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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문신. 호는 송학(松鶴). 어릴 때부터 학문이 뛰어나 20세에 초시에 합격하고 29세 때에 대과에 합격하였다. 이후 동관국승을 지내다가 외직을 거쳐 내직인 나시랑·예시랑에 영전되었다. 이후 영암군수에 임명되어 임기를 마치고 내직으로 돌아와 태상예빈 등을 거쳐 승정원우승지에 올랐다. 그 후 신병으로 현직에서 물러났다가 장흥부사에 임명되었으나 얼마 후 집에 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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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동진농업주식회사가 전라북도 김제시 광활면 지역에서 3년간 축조하여 농토를 조성한 간척 사업. 전라북도 김제시 광활면은 김제시 중심지에서 약 15㎞ 거리에 위치한 거북이 형상을 한 지역이다. 동쪽의 김제시 성덕면, 북쪽의 김제시 진봉면과 경계를 이루면서 남서쪽으로는 동진강으로 비롯되는 서해와 인접한 간척지로서 경사가 거의 없는 평야지대이다. 또한 지방도 702호선이 만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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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말과 기억에 의존하여 전해 내려오는 민간 지식의 총칭. 구비전승은 크게 문학적 성격을 지닌 구비문학과 비문학적 성격의 말로 된 생활 기술 지식을 총칭하는 말로 쓰인다. 구비전승 하면 떠오르는 구비문학의 경우 전설·신화·민담 등 문학적 요소를 담고 있는 설화와 노동요·만가·타령 등 노래의 형식을 빌린 민요[口傳歌謠], 그밖에 수수께끼·속담 등으로 나뉜다. 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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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귀신사 앞에 있는 고려시대 승탑. 부도는 승려의 무덤을 상징하며 그 유골이나 사리(舍利)를 모시는 묘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당나라로부터 선종이 들어온 9세기 이후에 각 구산선문(九山禪門)에서 법통(法統)이 이어지면서 불상 숭배보다는 조사(祖師)들의 사리와 유골을 담은 묘탑이 중요한 예배 대상이 되어 많은 부도가 건립되었다. 일반적으로 부도는 석탑과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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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귀신사에 있는 고려시대 석수(石獸). 현재의 귀신사는 백제가 망하고 16년 뒤인 676년 국신사(國信寺)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으며 고려시대에는 구순사로 바뀌었다가 조선시대에 귀신사(歸信寺)로 바뀌었다. 귀신사 석수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석수가 놓여 있는 지형은 모악산의 자락에서 구순혈(狗脣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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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에서 태어난 근세 실학의 대가 석정(石亭) 이정직(李定稷)은 근대 성리학자로서 크게 이름을 떨쳤다. 김제 지역의 학풍과 학통을 크게 형성한 대학자로 수많은 제자를 길러 냈으며, 그 학문적 영향력이 지금까지도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석정 이정직은 1841년(헌종 7)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상정리 요교[일명 여꾸다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신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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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동학농민운동가. 김덕명(金德明)의 본관은 언양(彦陽)이고, 초명은 준상(峻相), 호는 용계(龍溪)이다. 동학교문에서는 김필상(金弼相)이란 이름으로도 불렸다. 아버지는 김한기(金漢驥)이고 어머니는 파평윤씨이며, 동생은 김인상(金寅相)이다. 장남은 김홍구(金洪九)이며 손자는 김병욱(金炳旭)이다. 묘소는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원평리에 있다. 김덕명은 금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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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김제시 죽산면에서 활동한 의병. 김성언(金成彦)은 1847년 지금의 경상남도 창원시 진동에서 태어났으며, 젊은 시절 마을에서 훈장으로 후학을 지도하였다. 1906년 국운이 기울자 창원과 거창 등지에서 왜병과 항전하는 등 용맹을 떨쳤다. 그러나 왜병의 감시와 핍박이 심해지자 가족과 가산을 버려 둔 채 고향을 떠나 김제의 죽산면으로 이주하였다. 이후 은둔 생활을 하면서 비밀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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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사회운동가이자 행정가. 김일식(金一植)의 본관은 경주(慶州)로,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 서포리에서 태어났다. 8·15해방 후 초대 광활면장을 역임하였다. 김일식은 1923년 일본인 재벌 아부방차랑(阿部房次朗)이 지금의 광활면을 간척지로 만드는 공사를 벌일 때 아버지를 따라 광활면으로 이사를 왔다. 광활면은 당시 동진강 하류의 개펄이었는데, 아부방차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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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출신의 법조인. 김홍섭(金洪燮)은 1915년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원평리에서 태어나 1965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죄수들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으로 인해 ‘수인(囚人)들의 아버지’, ‘법의 속에 성의(聖衣)를 입은 사람’, ‘사도법관(使徒法官)’ 등의 칭호를 얻었다. 김홍섭은 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할아버지에게서 한학을 배웠다. 20세가 되던 1935년 전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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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문신. 본관은 나주(羅州). 증조할아버지는 나송기(羅松奇)이고, 할아버지는 나석(羅碩)이다. 아버지는 조선 건국 후 태조가 우의정을 제수하고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고 고향에서 생을 마감한 낙천와(樂天窩) 나중우(羅仲佑)이다. 1419년(세종 1) 기해 식년시 병과에 5위로 급제하였다. 1420년(세종 2) 권지저작(權知著作)으로 통사랑봉상시녹사(通仕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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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효자.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중장(仲章), 호는 이이당(怡怡堂)·구산처사(龜山處士). 아버지는 건계(建溪) 나안세(羅安世)이고, 형은 행정(杏亭) 나응허(羅應虛)이다. 나응삼(羅應參)은 아버지가 병환으로 자리에 눕자, 그 변을 직접 맛보며 병세를 살폈고, 돌아가시자 3년 동안 여묘살이를 하였다. 또한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한결같이 예법에 따랐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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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농업 개척자. 본관은 나주(羅州). 호는 월암(月庵). 아버지는 나창일(羅昌一)이다. 나휘소(羅徽素)는 1741년 김제군 읍내면[현재의 김제시 신월동]에서 태어났다. 벽골제 내에 위치한 표박평(瓢朴坪)은 남쪽으로는 정읍시 감곡면 삼평리, 동쪽으로는 봉남면과 황산면, 북쪽으로는 김제시에 접하는 넓은 평야지만 용배수 시설이 전혀 되어 있지 않던 시절, 조금만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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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우익 인사 등이 인민군과 지역 좌익에 의해 학살된 사건.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한 뒤 우리나라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도 좌우익의 대립이 격렬했고, 일제강점기 이후 탄압을 받았던 지역 좌익 및 지역 주민들은 북한군이 들어오자 우익 인사들을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1950년 9월 27일 당시 김제군 만경면의 지주 정판석 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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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의 민간에서 전승되고 있는 생활 풍속. 민속은 한 문화권 내에서 다수가 향유하고 있는 전통적이고 보편적인 문화로서 민중들이 자연적·역사적·사회적 환경에 대처하고 적응하는 지혜와 믿음으로 엮어낸 생활양식이다. 민속이란 민속학에서 포괄적인 용어로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 김제 지역의 민속도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는데, 신앙·전설·풍속·생활양식·관습·종교의례·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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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무신이자 의병.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춘보(春甫). 이조판서를 지낸 박초(朴礎)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참봉(參奉) 박효량(朴孝亮)이다. 박영란(朴英蘭)은 지금의 김제시 검산동에서 태어났다.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청선전관(宣傳官廳宣傳官)을 지냈으며, 훈련원주부(訓練院主簿)에 임명되었다. 임진왜란 때 부장으로 의주 용만관까지 국왕을 호종하였다.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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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효화(孝華), 호는 신촌(薪村). 고려 말의 유신(儒臣) 정재(鄭齋) 박의중(朴宜中)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참봉을 지낸 박이(朴頤)이다. 박정영(朴廷榮)[1559~1592]은 지금의 김제시 흥사동 제내마을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재종숙인 굴지당(屈指堂) 박석정(朴石精)에게 글을 배워 11살 때 『주역(周易)』을 알고 경전(經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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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완주 출신의 승려이자 불교 지도자. 박한영(朴漢永)의 본명은 정호(鼎鎬), 호는 석전(石顚)이며, 후일 당호(堂號)를 영호(映瑚)라 하였다. 한영(漢永)은 자(子)이다. 1870년 전라북도 완주에서 태어났지만 주로 전주, 김제 등에서 활동하였다. 박한영은 어머니가 위봉사(威鳳寺)에서 들고 온 생사법문(生死法門)에 감명을 받아 출가를 결심하였다. 19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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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김제에서 활동한 승려. 성은 진(陳), 이름은 광세(光世). 자는 의상(宜祥)이다. 부설은 경주 출신으로 신라 선덕여왕 때 태어났다. 20세가 되던 해에 불국사 원정선사(圓淨禪師)를 찾아가 출가하게 되었다. 일심으로 인내하는 사찰 생활과 부처의 모습을 생각하며 정신을 집중하여 염불하고 불경을 읽는 등 수도 생활에 정진하여 경학(經學)이 높은 경지에 이르러 날마다 그의 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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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전개된 역사 이전 시대의 변천 과정. 선사시대는 고고학적 편년법을 적용하여 구석기·신석기·청동기시대와 초기 철기시대로 구분된다. 구석기시대는 약 100만 년 전부터 후빙기에 들어선 약 1만 년 전까지를 말한다. 신석기시대는 7000~8000년 전부터 시작되는데 이때부터 인간은 농경사회에 들어서고, 석기도 타제석기에서 마제석기로 변화하며, 사냥 도구 대신 돌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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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시 교동 일대에 자리 잡은 성산(城山)은 김제시의 주산으로 해발 고도 30~41m의 야트막한 구릉 산지이다. 전망대에 오르면 사방 약 40㎞를 관망할 수 있다. 성산 주위에는 사적 제482호인 김제군 관아와 향교, 벽성서원(碧城書院), 용암서원(龍巖書院), 홍심정(紅心亭) 등 김제의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한 전통문화 유교 자산이 잘 남아 있어 김제시의 정체성을 말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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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유학자. 송기면(宋基冕)의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군장(君章), 호는 유재(裕齋)이다. 1882년 김제시 백산면 상정리 요교마을에서 아버지 송응섭(宋應燮)과 어머니 전주최씨 사이에서 5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절의와 순국의 의리를 강조한 교육자이자 만인에게 사표(師表)가 되는 호남의 거유(巨儒)로서 숭앙받았다. 송기면은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하였으며, 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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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행해지는 식품과 음식에 관련된 모든 활동. 김제 지역은 천혜의 지리적 여건과 토질 그리고 알맞은 기후로 일찍부터 농업이 발달하였다. 따라서 김제는 일찍이 농업의 발상지로 여겨져 왔다. 더욱이 백제시대에 호남평야의 중심지인 금만평야의 복판에 수리 토목을 일으켜 벽골제(碧骨堤)라는 저수지를 시축하고 우리나라 수전의 기원을 이루어 놓았다. 이로 말미암아 주곡인 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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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무신.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대훈(大勳). 아버지는 안경신(安敬信)이다. 안위(安衛)[1563~1644]는 지금의 김제시 백산면 하정리에서 태어났다. 1589년(선조 22) 정여립(鄭汝立)의 옥사에 무고되어 용천에 유배되었는데, 임진왜란으로 도성이 함락되자 배소를 이탈한 뒤 평양에 도착해 어느 병사의 막하에 배속되었다. 1592년 영유무과(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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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의병. 금산의 웅치전투는 관군과 의병이 호남을 지키기 위해 혈투를 전개한 싸움이다. 왜군이 충청도 영동의 황간 순양을 거쳐 1592년 6월 22일(음) 제원 천내강의 저곡나루로 금산성을 공격하여 오자 금산군수 권종이 저곡산성을 의지하여 왜군과 전투를 벌였으나 전사하였다. 6월 23일 금산성이 함락되고 이곳을 근거지로 하여 6월 말 용담과 진안을 거쳐 전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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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몸에 걸치거나 입었던 의복 및 이와 관련한 생활 풍속. 의생활은 주로 지리·기후·지형과 같은 일정 지역의 자연적 환경이나 경제·사회·문화와 같은 사회적 환경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환경의 차이에 따라 각 지역의 의생활은 조금씩 달리 나타날 수 있으며, 이러한 현상은 특히 평상복보다는 의례복과 관련된 의생활에서 조금 더 두드러질 수 있다. 즉 관례복·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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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관료. 장현식(張鉉植)은 1896년 9월 17일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서도리[구 상신리]에서 만석꾼의 아들로 태어났다. 중앙고등보통학교[지금의 중앙고등학교]가 설립될 당시 거액을 기부하였으며, 고려대학교가 설립될 당시에도 재단에 사재를 기부하여 교육을 통해 침체된 민족의 기운을 부흥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동아일보사가 창간될 당시에는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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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김제 지역에 낙향한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 할아버지는 정지형(鄭之衡)이고, 아버지는 정승보(鄭承甫)이다. 부인은 김제조씨 대호군 조기(趙岐)의 따님이다. 1344년(충목왕 즉위년) 대호군(大護軍)이 되고, 1356년(공민왕 5) 강릉교주도도지휘사(江陵交州道都指揮使)를 지냈다. 후에 김제로 낙향하여 벽골(碧骨) 호숫가에서 말년을 보냈다. 음률(音律)에 밝고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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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현섭(鄭賢燮)의 본관은 동래이고, 자는 윤옥(允玉), 호는 화암(華岩)이다. 1896년 9월 14일에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 교동월촌동에서 태어났다. 정화암(鄭華岩)이라고도 잘 알려져 있는데, ‘화암’은 중국에 건너가면서 부르게 된 호이다. 1919년 고향에서 3·1운동에 참가하였다. 1920년 극동을 시찰하는 미국의원단의 한반도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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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김제 출신의 무신. 본관은 김제(金堤). 아버지는 김제조씨의 시조인 조연벽(趙連壁)이다. 조기(趙岐)는 1255년(고종 42) 전라북도 김제에서 태어났으며, 18세 때인 1273년(원종 13) 무과에 급제하였다. 성품이 강직한데다 무인답게 내유외강하여, 안으로는 부모에 지극한 효를 행하고 밖으로는 나라에 충성을 다했다. 몽고군이 우리 영토를 침범하자 용감하게 참전하여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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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한학자이자 서화가. 조기석(趙沂錫)의 본관은 김제(金堤), 호는 심농(心農)이다. 아버지는 당대 명필로 알려진 조주승(趙周昇)이다. 아버지의 재능을 이어받아 해서(楷書)와 행서(行書)에 뛰어났으며 사군자 솜씨 또한 훌륭하였다. 1931년 제10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죽(竹)」이라는 제명으로 입선하였다. 묵죽도(墨竹圖)는 당시 김제를 중심으로 하여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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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학자. 본관은 김제(金堤). 자는 가헌(可獻), 호는 백천당(百千堂). 아버지는 공조참판을 역임한 조원우(趙元祐)이며,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조윤침(趙潤琛)[1476~1545]은 어려서부터 글을 즐겨 읽고, 효성 또한 극진하여 주위의 칭송이 자자했다. 사람을 대하는 데 성(誠)과 예(禮)를 다했고, 생활은 한 치도 예의범절에 어긋남이 없었다. 중종 때에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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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교육 선구자. 자는 경안(景安), 호는 유천(瑜泉)이다. 사재를 털어 김제중학교를 설립하는 데 앞장선 지방 교육의 선구자로 묘소는 전라북도 김제시 교동월촌동 사직단에 자리하고 있다. 조재돈(趙在敦)은 1881년 김제군 읍내면[현재의 전라북도 김제시 교동]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몸가짐이 단정하여 남의 귀감이 되었으며, 효성도 지극하여 동네 사람들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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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교육 선구자. 자는 화숙(和叔), 호는 춘강(春岡)이다. 사재를 털어 김제농업고등학교를 설립하는 데 앞장선 지방 교육의 선구자로 묘소는 전라북도 김제시 교동월촌동에 자리하고 있다. 조재식(趙在軾)은 1898년 김제군 읍내면[현재의 전라북도 김제시 제월동]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돈독하였다. 사람을 대할 때는 한결같이 성의와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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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살았던 열녀. 김해김씨는 1901년 충청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김만수로, 18세에 전라북도 김제에 살고 있던 조재준과 결혼하였다. 결혼 후 남편의 고향집에서 신혼살림을 차린 김해김씨는 남편과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즐겁게 생활하였다. 그러던 어느 해 남편이 갑작스럽게 신병으로 자리에 누웠다. 백방으로 약을 구하여 정성을 다하였으나 백약이 무효로 차도가 없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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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김제(金堤). 자는 복행(福行), 휘(諱)는 환복(煥福). 아버지는 조익성(趙翊成)이다. 조환용(趙煥容)은 1823년 전라북도 김제에서 태어났다. 그가 활동하던 조선 후기에는 지방의 납세 물품을 납세자들이 직접 지정된 창고가 있는 데까지 운반하게 되어 있었다. 배를 이용하여 물품을 운반하는 군현민은 그나마 고통이 덜하지만 김제와 금구, 만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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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의 주택과 주거지에서의 삶. 김제 지역에는 손효성 가옥, 김제 신풍동 일본식 가옥, 오영순 가옥, 최희성 가옥, 함태영 가옥, 황병주 가옥 등의 전통 가옥과 근대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가옥이 많이 남아 있다. 여기에서는 전통 가옥의 형태가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 있는 김제시 장화동 후장마을의 가옥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후장마을 가옥의 평면 구성과 규모 등을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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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36호로 지정된 금산교회(金山敎會)는 1905년 미국 선교사 테이트(Lewis Boyd Tate)가 처음 세운 뒤, 1908년 새 건물을 마련하여 지금의 자리로 옮겨 왔다. 교회 건물은 한옥으로 ㄱ자형인데 이러한 건축 구조는 남녀 신도의 자리를 분리하기 위한 것으로, 당시 남녀유별이라는 전통 사회의 관습을 해치지 않으려는 방안이었다. 1882년 조미 수호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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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출신의 법조인이자 독립운동가·정치가. 함태영(咸台永)의 본관은 강릉(江陵), 호는 송암(松岩)이다. 1873년 전라북도 김제시 진봉면 정당리에서 태어났다. 1889년에 아버지 함우택(咸遇澤)이 선략장군행용양위부사관(宣略將軍行龍讓衛副司官)에 제수되자 함께 한양으로 거처를 옮겼다. 1895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법조 교육기관인 법관양성소에 입학하여 6개월 과정을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