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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대구의 아름다운 풍광을 칠언절구 한시 십 수로 지은 서거정의 「대구십영」 중 제10영. 대구가 고향인 조선 전기 학자 서거정이 대구에서 가장 경치가 빼어난 10곳[금호강, 건들바위, 제일중, 경상감영, 성당못, 도동 측백수림, 동화사, 팔달교, 팔공산, 침산공원]을 칠언절구 한시로 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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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대구의 아름다운 풍광을 칠언절구 한시 십 수로 지은 서거정의 「대구십영」 중 제1영. 대구가 고향인 조선시대 학자 서거정이 대구에서 가장 경치가 빼어난 10곳[금호강, 건들바위, 제일중, 경상감영, 성당못, 도동 측백수림, 동화사, 팔달교, 팔공산, 침산공원]을 칠언절구 한시로 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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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대구의 아름다운 풍광을 칠언절구 한시 십 수로 지은 서거정의 「대구십영」 중 제2영. 대구가 고향인 조선 전기 학자 서거정이 대구에서 가장 경치가 빼어난 10곳[금호강, 건들바위, 제일중, 경상감영, 성당못, 도동 측백수림, 동화사, 팔달교, 팔공산, 침산공원]을 칠언절구 한시로 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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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대구의 아름다운 풍광을 칠언절구 한시 십 수로 지은 서거정의 「대구십영」 중 제3영. 대구가 고향인 조선시대 학자 서거정이 대구에서 가장 경치가 빼어난 10곳[금호강, 건들바위, 제일중, 경상감영, 성당못, 도동 측백수림, 동화사, 팔달교, 팔공산, 침산공원]을 칠언절구 한시로 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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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대구의 아름다운 풍광을 칠언절구 한시 십 수로 지은 서거정의 「대구십영」 중 제4영. 대구가 고향인 조선 전기 학자 서거정이 대구에서 가장 경치가 빼어난 10곳[금호강, 건들바위, 제일중, 경상감영, 성당못, 도동 측백수림, 동화사, 팔달교, 팔공산, 침산공원]을 칠언절구 한시로 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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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대구의 아름다운 풍광을 칠언절구 한시 십 수로 지은 서거정의 「대구십영」 중 제5영. 대구가 고향인 조선 전기 학자 서거정이 대구에서 가장 경치가 빼어난 10곳[금호강, 건들바위, 제일중, 경상감영, 성당못, 도동 측백수림, 동화사, 팔달교, 팔공산, 침산공원]을 칠언절구 한시로 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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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대구의 아름다운 풍광을 칠언절구 한시 십 수로 지은 서거정의 「대구십영」 중 제6영. 대구가 고향인 조선 전기 학자 서거정이 대구에서 가장 경치가 빼어난 10곳[금호강, 건들바위, 제일중, 경상감영, 성당못, 도동 측백수림, 동화사, 팔달교, 팔공산, 침산공원]을 칠언절구 한시로 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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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대구의 아름다운 풍광을 칠언절구 한시 십 수로 지은 서거정의 「대구십영」 중 제7영. 대구가 고향인 조선 전기 학자 서거정이 대구에서 가장 경치가 빼어난 10곳[금호강, 건들바위, 제일중, 경상감영, 성당못, 도동 측백수림, 동화사, 팔달교, 팔공산, 침산공원]을 칠언절구 한시로 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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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대구의 아름다운 풍광을 칠언절구 한시 십 수로 지은 서거정의 「대구십영」 중 제8영. 대구가 고향인 조선 전기 학자 서거정이 대구에서 가장 경치가 빼어난 10곳[금호강, 건들바위, 제일중, 경상감영, 성당못, 도동 측백수림, 동화사, 팔달교, 팔공산, 침산공원]을 칠언절구 한시로 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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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대구의 아름다운 풍광을 칠언절구 한시 십 수로 지은 서거정의 「대구십영」 중 제9영. 대구가 고향인 조선 전기 학자 서거정이 대구에서 가장 경치가 빼어난 10곳[금호강, 건들바위, 제일중, 경상감영, 성당못, 도동 측백수림, 동화사, 팔달교, 팔공산, 침산공원]을 칠언절구 한시로 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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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시대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에 있던 지방 통치 구역. 신라 경덕왕(景德王)[재위742∼765] 때 왕권 강화를 목적으로 한화 정책을 펼치면서 본래 위화군(喟火郡)을 수창군(壽昌郡) 또는 가창군(嘉昌郡)으로 개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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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에 속하는 법정동. 검단동(檢丹洞)은 대구광역시 북구 법정동 31개 중 하나이다. 검댕이 또는 검단으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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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부터 1392년까지 고려왕조 시기 대구광역시 지역의 역사. 후삼국시대는 889년(진성여왕 3)의 이른바 ‘도적 봉기’에서부터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후삼국시대 무렵 신라의 지방 지배 체제가 이미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었고, 각지에서 도적이 그야말로 벌 떼처럼 일어났다고 한다. 이에 각지에서 자위적인 조직이 결성되었는데, 대구 지역에서도 여러 성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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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달성 지역의 역사. 현재 대구광역시에 속하는 달성군의 행정 구역은 화원읍·논공읍·다사읍·옥포읍·현풍읍·유가읍등 6읍과 가창면·하빈면·구지면의 3개 면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고려시대에는 독립된 행정 구역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고려 시대에 달성 지역은 동경 유수관(東京留守官)의 속읍인 수성군(壽城郡)·해안현(解顔縣)과 밀성군의 속현인 현풍현(玄豊縣), 상주목 관내인 경산부(京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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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부터 1392년까지 고려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의 역사와 문화 고려 현종 때 5도 양계 체계가 확립되면서 고려 전기 행정 구역은 어느 정도 완성이 되었다. 지방에는 지방관을 파견하는 주현(主縣), 지방관을 파견하지 않는 속현(屬縣)으로 구분하였다. 주현으로는 경(京), 도호부(都護府), 목(牧) 등의 계수관(界首官) 지역과 현(縣)이 있었다. 주현의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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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에 속하는 법정동. 고성동1가(古城洞一街)는 대구광역시 북구 법정동 31개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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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에 속하는 법정동. 고성동2가(古城洞二街)는 대구광역시 북구 법정동 31개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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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에 속하는 법정동. 고성동3가(古城洞3街)는 대구광역시 북구 법정동 31개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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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경상도 대구도호부와 현풍현 지역을 그린 지도. 대구 지역은 조선시대에 제작된 세계 지도, 조선 전도, 도별도, 군현지도, 대축척 조선 전도 등의 고지도에 빠짐없이 묘사되고 있다. 특히 18세기부터 대구도호부와 현풍현을 대상으로 하는 여러 유형의 군현지도가 편찬되었고, 19세기에는 『청구도(靑邱圖)』·『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등 대축척 조선 전도와 읍지의 부도 형태로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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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 최고봉인 비로봉과 그 북쪽에 위치한 제2봉인 산성봉을 포함한 산정식 산성. 공산성 최초의 기록은 『고려사』에 나오는데, 1255년(고종 42) 공산성에 입보[성 안에 들어와 보호받음]한 백성들이 많이 굶어 죽었다는 내용이다. 공산성이 대몽 항쟁기에 입보용 산성으로 활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축조 연대는 이보다 이르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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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달성 출신의 무신.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여주(汝柱). 증조할아버지는 곽주(郭珠)이고, 할아버지는 판사재감사(判司宰監事)를 지낸 곽경(郭瓊)이다. 아버지는 의영고 사(義盈庫使)를 지낸 곽득종(郭得宗)이며, 어머니는 군사(郡事)를 지낸 나사선(羅斯善)의 딸 수성 나씨(壽城 羅氏)이다. 부인은 이조 정랑(吏曹正郞)을 지낸 송포(宋褒)의 딸 김해 송씨(金海宋氏)이다. 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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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달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현풍(玄風). 호는 석천(石川). 아버지는 밀직부사 예부 상서(密直副使禮部尙書)를 지낸 곽돈효(郭敦孝)이며, 어머니는 고려 후기 밀직부사 대사헌 첨의평리(密直副使大司憲僉議平理)를 지낸 조운경(趙雲卿)의 딸 풍양 조씨(豊壤趙氏)이다. 아들은 곽충관(郭忠貫)으로 과거에 급제하여 판도판서 대중대부 상서좌성(版圖判書大中大夫尙書左丞)을 역임하였다. 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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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달성 출신의 문신. 본관은 현풍(玄風). 고조할아버지는 곽원진(郭元振)으로 성균 제주 진현관 제학(成均祭酒進賢館提學)을 지냈으며, 증조할아버지 곽충관(郭忠貫)은 상서좌성(尙書左丞)을 역임하였다. 할아버지는 곽부(郭郛)로 포산군(苞山君)에 봉하여졌다. 아버지는 전공 판서(典工判書)를 지낸 곽거인(郭居仁)이다. 외할아버지는 감찰대부(監察大夫) 박덕룡(朴德龍)이며, 장인은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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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에 속하는 법정동. 관음동(觀音洞)은 대구광역시 북구 법정동 31개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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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에 속하는 법정동. 구암동(鳩岩洞)은 대구광역시 북구 법정동 31개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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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에 있던 특수한 지방 통치 구역. 부곡(部曲)에 대해서 가장 명확하고 구체적인 설명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여주목 고적 조에 있는 등신장(登神莊)에 관한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기에 “이제 살펴보건대 신라가 주군현(州郡縣)을 설치할 때 그 전정(田丁)이나 호구(戶口)가 현이 될 수 없는 것은 향 또는 부곡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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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에 속하는 법정동. 국우동(國優洞)은 대구광역시 북구 법정동 31개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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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지대구군사를 역임한 문신. 금유는 세종 때 대구군사로 부임하여 치적이 있었으며 관아에 금학루를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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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에 속하는 법정동. 금호동(琴湖洞)은 대구광역시 북구 법정동 31개 중 하나이다. 자연 마을로는 문주마을과 새터가 있다. 문주마을은 태전교 남쪽 금호동에서 사수동에 이른다. 새터는 금호공원과 새터공원 일대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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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대구 출신의 열녀. 김내정(金乃鼎)[?~?]의 처 서씨(徐氏)는 대구 출신이다. 조선 태종 때 낭장을 지낸 김해김씨(金海金氏) 문중의 김내정과 혼인하여 용덕리(龍德里)[현 대구광역시 남구 봉덕동]에 거주하였다. 스물네 살 되던 해에 남편이 사망하자 평생 절개를 지키며 수절하였다. 조정에서 서씨의 절개를 기려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하였다. 『대구읍지(大丘邑志)』와 『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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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대구 출신의 효자. 김한(金閑)은 고려 때 대구 해안[현 대구광역시 동구 해안동]에 살았다는 기록만 있고, 가계와 후손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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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대구광역시 동구 출신 효자. 김한은 해안현(解顔縣)[현 대구광역시 동구 해안동] 출신이다. 어릴 때 부친이 세상을 떠났는데, 평소 아버지의 상례에 정성을 다하지 못한 것을 한탄하였다. 그러다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한 뒤에 아버지 묘를 어머니 묘 곁에 이장한 다음 다시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였다. 한편, 김한은 부모의 모습을 나무에 새겨서 두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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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논공읍 남리에 있는 봉수 터.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를 비롯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여지도서(輿地圖書)』 등 조선 시대에 편찬된 지리지 등에 현풍현(玄風縣)의 봉수로 1곳이 기재되어 있는데, 바로 '소산 봉수(所山烽燧)'이다. 소산 봉수는 현풍현의 북쪽에 있는데 남쪽으로 창녕(昌寧) 합산(合山)[봉수]에 응하고, 북으로는 성주(星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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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 입향하여 세거하고 있는 성씨. 조선 초에 대구는 본부(本府)와 수성현(壽城縣), 하빈현(河濱縣), 해안현(解顔縣)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의하면 “본군(本郡)의 내성(來姓)이 1이니, 도(都)이다. 수성(壽城)의 내성(來姓)이 7이니, 유(柳)·장(張)·최(崔)·신(申)·유(劉)·고(高)·정(鄭)이요, 해안(解顔)의 내성이 3이니, 제(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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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에 속하는 법정동. 노곡동(魯谷洞)은 대구광역시 북구 법정동 31개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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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에 속하는 법정동. 노원동1가(魯院洞1街)는 대구광역시 북구 법정동 31개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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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에 속하는 법정동. 노원동2가(魯院洞2街)는 대구광역시 북구 법정동 31개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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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에 속하는 법정동. 노원동3가(魯院洞3街)는 대구광역시 북구 법정동 31개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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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 있는 누각, 정자, 당, 재 등을 총칭하여 부르는 명칭. 누정(樓亭)은 누각(樓閣)과 정자(亭子)를 이르는 말인데, 조선시대의 읍지(邑誌) 등을 살펴보면 누(樓), 당(堂), 정(亭), 재(齋) 등을 총칭하는 말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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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시대 대구광역시 달성군에 있던 지방 통치 구역. 신라가 고대 국가로 성장함에 따라 확대된 영토를 효과적으로 통치할 목적으로 군현 제도를 시행하였다. 이에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일대는 달구화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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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시대 대구광역시 달성군에 있던 성. 지금의 대구광역시 일대는 신라 때 달벌성(達伐城) 또는 달불성(達弗城)이라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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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서거정이 대구광역시 동구의 자연환경을 찬미한 시 「대구십영(大丘十詠)」은 조선 초기의 문신인 사가(四佳) 서거정(徐居正)[1420~1488]이 읊은 칠언절구 10수이다. 1530년(중종 25)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수록되어 있다. 「대구십영」은 다른 명칭으로 「대구십경(大丘十景)」, 「달성십영(達城十詠)」, 「달성십경(達城十景)」 등으로 말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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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대구도호부에 설치한 지방 군사 조직. 1457년(세조 3) 조선 정부는 전국 각지의 요충지를 거진(巨鎭)으로 하여, 거진의 군사기지로서의 성격을 분명히 하고 나머지 주변 지역의 진들이 거진에 소속되도록 하는 진관체제(鎭管體制)로 지방군 체제를 바꾸었다. 진관체제는 행정단위인 각 고을을 군사 조직인 진(鎭)으로 파악하고 각 진을 진관으로 편성한 전국 단위의 군사 체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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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 대구광역시 달성군에 있던 지방 통치 구역. 신라 경덕왕(景德王)[재위 742∼765]은 귀족 세력의 약화와 왕권 강화를 목표로 하여 한화 정책을 펼쳐 9주·5소경·117군·293현의 고유 지명을 한자식으로 바꾸었다. 이때 달구화현(達句火縣)이 대구현(大丘縣)으로 개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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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에 속하는 법정동. 대현동(大賢洞)은 대구광역시 북구 법정동 31개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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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에 속하는 법정동. 도남동(道南洞)은 대구광역시 북구 법정동 31개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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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에 속하는 법정동. 동변동(東邊洞)은 대구광역시 북구 법정동 31개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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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에 속하는 법정동. 동천동(東川洞)은 대구광역시 북구 법정동 31개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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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에 속하는 법정동. 동호동(東湖洞)은 대구광역시 북구 법정동 31개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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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도학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 팔공총림 동화사는 전국에 146개 말사(末寺)와 7개 산내 암자를 거느리는 대찰(大刹)일 뿐만 아니라, 보물 15점, 국가등록문화재 1점,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12점, 문화재자료 8점을 보유한 전통 사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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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에 속하는 법정동. 매천동(梅川洞)은 대구광역시 북구 법정동 31개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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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에 공자를 비롯한 중국과 한국 유학자들의 위패를 모신 공간. 대구 지역의 문묘(文廟)는 대구향교, 칠곡향교, 현풍향교 등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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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차달을 시조로 하고, 류희상을 입향조로 하는 대구광역시 달성군의 세거 성씨. 류차달(柳車達)을 시조로 하는 문화류씨는 류희상(柳希祥)이 대구광역시 달성군에 입향한 이래 얼마 전까지 그 후손들이 다사읍 방천리에서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었다. 인근에 대구광역시 환경 자원 사업소가 건립됨에 따라 현재는 대부분 다른 곳으로 이거해 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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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중대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에 있었던 화엄종 사찰. 미리사는 의상의 ‘화엄십찰(華嚴十刹)’ 또는 ‘전교십찰(傳敎十刹)’ 중의 하나였다. 『법장화상전』에 보면, 중악(中岳) 공산(公山)의 미리사(美理寺), 남악 지리산의 화엄사, 북악 부석사, 강주(康州) 가야산 해인사 및 보광사(普光寺), 웅주(熊州) 가야협(迦耶峽) 보원사(普願寺), 계룡산 갑사(岬寺), 낭주(良州) 금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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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달성 출신의 효자. 박득춘(朴得春)은 1530년(중종 25)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대구도호부 관할 하의 해안현(解顔縣) 사람으로 어버이에게 효성이 지극하였다. 박득춘은 부친상을 당하여 장례를 치른 뒤에 묘소 곁에 여막을 짓고 삼 년 동안 시묘(侍墓)를 살았다. 그 거처하는 모습과 곡읍(哭泣)하는 형상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 유교적인 예법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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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에 속하는 법정동. 복현동(伏賢洞)은 대구광역시 북구 법정동 31개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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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의 절터. 본리리 인흥사(仁興寺) 터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의 남평 문씨 본리 세거지(南平文氏本里世居地) 일대에 조성되었으나, 현재는 터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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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 있는 전통 시대 군사 통신 시설. 봉수(烽燧) 또는 봉화(烽火)는 횃불이나 연기를 피워 올려 변방 지역에서 발생한 적의 침입이나 난리를 중앙에 알리던 통신 제도이다. 원래 봉수라는 용어는 밤에 불로서 알리는 봉인 연봉(燃烽)[횃불]과 낮에 연기로서 알리는 번수(燔燧)[연기]를 합친 말이다. 봉수가 행하여진 것은 삼국시대부터였으나 본격적으로 법제화한 것은 고려 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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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대구광역시 동구 신무동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 부인사(夫人寺)는 대구광역시 동구 신무동 팔공산에 있는 신라의 절로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이다. 창건 연대 및 창건자는 미상이나 선덕묘(善德廟)라는 사당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된 사찰로 보기도 한다. 고려 『초조대장경(初彫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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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부터 현대까지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에 전파된 석가모니를 교조로 하여 부처의 가르침을 따르며 수행하는 종교. 우리나라에 불교가 처음 들어온 것은 고구려로, 372년(소수림왕 2)이며, 백제는 384년(침류왕 1), 신라는 가장 늦은 527년(법흥왕 14) 불교가 공인되었다. 대구광역시 동구의 팔공산은 신라 5악의 하나인 중악(中岳)으로 신라에 불교가 공식적으로 전파되기 전부터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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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달성 지역에서 은거한 수성 빈씨의 시조. 본관은 수성(壽城). 자는 대용(大用), 호는 송헌(松軒). 부인은 판도판서(版圖判書) 이실(李實)의 딸인 진보 이씨(眞寶李氏)이며, 아들은 빈규창(賓珪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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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도동에 묻힌 수성빈씨 시조. 빈우광(賓于光)의 호는 송헌(松軒)이다. 빈씨(賓氏)는 본래 중국 성씨인데, 고려로 귀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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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에 속하는 법정동. 사수동(泗水洞)은 대구광역시 북구 법정동 31개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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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에서 사직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단. 조선시대에는 국가 사직단 외에도 각 고을마다 사직단을 조성하였다. 토지 신인 사(社)는 다스리는 영토와 관련되고, 오곡(五穀)을 주관하는 신인 직(稷)은 백성의 삶과 관계되었다. ‘종묘사직이 위태롭다’는 말이 있듯이 사직은 곧 국가 그 자체로 인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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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에 속하는 법정동. 산격동(山格洞)은 대구광역시 북구 법정동 31개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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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대구 십영(大丘十詠)」을 지은 문신. 본관은 달성(達城). 자(字)는 강중(剛中), 호는 사가정(四佳亭)·정정정(亭亭亭). 증조할아버지는 전객사(典客事)를 지낸 서익진(徐益進)이고, 할아버지는 호조 전서를 지낸 서의(徐義)이다. 아버지는 목사(牧使)를 지낸 서미성(徐彌性)이며, 어머니는 문충공 권근(權近)의 딸 안동 권씨(安東權氏)이다. 부인은 군사(郡事) 김여회(金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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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거정이 15세기 대구 지역의 아름다운 풍광을 칠언절구 한시 10수로 지은 연작시. 서거정[1420~1488년]의 자는 강중(剛中), 호는 사가(四佳) 또는 정정정(亭亭亭), 시호는 문충(文忠), 본관은 대구(大丘)이다. 아버지인 안주목사 서미성과 세도가 문충공 권근의 딸인 어머니 안동권씨 사이에서 2남 5녀 중 막내로 태어나 25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오른 이후 69세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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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서구 평리동 일대에 있었던 조선 전기 대구부의 사직단. 서구 사직단(西區社稷檀)은 정확한 건립 연대와 위치가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조선 후기에 지금의 대구광역시 서구 평리동 일대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직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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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달성 출신의 문관.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상경(商卿), 호는 학암(鶴巖). 증조할아버지는 달성군 판도판서(達城君版圖判書) 서진(徐晉)이고, 할아버지는 좌랑(佐郞) 서기준(徐奇俊)이다. 아버지는 찬성사(贊成事) 서영(徐穎)이며, 어머니는 승동정(承同正) 이영유(李永儒)의 딸이다. 부인은 김원명(金遠鳴)의 딸이다. 아들은 전의소감(典醫少監)을 지낸 서침(徐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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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에 속하는 법정동. 서변동(西邊洞)은 대구광역시 북구 법정동 31개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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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에 있는 흙이나 돌을 쌓아 만든 전통 시대의 방어 시설. 전근대 동아시아의 정주(定住)[일정한 지역에 기반을 두고 거주] 사회에서는 일찍이 취락을 둘러싼 방어 시설이 나타났다. 국가가 발생한 뒤에는 특히 왕이나 제후가 거주하는 곳, 지방관이 파견된 곳 등에 성을 쌓아 보호하였다. 이때 성벽은 지배자의 치소(治所)[옛 지방관청]만을 둘러싸는 경우도 있고, 백성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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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남구 앞산에 있는 고려 전기의 입보용 산성. 성불산고성(成佛山古城)은 『신증동국여지승람』 대구도호부 고적조에 “수성현에서 서쪽으로 10리에 있는데 돌로 쌓았고 둘레가 3,051척[포백척 약 46㎝를 적용하였을 때 약 1,403m]이며 지금은 없어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지도서』에도 동일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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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대구 지역에서 성황에 제사 지내기 위하여 세운 서낭당. 성황사(城隍祠)는 고려시대부터 지배층의 종교적 기구의 하나로 존재하여 왔으며, 조선 초부터는 전국 모든 고을에 하나씩의 성황사를 두었다. 현풍현의 성황사는 비슬산에 있었는데, 정성대왕(靜聖大王)의 신(神)이 장마나 가뭄, 역질이 있을 때에 기도하면 응답이 있으므로 제사 지내려는 자가 몰려들었다. 제사 때마다 모인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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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이 기록된 이후 이전의 문서에서 빠진 대구광역시의 성씨. 조선 초에 작성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성씨(姓氏)를 토성(土姓), 속성(續姓), 내성(來姓)으로 분류하고 있다. 토성은 그 지역을 본관으로 하거나 그 지역에 오랫동안 세거한 성씨이며, 속성은 이전의 문서에 빠진 것을 후에 다시 기록한 성씨이다. 이로 미루어 본다면 속성은 문서, 즉 장적(帳籍) 등을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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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대구 지역에 있던 지방 행정구역. 수성현(壽城縣)은 조선 전기 대구 지역의 행정구역이다. 조선 후기 수성현은 수현내·수북·수동·상수서·하수서·상수남·하수남면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대체로 현재의 신천 동남쪽의 달성군 가창면, 남구, 시지 지역을 제외한 수성구와 중구 대봉동 및 동구 효목동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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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대구부사를 역임한 문관. 신엄(申儼)[?~?]의 본관은 평산(平山)이며, 자는 사중(思仲)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신자수(申自脩)이며, 할아버지는 신윤원(申允元)이다. 아버지는 신승준(申承濬)이고, 부인은 이손(李蓀)의 딸 광주이씨(廣州李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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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의 중심 하천으로 대구광역시 영역 한가운데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신천의 물줄기. 대구분지는 여러 하천이 발달하여 생태 공간을 구성하고 있다. 고문헌과 관련 자료에 따르면 신천(新川)은 예로부터 대구분지의 다른 하천들에 비하여 대구부(大丘府) 주민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 왔음을 알 수 있다. 신천이 대구부 주민들에게 친숙하게 여겨진 이유는 다음과 같다. 신천은 지리적으로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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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풍곽씨십이정려각에 모셔진 15명의 행적과 그 의미.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의 입구에 들어가면 “충효세업(忠孝世業) 청백가성(淸白家聲)”이라고 새겨진 비석이 있다. 그것은 “충성과 효심은 대대로 물려받은 살림살이이고, 청렴과 결백은 집안을 드날린 명성이라네”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글귀를 마을 앞에 당당히 내세우는 데는 모두 그럴 만한 역사적 근거가 있기 때문일 터인데, 그 대표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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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부터 조선중기까지 대구광역시 동구 안심 일대에 있었던 특수행정구역. 고려시대 현 대구광역시 동구 일대에 있었던 지방행정구역은 해안현(解顏縣), 안심소(安心所) 등이다. 안심소는 특별행정구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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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 있는 앞산 지명의 고유성. 1768년 발간된 『대구읍지(大丘邑誌)』 ‘산천(山川)’ 편에 의하면 앞산의 지명이 ‘성불산(成佛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성불산이 가장 먼저 나오는 고문헌은 1530년에 발간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이다, 그 후로 『여지도서(輿地圖書)』[1757~1765년 발간], 『대구읍지』[1768년 발간], 『대동지지(大東地志)』[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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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에서 제사를 받지 못하는 혼령이나 돌림병을 퍼뜨리는 귀신을 제사 지내던 제단. 여단(厲壇)[여제단]은 대구 지역에서 제사를 받지 못하는 혼령이나 돌림병을 퍼뜨리는 귀신을 제사 지내던 제단이다. 조선 초 이래 각 고을의 관아가 있던 읍치 지역은 3단 1묘를 운영하였다. 사직단(社稷壇)은 관아의 서쪽에 있고, 여단은 관아의 북쪽에 있었으며, 문묘(文廟)와 성황단(城隍壇)[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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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대구광역시 동구의 역사와 문화. 1. 신석기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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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에서 조선시대 국가의 공적인 육상교통의 동맥 역할을 하였던 역과 원. 국가의 공적인 도로망인 역(驛)은 왕명과 공문서의 전달, 외국 사신과 공무 여행자들의 편의 제공, 공공 물자의 운송 등 육상교통의 동맥 역할을 하였다. 대구광역시 영역에는 조선 초기 5곳의 역이 있었다. 대구부 관아에서 동으로 9리 수성현 범어역, 하빈현의 서쪽 1리 신역(新驛)인 금천역(琴川驛), 현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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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에 속하는 법정동. 연경동(硏經洞)은 대구광역시 북구 31개 법정동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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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서 남편에 대한 정절을 지키거나 시부모에게 효도한 여성. 대구 지역의 열녀(烈女)에 대한 기록으로는 김내정(金乃鼎)의 처 서씨(徐氏)가 처음으로 기록에 등장한다.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誌)』「대구도호부(大丘都護府)」 편에 “낭장(郎將) 김내정의 처 서씨의 정문(旌門)이 부내(府內)의 용덕리(龍德里)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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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7년 공산전투에서 패한 왕건과 관련한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매곡리에 있는 왕선고개의 의미.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매곡리에 있는 왕선고개는 고려태조 왕건(王建)[877~943]의 후삼국 통일과 관련이 깊은 곳이다. 왕건이 927년 공산전투(公山戰鬪)에서 패하여 도주하다가 왕선고개에 이르러 살았음을 확인하고 재기의 결의를 다졌고, 이것이 후삼국을 통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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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에 속하는 법정동. 읍내동(邑內洞)은 대구광역시 북구 법정동 31개 중 하나이다. 1640년(인조 18)에 승격한 칠곡도호부(漆谷都護府)의 관아가 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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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침산동 신천 변에 있던 하식애(河蝕崖). 입암((笠巖)[삿갓바위]은 15세기 대구의 아름다운 풍광 열 곳을 칠언절구 한시 십 수로 지은 서거정의 「대구십영(大丘十詠)」 중, 제2영 ‘입암조어(笠巖釣魚)’에 나오는 바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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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상원리에 묘가 있는 고려 후기 문신. 본관은 경산(慶山). 호는 파계(巴溪). 등과록에 의하면 할아버지는 전억령(全億齡)이고, 외할아버지는 양배(楊培)이며, 아버지는 전명도(全明道)이다. 그러나 1989년 건립된 신도비에는 5대조는 시어사(侍御史)를 지낸 전공량(全公亮), 고조할아버지는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을 지낸 전윤재(全允宰), 증조할아버지는 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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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현풍 감무를 지낸 문신. 전평원(田平遠)은 1390년(공양왕 2) 현풍현의 감무(監務)에 임명되어 백성을 교화하고 풍속을 바로잡았으며, 읍내에 객사와 정자를 새로 건축하였다. 1392년(태조 1) 양산 군수로 부임하여 1381년(우왕 14) 왜구의 침입으로 폐허가 된 양산 읍성을 복구하였으며, 양산군 관내에 있었던 벽계루(碧溪樓)를 재건하여 쌍벽루(雙碧樓)라 개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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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의 역사와 문화. 조선 초기에 대구[지금 대구광역시]는 현이었다. 조선시대에 지방행정단위를 읍의 규모와 군사적 지휘체계를 고려하여 부·목·군·현이라 나눈 것 가운데 제일 낮은 격이었다. 1403년(태조 3) 3월에 감무(監務)가 있었던 수성현(壽城縣)[지금 대구광역시 수성구]과 해안현(解顔縣)[지금 대구광역시 동구 불로동, 봉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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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중대동에 있는 영조 원당이 설립되면서 왕실의 원찰이 된 파계사. 숙종이 현응대사에게 왕자 탄신 기도를 부탁하여 숙빈 최씨가 영조를 낳자 파계사에 선대왕의 어필과 위패를 봉안하는 원당을 설립하고 왕실 원찰로 정하였다. 영조의 친필 현판이 현재 성전암 법당에 걸려있고, 영조 어의 또한 파계사에 보관되어 있다. 조선시대 왕실 원당의 설립은 왕실과 사찰간의 필요에 의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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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에 속하는 법정동. 조야동(助也洞)은 대구광역시 북구 법정동 31개 중 하나이다. 18세기 초에 일어난 민란과 흉년을 피해 김해김씨(金海金氏) 상후공이 청도에서 이주하여 조야동에 마을을 개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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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대구 출신의 효자. 조희참(曹希參)[?~1382]은 대구 수성(壽城)[현 대구광역시 수성구] 사람이다. 벼슬이 군기시소윤(軍器寺少尹)에 이르렀다. 1382년(우왕 8)에 왜구가 침입하자 어머니를 모시고 피난을 하였는데, 경산부(京山府)[현 경상북도 성주군]로 향하던 중 가리현(加里縣)[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에 이르자 강물이 불어나 강을 건너지 못하고 왜구에게 붙잡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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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도 대구 지역을 기록한 지리서. 대구 지역은 조선시대에 제작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여지도서(輿地圖書)』 등의 전국 지리지에 빠짐없이 기록되고 있다. 특히 19세기부터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 『영남읍지(嶺南邑誌)』 등의 도지(道誌)에 대구도호부와 현풍현의 읍지가 수록되었고, 『대구부읍지(大丘府邑誌)』와 『현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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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오천서원에 제향된 조선 전기 문신 양희지가 태화루에서 서거정의 시에 차운하여 지은 한시. 「차서사상유태화루운(次徐使相遊太和樓韻)」의 저자 양희지(楊熙止)[1439~1504]의 본관은 중화(中和)이고, 자는 가행(可行)·정보(楨父)이며, 호는 대봉(大峰)이다. 아버지는 양맹순(楊孟淳)이고, 어머니는 나주정씨(羅州鄭氏) 정시교(鄭是僑)의 딸이다. 1474년(성종 5) 문과에 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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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달성 출신의 효자. 본관은 평강(平康). 자는 의길(義吉), 이름은 채안(蔡安)이고 채굉(蔡宏)은 아명(兒名)이다. 아버지는 공조 참의(工曹參議)에 증직된 채원희(蔡元禧)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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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대구 출신의 효자. 채순(蔡順)[?~?]은 수성현(壽城縣)[현 대구광역시 수성구] 에서 태어났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채순은 대구 수성 사람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나 아버지가 계셨기 때문에 무덤을 지킬 수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시묘(侍墓)를 하였고 어머니의 묘를 아버지 묘 곁으로 옮기고 조석(朝夕)으로 상식(上食)을 올리기를 6년 동안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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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추계 추씨달성 입향조. 본관은 추계(秋溪). 자는 관중(慣中), 호는 노당(露堂). 할아버지 추엽(秋饁)은 남송(南宋) 사람으로 고려인종(仁宗) 때 가솔을 이끌고 고려에 귀화하여 함흥 연화도(蓮花島)에 정착하여 한국추계 추씨(秋溪秋氏)의 시조가 되었다. 아버지는 추황(秋篁)으로 예문관 대제학을 거쳐 문하시중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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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5년부터 757년까지 대구광역시 동구일대에 있었던 삼국시대 및 남북국시대 지방 행정 구역. 치성화현은 현재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 아래 마을이다. 팔공산 일대는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경상북도 군위군,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군, 경상북도 칠곡군, 대구광역시 북구 등으로 갈 수 있는 교통의 중심지이자 군사적 요충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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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에 속하는 법정동. 칠성동1가(七星洞1街)는 대구광역시 북구 법정동 31개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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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에 속하는 법정동. 칠성동2가(七星洞1街)는 대구광역시 북구 법정동 31개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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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에 속하는 법정동. 침산동(砧山洞)은 대구광역시 북구 법정동 31개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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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에 속하는 법정동. 태전동(太田洞)은 대구광역시 북구 법정동 31개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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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대구 지역의 각 고을에서 많이 생산되는 물건, 토산, 물산. 토산(土産) 혹은 토산물은 조선시대에 각 고을에서 다른 고을에 비하여 많이 생산되는 물건으로 물산(物産)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 대구부는 영역 내에 고산지대, 평야지대, 하천을 두루 갖추었고, 기후가 온화하고 수량이 풍부하며, 토질이 비옥하였다. 이에 따라 농산물, 어산물, 임산물, 약재 등이 고루 생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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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이전 대구광역시에 살고 있었던 토착 성씨 또는 대구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 조선 초에 대구부는 본부(本府)와 속현인 수성현(壽城縣)·하빈현(河濱縣)·해안현(解顔縣)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는 대구부의 토성(土姓)으로 백(白)·하(夏)·배(裵)·서(徐)·이(李)를 들고 있다. 수성현에는 빈(賓)·라(羅)·조(曺)·혜(嵇), 하빈현에는 신(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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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중대동 있는 통일신라시대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 『퇴경당전서(退耕堂全書)』 및 『팔공산파계사사적비(把溪寺事蹟碑)』에 의하면, 파계사는 통일신라시대 804년(애장왕 5)에 심지왕사가 창건하였다. 사찰 명칭은 사찰 좌우에 9개 계곡이 있다. 이를 구룡(九龍)이라 하며 이들 아홉 마리 용이 한꺼번에 나와 사회를 혼란시키지 못하도록 잡아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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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에 속하는 법정동. 팔달동(八達洞)은 대구광역시 북구 법정동 31개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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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의 풍수지리 환경. 조선시대 당시 대구 읍치(邑治)는 대구읍성을 중심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른바 대구읍성 4대문[진동문, 달서문, 영남제일관, 공북문] 안 공간이 읍치의 중심이다. 대구 읍치의 풍수지리 입지는 타 지역과는 다소 차이점이 있다. 보통 읍치 뒤편[북쪽]에 진산(鎭山)이 위치하고 맞은편[남쪽]에 안산(案山)이 위치하게 된다. 그리고 진산을 중심으로 좌청룡·우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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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에 속하는 법정동. 학정동(鶴亭洞)은 대구광역시 북구 법정동 31개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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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7년부터 1684년까지 대구광역시 동구 일대에 있던 지방 행정 구역. 경덕왕은 지방의 효과적인 통치를 위해 지방의 편제를 군현제로 재편하였다. 이 때, 압독군이 장산군(獐山郡)으로 명칭이 바뀌었고, 영현이었던 치성화현(雉省火縣)도 해안현(解顏縣)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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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에 위치한 유교 유산. 대구광역시 달성군은 『명심보감(明心寶鑑)』의 편찬자로 알려진 추적(秋適)의 활동지이자, 동방 오현 중 한 사람으로 문묘에 종사된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을 배출한 곳으로 유교 전통이 깊은 곳이다. 이러한 까닭에 조선 초 현풍 향교(玄風鄕校)를 비롯하여 1479년(성종 10) 달성 태고정(達城太古亭), 1568년(선조 1) 달성 도동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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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수령을 보좌하던 지방행정 실무자. 원래 고려시대 향리는 지방의 행정 및 세금 징수를 주관하던 고을의 지배 세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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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상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관학 기관. 현풍 향교(玄風鄕校)는 조선 시대 지역 유생들이 머물며 수학한 관학 기관이다. 건립 연대는 명확히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조선 초부터 존재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유교적 사상과 이념, 습속을 지역 내에 전하기 위한 유교 문화의 거점으로서 교육 기능 외에 공자를 비롯한 선현들에 대한 제사를 지내는 제향적 기능, 향교를 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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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에 있던 지방 통치 구역. 『고려사(高麗史)』 권57 지리지 현풍현 조(玄豊縣條)에 “현풍현은 본래 신라의 추량화현(推良火縣)으로, 경덕왕 때 이름을 현효로 고치고, 화왕군(火旺郡)의 영현이 되었다. 1018년(현종 9) 밀성군(密城郡)에 내속되었다. 1390년(공양왕 2)에 감무를 두고 밀성군의 구지산 부곡(仇知山部曲)을 소속시켰다”라고 기록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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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달성 지역에서 활동한 남양 홍씨 중시조. 홍경손(洪敬孫)[1409~1481]은 조선 전기 문신으로 경전과 문학에 뛰어나서 왕명으로 『대학연의집략(大學衍義輯略)』을 편찬하였다. 사후에 아들 홍윤온(洪閏溫)이 갑자사화(甲子士禍)가 일어나자 대구로 내려와 정착한 이래 후손들이 대구 일대에서 번성하였다. 문과로 출사하였는데, 인물이 출중하고 문학이 뛰어나서 중용하자는 논의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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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에서 부모를 극진하게 섬긴 사람 대구 지역 효자에 대한 기록은 1425년(세종 7)에 편찬된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에 하광신(夏光臣)과 조희삼(曺希參)이 처음으로 등장한다. 고려 명종(明宗)[재위 1171~1197] 때 사람인 하광신은 1327년(충숙왕 14)에 복호(復戶)와 정려(旌閭)를 받았으며 비석이 세워졌다. 하광신의 효자 정려는 현재 경상도 지역에 남아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