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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화가 전라북도 고창군 지역의 선조들이 남긴 행적과 유산을 정리하여 고창문화원에서 간행한 향토 사료집. 『고창의 맥』은 고창문화원에서 30여 년 동안 조상들이 남긴 행적과 유산을 꾸준히 수집 정리한 내용을 당시 고창문화원장이었던 이기화가 편찬하여 고창문화원에서 간행한 단행본이다. 고창 문화의 특성을 개관하고 고창의 인맥 및 성씨의 발자취를 세밀하게 조망하고 있다. 고창문화원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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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5년에 고창 출신의 김축(金軸) 일문에게 내린 공신녹권. 『단서철권』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공신들에게 수여하던 상훈 문서와 쇠로 만든 표지, 즉 공신녹권을 일컫는다.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그 해 5월 호남 사람들이 크게 기대를 걸었던 전라도순찰사 이광(李洸)이 이끈 근왕병이 선조가 서울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회군하여 공주로 돌아오자 김축은 무장에서 의병을 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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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7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에서 태어났다. 이명(異名)은 강훈이다. 강대선은 1919년 5월 고창군의 신창학교에서 군자금 모집을 위해 서울에서 내려온 대한독립애국단 단원 김영식(金永植)에게 군자금을 수합해야 하는 취지를 듣고, 동향의 부호 강대직(姜大直)을 상대로 자금 수합 활동을 펴는 한편, 같은 해 8월에 서울로 올라가 정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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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의병장. 강대영은 1875년 5월 13일 전라북도 흥덕 부안 검곡[현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검산리]에서 태어났다. 1909년 2월 15일 김영백(金永伯) 의병장으로부터 130여 명의 의병과 총기 70여 정 및 도검 5자루를 인계받아 의진(義陣)을 편성하였다. 이후 의병장으로서 고창의 반등산, 흥덕의 수강산 등지에서 군사들을 훈련시킨 후 진군하던 중 체포되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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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원을 시조로 하고 김전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고창군의 세거 성씨. 강릉김씨(江陵金氏)의 시조 명주군왕(溟州郡王) 김주원(金周元)은 무열왕(武烈王)의 5대손으로 785년 선덕왕(宣德王)이 죽고 후사가 없자 군신회의에서 왕으로 추대되었으나 입궐을 사양하고 강릉으로 낙향하였다. 원성왕(元聖王)은 김주원을 명주군왕으로 봉하고 명주·익령(翼嶺)·평해(平海) 세 고을을 식읍으로 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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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내숙(來叔), 호는 모산(茅山). 강희맹(姜希孟)의 8세손으로, 증조할아버지 강계오(姜繼吳)가 전라남도 영광에서 세거하다 처가[진주정씨(晉州鄭氏)]와 외가[무송유씨(茂松庾氏)]가 있는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암치리에 정착하였다. 아버지는 강필주(姜弼周)이다. 강민저(姜敏著)는 문곡(文谷) 김수항(金壽恒)의 문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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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3월 5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상갑리 353번지[갑평1길 75]에서 태어났다. 이명(異名)은 강항천(姜恒泉)이고 호는 늘샘이다. 강수원은 1939년 3월에 일본으로 건너가 고학으로 1941년 12월에 전수대학(專修大學)을 졸업하였다. 1940년 11월에 동경 유학생인 임병학(林炳學)·강영석(姜永錫) 등과 함께 조선대학동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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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지역에 낙향한 유학자.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신백(信伯), 호는 청계(淸溪). 대제학을 지낸 진산부원군 강계용(姜啓庸)의 13세손으로, 파조 통계공(通溪公) 강회중(姜淮仲)의 7세손이다. 강순(姜恂)은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동지들 및 집안사람 100여 명을 이끌고 의병을 일으켰다. 이후 남한산성으로 진격하던 중 강화(講和)가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통분을 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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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의병이자 효자.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백영(伯英), 호는 하월당(荷月堂)·호은(湖隱). 문량공(文良公) 강희맹(姜希孟)의 6세손으로, 아버지는 강계판관을 지낸 강계오(姜繼吳)이다. 강시언(姜時彦)은 어려서부터 부모에 대한 효도와 형제에 대한 우애가 깊었다. 항상 의리에 맞는 행동을 하고 문장과 기절(氣節)이 뛰어나 주위의 추앙을 받았다. 이괄(李适)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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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1881년 2월 20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도림리 281번지[왕림1길 64]에 태어났다. 이명(異名)은 강익문(姜益文)이다. 강영문은 1913년 9월 독립의군부(獨立義軍府)를 조직한 임병찬(林秉瓚)·이인순(李寅淳) 등이 서울에 중앙순무총장(中央巡撫總將)을 두고 전국 각 도·군에 산하 조직을 설치하여 국권 회복 운동을 벌이자 참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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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무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명서(名瑞), 호는 물기재(勿欺齋). 1447년(세종 29) 문과에 급제하여 세종에서 세조 조에 이르기까지의 명신으로 이름난 강희맹(姜希孟)의 11세손이다. 강희맹의 둘째 아들 강학손(姜鶴孫)의 여섯째 아들 강흔수(姜欣壽)가 강응환(姜膺煥)의 9대조인데, 그의 6대조 강계오(姜繼吳)가 전라남도 영광에서 외가인 무송유씨(茂松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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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의병장. 1851년 3월 15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도림리 150번지에서 태어났다. 이명(異名)은 강종팔(姜鍾八) 혹은 강종서(姜宗瑞)이다. 강종회는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여 경복궁위장(景福宮衛將)을 역임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고향으로 돌아왔다. 1906년 4월 최익현(崔益鉉)이 전라북도 정읍의 무성서원(武城書院)에서 기병(起兵)하자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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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자는 중민(仲民), 호는 거산(巨山)이다. 1863년 지금의 전라남도 장성군 서삼면 장산리에서 태어났다. 강희맹(姜希孟)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춘파(春坡) 강인회(姜寅會)이다. 1832년 강인회가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문하에 들어가면서 장성으로 이거하였다. 강천수(姜天秀)는 할아버지 강인회의 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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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알지를 시조로 하고 김윤해를 입향시조로 하는 전라북도 고창군의 세거 성씨. 파조인 수은공(樹隱公) 김충한(金沖漢)의 현손 김윤해(金潤海)가 연산군 대에 사회가 혼란스러워지자 벼슬을 버리고 남원으로 내려왔다가 고창군 대산면 매산리 세장마을로 입향하였다. 파조의 7대손으로 당시 전라북도 남원군 송동면 만골마을에서 태어난 김영량(金榮亮)[1650~1712]이 1692년(숙종 18)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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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장흥(長興). 자는 남익(南翊), 호는 여곡(麗谷). 아버지는 참봉 고응진(高應軫)이다. 고덕붕(高德鵬)은 41세 때인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창의(倡義) 격문을 작성하여 동지를 규합한 뒤 의병장 고경명(高敬命) 진영이 있는 금산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이때 고경명은 이미 순절한 뒤여서 고향으로 돌아와서 채홍국(蔡弘國)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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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본관은 장흥(長興)이며, 자는 정여(貞汝), 호는 수남(秀南)이다. 1856년 1월 11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에서 태어났다. 고석진은 최익현(崔益鉉)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1906년 최익현이 전라북도 태인에서 의거를 일으킬 때 참모로서 최제학(崔濟學)·최학령(崔鶴齡)·이용길(李容吉) 등과 함께 각 지방을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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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장흥(長興)이며, 자는 의경(義卿), 호는 만취(晩翠)이다. 1863년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송암리 379번지[현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송암리 379번지[송암1길 9-6]]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고시청(高時淸)이다. 고순진은 일찍이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외부주사(外部主事)가 되었다. 19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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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본관은 장흥(長興)이며, 자는 계문(季文), 호는 송천(松川)이다. 1875년 11월 24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고시필(高時必)이다. 고예진은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된 뒤 형제들인 고용진(高龍鎭), 고석진(高石鎭)이 최익현(崔益鉉)과 거사할 것을 계획하자 가담하였다. 19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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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본관은 장흥(長興)이며, 호는 송재(松齋), 이명(異名)은 고운서(高雲瑞)이다. 1850년 10월 1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에서 고시필(高時必)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고용진은 1878년 아우 고석진(高石鎭), 고예진(高禮鎭)과 함께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의 문하에 들어갔다. 1906년 4월 전라북도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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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의병. 본관은 장흥(長興)이며, 자는 복경(復京), 호는 인산(仁山)이다. 1887년 3월 1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옥제리에서 태어났다. 고제남은 족숙(族叔)인 고석진(高石鎭)의 문하에서 공부했는데, 남달리 지용(智勇)이 뛰어났다고 한다.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1907년 당시 19세의 나이로 김영백(金永伯) 부대의 좌익장(左翼將)으로 활동했으며,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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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본관은 장흥(長興)이며, 자는 희제(希齊), 이명(異名)은 자성(子聖)이다. 1875년 12월 12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 554번지[가평1길 51-3]에서 태어났다. 고제천은 1906년 4월 최익현(崔益鉉)이 전라북도 태인[현 정읍]에서 의병을 일으키자 숙부인 고석진(高石鎭)을 쫓아 의병으로 참여하였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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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본관은 장흥(長興)이며, 자는 치범(致範), 호는 죽계(竹溪), 이명(異名)은 고제만(高濟萬)이다. 1860년 8월 20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월산리 165번지에서 태어났다. 고치범은 을사늑약에 분개하여 1906년 4월 16일 최익현(崔益鉉) 의진(義陣)에 합류, 태인 의거 때 최제학(崔濟學), 최학령(崔學領) 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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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광을 시조로 하고 김인우를 입향시조로 하는 전라북도 고창군의 세거 성씨. 신라 신무왕의 셋째 아들 김흥광(金興光)이 장차 있을 국난을 예감하고 전라도 광산[지금의 광주광역시] 서일동에 자리를 잡고 은거하면서 후손들이 광산을 본관으로 삼았다. 시조의 12대손 김인우(金仁雨)는 양간공 김연(金璉)의 현손으로 1329년(충숙왕 16) 송도에서 태어나 공민왕 대에 홍건적을 물리쳐 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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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의병.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의숙(義叔)·경헌(景憲), 호는 송계(松溪). 판도판서공파(判圖判書公派)[일명 삼현파(三賢派)])의 파조 김관(金管)의 10세손으로, 아버지는 김축(金軸)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당시 80세였던 김여성(金汝聲)의 아버지 김축이 “장남은 종손이므로 노모를 모시고 집안 가솔들을 돌보라.”고 당부하고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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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흥을 시조로 하고 김세웅을 입향시조로 하는 전라북도 고창군의 세거 성씨. 김알지(金閼智)의 39대손 김시흥(金時興)이 고려시대에 공을 세워 김녕군(金寧君)으로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김해(金海)를 본관으로 하여 김수로왕계를 섬기고 김시흥계를 후김(後金)으로 여겨 오다가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혼돈이 초래되어 조선 현종 대에 이르러 시조는 달리하면서 본관은 같이하게 되었다. 조선 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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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무신.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이헌(以憲), 호는 청계(淸溪). 판도판서공파(判圖判書公派)[일명 삼현파(三賢派)])의 파조 김관(金管)의 10세손으로, 아버지는 임진왜란 때 순절한 김헌(金軒)이다. 김두남(金斗南)은 1570년(선조 3) 무과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버지 김헌이 행재소로 달려가 근왕(勤王)의 대열에 참여하고 돌아오는 길에 직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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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 본관은 울산(蔚山)이다. 1919년 10월 27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봉암리에서 인촌(仁村) 김성수(金性洙)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김상흠은 연희전문학교에 재학 중이던 1939년 12월 같은 학교 학생인 서영원(徐泳源)·김재황(金在璜)·김영하(金永河)·이동원(李東元)·민영로(閔泳魯) 등과 함께 서울 사직동에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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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의병.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원지(遠之), 호는 국재(菊齋). 집현전 학자 김양원(金暘元)이 증조할아버지로, 아버지는 참봉 김한련(金漢璉)이다. 김성진(金聲振)은 어려서부터 강개한 지기(志氣)가 넘치고 효행이 지극했는데, 아버지가 병환이 위급하자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입에 넣어 주었고, 몰래 허벅지살을 떼어내 탕으로 달여 먹임으로써 주변의 찬사가 끊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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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교육가.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호는 일우(一愚)이다. 1889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 481번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호조참판을 역임한 김준희(金俊禧)이다. 김승옥은 18세 되던 1907년에 고창 지역에 있는 한문 사숙(私塾)에서 수학하였다. 1918년 고창면사무소 면서기로 근무하다 고종 황제의 국상을 맞아 고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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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영수는 1914년 5월 9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 중산리 927번지[중산길 22-3]에서 태어났다. 1940년 12월 17일 전라북도 정읍에서 비밀 결사 단체인 구국결사단(救國決死團)을 조직한 뒤 40여 명의 동지들을 규합하여 전라북도 김제군[현 전라북도 김제시]의 일본 헌병대와 경찰서를 습격하려는 계획을 추진하다 체포되었다.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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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1896년 7월 4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무장리 219번지에서 김양현(金亮鉉)의 2남1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김영완은 1919년 고종의 국장일을 앞두고 인산(因山)에 참여하고자 서울에 올라갔다가 3·1운동에 참가한 후 귀향하였다. 이후 뜻을 같이한 이용욱(李用郁), 김용표(金容杓), 김상수(金相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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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자는 순명(舜命), 호는 후석(後石)이다. 1882년 5월 25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장두리에서 김기락(金箕洛)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김재관은 지은(智隱) 최전구(崔銓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908년 동문인 정휴직(鄭休直)·정건도(鄭建燾)·정휴익(鄭休益)·이병중(李秉重) 등과 함께 기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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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1593년 고창 유림이 참여한 임진왜란기의 의병 항쟁.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창과 장성 지역의 유림이 구국의 기치를 내걸고 왜군을 막기 위한 의병을 일으키면서 일어났다. 1차 남문창의는 1592년 8월 24일 김경수(金景壽)를 맹주로 하여 김홍우(金弘宇)·기효간(奇孝諫)·이수일(李守一) 등이 장성현 남문에 의병청을 세우고 격문을 보내 인근 고을에서 수많은 의병을 모집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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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다성을 시조로 하고 문윤국을 입향시조로 하는 전라북도 고창군의 세거 성씨. 남평문씨(南平文氏) 시조 문다성(文多省)은 472년(자비왕 15) 남평현 동쪽 큰 바위에 놓여 있던 서기 어린 함 속에서 발견되었는데, 함 뚜껑에 ‘문(文)’자가 쓰여 있어 성을 문씨로 하였다고 한다. 그 후 대아찬국사(大阿湌國師)가 되어 남평백(南平伯)에 봉해지고 삼중대광 벽상공신 대사마대장군 태사 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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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의원,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본관은 함평(咸平)이며, 자는 명중(明仲), 호는 호정(壺亭)이다. 1850년(철종 1) 9월 22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대흥리에서 태어났다. 노병희(魯炳熹)는 1888년(고종 25)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의 문하에서 한학(漢學)을 수학하였다. 1903년(고종 40) 전의(典醫)가 되었다. 1905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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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함평(咸平)이며, 자는 경희(景羲), 호는 성재(誠齋)이다. 1894년 11월 6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대흥리 31번지에서 태어났다. 노진룡은 1920년 상해임시정부 산하의 전라북도 감독부를 조직하여 총지휘 감독이 되었다. 당시 감독부에는 부감독 오의균(吳毅均), 재무 황종관(黃鍾寬)·이휴열(李休烈), 고문 강대직(姜大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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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을 시조로 하고 김자진을 입향시조로 하는 전라북도 고창군의 세거 성씨. 무장김씨(茂長金氏) 시조인 김선(金璇)[1343~1414]은 김해김씨의 시조인 가락국 김수로왕(金首露王)의 56세손으로, 고려 공민왕 때 공을 세워 장사군(長沙君)에 봉해졌고, 1375년 공민왕이 서거한 뒤 벼슬을 버리고 장사현으로 낙향하여 정착하였다.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김해김씨에서 분관하여 김선을 장사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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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 지역에 있는 국가 및 지방 지정 문화유산. 문화재는 유형에 따라 유형문화재·무형문화재·기념물·민속자료 등으로, 지정 여부에 따라 지정문화재와 비지정문화재 등으로 구분한다. 2010년 현재 고창군에는 국가지정 문화재 23점[보물 5점, 사적 5점, 천연기념물 7점, 중요민속문화재 2점, 국가무형문화재 1점, 등록문화재 2점, 명승 1점], 도 지정 문화재 54점[유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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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자는 화옥(化玉), 호는 경화(京和), 이명(異名)은 경래(慶來)이다. 도경(道京)은 아명이다. 1874년 3월 23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은사리 307번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박준식(朴準植)이다. 박도경은 한미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어려서부터 언변과 기개가 뛰어났다고 한다. 1905년 을시조약이 체결되자 고창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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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의병. 본관은 수원(水原)이고, 자는 사순(泗淳), 호는 갑운(甲雲)이다. 1856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덕산리에서 백우진(白宇鎭)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백인수는 어려서부터 효행이 지극하고 올곧은 성품을 지녔다고 한다. 1905년 10월 5일 을사조약을 결사반대하며 백성기(白性基)와 함께 국권 회복 운동을 전개하였다. 1910년 8월 29일 합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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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6년 청나라의 조선 침략으로 발생한 전쟁. 1627년(인조 5) 후금이 조선을 침입했을 때 조선은 무방비 상태로 당함으로써 후금에 대해 형제의 맹약을 하면서 일단락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조선의 여론은 군사를 일으켜 후금을 치자는 척화배금(斥和排金)[후금에 대하여 화의를 반대함]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났다. 당시 후금은 만주의 대부분을 석권하고 만리장성을 넘어 북경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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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를 시조로 하고 김추를 입향시조로 하는 전라북도 고창군의 세거 성씨. 상산김씨(商山金氏) 시조 김수(金需)는 신라 제56대 경순왕의 후손인데 선계(先系)를 알 수 없어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삼았다. 김수의 5세손인 김비궁(金非躬)이 상산부원군, 9세손 김일(金鎰)이 상락군(上洛君), 10세손 김록(金祿)이 상성군(商城君)에 잇달아 봉해져 상산에 여러 대에 걸쳐 살았으므로 후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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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이천(利川)이며, 자는 응호(應鎬), 본명은 채열(彩烈), 초명은 종채(鍾採), 별명은 응오(應五) 또는 종주(鍾珠)이다. 1881년 10월 15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백양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서상필(徐相苾)이며, 어머니는 경주김씨(慶州金氏)이다. 서종채는 어려서부터 의절(儀節)과 재덕(才德)을 겸비하였고, 특히 의술에 뛰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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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궁을 시조로 하고 김순덕을 입향시조로 하는 전라북도 고창군의 세거 성씨. 선산김씨(善山金氏) 시조 순충공(順忠公) 김선궁(金宣弓)은 김알지(金閼智)의 30세손, 문성왕(文聖王)의 8세손이다.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후백제를 정벌하면서 선산 일선군(一善郡)에 이르러 모병할 때 김선궁이 종군하기를 원하자 왕건이 환영하고 친히 어궁(御弓)을 내리고 이름을 선궁이라 지어 주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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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7년 8월 30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신평리 673번지에서 태어났다. 이명(異名)은 송한근(宋漢根)이다. 송한룡은 1944년 5월 초 신림면 신평리에 있는 장일선(張日善)의 전답에서 작업 중 주민들에게 “2차 대전에서 일제는 패망하고 왜놈들은 모두 죽여 마땅하다.”는 반일 시국담(時局談)으로 민족의식을 고취하다가 일본 경찰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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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암치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유물과 유품. 조선 후기의 무신 강응환(姜膺煥)[1735~1795]의 후손 강성욱이 보관하고 있는 유물로, 교지 6점, 초상화 2점, 서책 2점, 지도 2점 등 총 4종 12점이다.「청북변성도(淸北邊城圖)」와 「고려중요처도(高麗重要處圖)」, 그리고 『칠원정적』, 『내영정적』, 「강응환 영정」, 교지 등이 그것이다. 강응환은 177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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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거창(居昌)이며, 자는 덕현(德賢), 호는 봉암(鳳岩)이다. 1864년 11월 4일 전라북도 고창군에서 태어났다. 신종주는 1906년 12월 5일 최전구(崔銓九)와 함께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을 찾아간 뒤, 최익현에게 의병을 일으킬 뜻이 있음을 알고 가산(家産)을 털어서 군자금 5백 원을 마련하여 최전구를 통해 전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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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방경을 시조로 하고 김을만을 입향시조로 하는 전라북도 고창군의 세거 성씨. 안동김씨(安東金氏)의 시조 충렬공(忠烈公) 김방경(金方慶)[1212~1300]은 경순왕의 후손이다. 고려 시대에 삼별초와 왜구를 섬멸한 공으로 정난정국공신(定難靖國功臣)이 되어 상락군(上洛君)에 봉해졌다. 파조 익원공 김사형(金士衡)의 현손인 김을만(金乙萬)[1458~1525]이 단종이 폐위된 뒤 남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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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천서를 시조로 하고 나순효를 입향시조로 하는 전라북도 고창군의 세거 성씨. 안정나씨(安定羅氏) 시조 나천서(羅天瑞)는 나총례(羅聰禮)의 10세손인 나윤(羅允)의 둘째 아들로 1370년(공민왕 19)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올랐고 안정백(安定伯)에 봉해졌다. 후손들이 의성군 안정에 세거하면서 안정(安定)을 본관으로 하고 나천서를 1세조로 하여 대를 이어 오고 있다. 나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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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심언을 시조로 하고 김사손을 입향시조로 하는 전라북도 고창군의 세거 성씨. 영광김씨(靈光金氏) 시조 문안공 김심언(金審言)[?~1018]은 김알지(金閼智)의 후손으로 경순왕의 넷째 아들인 대안군(大安君)의 현손이다. 고려 성종 때 문과에 급제한 뒤 벼슬이 내사시랑평장사(內史侍郞平章事)에 이르렀고 오성군(筽城君)에 봉해짐으로써 후손들이 영광을 본관으로 하고 시조로 삼았다. 이후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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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6년 9월 13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 377번지에서 오연문(吳然汶)의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사촌형인 오의균(吳毅均)도 독립운동가이다. 오동균은 어려서 사촌형 오의균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919년 3월 전국에서 만세 운동이 일어나자 오동균은 김승옥(金升玉)과 함께 「독립선언문」과 「국민휘보(國民彙報)」, 「조선독립가(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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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창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함양(咸陽)이며, 자는 응천(應天), 호는 강재(剛齋), 이명(異名)은 경환(京煥)·길환(吉煥)이다. 1863년 11월 12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남산리 479번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오시만(吳時晩)이다. 오장환은 1907년 고종의 강제 퇴위와 군대 해산이 자행되자 기삼연(奇參衍)·전해산(全海山) 등과 전라도 장성·고창·영광에서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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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지를 시조로 하고 김질을 입향시조로 하는 전라북도 고창군의 세거 성씨. 울산김씨(蔚山金氏) 시조 김덕지(金德摯)는 신라 경순왕의 둘째 아들로 고려 태조에게 신라를 양위할 때 힘을 다하여 말리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자 형인 마의태자와 함께 금강산으로 들어갔다고 하나, 그 행적에 대해서는 자세하지 않다. 14세손인 김환(金環)은 고려 시대에 벼슬이 삼중대광 영도첨의사에 이르렀고 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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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유금동은 1909년 9월 15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남산리에서 태어났다. 1929년 11월 3일에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일어난 것을 전해들은 유금동은, 고창고등보통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30년 1월 20일 동급생 유일석(柳日錫)·윤정하(尹鼎夏) 등과 함께 동교생들의 동조 시위를 주동하였다. 그러고는 곧 무기 휴학을 단행하면서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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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무송유씨 시조. 본관은 무송(茂松). 자는 구수(龜壽). 고려 태사(太師) 유금필(庾黔弼)의 5세손이다. 유녹숭(庾祿崇)은 문종 때 학행으로 천거되어 벼슬길에 올랐다. 1099년(숙종 4) 우산기상시(右散騎常侍)가 되었다가 1102년(숙종 7) 좌산기상시로 자리를 옮겼다. 그 해 가을 지서북면병마사(知西北面兵馬使)를 거쳐 추밀원부사 겸 태자빈객를 역임한 뒤 무송부원군(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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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유장렬은 1878년 12월 5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봉산리에서 태어났다. 의병장 이석용(李錫庸) 휘하의 부장으로 항일 운동을 전개하다가 1912년 항일 비밀 결사 단체인 독립의군부(獨立義軍府)에 가입,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에게 국권 반환 요구서 및 일본군 철병 요구서를 제출하였다. 1914년 한훈(韓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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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유판술은 1905년 10월 1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월산리에서 태어났다. 흥덕보통학교 재학 중인 1920년 3월 10일 밤, 유판술은 3·1운동 1주년을 맞아 이종철(李鍾哲)·이대성(李大成) 등과 함께 이종주(李鍾株)의 집에 모여 태극기 12매와 ‘대한독립’이라고 쓴 깃발을 만들고, 깃발 뒷면에는 “이를 파기하는 자는 참살하겠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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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고흥(高興)이며, 이명(異名)은 유복일(柳福日)이다. 1893년 10월 25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에서 태어났다. 유희영은 1919년 8월 강대선(姜大宣)의 권유로 대한독립애국단에 가입하여 외교원으로 활동하였다. 대한독립애국단은 1919년 5월 서울에서 신현구(申鉉九) 등이 주도하여 결성한 조직으로, 서울에 본부를 두고 강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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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4년 이괄 인조반정(仁祖反正)의 논공행상(論功行賞)에 불만을 품고 일으킨 의병 항쟁. 선조가 승하한 후 광해군이 즉위하자 정인홍(鄭仁弘)·이이첨 등의 대북 정권은 왕권의 확립을 위해 서인과 남인 등 다른 붕당의 의견을 무시하고, 소북계의 지지를 받은 영창대군을 살해하고 인목대비(仁穆大妃)를 폐하는 등 무리한 조치를 취하였다. 이에 이귀(李貴)·최명길(崔鳴吉)·김자점(金自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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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4년 10월 4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무장리에서 태어났다. 이명(異名)은 이용욱(李庸郁)이다. 이용욱은 1919년 3월, 광무황제(光武皇帝)[고종]의 국장 참관 차 상경하여 서울의 독립 만세 시위에 참여하고 귀향한 김영완(金永玩)을 만나 서울의 정황을 듣고, 김용표(金容杓)·김상수(金相洙)·이준구(李準求)·김진호(金辰鎬)·박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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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의신은 1922년에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평지리 346번지에서 태어났다. 상해임시정부 국무위원인 숙부 이동녕(李東寧)을 찾아 중국으로 건너간 뒤 항일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1944년 3월 15일 중경(重慶)에 있는 광복군 제1지대에 입대하여 활동하였다. 1977년 대통령 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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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함평(咸平)이며, 이명(異名)은 이종규(李鍾奎)이다. 1901년 3월 20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월산리 351번지에서 태어났다. 이종주는 1920년 3월 10일 밤 1919년에 일어난 3·1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이종철(李鍾哲)·이대성(李大成)·유판술(劉判述) 등과 함께 성내면사무소에 숨어 들어가 등사기를 훔쳐 「독립선언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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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함평(咸平)이다. 1896년 2월 26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양계리 363번지[내토1길 56-1]에서 출생하였다. 이종택은 1919년 전국적으로 3·1운동이 일어나자 면사무소의 등사기를 탈취하여 「독립선언문」과 취지서 등을 복사하여 살포하였다. 같은 해 11월 상해임시정부의 연통제(聯通制)에 따라 조직된 전라북도 감독부 고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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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8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신평리에서 태어났다. 이명(異名)은 이판오(李判五)이다. 이화백은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도발하고 ‘근로보국대’라 하여 강제로 노동력을 착취하자, 고향에서 “일제는 태평양전쟁에서 패망하고 왜놈들은 모두 죽어 마땅하다.”는 등 일제에 반대하는 시국담을 펴며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이 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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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왜군의 조선 침략으로 일어난 전쟁. 임진왜란은 1592년(선조 25)에서 1598년(선조 31)까지 2차에 걸쳐서 조선을 침략한 일본과의 전쟁이다. 제1차 침략이 임진년에 일어났으므로 임진왜란이라 부르며, 2차 침략이 정유년에 일어났으므로 정유재란이라 하는데, 이를 통칭하여 임진왜란이라고 한다. 이때에 조국을 위기로부터 구하고자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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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7년 후금이 침입해 일어난 전쟁. 만주에 흩어져 살던 여진족은 조선과 명나라가 임진왜란으로 국력이 피폐해진 틈을 타 건주위(建州衛) 여진의 추장 누르하치를 추대해 여러 부족을 통합, 1616년(광해군 8) 후금을 세우고 비옥한 남만주의 농토를 탐내어 명나라와 충돌하게 되었다. 명나라는 양호(楊鎬)를 요동경략(遼東經略)으로 삼아 10만 대군으로 후금 토벌에 나서는 한편, 조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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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동성동본의 사람들로 형성된 촌락. 집성촌은 성(姓)과 본(本)이 같은 부계의 혈족들이 대대로 모여 사는 촌락을 의미한다. 마을을 주도하는 성씨가 상대적으로 결속하면서 토성과 세거성씨가 중심이 된 동족 마을이 발달하게 되었다. 1.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수록된 성씨 『세종실록지리지』에 실린 고창 지역의 세거성씨를 보면 고창현의 토성은 오(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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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대를 시조로 하고 김여의를 입향시조로 하는 전라북도 고창군의 세거 성씨. 청도김씨(淸道金氏) 시조 영헌공(英憲公) 김지대(金之岱)는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인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悅)의 8대손으로, 문과에 급제하여 경상도안찰사·정당문학(政堂文學)·이부상서를 거쳐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로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를 지내고 오산군(鰲山君)[오산은 지금의 청도]에 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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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우서(禹敍), 호는 지은(智隱)이다. 1850년 6월 5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학천리 169번지에서 태어났다. 최전구는 1905년 을사조약으로 국권이 상실되자 이에 분격하여 이듬해 최익현(崔益鉉)이 전라북도 태인[현 정읍 지역]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키자 이에 가담하였다. 이후 최익현 의병대가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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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 지역에 연고를 두고 국가와 왕을 위해 충성을 바친 사람. 성리학을 근본 학문으로 채택한 조선은 충효를 가르쳐서 나라를 유지하려고 하였다. 신하와 백성들에게 국가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기 전에 먼저 부모에 대한 효를 가르쳤는데, 효 사상이 외연을 넓히면 그것이 곧 국가에 대한 충성으로 귀일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조정에서는 매년 방백과 수령에게 지시하여 효자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