군산에서 아동 교육과 여성 계몽 활동을 펼쳐 나간 여성 운동 단체. 3·1 운동 이후 여성 계몽 교육 운동론이 사회적 과제로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서울에서 시작된 여성 계몽 교육 운동은 지방으로 확산되어 갔고, 아동에 대한 관심도 고조되어 갔다. 이후 청년 단체와 여성 단체를 중심으로 계몽 활동과 유치원 설립 운동이 진행되었다.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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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군산 지역에서 활동한 경제 단체. 개항 이후 군산에는 일본에서 건너오는 일본인들이 집중되기 시작하였다. 군산이 일본과의 수출입 무역에 있어 지리적·경제적으로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군산에 정착한 일본인들은 자치 조직인 군산 거류민단과 일본인 상업회의소를 조직하여 자신들의 이해 관계를 확산시켰고, 군산 지역 객주 성장을 억제시키면서 군산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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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행정 제도 개선·학교 설립·기관 유치 등과 같은 지역의 이해 관계 및 발전과 관련된 문제들에 대해 지역 주민의 의견을 듣기 위해 전라북도 군산에서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개최되었던 집회. 3·1 운동 이후 1920년대에 문화 정치 시작과 사회 주의 사상 유입으로 인해 군산에서는 부민 대회(府民大會)가, 인근 옥구·임피 지역에서는 면민 대회(面民大會)와 같은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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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군산 지역 인력거부(人力車夫)의 상부 상조와 차주(車主)의 횡포에 대응할 목적으로 설립된 단체. 인력거는 일본인이 고안해 낸 교통 수단으로 처음에는 일본인의 관용으로 이용되다가 점포를 차리고 영업을 하면서 점차 일반에 보급되었다. 전차나 택시와 같은 새로운 교통 수단이 등장하기 전까지 급격히 늘어났고, 등장 이후에는 좁은 골목을 통행할 수 있는 장점을 살려 교통 수단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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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군산 지역 일본인 정미업자에 대항하여 정미업 종사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설립된 노동 운동 단체. 일제 강점기 군산은 미(米)의 군산 및 노동자의 군산이라는 별호를 가지고 있는 지역이었다. 전라북도와 충청남도 지역에서 생산된 쌀들이 군산항에 집산되었고 이로 인해 파생된 다양한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많이 존재하였다. 특히 군산에 미곡이 집산되자 쌀을 저장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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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1930년 군산 제2 공립 보통 학교 설립과 후원을 위해 조직되었던 단체. 일제 강점기 학교는 “충량한 국민 육성”을 목표로 운영되었던 기관으로 일본어 교육과 실업교육이 강조되는 공간이었다. 그로 인해 1910년대 근대 교육=식민 교육이라는 사고가 지배하고 있어 한국인들이 학교 교육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거부감은 관공립 학교 취학 거부 등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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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군산 지역 철도 노동자들의 단결과 노동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1924년 5월 26일 설립된 노동 운동 단체.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본은 자본 축적을 위한 기반 시설을 마련하였다. 한국 각 지역에 식민지 공장을 비롯한 기반 시설들이 갖추어 지면서 임금 노동자와 공장 노동자가 증가하게 되었다. 식민지 기반 시설 구축에 따른 도시의 발전과 물자의 집산과 운반 등이 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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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군산철도노동회에서 사용하던 회관을 건물주 이중기가 비워달라는 요청에 맞서 대책을 세워 대응해 나갔던 사건. 군산철도노동회는 박용(朴湧)의 철운 조합(鐵運組合)과 이동화(李東和)의 운수 조합(運輸組合)이 철도 노동 운동 단결을 목적으로 1924년 5월 26일 합병하여 설립된 사회주의 노동 운동 단체이다. 1931년 3월 해체되기 전까지 군산 노동 연맹회의 세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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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이후 1930년대 중반까지 군산 지역 정미소 매가리공과 미선공(米選工)들이 일본인 공장주들에게 노동 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일으킨 각종 파업. 일제 강점기 군산에는 조일(朝日)·조선(朝鮮)·낙합(落合)·육석(陸石)·장전(長田)·전전(前田)·반전(半田)·품천(品川) 정미소와 같은 크고 작은 정미소들이 1910년 이후 계속적으로 설립되기 시작하였다. 군산에 정미소가 설립될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