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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거창을 중심으로 활동한 의병장. 강진여(姜辰汝)[?~1908]는 문태수(文泰洙) 의병장의 부장으로 활동하였다. 1908년 4월 10일 장수읍을 습격한 후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 마을에 나타나 군자금을 모집하던 중 1908년 4월 18일 신종삼의 밀고로 거창 경찰 분서에 체포되었다. 호송되는 도중 탈출을 시도하다 일본 경찰에게 사살되었다. 강진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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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파리 장서 운동 등 유림의 독립운동을 이끈 거창 거주 유학자. 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영남 유림을 대표하는 학자로 지칭되는 곽종석은 거창에서 태어났으며 장년기에 거창 지역에 이주하여 연구와 강학은 물론, 현실 문제에도 적극 개입하는 등 학문과 실천에 있어 큰 업적을 남겼다. 특히 곽종석이 주도하여 다수의 거창 유생이 가담하였던 1919년 파리 장서 운동은 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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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개항기 거창 지역과 덕유산을 중심으로 활동한 의병. 김동신(金東臣)[1871~1933]은 경상남도, 전라북도의 접경 지대와 덕유산, 지리산 인근 지역을 중심으로 활약한 의병장이다. 김동신은 1906년 음력 3월경 약 30명의 의병을 이끌고 덕유산에 있는 자원암(紫原庵)으로 내려와 머무르면서 거사를 준비하였다. 군대 해산 후 의병 항쟁이 본격화되자 1907년 8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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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출신의 정치인. 김동영(金東英)[1936.12.23~1991.8.19]은 경상남도 거창군에서 태어나 거창 농림 고등학교를 거쳐 동국 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부산 동성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의 비서관으로 정계에 입문해 제9대, 제10대, 제12대, 제13대에 걸쳐 국회 의원을 지냈다. 민주 자유당 원내 총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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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거창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월북 시인. 일제 강점기에 거창에서 태어나 독립운동으로 체포되었다가 해방 후 활발한 문학 활동을 한 월북 시인이다. 김상훈(金尙勳)[1919.7.10~1987.8.31]은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일부리에서 가난한 농민 김채완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천석군의 대지주였던 큰아버지 김채환의 양자로 입양되었다. 1933년 가조 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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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거창군 남상면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재명(金在明)[1852~1923]의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회현(晦賢), 호는 일산(一山)이다. 김재명은 한말과 일제 강점기 초에 활동하였던 거창 지역 유생으로, 장복추(張福樞)에게서 배웠다. 경북 예천 출신의 장복추는 81세 때 거창군 가조면으로 이주하여 이진상(李震相) 학맥과도 빈번히 교류하였다.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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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거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전국적인 3·1 운동과 흐름을 같이하여 1919년 3월 21일 거창군 가조면 석강리에서는 지역 주민들이 마을 어귀 정자나무 아래에 모여 거창 3·1 만세 운동을 논의, 3월 22일 거창읍 장날 거사를 결정하였다. 그 과정에서 대표자와 5인의 책임 대표를 선출했는데, 김채환은 거창 3·1 만세 운동의 주모자 김호(金濩)의 아들이다. 아버지의 뜻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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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거창을 중심으로 활동한 의병장. 김천만(金千萬)[1862~1910]은 1907년 11월부터 경상남도 일대에서 부하 30여 명을 이끌고 경상남도 안의군, 삼가군, 합천군, 함양군 등지를 거점으로 의병 활동을 하였고, 1909년 3월부터 10월까지는 김유준(金有俊), 오낙삼(吳落三), 심낙준(沈落俊) 등과 함께 거창 지역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교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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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의 향토 문화재 보존, 향토지 편찬, 거창 박물관 설립에 기여한 의사이자 향토 문화인. 김태순(金泰淳)[1926~2008]의 본관은 선산(善山)이다. 김태순은 1926년 9월 28일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서변리 284번지에서 태어났다. 1939년 3월 거창 심상 소학교, 1943년 3월 진주 공립 중학교, 1949년 6월 세브란스 의과 대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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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거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3월 21일 가조면 석강리의 지역 주민들이 정자나무 아래에 모여 거창 3·1 만세 운동을 논의하여, 3월 22일 거창읍 장날 거사를 결정했다. 그 과정에서 대표자와 5인의 책임 대표를 선출했다. 김호는 책임 대표 5인[오문현, 어명철, 최영순, 김채환, 김호] 중 한 명이다. 당시 지방 선비로 존경을 받았으며 만세 운동을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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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거창 덕유산을 중심으로 활동한 의병장. 문태수(文泰洙)[1880~1913]는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 출신의 의병장으로, 1906년 이후 덕유산을 중심으로 의병 투쟁을 전개하였다. 1908년 덕유산 의병 연합 부대를 조직하고, 경부선 이원역을 공격하는 등 활발한 의병 활동을 하였다. 문태수의 본관은 남평 문씨(南平文氏)로, 문익점(文益漸)의 23세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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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거창군 남하면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종권(朴鍾權)[1861~1927]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자는 치종(致宗), 호는 회우(晦宇)이다. 1861년 4월 20일 거창군 남하면 양항리 상촌[전촌] 마을에서 출생하여, 1927년 6월 10일 사망하였다. 본관은 밀양이다. 박종권은 한말과 일제 강점기 초에 활동하였던 거창 지역 유생으로, 면우(俛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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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개항기 거창을 중심으로 활동한 의병장. 박춘실(朴春實)[1875~1914]은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의병을 일으켜 5년간 경상남북도 및 전라북도 등지를 횡행하며 일본군과 60여 회 교전 또는 습격 등을 감행하여 수백 명을 살해하고 많은 무기를 노획하였다. 1909년 체포되어 교수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1914년 감옥 벽을 파괴하고 100여 명의 동지들을 탈옥시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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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출신의 독립운동가. 변양석(卞穰錫)[1858~?]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자는 명원(鳴遠), 호는 구당(苟堂)이다. 변양석은 한말과 일제 강점기 초에 활동하였던 거창 지역 유생으로, 윤주하(尹胄夏)와 장복추(張福樞)에게서 배웠다. 거창군 남하면의 윤주하는 이진상(李震相)의 문인으로 곽종석(郭鍾錫)과 동문이었다. 경상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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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출신의 정치인. 서한두(徐漢斗)[1917.4.27~1977.11.24]는 경상남도 거창군에서 태어나 해방 후 대동 청년단 거창읍 단부 단장, 대한 청년단 거창군 단부 단장, 국민회 거창군 지부장을 지내고 1952년 초대 거창읍 의회 의원, 1958년 제4대 국회 의원을 역임하였다. 서한두는 경상남도 거창군에서 태어나 거창 공립 농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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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개항기 거창을 중심으로 활동한 의병장. 성문길(成文吉)[?~?]은 김동신(金東臣) 의병장의 비장(裨將)으로 합류하여 거창 일대에서 활약한 의병이다. 1908년 6월 김동신이 체포된 후에는 독자적으로 의병 활동을 전개하여, 차은표(車恩表)와 함께 경상북도 성주에서 활약하였다. 성문길은 경상북도 지례군[현 경상북도 김천시] 출신으로, 1894년 동학 농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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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의원과 경상남도 도지사, 국토 통일원 장관을 역임한 거창군 위천면 출신의 정치학자이자 정치인. 신도성(慎道晟)[1918~1999]은 거창군 위천면에서 태어나 일본 도쿄 제국 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연희 전문학교 교수, 서울 대학교 정치과 주임 교수, 이화 여자 대학교 정치 외교학과장,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을 지냈다. 1954년 거창에서 제3대 국회 의원에 당선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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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거창 지역에서 의용군으로 활동한 항일운동가. 신정용(愼正用)의 아들이다. 1898년 2월 7일에 거창군의 하동에서 태어나 1959년 5월13일에 사망하였다. 1919년 8월 경남 거창군 거창면에서 이덕생(李德生)·김태연(金泰淵) 등이 국권 회복 운동에 필요한 군자금과 의용병(義勇兵)을 모집하여 중국 만주에 있는 군정서(軍政署)에 파송할 계획을 세우자 신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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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거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전국적인 3·1 운동과 흐름을 같이하여, 1919년 3월 21일 가조면 석강리에서는 지역 주민들이 마을 어귀 정자나무 아래에 모여 거창 3·1 만세 운동을 논의하였다. 그리고 3월 22일 거창읍 장날 거사를 결정했다. 그 과정에서 대표자와 5인의 책임 대표를 선출했다. 신병희는 5인 대표 중 한 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만세 운동의 준비 과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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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거창군에서 태어나 중국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 신성(慎晟)은 1912년 경상남도 거창군에서 태어나, 1932년 한인 애국단(韓人愛國團)을 거쳐, 1934~1935년 김구의 낙양 군관 학교, 김원봉의 조선 혁명 간부 학교를 졸업하였다. 1937년 중일 전쟁 발발 후 중국 공산당 팔로군 산하 조선 의용군으로 만주에서 활동하였다. 1912년 거창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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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출신의 항일 독립운동가. 신숙범(慎淑範)[1920~1998]의 본관은 거창이다. 1920년 6월 13일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에서 태어났다. 학업 성적이 우수했던 신숙범은 가조 공립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36년 4월 명문인 경기 공립 중학교[현 경기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서울에 유학하였다. 하지만 빈곤한 농가 출신으로 학자금이 부족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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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출신의 항일 독립운동가. 신종섭(辛鍾燮)[1888~1920]의 본관은 거창(居昌)이며, 1888년 1월 25일 경상남도 거창군의 천외방 중동 마을[지금의 거창군 거창읍 대평리]에서 태어났다. 유소년 시절이나 국내에서의 행적에 대해서는 알려진 내용이 거의 없다. 서른 살 즈음이던 1910년대 중반 무렵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東京]에서 유학 생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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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대 국회 의원과 제7대 농림부 장관을 지낸 거창 출신 정치인. 신중목(愼重穆)[1902~1982]은 일제 강점기 거창군 서기, 거창읍 협의원을 지냈고, 해방 후 거창 군수, 남조선 과도 입법 의원 민선 경상남도 의원, 제2대 국회 의원, 국민회 경남 본부 부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50년대 제7대 농림부 장관, 자유당 재정부장, 1960년대 농업 협동조합 중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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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초대 경상남도 도의원과 1960년 제5대 국회 의원을 지낸 거창 출신 정치인. 신중하(慎重夏)[1918~1991]는 거창에서 태어나 홍익 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1952년 초대 경상남도 도의원, 민주당 거창군당 위원장, 1960년 제5대 국회 의원, 1970년 민주 통일당 정치 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신중하는 1918년 5월 5일 거창군에서 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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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직후에 거창군 인민 위원장을 지낸 독립 운동가. 일제 강점기에는 3·1 운동을 벌이고, 신간회와 농민 조합에서 활동하였고, 해방 후에는 1945년부터 1946년까지 거창군 인민 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신학업(申學業)[1901~1975]은 1901년 12월 16일 경상남도 울산군 언양면 서부리 156번지에서 태어났다. 1917년 언양 공립 보통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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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거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전국적인 3·1 운동과 흐름을 같이하여 1919년 3월 21일 거창군 가조면 석강리에서는 지역 주민들이 마을 어귀 정자나무 아래에 모여 거창 3·1 만세 운동을 논의, 3월 22일 거창읍 장날 거사를 결정하였다. 그 과정에서 대표자와 5인의 책임 대표를 선출했는데, 어명우(魚命佑)[1880~1942]는 5인 대표 중 한 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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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거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전국적인 3·1 운동과 흐름을 같이하여 1919년 3월 21일 거창군 가조면 석강리에서는 지역 주민들이 마을 어귀 정자나무 아래에 모여 거창 3·1 만세 운동을 논의, 3월 22일 거창읍 장날 거사를 결정하였다. 그 과정에서 대표자와 5인의 책임 대표를 선출했는데, 오문현(吳文鉉)[1854~1926]은 5인 대표 중 한 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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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을 중심으로 활동한 기독교 계열의 독립운동가. 오형선(吳亨善)[1875~1944]은 1909년에 동향 친구인 주남고, 조재룡 등과 함께 개신교인이 되었다. 거창에서는 최초의 교회인 거창읍 교회를 설립했으며, 이후 기독교 전도를 통한 항일 운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3·1 만세 운동 직후 거창 지역의 독립운동가들은 만주에 독립군 파병을 계획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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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광주 서 중학교의 학생 운동을 이끈 거창 출신 독립운동가. 유몽룡(劉夢龍)[1922~1953]은 1922년 거창군에서 태어나 1938년 광주 서 중학교에 입학하였다. 재학 중 서중 독서회(西中讀書會)를 조직하고, 1941년 이를 무등회로 개편하여 일제의 정책에 대해 비판하고 토론하였다. 1942년 조직이 발각되어 경찰에 체포되었고,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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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거창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의병장. 유종환(兪宗煥)[1860 또는 1858~1909]은 서울 출생의 무과 급제자로서, 1907년 김동신(金東臣)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김동신의 비장(裨將) 등으로 활약하였다. 1908년 김동신이 체포된 후 80여 명의 부하를 이끌며 전성범(全聖範) 등과 연계하여 경상남도, 전라북도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1909년 5월 초 경상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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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거창군 남하면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인하(尹寅夏)[1853~1923]는 일제 강점기 파리 장서 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윤인하의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경여(敬汝), 호는 심산(心山)이다. 유학자 윤주하(尹胄夏)와 사촌 간이다. 윤인하는 한말과 일제 강점기 초에 활동하였던 거창 지역 유생으로, 윤주하의 학맥으로 분류된다. 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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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거창군 남하면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철수(尹哲洙)[1868~1942]의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자는 순명(舜明), 호는 해관(海觀)이다. 윤철수는 한말과 일제 강점기 초에 활동하였던 거창 지역 유생으로, 곽종석(郭鍾錫)에게서 배웠다. 이로 인해 1919년 곽종석이 쓴 독립 청원서[파리 장서]에 거창 지역 유림의 한 사람으로 서명하였다. 영호남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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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거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전국적인 3·1 운동과 흐름을 같이하여 1919년 3월 21일 거창군 가조면 석강리에서는 지역 주민들이 마을 어귀 정자나무 아래에 모여 거창 3·1 만세 운동을 논의, 3월 22일 거창읍 장날 거사를 결정하였다. 그 과정에서 대표자와 5인의 책임 대표를 선출했는데, 이병홍(李秉洪)[?~?]은 5인 대표 중 한 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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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 지역에서 활동한 서양화가. 이상갑(李相甲)[1920~1996]은 거창의 대표적인 향토 예술인 중 한 사람으로, 일본 도쿄 제국 대학 미술 학교 졸업 후 서양화의 불모지였던 거창에서 다수의 유화 작품을 제작하여 초대 개인전을 개최한 서양화가이다. 이상갑은 1920년 마산에서 출생해 1936년 일본 도쿄 부국 중학교에 유학하였다.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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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거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상만(李相滿)[1898~1938]은 1898년 7월 5일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강천리 64번지에서 태어났다. 평소 항일 의식이 투철했던 이상만은 조국의 독립을 달성하기 위해 군사 주비단(軍事籌備團)의 단원이 되어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군자금을 모집하는 활동을 하였다. 군사 주비단은 국내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여 상해의 임시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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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거창군 남하면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승래(李承來)[1855~1927]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호는 숙관(肅觀)이다. 이승래는 한말과 일제 강점기 초에 활동하였던 거창 지역 유생으로, 윤주하(尹胄夏)에게서 배웠다. 거창군 남하면의 윤주하는 한주(寒洲) 이진상(李震相)의 문인으로, 곽종석(郭鍾錫)과 동문이었다. 따라서 이승래와 곽종석은 그 학맥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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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덕유산을 중심으로 거창 지역에서도 활동한 의병장. 이장춘(李長春)[1878~1910]은 1907년 덕유산을 근거지로 의병을 일으킨 의병장이며,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 출신이다. 초기에는 김동신(金東臣) 의병장과 함께 활동한 적이 있으며, 1908년 초에는 30여 명의 의병을 지휘하여 무주 주재소,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읍 등을 습격하였다. 1909년에는 문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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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거창을 중심으로 활동한 의병장. 임수안(林遂安)[?~?]은 의병장으로서 약 9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독립적으로 활동하였지만, 상황에 따라 김동신, 이장춘, 유종환 등의 의병 부대와 합류하여 의병 활동을 하기도 했다. 나중에는 김동신(金東臣) 의병장의 비장으로서 거창을 비롯하여 지리산과 덕유산을 무대로 활동하였다. 임수안은 김동신 의진에 참여한 의병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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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거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유동(林有棟)[1900~1950]의 본관은 은진(恩津)이며, 아버지는 임필희(林苾熙)이다. 임유동은 1900년 11월 18일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北上面)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날 당시 서울의 중동 학교에 다니던 임유동은 만세 운동을 주도하다가 중국에 망명하여 베이징(北京)의 국립 사범 대학(國立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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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양천(陽泉) 전사옥(全駟玉)은 1915년 거창군 가북면 해평리에서 태어났다. 거창 가조 공립 보통학교[지금의 가조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부터 우수한 학업 성적과 명석한 두뇌로 인해 장래가 촉망되었다. 광주 학생 운동이 일어난 해인 1929년 진주 고등 보통학교[지금의 진주 고등학교]에 진학하였다. 1929년 11월 광주에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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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거창 지역과 덕유산을 중심으로 활동한 의병장. 전성범(全聖範)[1870~1911]은 1907년 거창 지역을 중심으로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과 격전을 벌였고, 1906년에는 덕유산의 문태수 의병장과 합세하였다. 1908년에는 의병장 유종환(兪宗煥)과 합세하여 거창, 장수, 무주, 안의, 금산, 영동 지구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였다. 전성범의 본관은 정선(旌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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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에서 선구적인 기독교 전인 교육을 실천한 교육자. 전영창(全永昌)[1917~1976]은 신사 참배 반대 운동으로 투옥된 적이 있는 독립운동가이자 유신 체제에 반대한 교육자이다. 전영창은 1917년 12월 26일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삼가리 1594번지에서 태어나 안성 초등학교와 전주 신흥 학교에서 수학하였다. 1936년 3월 신흥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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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출신으로 일제 강점기 때 중추원 참의와 미군정기 때 전라북도 도지사를 지낸 행정 관료. 정연기(鄭然基)는 1891년 5월 2일 거창에서 태어났다. 1908년 11월 광남 학교 일어과, 1911년 3월 관립 한성 외국어학교 일어과를 졸업했다. 그해 조선 총독부 관비 유학생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1914년 7월 도쿄 제국 대학 농과 대학 임학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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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활동하다 월북한 거창 출신 화가. 정종여(鄭鍾汝)[1914~1984]는 1914년 12월 30일 거창군 거창읍 상동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뒤늦게 거창 공립 보통학교에 입학하여 1929년에 졸업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미술에 재능을 보여 꽃, 새, 나비, 닭 등 주변의 사물을 세밀하게 그려서 주위 사람을 놀라게 했고, 평생 스케치북을 끼고 다녔다. 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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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강천리 출신의 행정 관료. 정종철(鄭種哲)[1906.5.24~1976.1.3]은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에서 태어났다. 경성 제일 고등 보통학교, 일본 교토[京都] 동산 중학, 경성 법학 전문학교에서 수학하고 진주부청 재무과장, 진주부윤과 부산부윤을 거쳤다. 1960년 서울특별시 부시장, 경상남도 도지사를 역임하였다. 정종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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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강천리 출신으로 일제 강점기에 경상남도 평의회원 및 중추원 참의를 지냈던 교육가 겸 관료. 조선 후기 척화신으로 이름이 높은 초계 정씨 정온의 후손이다. 정태균은 1884년 3월 25일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강천리 강동 마을에서 태어났다. 1901년 조경모 참봉을 시작으로 1902년 공릉 참봉을 거쳐 1905년 정3품 통정대부에 올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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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거창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항일 운동가. 주남수(朱南守)[1892~?]는 경상남도 거창에서 한학자 주회현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1919년 3·1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될 때 3월 20일 거창에서는 거창읍 교회를 설립한 주남수의 형 주남고를 중심으로 거창읍 교회 교인들이 만세 시위를 주도했다. 주남고는 당시 같은 교회 교인이던 오형선의 집에서, 김천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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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거창의 청년·교육·언론 운동가로 해방 직후 초대 민선 거창 군수. 주남재(朱南宰)[1878~1958]는 1878년 5월 6일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황산리에서 태어났다. 3·1 운동 이후 거창으로 이주하여 조선 일보 거창 지국의 기자, 지국장을 지내면서 활발한 지역 운동을 전개했다. 동시에 거창읍 교회에 출석하는 기독교인이었다. 1920년대 이후에는 거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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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시기 거창의 농촌 계몽과 향토 문화재 보존에 기여한 선각자. 최남식(崔南植)[1920~2007]은 1920년 1월 1일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나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거창에 정착하였다. 양정 고등학교 재학 중 교사 김교신의 영향을 받아 재학 중 브나로드 운동에 참가했고, 이광수의 “흙”, 심훈의 “상록수”의 정신에 따라 농촌 계몽 운동을 필생의 사업으로 삼았다. 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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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월천면 동변리에서 태어난 정치인 겸 교육자. 표현태는 일제 강점기에 경상남도 거창군 월천면 면협 의원과 월천면장을 지냈다. 해방 후 조선 민족 청년단 거창군 단부 단장과 대한 독립 촉성 국민회 거창 지부 간부를 지냈다. 1948년 제헌 국회 의원 선거 때 거창 지역구에서 당선되었다. 거창 대성 상업 고등학교 초대 교장, 거창 상업 고등학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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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거창에서 청년 운동, 신간회 운동을 벌였던 해방 직후 거창 경찰서장. 황창석(黃昌錫)[?~?]은 거창에서 태어났다. 1920년대 웅변에 능한 농촌 계몽 사상가로서 거창 청년 운동의 중심 인물로 부각되었다. 1927년 4월 30일 오후 9시 거창 청년 회관에서 개최된 동아 일보 사옥 낙성 기념 동아 일보 거창 지국 현상 웅변 대회에서 “민중아, 농촌으로 돌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