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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때 경기도 가평군에서 일어난 전투를 다룬 향토지. 『6.25한국전쟁중 가평지구전투사』는 가평 지역의 향토사학자인 신현정(申鉉晶)이 흩어져 있던 한국전쟁기 가평군에서 일어난 전투 관련 자료를 취합하여 2002년 12월에 발간하였다. 『6.25한국전쟁중 가평지구전투사』의 크기는 세로 25.6㎝, 가로 18㎝로 흑백인쇄되었으며, 총 275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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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평 지역의 자연환경·역사·인물 등 문화자원을 수록한 향토지. 『가평 향토역사 여행』은 2006년에 발간된 『가평군지』의 내용 중 역사, 자연환경, 교통로, 인물 등 4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그 주요 내용을 압축·요약해 보급판용으로 발간한 것이다. 가평문화원이 2010년 12월에 발간하였다. 『가평 향토역사 여행』은 지도와 사진을 포함한 컬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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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평군에 있는 신도비 및 묘갈의 내용을 담은 책. 가평군에는 홍건적의 침입,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활약한 가평 출신 위인이 많이 있으나, 이들의 업적은 주로 신도비나 묘갈에 한문으로 기록되어 번역되지 않은 부분이 많았다. 또한 세월이 오래 지남에 따라 멸실과 훼손의 위험에 처해 있었다. 가평문화원은 이에 가평 출신 위인들의 업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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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평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정리한 향토지. 『가평군 역사이야기』는 향토문화연구회가 발간한 다권본(多卷本) 단행본으로 2004년에 발간하였다. 저자 화학산인이 가평 지역의 역사 자료 발굴 및 지역의 답사 등을 통해 가평의 역사와 문화상을 새롭게 조명하였다. 『가평군 역사이야기』는 총 307쪽으로 크기는 세로 23㎝이다. 삽도가 함께 구성되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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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평군 일원의 문화유적에 대한 지표조사 보고서. 『가평군의 역사와 문화유적』은 경기도에서 1998년부터 실시해오고 있는 각 시·군별 광역지표조사의 일환으로 기획, 조사·발간되었다. 조사 대상은 경기도 북동부에 위치한 가평군 전역으로, 강원대학교 박물관과 가평군이 가평군 문화유적에 대한 자료 조사와 지표조사를 실시하여 1999년 11월에 발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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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평군 일원에서 전개된 항일 의병 전쟁 및 독립 운동을 다룬 향토지. 『가평독립운동사』는 가평 지역의 향토사학자인 신현정(申鉉晶)이 가평 일대에서 전개된 항일 독립 운동에 대한 자료를 편집·집필하여 1985년 3월 1일에 발간하였다. 『가평독립운동사』는 국한문 혼용으로 작성되었으며, 흑백 삽화가 함께 구성되어 있다. 총 355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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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평 지역에서 6·25전쟁 발발 전후 전개된 반공 활동을 다룬 향토지. 『가평반공투쟁사』는 가평 지역 향토사학자인 신현정(申鉉晶)이 1950년에 발발한 6·25전쟁 당시 가평 지역에서 일어난 반공전투와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고, 전쟁을 겪은 사람들의 구술 인터뷰를 토대로 집필하여 1984년 1월에 발간하였다. 『가평반공투쟁사』는 국한문 혼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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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평 출신 인물의 행적을 수록한 향토지. 『가평역사인물지』는 가평 지역의 향토사학자이자 간행 당시 가평문화원장이었던 신현정(申鉉晶)이 10년 이상 가평 지역 마을 조사와 인터뷰 등을 통해 수집·정리한 것을 바탕으로 1997년 12월에 간행하였다. 『가평역사인물지』는 국한문 혼용으로 작성되었으며, 흑백 삽화가 함께 구성되어 있다. 총 575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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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평군에 속한 마을의 지명 유래와 전설을 기록한 책. 『가평의 지명과 유래』는 가평군에 속한 읍·면·리, 그리고 자연 마을의 지명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그 유래와 마을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 등을 엮은 책이다. 2000년 2월에 『가평의 지명과 유래』 상권이 발행되었으며, 2001년 2월에 『가평의 지명과 유래』 하권이 발행되었다. 상권은 2001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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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평군 북면 출신 독립운동가 박장호의 생애를 다룬 사료집. 『대한독립단 도총재 박장호실기』는 대한독립단 도총재를 지낸 박장호(朴長浩)[1850~1922]의 독립을 향한 열정과 순국정신을 기리고 가평군민의 자긍심을 고취할 목적으로 발간되었다. 편저자 장삼현이 박장호의 행적과 사후 후손의 소송 관련 자료를 수집·발췌한 것을 가평문화원이 매년 발간하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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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부터 현대까지 경기도 가평군에서 활동한 최돈철의 일기. 『청은조록-청은 최돈철 일기』은 가평문화원의 초대 원장[임기:1986~1990]을 지낸 최돈철(崔燉喆)[1910~1992]의 일기체 기록물이다. ‘청은(淸隱)’은 최돈철의 호이다. 최돈철은 가평군 청평에서 대동의원을 개업하여 40여년간 의료업에 종사하였고, 가평문화원이 설립되기 전부터 가평향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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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경기도 가평군 일대에서 전개된 독립 만세 운동. 가평군은 북한강 중류의 산간지대에 위치하며, 예로부터 서울과 춘천 간을 연결하는 건널목이자 중부전선의 요충지이다. 가평군의 3·1운동은 이러한 지리적 입지, 즉 중앙과 비교적 가깝다는 점과 산간지대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가평군 3·1운동의 전체상을 파악하려면 가평 출신으로 중앙에서 활동한 신숙(申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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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개곡리에 있는 한국전쟁 때 산악 대원들의 활동을 기념하는 전적비.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한 다음 날인 6월 26일 한국군 10중대의 주력부대는 가평군 목동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북한군의 공격을 이겨내지 못하여 금곡으로 후퇴하였다. 한국전쟁 발발 3일 만에 북한군은 서울을 점령하였고 7월 3일에는 한강 이남으로 진격하였다.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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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까지 경기도 가평군을 포함해 한반도 전역에서 전개된 남한과 북한의 전쟁. 서울 북동부에 위치한 가평군은 휴전선에 인접한 경기도와 강원도의 북단 지역처럼 6·25전쟁 격전지가 많다. 가평군에서 펼쳐진 전투는 다음과 같다. 먼저 춘천-가평 전투로 1950년 6월 25일부터 6월 28일까지 국군 제6사단 예하 제7·19연대가 북한군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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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휴전이 되기까지 가평군을 비롯한 한반도 전역에서 지속된 남한과 북한의 전쟁. 6·25전쟁 당시 가평 지역은 북방에서 서울로 진입하는 경로 중 하나로서 전략적 가치를 지닌 중요한 방어지역이었다. 일찍이 가평 일대는 삼국시대부터 한강 유역을 차지하기 위한 각 세력이 각축하던 곳이었고, 이러한 전략적 특성은 6·25전쟁 당시 서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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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평군 가평읍에 있는 6·25전쟁에 참전한 학도병을 추모하는 비.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초기에 한국군은 낙동강 전선까지 후퇴하였으나, 같은 해 9월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면서 전세는 역전되어 유엔군과 함께 북진하였다. 1950년 10월 19일 평양을 탈환하였고 원산도 점령하였다. 하지만 중국군이 10월 19일 전쟁에 참전하게 되면서 전쟁의 양상은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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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5일 경기도 가평군에서 전개된 독립 만세 운동. 1919년 3월 1일 경성에서 울려버진 독립만세의 함성은 고종의 인산을 보러 상경한 각 지역의 사람들에 의해서 전국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이날 인사동 태화관 앞에서 민족대표들의 독립선언을 기다리고 있던 가평 출신의 인사가 있었으니 그들은 정한교(鄭漢敎), 신숙(申肅)[이명:태연(泰練)], 민영순(閔泳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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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평군 가평읍에 있는 항일 의병과 3·1운동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비. 1894년 청일전쟁 이후 명성황후가 시해당한 사건과 더불어 시행된 단발령은 조선 민중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가평 지역에서도 1895년 의병이 봉기하였다. 가평군 북면을 근거지로 한 약 380여명의 가평 지역 의병들은 강원도 의병과 연합하여 전투하였다. 의병 전투에서 의병장 이충응(李忠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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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평군 가평읍에 있는 6·25전쟁 가평지구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는 전적비. 1950년 6월 25일 6·25전쟁이 발발한 후, 1951년 4월에 남하한 중공군은 제1차 춘계 공세로 국군 제6사단을 경기도 화성시 양감면 사창리 지역에서 돌파하였다. 이에 중공군 제20군, 제39군, 제40군은 가평 방면으로 돌파구를 확대하고자 하였다. 국군 제6사단은 가평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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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가평 지역에서 정미의병으로 활동한 의병장. 강기동(姜基東)[1884~1911]은 경기도 장단(長湍) 출신이다. 장단 고랑포(古浪浦)에서 헌병보조원으로 근무하던 중, 1907년 정미칠조약(丁未七條約)이 체결되고 군대가 해산되자 군인을 비롯하여 뜻있는 의인들이 항일 의병 투쟁을 전개하였다. 장단 지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의병 투쟁을 전개하다 체포 당하거나 사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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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경기도 가평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강백룡(姜白龍)의 아버지는 1907년 가평군 가평읍 달전리에서 영좌로 근무하면서 의병장 이두응(李斗應)의 부대에서 활동하였다. 강백룡 아버지는 이두응의 집에서 만든 의병 의복 100여벌을 의병에게 전달하는 임무를 맡았다. 의복을 옮기는 도중 관군에게 적발되어 손에 총상을 입었으나 끝까지 의복을 전달하여 임무를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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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기 경기도 가평 출신의 의병장. 강윤희(姜允熙)[1868~1909]의 본관은 진주이며, 아버지는 강필형(姜苾馨)이다. 강윤희는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자 서울에 설치된 유약소(儒約所)에 참여하여 김동필(金東弼)·경현수(慶賢洙) 등과 함께 조약에 협조한 을사오적의 처단과 조약의 파기를 주장하며, 각국의 공사들에게 이 조약의 부당함을 알리는 활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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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강주성(姜周聲)은 가평군 북면 이곡리에서 태어났다. 구체적인 가계와 생몰년은 알려지지 않았다. 강주성은 평소 음악을 즐겨하여 1895년 3월 경부터 「조선독립가」를 지역 주민에게 보급하였다. 가평 지역에서 만세시위가 전개되자 적극 참여하였다. 가평읍에서 사숙을 운영했던 이규봉(李圭鳳)은 1919년 3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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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선촌리 미원서원 터에 1974년 설치한 제단. 경현단은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선촌리 산70 미원서원 터에 있다. 경현단이 있던 자리에는 원래 미원서원이 있었는데, 1871년(고종 8) 대원군의 서원철폐령 이후 1894년(고종 31) 폐철되었다. 이후 1919년부터 가평 지역의 유림들이 미원서원 터에 단을 설치하고, 미원서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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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권성남(權盛男)은 가평군 군내면 마장리[현 가평읍 마장리] 출신이다. 구체적인 가계와 생몰년은 알려지지 않았다. 권성남(權盛男)은 이규봉(李圭鳳)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가평읍에서 사숙을 운영했던 이규봉(李圭鳳)은 1919년 3월 1일 고종의 인산에 참여했다가 3·1운동을 목격하고, 「독립선언서」와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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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평지역 3·1운동에 참가한 독립운동가. 권순(權洵)의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아버지는 권종선(權淙善)이다. 권순은 시서에 밝았다고 전한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전개된 3·1운동의 영향으로 가평군에서도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권순은 농업에 종사하였는데, 자신이 거주하던 가평군 군내면 마장리[현 가평읍 마장리]의 권성남(權盛男)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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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북면 출신 독립운동가. 권임상(權任相)[1887~1942]의 본관은 안동이며, 1887년 가평군 북면 백둔리 646에서 태어났다. 슬하에 아들 권병훈(權炳薰)을 두었다. 1919년 전개된 3·1운동은 각지로 확산되었다. 가평에서도 3월 15~16일 만세시위가 벌어졌다. 가평군 북면 목동리에 사는 이규봉(李圭鳳)은 한문교사 출신으로, 고종의 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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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 개항 이후 1945년 8월 15일 해방까지 경기도 가평군의 역사. 경기도에 소속된 가평군은 1888년(고종 25)에 강원도 춘성부(春城府)에 편제되었다. 1894년에 이르러 다시 경기도로 환속되면서 포천군(抱川郡) 소속으로 바뀌었다. 1895년에 이루어진 행정구역 개편으로 전국을 23부로 337군으로 개편되었을 때, 가평군은 5월 26일 한성부에 편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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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가평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김경달(金敬達)[1849~1896]은 1849년 강원도 춘성군 신동면 팔미리 70[현 춘천시 신동면 팔미리]에서 태어났다. 김경달은 춘천부의 포군으로, 평소 ‘김효자’로 불릴 정도로 효도와 우애가 극진한 것이 널리 알려졌다.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일제의 내정 간섭으로 단발령이 내려지자 전국적으로 의병이 봉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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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김규하(金奎夏)[1890~1972]의 본관은 언양(彦陽)이며, 아버지는 김동환(金東煥)으로 1890년 가평군 북면 목동리에서 태어났다. 백부 김주환(金周煥)에게 입양되었다. 부인은 신성녀(申性女)로, 슬하에 5형제를 두었다. 김규하는 이규봉(李圭鳳)의 문하에서 공부였다. 1919년 3월 1일 이규봉은 서울에 상경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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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의병. 김순선(金順先)[1806~1907]의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1806년 경기도 가평군 상면 연하리에서 태어났다. 김순선은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 발표 등으로 발생한 을미의병에 의병장으로 가담하였다. 김순선은 1907년 일본에 의해 고종의 강제 퇴위, 정미칠조약 체결, 군대 해산 등에 반대하며 일어난 정미의병에도 참여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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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김연상(金演祥)은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읍내리 출신이다. 생몰년과 구체적인 가계는 알려지지 않았다. 김연상은 가평군에서 잡화상을 경영하였다. 1919년 전국에서 3·1운동이 전개되자 가평 지역에서도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1919년 3월 15일 가평 북면 일대에서 시작된 만세시위는 곧 가평읍으로 확산되었고, 수백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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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의병. 김영배(金永培)의 본관은 김해이고, 경기도 가평군 상면 출신이다. 가평군 상면 연하리 출신의 김순선과는 사돈지간이다. 김영배는 1907년에 일본에 의해 고종이 강제 퇴위당하고, 정미칠조약의 체결 및 군대가 해산되자 이에 반대하며 일어난 정미의병에 가담하였다. 김영배는 박래병(朴來秉)의 의진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07년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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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재영(金在爃)의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1874년 가평군 가평읍 읍내리에서 태어났다. 김재영은 어린 시절 서당에서 『논어』와 『대학』 등 유학 경서를 익혔으며, 시서에도 능하였다. 집안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던 관계로 서울을 자주 왕래하면서 근대 문명을 일찍 수용하였다. 1919년 3월 고종 인산을 참관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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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정호(金定鎬)의 본관은 김해(金海), 본명은 관호(寬鎬)이다. 아버지는 김재면(金在冕), 어머니는 청풍 김씨로, 1879년 가평군 가평읍 읍내리에서 태어났다. 김정호는 한학자 이규봉(李圭鳳)에게 사사를 받았다. 1911년 가평에 간이우편소가 설치되고 우편배달원을 모집할 때 선발되어 우편 배달업무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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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의병. 김지봉은 가평군 가평읍 달전리 출신으로 안반진 나룻배의 사공이다. 1907년 일본에 의해 고종이 강제 퇴위당하고, 정미칠조약의 체결, 군대가 해산되자 이에 반대하며 일어난 정미의병에 참여하였다. 안반진 나루는 현재 가평군 가평읍 달전리에 있는 달전리 나루로, 조선시대에는 5일과 10일에 열리는 가평장에 주민들을 운송하는 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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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창현(金昌鉉)[1884~1934]은 1884년 가평군 가평읍 읍내리에서 태어났다. 김창현의 구체적인 가계는 알려지지 않았다. 1919년 3월 1일 가평군 북면 목동리에서 거주하던 이규봉(李圭鳳)이 고종의 인산일에 맞추어 상경하였다가 만세시위를 목격하게 되었다. 이규봉은 정한교(鄭漢敎), 신태연(申泰鍊), 민영순(閔泳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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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가평군 일대에서 활동한 의병. 김춘수(金春洙)의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이명으로는 병수(柄洙)를 사용하였다. 1898년부터 의병활동에 투신한 김춘수는 1907년 소모대장 이범구(李範九) 및 의병 800명과 함께 경기도 가평·강원도 홍천·양근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김춘수는 1907년 헤이그 특사 사건으로 고종이 강제 퇴위 당하고, 한일신협약(韓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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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평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필규(金弼圭)[1874~1919]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명심(明審), 이명(異名)은 김문규(金文圭)이다. 1874년 경기도 가평군 군내면 달전리[현 가평읍 달전리]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평산신씨 신도균(申道均)의 딸이다. 김필규는 10세 이전부터 소학(小學)과 대학(大學)을 완독했을 정도로 총명했다고 전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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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 나기호(羅基瑚)[1895~1990]의 본관은 안정(安定), 자는 중기(重器), 호는 홍연(弘淵)이다. 아버지는 나봉희(羅鳳熙)이며, 1895년 12월 26일 가평군 군내면 달전리[현 가평읍 달전리]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내는 신채현(申彩鉉)이다. 나기호는 1911년 가평보통학교(加平普通學校)에 입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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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평군 출신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인 나기호의 송덕비. 나기호의 본관은 안정(安定), 초명(初名)은 웅린(雄麟)이며, 호는 홍연(弘淵), 자는 중기(重器)이다.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달전리에서 태어나 가평공립보통학교[지금의 가평초등학교]를 졸업하였으며, 1917년 서울 경신고등학교에서 수석으로 졸업하였다. 이후 중국 상하이[上海]로 건너가 신한청년당(新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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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의병. 나봉산(羅奉山)[1860~1910]의 본관은 나주이며, 본명은 나숙식(羅肅植). 자는 공서(公瑞)이다. 아버지는 절충장군 용양위 부호군을 지낸 나항순(羅恒淳)이며, 부인은 김해 김씨 김구심(金龜心)의 딸이다. 1860년 5월 16일 가평군 하면(下面) 망동(望洞)에서 태어났다. 1907년 고종의 강제 퇴위와 군대 해산으로 인하여 각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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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평 지역 출신 조선 후기~일제 강점기 문신. 남정철(南廷哲)[1840~1916]의 본관은 의령(宜寧)이다. 자는 치상(穉祥)이고, 호는 하산(霞山)이다. 할아버지는 남준기(南駿冀), 아버지는 남홍중(南弘重)이다. 1840년(헌종 6) 4월 27일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청년 시절에는 조상 대대로 살아온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방일리에 거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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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평군 북면 목동리에 있는 6·25전쟁에 참전한 뉴질랜드군을 추모하는 기념비.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6·25전쟁이 발발하자 뉴질랜드 정부는 바로 6·25전쟁에 참전하였다. 뉴질랜드와 호주는 영국연방의 일원으로 영국의 대외 정책을 따르고 있었다. 이들은 동아시아에 위치하여 자국의 안보상 위협을 빠른 시기에 제거한다는 명분이 있었다. 이에 뉴질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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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경기도 가평 지역에서 설립된 우익 청년 단체. 해방 이후 1945년 10월 20일 경 가평경찰서가 생기고 미군부터 1개 중대가 주둔하였으나 가평 읍내에는 좌익과 우익 두 개의 치안대가 조직되었다. 유재록을 회장으로 하는 농민층 대부분은 우익이고, 김의순을 대장으로 하는 청년층은 좌익이 우세하였다. 이 때 대한독립촉성국민회 가평지회가 조직되었는데 임원으로 회장 전명규,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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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신탁통치 반대를 위해 경기도 가평 지역에 조직된 대한독립촉성국민회의 지회. 경기도 가평군 북면은 1945년 10월 20일 38선으로 가평경찰서가 두 개의 지서로 설치되고, 가평읍에 치안대 역시 좌·우익 두개의 치안대가 조직되어 좌우익 대립이 큰 편이었다. 1946년 2월 김구의 신탁통치반대국민총동원위원회와 이승만이 결성한 독립촉성중앙협의회가 통합하여 대한독립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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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9월 경기도 가평군 북면 도대리에서 일어난 사건. 1910년 일제의 강제 합병 이후 항일 독립 운동가들은 중국과 만주 등지로 대거 이전하였고, 일상적인 감시를 받는 국내 독립 운동은 위축되는 추세였다. 그러나 1919년에 전개된 3·1운동은 국내외 독립 운동의 새로운 기반을 조성하고 다양한 형태의 운동 양상으로 이어졌다. 1920년대 초반 가평군은 가평면(加平面)·외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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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두밀리에서 상색국민학교 두밀분교의 폐교를 반대한 운동. 교육부는 1988년부터 전국의 소규모 학교를 통폐합하였다. 가평군교육청은 상색국민학교 두밀분교를 폐지하기로 하고, 1994년 2월 28일 교문을 잠그고 ‘허가없이 들어가면 처벌하겠다’는 경고문을 붙여 놓았다. 가평군 가평읍 두밀리 마을 주민들은 학교를 지키기 위해 자녀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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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묵안리에 있는 암각자. 묵안리 암각자는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묵안리 산35-2에 위치하고 있다. 가평군에서 351번 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가다보면 묵안리 인근에 도로를 내기 위해 바위산을 절개한 절벽을 볼 수 있다. 이 절벽의 동쪽 암벽 상단에 있다. 암벽 상단에 ‘양주조씨분산동구(揚州趙氏墳山洞口)’라고 새겨져 있다. 해당 글자를 통해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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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평군 북면 이곡리에 있는 6·25전쟁 때 가평지구 전투에 참전한 미군을 기념하는 비. 1951년 1·4후퇴 이후 용문산, 가평지구 전투는 6·25전쟁의 전환점이 되었다. 가평 지역은 서울로 가기 위해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에 가평에서 많은 전투가 발생하였다. 미(美) 2사단 72전차대대는 가평지구 전투 시기인 1951년 4월, 목동에서 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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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미사리에 있던 개항기 효부 충주 지씨를 기리기 위해 세운 정문. 미사리 효부정문은 남양 홍씨(南陽 洪氏) 가문으로 시집온 충주 지씨(忠州 池氏)에게 내려진 정문이다. 충주 지씨는 중병에 걸린 시아버지를 10여 년간 대소변을 받아내며 봉양하였다고 한다. 병에 걸린 시아버지가 고기를 먹고 싶다고 하자 눈 속에서 헤매며 꿩을 잡아 왔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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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민영순(閔泳純)[1879~1929]의 본관은 여흥(驪興), 초명은 영준(泳俊), 자는 덕윤(德允)이다. 아버지는 고종 때 황해도병마절도사를 지낸 민성호(閔成鎬)이며, 1879년 1월 27일 가평군 북면 화악리에서 태어났다. 1905년 가평군 북면 소법리의 정응길(鄭應吉) 딸과 혼인하였다. 민영순은 1891년 이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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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경기도 가평군에 세운 삼충단에 배향된 순국지사. 민영환의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문약(文若), 호는 계정(桂庭)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역임한 민단현(閔端顯)이며, 할아버지는 증영의정(贈領議政)이자 고종의 외할아버지인 민치구(閔致久)이다. 아버지는 호조판서(戶曹判書)를 역임한 민겸호(閔謙鎬)이며, 어머니는 대구 서씨 서경순(徐庚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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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의병. 박문익(朴文翼)은 가평군 북면 출신이다. 생몰년은 알려지지 않았다. 박문익은 일찍부터 사서(四書)를 공부하고 학문을 배워 서당 훈장을 하였다. 1895년 갑오개혁 이후 일본에 의해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단발령(斷髮令)의 시행으로 인해 을미의병이 일어났다. 1896년 춘천의병에 합류하여 활동한 이충응(李忠應) 의병장이 같은 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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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에서 활동한 교육자이자 독립운동가. 박봉현(朴鳳顯)은 1910년 함경남도 영흥군 호도보농학교, 1911년 경기도 개성공립보통학교, 1912년 개성제1공립보통학교, 1914년부터 1919년까지 가평공립보통학교, 1919년부터 1921년까지 부천공립보통학교, 1922년부터 1925년까지 경기도 어의동공립보통학교에서 훈도로 재직하였다. 1919년 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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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용근(朴容根)은 가평군 북면 소법리 출신이다. 생몰년은 알려지지 않았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전개된 3·1운동의 영향으로 가평군에서도 1919년 3월 15일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박용근은 가평군 북면 만세시위에 적극 참여하였다. 박용근은 같은 마을에서 정석조(鄭錫祚)가 3월 15일 소법리 주민을 대동하고 만세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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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평군 설악면에 있는 송덕비. 박용선·박용석 형제는 농촌의 불우 청소년들에게 중등 교육 및 영농기술을 교육하여 건전한 농촌의 후계자로 육성하겠다는 취지로 1968년 3월 용문농업기술학교를 세웠다. 개교 당시에는 방일초등학교 부속교실을 임대하여 개교하였으며, 이후 가평군 설악면 방일리 162~164번지 일대, 약 1,180평에 목조 기와집의 교실 3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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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박장호(朴長浩)[1850~1922]의 본관은 밀양, 호는 화남(華南)이다. 밀성군 박척(朴陟)[1430~1470]의 23세손으로, 아버지는 외헌공(畏軒公) 기우(夔祐)이며 어머니는 단양 우씨이다. 1850년 가평군 북면 이곡리에서 태어났다. 강의혁(姜義赫)의 딸과 결혼하여 1남 3녀를 두었다. 박장호는 화서(華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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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가평군 북면에서 활동한 의병. 박현성(朴賢成)은 경기도 가평군 북면 출신이다. 생몰년은 알려지지 않았다. 1895년 갑오개혁 이후 일본에 의해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단발령(斷髮令)이 시행되자 이로 인해 을미의병이 일어났다. 이충응(李忠應)은 이러한 상황에서 1896년 1월 20일 이소응(李昭應)이 이끄는 춘천의병(春川義兵)에 합류하여 아장(亞將)으로 활동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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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때 경기도 가평 지역에서 활동한 반공 결사대. 1950년 6월 26일 가평군 목동에 있던 국군 10중대가 금곡으로 후퇴한 이후 가평 주민들은 반공 활동을 하고자 하였다. 1950년 7월 10일 강원도 춘천군 남면 방하리 문의골에 몸을 피하였던 청년 중 김종학·신동규·신하균·이승균·유경태·장호석·유경수·정삼득·함우진·이정용 등은 7월 16일 수칙을 정한 뒤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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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마장리에 있는 6·25전쟁 때 학살당한 가평 주민들을 위한 위령비.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고 3일만에 서울을 점령당한 한국군은 유엔군과 함께 낙동강 전선까지 남하하였다. 같은 해 9월 15일 개시한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게 되면서 낙동강 방어선에서 한국군은 반격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미 해병대와 한국군은 서울을 탈환하기 위하여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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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북면 적목리에서 일어난 사건. 일제 강점기에는 신흥 종교와 관련된 사건 및 사고가 적지 않았다. 혹세무민의 교리는 불안한 현실을 탈피하려는 일반 민중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백백교는 동학에 기원을 둔 것으로 동학의 방계인 백도교(白道敎)의 분파로 시작되었다. 동학군 전정운은 1899년 경 금강산에서 4년 동안 수도한 뒤 함경남도 문천군 사람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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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에 있는 보납산에서 전개된 항일 의병 전쟁.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과 단발령이 시행되자 전국 각지에서 일본세력과 친일내각을 물리쳐 정의를 바로 세울 것을 표명하고 의병이 봉기하였다. 이에 조정에서는 토벌대를 파견하여 사전 봉쇄를 기도하여 곳곳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가평 인접 지역인 춘천과 화천 등지에서 1896년 1월 20일 의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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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5일과 16일에 경기도 가평군 북면 일대에서 전개된 독립 만세 운동. 3·1운동이 일어났을 때 가평 출신의 신숙(申肅), 정한교(鄭漢敎) 등은 천도교 측의 독립 선언 준비 간사로 활동한 인물로 독립선언서를 교정하고 각 지방에 배포하는데 힘썼다. 가평군 북면 목동리 출신으로 구장을 하던 이규봉(李圭鳳)은 이들로부터 3·1운동의 발생과 전개 양상을 전해 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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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때 경기도 가평군 북면 적목리에서 전개된 반공투쟁. 가평군 북면 적목리와 인근 지역에서 인민군의 점령 시기와 1951년 1·4 후퇴를 전후한 시기까지 의혈대와 결사대, HID대원 등의 다양한 반공투쟁이 전개되었다. 경기도 가평군 북면 적목리 삼거리에 있는 논남기마을과 임산(林山)마을에서 1950년 7월 15일 반공투쟁을 위한 의혈대가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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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평군 조종면 운악리에 있는 조선 말기 순국한 조병세·최익현·민영환을 기리는 제단. 조병세(趙秉世)[1827~1905]는 경기도 가평군 출신으로 개항 이후 일제의 침략이 심화되자 모든 관직에서 은퇴한 후 가평으로 귀향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민영환(閔泳煥)[1861~1905]과 함께 을사조약의 폐지를 주장하며 을사오적을 처단하라는 상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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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가평군에서 활동한 의병장. 성익현(成益鉉)은 강원도 춘천 출신이다. 생몰년은 알려지지 않았다. 성익현은 1895년 의병에 가담하고 이듬해 1896년 가평 벌업산[寶納山]전투에서 싸우다가 패하여 춘천·홍천 등지에서 이의신(李宜愼)의 부하가 되어 활동하였다. 1907년에는 관동창의대장(關東倡義大將)으로서 정경태(鄭敬泰) 등과 더불어 200여 명의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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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평군 청평면 상천리에 있는 6·25전쟁 희생자 위령탑. 순국지사위령탑은 6·25전쟁 발발 당시 전쟁에 의해서 사망한 가평군 청평면 상천리 주민들을 기리기 위해서 세워졌다. 먼저 1988년에 추모비를 세웠었는데 크기가 왜소하여 위령탑으로 재건립하고자 1992년 6월 25일 상천리 주민들이 뜻을 모아 한국자유총연맹 가평군지부가 함께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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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의병. 신관휴(申觀休)는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출신이다. 생몰년은 알려지지 않았다. 신관휴는 1895년 일본에 의해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일어나고 정부의 단발령의 공포에 반발하여 일어난 을미의병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896년 가평 지역에서 이충응(李忠應)의 의진이 관군을 맞아 보납산 전투 등을 벌일 때, 신관휴는 신재욱(申在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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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신마실라(申麻實羅)[1892~1965]의 본관은 평산(平山)이다. 아버지는 신현철(申賢哲), 어머니는 윤매리이며, 여동생은 이화학당 교사로 3·1운동에 참여하였던 신형숙이다. 1894년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읍내리 654에서 태어났다. 신마실라는 김애숙, 이화숙과 함께 1914년 이화학당 대학과 제1회 졸업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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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가평 출신의 의병. 신석범(申錫範)의 본관은 평산(平山)이다. 아버지는 신재현(申在玄)이며, 아들은 독립운동가 신숙(申肅)이다. 1895년 일본의 명성황후 시해 사건과 정부의 단발령의 공포로 인해 을미의병이 봉기하였다. 가평 지역의 이충응(李忠應)은 1896년 1월 20일 이소응(李昭應)이 이끄는 춘천의병(春川義兵)에 합류하여 아장(亞將)으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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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경기도 가평군 신성리에서 발생한 군자금 모금 사건. 1910년 일제의 강제 합병 이후 항일 독립 운동은 중국과 만주 등지로 대거 이전하였고, 일상적인 감시를 받는 국내 독립운동은 차츰 위축되었다. 그러나 1919년 3·1운동은 국내외 독립운동이 활성화되는 계기를 만들었으며, 여러 형태의 운동 방법이 모색되었다. 1920년대 가평군은 높은 산세로 둘러싸인 농촌과 산촌의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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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 신숙(申肅)[1885~1967]의 본관은 평산(平山), 아명은 연길(連吉), 호는 강재(剛齋)·시정(是丁)·치정(癡丁)이다. 21세 때 이름을 ‘태련(泰鍊)’으로 바꾸었으며, 1920년 4월 해외로 망명하면서 이름을 ‘숙’으로 바꾸었다. 아버지는 의병 활동을 했던 신석범(申錫範)이며, 1885년 12월 29일 경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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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의병. 신재욱(申(在旭)의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사현(士賢), 이명(異名)은 신경홍(申敬弘)이다. 아버지는 신광임(申光壬)으로, 1828년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에서 태어났다. 신재욱은 어려서부터 사냥을 좋아하여 포수가 되었고, 의병을 위하여 큰 돈을 기부하기도 하였다. 1895년의 을미사변(乙未事變)으로 민심이 크게 동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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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가평군 일대에서 활동한 의병장. 신재희(申在熹)[1850~1895]의 본관은 평산(平山)이며, 본적은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읍내리 654이다. 이명(異名)은 신재가(申在嘉)이다. 신재희는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1895년 일본 낭인에 의해 명성황후가 살해당하는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재직 중이던 낭천현감 관직을 버리고 조카사위 이충응(李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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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의 의병. 신태성(申泰成)은 1885년 가평군 서면에서 태어났다. 신태성(申泰成)은 1907년 일본에 의한 고종의 강제 퇴위, 정미칠조약의 체결, 군대 해산 등을 계기로 정미의병이 발생하자 의병부대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대한제국 군인이었던 강기동(姜基東)[1884~1911]이 1909년 의병활동을 시작하자 신태성은 강기동과 함께 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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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신현성(申鉉成)의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순문(順文)이다. 신숭겸(申崇謙)의 33대손으로 아버지는 한학자인 신의균(申義均)이다. 가평군 북면 화악리에서 태어났다. 신현성은 어린 시절 시서 등 한학을 배웠다. 1919년 3·1운동의 영향으로 3월 15일 가평군 북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가했는데 이튿날인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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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신형숙(申瀅淑)[1898~1980]의 본관은 평산(平山), 다른 이름은 신준려(申俊勵), 세례명이 줄리아이다. 아버지는 신현철(申賢哲), 어머니는 윤매리이며, 언니는 신마실라이다. 1898년 가평군 가평읍 읍내리에서 태어났다. 유형기(柳瀯基)와 혼인하였다. 신형숙은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가족들과 상경하여 언니 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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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신화균(申化均)[1910~1991]의 본관은 평산(平山), 아명은 해문(海文), 호는 해천(海天)·해암(海岩)이다. 할아버지는 의병이자 독립운동가인 신석범(申錫範), 아버지는 한국독립당의 참모장을 지낸 신숙(申肅)이다. 본적은 가평군 외서면(外西面) 상천리(上泉里) 1360이다. 신화균은 1924년 아버지 신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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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의병. 심능욱(沈能昱)은 1895년 일본에 의해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일어나고 정부의 단발령의 공포에 반발하여 일어난 을미의병에 참가하여 활동하였다. 1896년 가평 지역에서 이충응(李忠應)의 의진이 관군을 맞아 보납산 전투 등을 벌일 때, 신관휴(申觀休), 신재욱(申在旭) 등과 함께 전투에 참여하여 항전하였지만 날씨의 영향과 훈련 부족으로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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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평군 가평읍에 있는 6·25전쟁에 참전한 영국연방 4개국 장병들을 추모하기 위한 기념비.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6·25전쟁이 발발하였다. 북한군은 6월 27일 서울을 점령하였으며 빠른 속도로 남진하였다. 국군은 낙동강까지 후퇴하였다. 1950년 9월 15일 시작된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한 이후 유엔군은 9월 26일에 서울에 진입하여 9월 28일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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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평군 설악면에 있는 6·25전쟁 때 벌어진 용문산전투의 승리를 기념하는 비.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발발한 6·25전쟁은 장기화 되었다. 1951년 3월 서울이 재수복 된 이후 4월부터 유엔군은 서울 북상에 김포반도-행주-구파발-창동-용문산-홍천-한계령-설악산-속초를 무명선(無名線, noname line)으로 칭하고 절대적 방어선으로 설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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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평군 조종면에 있는 조종암의 대통묘에 배향된 의병장. 유인석(柳麟錫)[1842~1915]의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여성(汝聖), 호는 의암(毅菴)이다. 아버지는 유중곤(柳重坤), 어머니는 고령 신씨이다. 1842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다. 14세 때 족숙인 유중선(柳重善)에게 입양되었다. 유인석은 유년기에 이항로(李恒老)의 문하에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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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가평군에서 활동한 의병장. 유중락(柳重洛)[1842~1922]의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사원(士原), 호는 오천(午川)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유원(柳瑗), 할아버지는 유영택(柳榮澤), 아버지는 유호(柳昈)이며, 어머니는 함양 박씨(咸陽朴氏) 박헌규(朴憲圭)의 딸이다. 형은 유중렴(柳重濂)이다. 1842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다. 유중락은 유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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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달전리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 학자. 유중악(柳重岳)[1843~1909]의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백현(伯賢), 호는 항와(恒窩)이다. 아버지는 유호(柳晧)이며, 강원도 춘천에서 출생하였다. 유중악은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의 문하에서 배웠으며, 중암(重菴) 김평묵(金平默)과 집안 형인 유중교(柳重敎)의 문하에서 수학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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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가평군 일대에서 전개된 항일 의병 전쟁. 1896년 이후 가평의 의병활동은 때로는 독자적으로 때로는 인근 지역인 춘천 및 이천 의병과 연합하여 펼쳐나갔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에 이어 단발령까지 시행되자 전국의 의병항쟁은 본격화되었다. 의병항쟁 초기에 경기도 북동부 지역의 가평군은 춘천·화천과 함께 기폭제 역할을 하였다. 가평의 의병은 189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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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이계승(李啓承)은 가평군 북면 제령리 출신으로 종교는 천도교이다. 생몰년은 알려지지 않았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전개된 3·1운동의 영향으로 가평군에서도 1919년 3월 15일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가평읍에서 사숙을 운영했던 이규봉(李圭鳳)은 1919년 3월 1일 고종의 인산에 참여했다가 3·1운동을 목격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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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의 의병. 이관구(李觀九)[1852~1922]의 본관은 우봉(牛峰), 자는 사직(仕直)이다. 아버지는 이국용(李國用), 부인은 영암 박씨이다. 이관구는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당하고 단발령이 공포되자 강백룡(姜白龍) 등과 함께 이소응(李昭應)이 이끄는 춘천의병에 아장(亞將)으로 가평에서 봉기한 이충응(李忠應) 의병부대에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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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교성(李敎星)은 가평군 북면 목동리에서 출생하였다. ‘이교성(李敎成)’이라고도 불리었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전개된 3·1운동의 영향을 받은 가평군은 1919년 3월 15일 북면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교성은 이날 주민들과 함께 만세시위에 참가하여 시위대를 이끌고 가평 읍내까지 진출하였다. 이튿날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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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규봉(李圭鳳)[1873~1961]의 본관은 양성(陽城), 자는 기남(沂南), 호는 목천(牧川)이다. 1873년 가평군 설악면 위곡리에서 태어났다. 이규봉은 1893년 가평읍에서 사숙을 운영하였으며,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斷髮令)을 계기로 의병이 일어나자 의병장 이충응(李忠應)의 종사관으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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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규붕(李圭鵬)[1875~1950]의 본관은 양성(陽城), 자는 도여(圖汝)이다. 1875년 가평군 설악면 위곡리에서 출생하였으며, 형은 이규봉(李圭鳳)이다. 이규붕의 형 이규봉은 고종 인산에 참여하기 위해 1919년 3월 1일 서울에 갔다가 『독립신문』과 「독립선언서」를 가져와 이규붕, 이규봉의 장남 이윤석(李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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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가평군 북면 출신 의병. 이근화(李近和)는 가평군 북면 출신이다. 본관과 생몰년은 알려지지 않았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 시행으로 전국 각지에서 일본세력과 친일내각을 물리치기 위한 의병이 봉기하였다. 이근화는 1896년 춘천과 가평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이충응(李忠應) 의병부대의 일원으로 활동하였다. 이근화는 1896년 2월 보납산에 진을 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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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평군 청평면 청평리에 묘소가 있는 대한제국 문신이자 친일반민족행위자. 이능세(李能世)[1883~1948]의 본관은 전의(全義)이다. 아버지는 도승지와 형조판서를 지내고 한일합병 후 남작(男爵)에 오른 이정로(李正魯)이다. 본적은 경기도 고양군 한지면으로 1883년 9월 21일에 태어났다. 부인은 광산 김씨이다. 이능세는 1903년 5월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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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도봉(李道奉)은 가평군 가평읍 읍내리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19년 북면 만세시위 참여 당시 24세로 작성되어 있어 1896년생으로 추정된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전개된 3·1운동의 영향을 받은 가평 지역에서도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이도봉은 1919년 당시 잡화상을 하고 있었다. 1919년 3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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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의 의병. 이두응(李斗應)의 본관은 전주이다.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이기식(李杞植)이다. 1872년 12월 3일 가평군 가평읍 달전리에서 태어났다. 이두응은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일어나고 단발령이 발표되자 이에 반발한 양반유생들을 중심으로 발생한 을미의병에 참여하였다. 1896년 가평군에서 신재희(申在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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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만석(李萬錫)의 본관은 양성(陽城), 자는 준석(準錫)이다. 가평군 북면 목동리(沐洞里)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02년생으로 추정된다. 가평 지역의 만세시위는 가평읍에서 사숙을 운영했던 이규봉(李圭鳳)이 1919년 3월 1일 고종의 인산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을 방문했다가 만세시위를 목격하고, 그 내용을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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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평군 청평면 삼회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무신 이문성의 묘와 신도비. 이문성(李文誠)[1503~1575]은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명중(明仲)이다. 아버지는 목사 공달(公達)이다. 1532년(중종 27)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1557년(명종 12)에 황주목사를 지내고, 경상우도병마절도사로 왜구를 격퇴하였다. 1566년에 전라우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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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가평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이범구(李範九)의 본관은 우봉(牛峰)이며, 아버지는 가선대부 겸 오위장 이상용(李商用)이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과 단발령이 공포되자 이충응(李忠應)은 강백룡(姜白龍) 등과 함께 이소응(李昭應)이 이끄는 춘천의병의 아장(亞將)으로 가평에서 봉기하였다. 이범구는 이충응의 의병부대에 참여하였다. 1907년에는 고종의 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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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북면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병식(李秉植)[1861~1938]은 가평군 천도교의 중심인물로 1919년 가평군 3·1운동 만세시위 때 자문역할을 맡았으며, 일경에 체포되어 징역 8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이병식(李秉植)[1861~1938]은 1861년 9월 12일 가평군 북면 목동리 920에서 태어났다. 구체적인 가계는 알려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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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이영헌(李英憲)[1873~1965]의 본적은 경기도 가평군 북면 목동리 649이다. 구체적인 가계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영헌 성품은 온화한 편이었다고 전한다. 1919년 3·1운동이 전개되자 가평 지역에서도 만세시위의 준비가 진행되었다. 가평 지역에 3·1운동의 소식을 전파한 것은 1917년부터 목동리의 이장을 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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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위곡리에 있는 이용헌을 기리는 송덕비. 이용헌 송덕비는 1970년 3월 25일 도곡 동림회에서 건립하였다. 이용헌 송덕비는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위곡리 220에 위치하고 있다. 가평군 설악면에서 86번 도로를 따라 널미재 방향으로 진행하다가 왼쪽의 위곡1리 둔덕마을을 지나가면 도로 오른편에 있다. 이용헌 송덕비의 머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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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윤석(李胤錫)[1894~1953]의 아버지는 가평군 북면 만세시위를 주도했던 이규봉(李圭鳳)이다. 1894년 2월 1일 경기도 가평군 북면 목동리에서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슬하에 5형제를 두었다. 이윤석은 어릴 때 사서삼경 위주의 한학 교육을 받다가 아버지가 한문교사로 있던 가릉보성학교(嘉陵普成學校)에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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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에서 활동한 교육가이자 독립운동가. 이재학(李在鶴)은 1911년 함경북도 온성공립보통학교 부훈도를 시작으로 경기도의 가평공립보통학교[현 가평초등학교], 인현공립보통학교, 어의동공립보통학교 등지에서 1926년까지 훈도로 활동하였다. 이재학은 북면 소법리에 거주하는 친구 정석준(鄭錫俊)을 통하여 북면 만세시위 모의를 알게 되었다. 가평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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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북면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정국(李貞國)은 가평군 북면 목동리 출신이다. 생몰년은 알려지지 않았다. 가평 지역의 만세시위는 가평읍에서 사숙을 운영했던 이규봉(李圭鳳)이 1919년 3월 1일 고종의 인산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을 방문했다가 만세시위를 목격하고, 그 내용을 가평에 전하면서 준비되었다. 이규봉은 아들 이윤석(李胤錫), 정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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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평군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 문신이자 친일 인사. 이정로(李正魯)[1838~1923]의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대재(大哉), 호는 사계(沙溪)이다. 할아버지는 이호민(李好敏), 아버지는 증 의정부 참정(贈議政府參政) 이근오(李根五)이며, 생부는 이근두(李根斗)이다. 어머니는 김복순(金復淳)의 딸이다. 1838년 12월 2일 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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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종한(李種漢)은 가평군 북면 목동리 싸리재 출신이다. 생몰년은 알려지지 않았다. 가평읍에서 사숙을 운영했던 이규봉(李圭鳳)은 1919년 3월 1일 고종의 인산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을 방문했다가 만세시위를 목격하고, 그 내용을 가평에 전하였다. 이규봉은 아들 이윤석(李胤錫), 정흥교(鄭興敎)·정기복(鄭基福)·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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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가평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장. 이진응(李晋應)[1847~1896]의 본관은 전주, 자는 경재(敬哉), 호는 직헌(直軒)이다. 조선 제14대 왕 선조의 9남인 경창군(慶昌君) 이주(李珘)의 후손이며, 을미의병장 습재 이소응(李昭應)의 종형(從兄)이다. 강원도 춘천군 남면 하방곡리 출신이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일어나자 을미의병이 일어났다. 춘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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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평군 설악면에 개교한 미원공립보통학교 설립에 기여한 이창식의 송덕비. 이창식(李昌植)[1858-1940]은 인재 양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부지 1,650㎡를 기증하여, 1919년 4월 18일 미원공립보통학교[현 미원초등학교]가 개교할 수 있었다. 부지를 제공한 이창식을 기리기 위해 1936년 6월 10일에 건립되었다. 이창식 송덕비는 가평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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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평군 청평면 하천리에 있는 개항기 가평군수 이철연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이철연(李喆淵)은 1868년 5월에 가평군수에 부임하였고, 1870년 6월에 원주판관(原州判官)으로 옮겨갔다. 이철연 영세불망비는 비문에 의하면 ‘경오삼월(庚午三月)’에 세워졌는데, 경오년은 1870년이다. 즉, 이철연이 다음 임지로 옮기기 전에 비가 세워졌음을 알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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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가평 출신의 의병장. 이충응(李忠應)[1856~1896]의 아버지는 이인화(李寅和)이며, 1856년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승안리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신재조(申在朝)의 딸이다. 이충응(李忠應)은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이 발표되자 분개하여 처삼촌인 신재희(申在熹)와 함께 거의(擧義)하여 의병장이 되었다. 신재희(申在熹), 신경홍(申敬弘) 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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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치영(李致榮)은 가평군 북면 화악리 출신으로 천도교인이다. 생몰년은 알려지지 않았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전개된 3·1운동의 영향으로 가평군에서도 1919년 3월 15일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이치영은 3월 15일 북면사무소 앞에서 주민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가평 읍내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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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홍복(李弘福)[1881~1945]은 가평군 북면 이곡리 275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전개된 3·1운동의 영향으로 가평군에서도 1919년 3월 15일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가평읍에서 사숙을 운영했던 이규봉(李圭鳳)은 이윤석(李胤錫)·정흥교(鄭興敎)·정기복(鄭基福) 등과 함께 의논하여 주민들의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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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해방 직후 경기도 가평 지역에 조직된 민간 자치 기구. 1945년 10월 20일 가평 지역은 38선으로 북면이 분단되어, 가평경찰서 지서가 두개로 설치되고 가평 읍내에는 좌우익 두개의 치안대가 조직되었다. 1946년 4월 이후 청년 중심의 좌익세력은 가평지역의 치안과 행정안정에 주력하기 위하여 산업조합 내에 사무공간을 마련하고 위원장 김의순을 중심으로 인민위원회 가평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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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가평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임찬옥(任燦玉)은 1895년 일제에 의해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일어나고 조선 정부의 단발령의 공포에 반발하여 일어난 을미의병에 참가하여 활동하였다. 가평 지역에서 이충응(李忠應)의 의병이 관군을 맞아 보납산 전투를 벌일 때 함께 참가하여 항전하였다. 그러나 날씨의 영향과 훈련 부족으로 인하여 패하면서 가평 북면 방향으로 일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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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평군 북면 화악리에 있는 조선 시대 문신 임현의 행적을 기록한 비. 임현 신도비는 조선 시대 문신 임현(任鉉)[1547~1597]의 사적을 기록한 비이다. 임현의 본관은 풍천(豊川)이고, 자는 사중(士重), 호는 애탄(愛灘)이다. 시호는 충간(忠簡)이다. 1583년(선조 16) 문과에 급제하였고, 승문원 정자, 병조 정랑 등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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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신천리에 있는 6·25전쟁 때 희생당한 양민들을 추모하는 위령탑. 6·25전쟁 발발 이후 낙동강까지 내려갔던 북한군은 1950년 9월 15일 UN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인하여 북쪽으로 후퇴하게 되었다. 1950년 9월 28일 서울수복 전후에 후퇴하던 북한군은 가평군 설악면 신천2리에서 무고한 울업고개 주민들을 학살하였다. 자유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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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 출신의 독립운동가. 장귀남(張貴男)은 가평군 군내면 대곡리[현 가평읍 대곡리] 출신으로 ‘장기남(張基男)’으로도 불리었다. 장귀남의 생몰년월일 및 자세한 가계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판결문에 따르면 1899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직업은 콩 장수이며, 종교는 기독교이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만세시위가 전개된 후 전국의 지방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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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북면 출신의 독립운동가. 장기영(張基英)[1887~1950]의 아버지는 장두환(張斗煥)이며, 1887년 5월 1일 가평군 북면 화악리 1012에서 태어났다. 양반출신으로 농업에 종사하였다. 장기영은 유년 시절 의리가 있고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다고 전해진다. 천도교에 입교하여 활동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최초의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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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북면 출신의 독립운동가. 장순천(張順天)은 가평군 북면 목동리 출신이다. 정확한 생몰년도와 가계는 알려지지 않았다. 장순천은 가평지역 교육가인 이규봉(李圭鳳)의 밑에서 글을 배웠다고 전한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시작된 3·1운동은 가평 지역으로도 확산되었다. 3·1운동 당시 고종의 인산일로 서울에 가있던 이규봉은 서울 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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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북면 출신의 독립운동가. 장순현(張順賢)[1868~1928]은 1868년 가평군 북면 목동리 583에서 태어났다. 구체적인 가계는 알려지지 않았다. 가평군 북면 목동리에 사는 이규봉(李圭鳳)은 고종 인산일에 맞추어 상경했다가 서울에서 만세시위를 목격하였다. 이규봉은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던 제자 정한교(鄭漢敎), 신태연(申泰鍊), 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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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장응옥(張應玉)은 1863년 가평군 북면 목동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전개된 3·1운동의 영향으로 가평군에서도 1919년 3월 15일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장응옥은 3월 15일 북면사무소 앞에서 만세시위가 전개되자 시위대 선두에서 목동리 주민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가평 읍내로 행진했다. 그러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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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장응표(張應杓)는 가평군 북면 목동리 평목마을 출신이며, 생몰년은 알려지지 않았다. 장응표는 가평읍에서 사숙을 운영했던 이규봉(李圭鳳)의 문하에서 사숙하였다. 이규봉은 1919년 3월 1일 고종의 인산에 참여했다가 3·1운동을 목격하고, 「독립선언서」와 『독립신문』을 휴대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규봉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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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장한석(張漢錫)은 가평군 북면 목동리 큰멱골 출신이다. 생몰년은 알려지지 않았다. 장한석은 가평읍에서 사숙을 운영했던 이규봉(李圭鳳)의 문하에서 사숙하였다. 이규봉은 1919년 3월 1일 고종의 인산에 참여했다가 3·1운동을 목격하고, 「독립선언서」와 『독립신문』을 휴대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규봉은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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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북면 출신의 독립운동가. 장호리(張浩利)[1895~1971]의 본관은 단양(丹陽), 아버지는 장한석(張漢錫)이다. 1895년 경기도 가평군 북면 목동리 597에서 태어났다. 장호리는 독립운동가인 이규봉(李圭鳳)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919년 3월 서울을 시작으로 만세시위가 전국으로 확대되면서 가평 지역에서도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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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장호형(張浩亨)[1893~1950]의 본관은 단양(丹陽)이다. 아버지는 장한석(張漢錫)으로 1893년 경기도 가평군 북면 목동리 597에서 태어났다. 동생은 함께 북면 만세시위에 참여한 장호리(張浩利)이다. 장호형은 이규봉(李圭鳳)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1919년 3월 서울을 시작으로 만세시위가 전국으로 확대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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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평군 북면 적목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공동생활유적. 적목리 공동생활유적은 1940년대 일제의 탄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종교인들이 경기도 가평군 북면 적목리 산1-28 일대의 두 곳에 조성한 공동생활 공간이다. 가평군에서 2006년 발간한 『문화유적분포지도 : 가평군』에는 적목리 공동생활유적을 ‘적목리 신앙공동체 유적지 1’과 그곳에서 1㎞ 정도 떨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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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정기복(鄭基福)은 가평군 북면 목동리 큰멱골 출신이다. 생몰년은 알려지지 않았다. 정기복은 가평읍에서 사숙을 운영했던 이규봉(李圭鳳)의 문하에서 사숙하였다. 이규봉은 1919년 3월 1일 고종의 인산에 참여했다가 3·1운동을 목격하고, 「독립선언서」와 『독립신문』을 휴대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규봉은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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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가평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정문위(鄭文緯)[1851~1896]의 본관은 경주, 자는 경천(敬天), 호는 화남(華南)·화남재(華南齋)이다. 정해종(鄭海宗)의 3남으로, 1851년 가평군 북면 남종리에서 태어났다. 정문위는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 공포를 계기로 이충응(李忠應), 신재희(申在熹), 신경홍(申敬弘) 등이 가평에서 거의(擧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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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정석조(鄭錫祚)의 본관은 경주이다. 아버지는 정태규(鄭泰圭)로, 1881년 경기도 가평군 북면 소법리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1919년 3월 1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3·1운동은 각지로 전파되었으며, 가평에서도 3월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가평군 가평읍에서 사숙을 운영했던 이규봉(李圭鳳)은 고종의 인산일에 맞추어 서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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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에서 전개된 북면 만세시위 참여자. 정석준(鄭錫俊)의 본관은 경주이며, 아버지는 정현규(鄭賢奎)이다. 1856년 가평군 북면 소법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전개된 3·1운동의 영향으로 가평군에서도 1919년 3월 15일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정석준은 3월 15일에 북면사무소 앞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소법리 주민들과 함께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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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정성교(鄭聖敎)의 본관은 해주(海州)이며, 아버지는 정광덕(鄭光德), 동생은 정한교(鄭漢敎)이다. 1891년에 태어났다. 가평군에서 북면 만세시위가 일어났을 때 가평군 북면 목동리 579에 거주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전개된 3·1운동의 영향으로 가평군에서도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가평읍에서 사숙을 운영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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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가평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정응수(鄭應壽)의 본관은 봉화이며 자는 헌기(憲箕)이다. 아버지는 정동혁(鄭東爀)으로 1855년 가평군 북면 소법리에서 2남으로 태어났다. 정응수는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일어나고 정부의 단발령의 공포에 반발하여 일어난 을미의병에 참가하여 활동하였다. 1896년 가평에서 이충응(李忠應) 등이 의병을 일으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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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정재명(鄭在明)[1875~1950]의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덕서(德書)이다. 아버지는 정응호(鄭應豪), 부인은 인동(仁同) 장씨이다. 정재명은 1875년 경기도 가평군 북면 소법리에서 태어났다. 정재명은 가평군에 만세시위 소식을 전달한 주요 인물 중 한명이다. 정재명은 1919년 3월 14일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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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정천수(鄭天洙)는 가평군 북면 제령리 출신이다. 생몰년은 알려지지 않았다. 정천수는 가평읍에서 사숙을 운영했던 이규봉(李圭鳳)의 문하에서 사숙하였으며, 천도교인이다. 이규봉은 1919년 3월 1일 고종의 인산에 참여했다가 3·1운동을 목격하고, 「독립선언서」와 『독립신문』을 휴대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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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한교(鄭漢敎)의 본관은 해주(海州)이다. 아버지는 정광덕(鄭光德), 형은 정성교(鄭聖敎)이며, 1880년 경기도 가평군 북면 목동리에서 태어났다. 정한교는 『독립신문』을 편집하였던 이광수(李光秀) 밑에서 편집에 관한 일을 맡은 적이 있어 이를 계기로 인쇄 편집일에 종사하고 있었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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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정헌교(鄭憲敎)의 본관은 해주(海州)이며, 아버지는 정광은(鄭光殷), 형은 함께 북면 만세시위에 참여한 정순교(鄭順敎)이다. 가평군 북면 출신으로 추정되며 정확한 생몰년도는 확인할 수 없다. 1919년 3월 서울에서 시작된 3·1운동은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가평에서도 3월 15일과 16일 만세시위가 벌어졌는데, 이를 주도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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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정효섭(丁孝燮)은 가평군 북면 화악리 출신이다. 생몰년은 알려지지 않았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전개된 3·1운동의 영향으로 가평군에서도 1919년 3월 15일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가평읍에서 사숙을 운영했던 이규봉(李圭鳳)은 이윤석(李胤錫)·정흥교(鄭興敎)·정기복(鄭基福) 등과 함께 의논하여 주민들의 만세시위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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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정흥교(鄭興敎)[1900~1965]의 본적은 경기도 가평군 북면 목동리 579이다. 이명은 정흥룡(鄭興龍)이다. 가평읍에서 사숙을 운영했던 이규봉(李圭鳳)은 1919년 3월 1일 고종의 인산에 참여했다가 3·1운동을 목격하고, 「독립선언서」와 『독립신문』을 휴대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3월 14일 정흥교는 이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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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경기도 가평군에 세운 삼충단에 배향된 순국지사. 조병세(趙秉世)의 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치현(穉顯), 호는 산재(山齋)이다. 아버지는 현감을 지낸 조유순(趙有淳)이며, 1827년 경기도 가평군 가평면에서 태어났다. 조병세는 음관(蔭官)으로 종9품의 참봉이 되었고, 1859년(철종 10)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로 급제하여 사관(史官)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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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기도 가평군에 귀향한 문신. 조정희(趙定熙)의 본관은 양주(楊州), 본명은 정섭(定燮)이다. 아버지는 조휘림(趙徽林)이며, 조중응(趙重應)[1860~1919]이 종질이다. 조정희는 1863년(철종 14) 병과에 급제하였으며, 1868년(고종 5) 사간(司諫)으로 활동하였다. 1869년에는 동지정사(冬至正使) 홍우길(洪祐吉), 부사 조영하(趙寧夏)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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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경기도 가평군 조종면 상판리에서 의병이 일본 헌병에게 몰살당한 사건. 1907년 을사조약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파견한 헤이그특사 사건을 계기로 고종은 강제 폐위되었으며, 대한제국 군대는 해산되었다. 이에 전국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이 시기 가평군 상면·하면에서는 120여 명의 의병들이 활동을 하고 있었다. 의병은 먹을 양식과 입을 의복이 없어 곳곳에서 동지들의 협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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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기도 가평군에서 군수를 역임한 문신. 조준희(趙準熙)의 본관은 양주(楊州)다. 1868년에 출생하여 1908년 사망하였다. 조준희는 1891년 감시 초시에 합격하였으며, 1894년에 동몽교관(童蒙敎官)을 지냈다. 1897년 5월 공릉령(恭陵令)·삭녕군수(朔寧郡守)를 역임하였으며, 같은 해 8월부터 1902년까지 가평군수를 지냈다. 본래 가평군수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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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평군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부터 대한제국기까지 활동한 문신. 조중익(趙重翊)의 본관은 양주(楊州), 초명은 중욱(重旭), 자는 보여(輔汝), 호는 화농거사(華農居士)이다. 아버지는 조정희(趙定熙)이며, 1871년에 태어났다. 부인은 파평 윤씨와 곡성 임씨이다. 조중익은 어린 시절 사서삼경(四書三經)에 통달하였으며, 『주역(周易)』에 조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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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가평군 일대에서 활동한 의병. 지염구(池濂求)의 본관은 충주, 자는 덕성(德成)이며 일명 홍렴(洪濂)이라고도 한다. 이버지는 지기현(璣鉉)이며, 1857년 가평군 상면 율길리에서 태어났다. 지염구는 1907년 박래병 의병부대 일원으로 가평군 상면과 하면 일대에서 주로 활동하였다. 1908년 음력 11월 가평군 하면 상대리 조정룡(趙正龍)의 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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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지재혁(池在赫)은 가평군 북면 목동리 출신이다. 생몰년은 알려지지 않았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전개된 3·1운동의 영향으로 가평군에서도 1919년 3월 15일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가평읍에서 사숙을 운영했던 이규봉(李圭鳳)은 이윤석(李胤錫)·정흥교(鄭興敎)·정기복(鄭基福) 등과 함께 의논하여 주민들의 만세시위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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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차영호(車榮鎬)는 경기도 가평군 군내면 읍내리[현 가평읍 읍내리] 출신이다. 차영호는 1919년 3·1운동이 일어났을 때 서울 관훈동에서 잡화상을 경영하고 있었다.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탑골공원에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을 때 현장에 참여하였다. 이후 3·1운동의 영향으로 탄생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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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평 지역에서 6·25전쟁 때 활약한 청평결사대원들의 혼을 기리는 탑. 1950년 6월 28일 북한군이 가평군으로 진격해오자, 7월 8일 남궁호, 엄순문, 인창학 등 8인이 북한군에 맞서 무력항쟁을 결의하고 마을 청년들을 모아 ‘청평결사대’라는 의용대를 결성하였다. 그러나 7월 21일 누군가의 밀고로 전원 체포되어 7월 27일 서울로 압송 수감되었으며, 8월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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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최건혁(崔建爀)의 본관은 수성(隋城)이다. 할아버지는 최학순(崔學淳)이며, 아버지는 최기풍(崔基豊)이다. 1901년 가평군 북면 이곡리에서 태어났다. 이명(異名)은 최건화(崔建和)이다. 최건혁은 유년시절 할아버지 최학순에게 한학을 배우고, 서울로 상경하여 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18년 제일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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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최기영(崔基榮)의 본관은 수성(隋城)이다. 아버지는 최학순(崔學淳)이며, 1897년 7월 10일 가평군 북면 이곡리 335에서 태어났다. 가평읍에서 사숙을 운영했던 이규봉(李圭鳳)은 1919년 3월 1일 고종의 인산에 참여했다가 3·1운동을 목격하고, 「독립선언서」와 『독립신문』을 휴대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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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최기태(崔基太)의 본관은 수성(隋城), 자는 병문(柄文)이다. 아버지는 최세순(崔世淳)이며, 1893년 가평군 북면 이곡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전개된 3·1운동의 영향으로 가평군에서도 1919년 3월 15일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가평읍에서 사숙을 운영했던 이규봉(李圭鳳)은 이윤석(李胤錫)·정흥교(鄭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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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에서 전개된 북면 만세시위 참여자. 최기홍(崔基弘)의 본관은 수성(隋城)이다. 할아버지는 최구현(崔九鉉), 아버지는 최덕순(崔悳淳)이며, 가평군 북면 이곡리에서 태어났다. 생몰년은 알려지지 않았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전개된 3·1운동의 영향으로 가평군에서도 1919년 3월 15일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최기홍(崔基弘)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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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평군에 있는 가평문화원 초대 원장이자 의사. 최돈철[1910~1992]의 본관은 강릉이다. 아버지 최정재, 어머니 김씨 사이에서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최돈철은 의사고시에 합격한 후 경기도 가평군 북면 목동에서 의원을 하다가 청평면으로 이전하여 40여 년간 대동의원을 경영하였다. 주요 활동으로는 경춘철도 촉탁의·가평군 공의[3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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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평군 청평면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최석규(崔錫規)[1830~1887)의 본관은 경주, 자는 규현(規賢)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최상계(崔相桂), 할아버지는 최영진(崔榮進), 아버지는 최기윤(崔基倫)이며,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인은 강릉 유씨이다. 최석규는 종2품 가선대부(嘉善大夫) 및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에 올랐다. 1887년에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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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최용화(崔容和)[1901~1970]의 본관은 수성(隋城)이며, 독립운동가 최종화(崔宗和)의 동생이다. 본적은 경기도 가평군 북면 이곡리 287이다. 최용화의 유년기에 대한 기록은 없으나 형인 최종화가 가릉보성학교(嘉陵普成學校)를 졸업하고 농림전문학교에 진학하는 등 학업에 정진하였으므로 그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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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경기도 가평군에 세운 삼충단에 배향된 순국지사. 최익현(崔益鉉)[1833~1906]의 본관은 경주(慶州), 아명은 기남(奇男), 자는 찬겸(贊謙), 호는 면암(勉菴)이다. 아버지는 최대(崔岱)이며, 1833년 경기도 포천현 내북면 가채리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최익현은 1846년(헌종 12) 14세 때 벽계로 은거한 이항로(李恒老)의 문하에서 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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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최인화(崔仁和)[1900~1937]의 본관은 수성(隋城)이며, 이명(異名)은 최인혁(崔仁爀)이다. 아버지는 최기선(崔基善)이며, 본적은 경기도 가평군 북면 목동리이다. 이규봉(李圭鳳)의 둘째 딸 이윤애(李閏愛)와 혼인하였으며, 자식은 최승렬(崔承烈), 최승락(崔承洛)이 있다. 최인화는 가평읍에서 사숙을 운영했던 이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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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평에서 활동한 의병으로 한일합방인 1910년에 일제의 단속을 피해 최영순(崔永淳)으로 개명하였다. 1854년 7월 22일 지금의 경기도 가평군 군내면[현재 가평읍] 읍내리에서 태어났다. 1895년 을미사변에 반발하여 이듬해 신재희, 이충응 등이 경기도 가평군 군내면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키자 포수였던 최재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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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최종화(崔宗和)[1896~1919]의 본관은 수성(隋城)이며, 아버지는 궁내부 주사와 승훈랑(承訓郎)을 지낸 최기완(崔基完)이다. 본적은 경기도 가평군 북면 이곡리 287이다. 15세 때 류은상(柳殷相)의 딸과 혼인하였으며, 자식으로 최승덕(崔承德)이 있다. 최종화는 8살 때부터 한학을 배웠고, 이병찬(李炳贊)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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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평군 북면에 있는 6·25전쟁 때 참전한 캐나다군의 승리를 기념하는 비. 1950년 6·25전쟁이 발발했을 때 캐나다는 본국과 멀리 떨어져 있는 한반도 분쟁에 참전하는 것에 거부감을 가졌다. 그러나 미국의 요청과 함께 영연방 및 나토의 일원으로 6·25전쟁에 파병하였다. 유엔군으로 참전한 캐나다군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의 희생을 치렀다. 가평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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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가평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장. 하상태(河相泰)[1868~1909]의 본관은 진양(晉陽)이며, 자는 치영이다. 하상태(河相兌), 하상태(河尙泰), 하성태(河聖泰)라고도 불리었다. 하상태의 증조할아버지는 병조참판 하상문이며,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 하수홍(河受弘)이다. 1868년 11월 23일 경기도 가평군 상면 덕현리 495에서 태어났다. 1906년 가평군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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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당시 가평 지역에서 학생 신분으로 참전한 의용병 조직. 가평 지역이 수복되던 날인 1950년 10월 4일이 되기 전 청평 지역의 학생들은 국군이 입성할 것이라는 소식을 전해 듣고 인근 주민들에게 삐라를 제작하여 6회에 걸쳐 배포하였다. 이들은 좌익세력인 미청단원에 가입되어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용이하게 국군의 입성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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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의 한글학자. 한글재단 초대 이사장과 학글학회 회장을 지냈다. 국어학자이며 한글학자로 한글보급과 발전을 위해서 일하였다. 한갑수(韓甲洙)[1913~2004]의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호는 목원(牧原)·왈례(曰禮)·눈메이다. 1913년 6월 26일 경기도 가평군에서 출생하였다. 한갑수는 1933년 전라북도 고창고등보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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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가평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장. 일제는 1907년 정미칠조약(丁未七條約)을 강제하여 대한제국의 내정을 장악한 후 대한제국의 군대인 진위대(鎭衛隊)와 시위대(侍衛隊)를 강제로 해산하였다. 이에 반발하여 정미의병이 일어났는데, 무명 장사를 하던 한경수(韓景秀)도 이에 참여하였다. 한경수는 1907년 음력 10월 경 허위(許蔿)의 친형인 허훈(許勳)의 휘하에서 들어가 십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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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가평 출신의 의병.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 공포를 계기로 전국에서 을미의병이 일어났다. 가평 지역에서 이충응(李忠應), 신재희(申在熹), 신재욱(申在旭) 등이 의병을 일으키자 한원교(韓元敎)는 이에 동참하였다. 이충응 의진이 관군을 맞이하여 가평군 보납산에서 전투를 벌이자 한원교도 함께 항전하였다. 그러나 날씨의 영향과 훈련 부족으로 인하여 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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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5일 해방부터 현재까지의 경기도 가평군 지역에서 전개된 변천사. 해방 이후 가평군의 가장 큰 사건은 1950년 6월 25일부터 전개된 6·25전쟁이다. 경기도 동북부에 위치한 가평군 관내에는 치열한 전투가 전개되었던 장소 곳곳에 전쟁 관련 기념물을 세워, 전사한 장병들의 명복을 빌고 분단의 흔적을 기념하고 있다. 가평읍, 북면, 청평면 일대에 수십개의 기념비와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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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달전리에 있는 6·25전쟁 참전 군인을 추모하기 위한 탑. 6·25전쟁 당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순국한 참전 군인들의 넋을 위로하고, 애국·애족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본래 1972년 6월 6일 가평군청 옆에 건립하였는데, 가평군이 확장됨에 따라 탑의 이전 필요성이 제기되어 1977년 12월 15일 가평군 가평읍 달전리 산39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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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평군 북면에 있는 6·25전쟁에 참전한 호주군을 기리기 위한 기념비. 6·25전쟁이 발발한 1950년 6월 호주는 유엔의 6·25전쟁 참여 호소에 가장 먼저 응답한 국가 중의 하나였다. 호주와 뉴질랜드는 영국연방의 일원으로 영국의 대외 정책을 따르고 있었으며, 자국의 안보 위협을 빠른 시기에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참전하였다. 6·25전쟁에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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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홍세구(洪世拘)는 가평군 북면 목동리 출신으로 생몰년은 알려지지 않았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전개된 3·1운동의 영향으로 가평군에서도 1919년 3월 15일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가평읍에서 사숙을 운영했던 이규봉(李圭鳳)은 1919년 3월 1일 고종의 인산에 참여했다가 3·1운동을 목격하고, 「독립선언서」와 『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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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평군 출신의 정치인. 홍익표(洪翼杓)[1910~1976]의 본관은 남양, 자는 우연(于淵)이다. 아버지는 홍순달(洪淳達), 어머니는 이용진(李龍津)이다. 3남 3녀 중 장남으로, 1910년 1월 24일 가평군 외서면[현 청평면]에서 태어났다. 홍익표는 1926년 가평공립보통학교[현 가평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등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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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의병. 홍종선(洪鍾善)은 1836년 가평군 북면 조종동에서 태어났다. 1907년 일본에 의해 고종이 강제 퇴위되고, 군대가 해산되자 정미의병이 일어났다. 특히 중부지방에서는 1895년 을미의병을 일으켜 문경에서 안동부관찰사를 처단하였던 의병장 이강년(李康秊)이 1907년 7월 정미7조약(丁未7條約)에 격분하여 다시 봉기하였고 대한제국 군인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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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가평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황순일(黃順一)은 경기도 양주군 고주내면(古洲內面) 출신이다. 황순일은 대한제국 군인으로 양주군 관포군(官砲軍) 1부장이었다. 1907년 헤이그 특사 파견을 구실로 고종이 일본에 의해 강제 퇴위되고, 이후 정미칠조약의 체결과 군대가 해산되자 이에 반발하여 정미의병이 일어났다. 황순일은 1907년 군대가 해산되자 부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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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평군 가평읍에 있는 6·25전쟁 때 미군이 학교를 세운 공로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탑. 가평고등학교의 전신인 가이사중학원은 6·25전쟁 당시 가평에 주둔했던 미40사단의 사단장 조셉 클레란드(Jeseph P.Cleland)와 사병들이 한국 학생들을 위해 모금하여 세운 학교이다. 가이사중학원 이름은 6·25전쟁 때 미40사단에서 처음으로 전사한 케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