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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대구의 각 대학에서 전개된 유신체제 반대운동. 1973년 반유신운동은 박정희 정권이 독재 기반을 강화하여 영구 집권을 꾀하였던 유신체제를 반대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하여 대구의 각 대학에서 전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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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4월 대구 지역 4개 대학교 학생들이 벌인 학원 민주화운동. 1979년 12·12사태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정권이 학원을 정치적으로 장악할 목적으로 1960년 해체되었던 학도호국단을 부활시키려 하였다. 경북대학교·영남대학교·계명대학교·대구대학교 등 대구 지역 4개 대학교 300여 명의 학생들은 학내 민주화 및 자율화와 민주주의 실현을 위하여 1985년 4월 10일 4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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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에 박종철 고문치사 책임 규명과 전두환 정권의 4·13 호헌 철폐 및 대통령직선제를 요구하며 진행된 국민운동. 1987년 1월 14일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학생회장이던 박종철이 대학문화연구회 선배이자 민주화추진위원회 지도위원으로 수배받고 있던 박종운의 행적을 취조하기 위하여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던 중 물고문에 의하여 살해당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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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11월 대구의 경북대학교에서 두 차례에 걸쳐 전개된 대규모 반유신 시위. 1974년 경북대학교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일명 민청학련 사건]으로 13명의 경북대학교 학생들이 구속되었다. 1975년 4월 9일 경북대학교 동문 여정남이 박정희 정권 최대의 공안 사건인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에 연루되어 사형이 집행된 이후 경북대학교에서는 단 한 건의 시위도 없이 잠잠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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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11월 대구의 경북대학교에서 전개된 반독재·반유신 시위를 위한 가상의 조직명. 1972년 10월 17일 「유신헌법」 선포 이후 박정희 정권은 학생운동을 주도하여 왔던 대학 내 이념 서클들을 반국가단체, 사회주의사상 단체 등으로 조작하여 많은 학생들을 구속하는 등 학생운동을 더욱 강하게 압박하였다. 박정희 정권의 철저한 학원 통제와 감시를 뚫고 1973년 10월 2일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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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경북대학교에서 반독재 민주화 학생운동을 수행하기 위하여 결성된 이념 서클. 1964년에 결성된 경북대학교의 대표적인 이념 서클인 정사회(正思會)[“실천적인 차원에서 바르게 생각한다”라는 의미]는 1963년에 결성된 ‘맥령’을 잇는 서클이다. ‘맥령’은 1961년 4·19정신을 계승하고 반독재 민주화운동을 수행할 학생운동 조직을 결성하기 위하여 경북대학교에서 결성된 이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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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대학교 학생들이 학원 민주화를 위하여 결성한 학생운동 단체. 계명대학교 학원민주화실천회위원회(啓明大學校 學院民主化實踐會委圓會)는 10·26사태 이후 계명대학교 학생들이 학원 결성한 단체이다. 학도호국단을 철폐하고 자율적 학생회를 구성하려는 학원민주화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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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5월 10일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에 있는 계명대학교에서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내용의 연극 공연으로 인하여 발생한 사건. 계명대연극사건은 1979년 5월 10일 ‘계명대학교 비사축제’ 기간에 기독학생회를 중심으로 연극반 학생들에 의하여 일어났다. 이 사건은 이근삼 작품의 「대왕은 죽기를 거부했다」는 연극 공연을 하던 중, 내용이 사전검열된 것과 다르다는 이유로 공연 중이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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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대구광역시 북구 노원동에 있었던 남선물산 대구공장에서 민주노조 사수를 위하여 농성한 노동운동. 남선물산은 1967년에 설립된 이후 1970년대까지만 해도 섬유 이외에도 13개 업종 9개 업체를 계열로 거느렸던 대구 지역의 대표적인 섬유업체였다. 그러나 1984년에 부도가 난 후로는 법정관리 상태에 있었다. 당시 회사의 재정 상태는 부채 비율은 300%에 달하였으나 당기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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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대구 지역 사회운동가들이 연루된 공안 사건.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南朝鮮解放戰略黨事件)은 1968년 중앙정보부가 ‘통일혁명당 사건’을 수사하면서 진보 경제학자였던 권재혁 등 13명을 강제 연행하여 불법 구금하고 가혹 행위로 허위 진술을 강요하여 ‘간첩 사건’으로 조작한 공안 사건이다. 권재혁이 통일혁명당 서울시당위원장 김종태를 만나 조직 통합을 논의하던 과정에서 통일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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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3월 대구 및 경상북도 지역에 설립된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의 지회. 민주화를 위한 대구경북민주화교수협의회(大邱慶北民主化敎授協議會)는 대학과 사회의 민주적 발전을 위하여 노력하고자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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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1월 21일 대구·경북 지역에서 민주화운동, 민중운동, 통일운동을 전개하기 위하여 창립된 연대 운동 조직. 대구경북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大邱慶北全國民族民主運動聯合)은 1987년 대통령 선거의 실패 이후 민주화와 민중운동의 전개를 위한 새로운 조직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전국 200여 개 단체가 망라된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의 대구·경북 지역 지부로 출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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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서구 비산동에 있던 대구 지역 노동운동 그룹들의 통합 노동운동 단체. 대구노동자협의회[현대]는 1986년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경상북도지부 산하 ‘민주노조지원노동자공동위원회’와 대학 출신 노동운동 활동가 비공개 그룹이 통합하여 출범한 조직이다. 대구노동자협의회[현대]는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을 이은 노동자 대투쟁과 1988년 ‘임금투쟁대책위원회’ 활동을 거치면서 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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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2월 3일부터 2월 12일에 걸쳐 대구 지역에서 위장 폐업과 노동조합 설립 방해, 구사대 폭력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노동자들이 대구지방노동청에서 전개한 농성사건. 1989년 1월 14일 대구 소재 삼공전자에서 32명 집단 감원에 노동조합이 태업으로 맞서는 투쟁을 기점으로 대하통상에서는 1월 27일 100여 명의 노동자를 경영상의 이유를 들어 해고하였다. 대하통상과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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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7월 대구에서 결성된 학생운동 조직. 대구지역대학생대표자협의회(大邱地域大學生代表者協議會)[약칭 대대협]는 경북대학교 총학생회, 영남대학교 총학생회, 대구대학교 총학생회, 계명대학교 총학생회, 효성여자대학교[현 대구가톨릭대학교] 총학생회, 대구교육대학교 총학생회가 중심이 되어 결성된 학생운동 연합체이다. 대대협은 6월 민주항쟁으로 민주화 열망이 최고조에 오른 1987년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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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1월 대구에서 노동자들의 생존권 확보를 지원하기 위하여 설립된 노동운동 단체. 대구·경북노동자생존권확보투쟁위원회(大邱·慶北勞動者生存權確保鬪爭委員會)는 노동자 투쟁을 지원하고, 선진 지역이나 공장 소식을 노동자에게 전파하는 것을 주요 활동 목표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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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5월 7일 대구상업고등학교에서 전국 최초로 설립한 교원노조 단체. 2·28학생운동과 4·19혁명 직후인 1960년대 대구 지역에서는 교원노조운동, 통일운동, 피학살자진상규명운동, 이대악법반대운동(二大惡法反對運動), 여성 노동자의 노동운동 등 각종 운동들이 활발하게 일어나 당시 한국 사회운동을 주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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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한일회담반대운동을 전개하기 위하여 대구에서 결성된 단체. 1964년 박정희 정부는 경제개발에 필요한 자금과 기술을 일본으로부터 들여오기 위하여 한일회담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였다. 대일 협상 진행 과정을 비밀에 부쳐 온 박정희 정부는 1964년 3월 한일회담의 타결, 조인, 비준을 5월까지 마친다는 방침을 밝혔다. 박정희 정부는 일본의 식민 지배에 관한 문제를 한일회담의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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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대구에서 일어난 한일회담반대운동. 1964년 박정희 정부는 경제개발에 필요한 자금과 기술을 일본으로부터 들여오기 위하여 한일회담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였다. 대일 협상의 진행 과정을 비밀에 부쳐 온 박정희 정부는 1964년 3월 한일회담의 타결, 조인, 비준을 5월까지 마친다는 방침을 밝혔다. 박정희 정부는 일본의 식민 지배에 관한 문제를 한일회담의 부차적인 내용으로 간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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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대구에서 결성된 통일운동 조직. 1961년 2월 25일 해방 이후 최대 통일운동 조직인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가 결성되었다. 4월혁명 이후 혁신계 인사들에 의하여 조직된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는 5·16군사정변 이후 와해되었다. 1988년 2월 1일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의 전통을 이어 ‘한반도의 자주와 평화통일, 민주화 쟁취’를 목적으로 하는 ‘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회의’가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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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대통령직선제와 독재 타도를 기치로 대구 지역 사회운동 세력과 종교계, 학생운동 조직 등이 광범위하게 연합하여 결성한 시민운동 조직. 1987년 1월 14일 박종철 고문 사망 사건 후 민주화운동 세력은 전두환 정권의 부도덕성을 폭로하는 한편, 직선제 개헌 운동을 전개하였다. 정권 유지에 위기를 느낀 전두환의 4·13 호헌 조치는 사회 각계각층의 저항을 불러왔다. 대구·경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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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결성되었던 반유신 민주화운동 단체. 민주회복국민회의는 반유신 민주화운동을 결집하기 위하여 1974년 11월 27일 이병린, 함석헌, 천관우, 김홍일, 강원룡, 이희승, 이태영의 7인 위원회를 중심으로 정계, 종교계, 학계, 문인, 언론인, 법조인, 여성계 등 각계 대표 71명 명의로 발족한 시민단체이다. 발족 당시 ‘민주회복 국민선언’을 발표하였는데 선언문의 주요 내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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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12월 대구 지역에서 통일운동 활성화를 위하여 결성된 단체. 민주주의민족통일대구경북연합은 1989년 1월 21일 결성된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全國民族民主運動聯合)[약칭 전민련]의 지역 조직으로 출범하였다.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은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14개 부문 조직과 13개 지역 조직으로 구성되었다. 1991년 12월 8일 15개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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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1월 대구에서 결성된 민주통일국민회의의 경북 지부. 1970년대 민주화운동에 공헌한 재야인사들은 민주주의 실현과 민족 통일을 달성하기 위하여 재야 민주 통일운동 단체가 필요하다는 데 합의하고 1984년 10월 16일 민주통일국민회의(民主統一國民會議)[약칭 국민회의]를 창립하였다. 민주통일국민회의는 장기표, 백기완, 김병걸, 계훈제, 김태홍, 이호철 등 종교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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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대구·경상북도 지역의 민주화운동을 주도하기 위하여 결성된 단체. 1970년대 민주화운동에 공헌한 재야인사들은 민주주의 실현과 민족 통일을 달성하기 위하여 재야 민주 통일운동 단체가 필요하다는 데 합의하고 1984년 10월 16일 민주통일국민회의(民主統一國民會議)[약칭 국민회의]를 창립하였다. 민주통일국민회의는 장기표, 백기완, 김병걸, 계훈제, 김태홍, 이호철 등 종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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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경북대학교 복학생들이 중심되어 결성한 학생운동 단체. 민주화투쟁협의회(民主化鬪爭協議會)는 경북대학교 복학생들로 구성된 복학생협의회가 경북대학교 총학생회와 함께 학원 민주화운동과 사회 민주화운동을 전개하기 위하여 결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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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신 운동을 전개하기 위하여 대구 지역 3개 대학 대학생들이 결성한 학생운동 조직. 유신체제 말기 대구 지역 대학생들은 단일한 조직을 통하여 반유신 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기 위하여 경북대학교, 계명대학교, 영남대학교 등 3개 대학이 연합하여 사회정의구현을 위한 경북학생협의회를 결성하였다. 사회정의구현을 위한 경북학생협의회의 결성은 이후 대구 지역 학생운동 전개 과정에서 수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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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6월부터 12월까지 대구 지역에서 열린 삼선개헌 반대운동. 박정희 정부와 집권 여당인 민주공화당은 1969년 대통령 연임 금지 조항을 없애 장기 집권의 길을 열고자 헌법 개헌을 추진하였다. 1969년 1월 6일 윤재회 민주공화당 사무총장이, 1월 7일 윤치영 민주공화당의장 서리가 개헌의 필요성을 표명하면서 개헌 논의가 표면화되었다. 박정희 대통령 역시 1969년 1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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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신민당이 추진한 대통령직선제로의 개헌 서명운동을 위한 현판식. 신민당과 민추협의 개헌현판식은 1986년 4월 5일 신민당과 민추협이 대구의 아세아극장에서 개헌 운동을 벌이기 위하여 거행한 정치 행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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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대구 지역 인사들이 연루된 좌익 조작 사건. 인민혁명당재건위원회사건은 1964년 제1차 인민혁명당사건에 이어 1974년에 일어난 제2차 인민혁명당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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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대구에서 노동조합운동의 발전을 위해 결성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의 지역조직. 해방 이후 지속적으로 전개된 진보적 노동조합운동의 흐름은 1995년 11월 11일 당시 총 862개 노조 42만여 명의 조합원을 지닌 전국 노동조합의 연합조직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을 출범시켰다. 곧이어 지역조직이 구성되어 나갔다. 대구는 대구지역노동조합연합[1989~1996년] 활동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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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대구의 경북대학교에서 개최된 4월혁명 11주년 전국 대학생 써클 대항 학술 토론회에서 발표된 반독재 구국 선언문의 내용으로 일어난 사건. 1971년 4월은 제7대 대통령 선거가 진행되는 해였다. 경북대학교 이념서클 정진회와 여정남은 박정희 정권의 영구 집권을 저지하기 위하여 1971년 하반기에 경북대학교에서 개최학기로 계획되었던 전국 대학생 써클 대항 학술 토론회 일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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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대구 지역 인사들이 연루된 좌익 조작 사건. 인민혁명당은 1955년 부산에서 결성된 암장(岩漿)그룹에서 시작된다. 암장그룹은 1954년 부산사범학교의 이수병, 김종대, 김정위, 박영섭, 유진곤, 부산고등학교의 최종국, 이영호, 김금수, 경남공업고등학교의 방중기가 사회과학 학습을 토대로 한국사회의 현실을 구조적으로 분석하고 진보적 대안을 모색하고자 만든 사회과학 연구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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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대구의 경북대학교와 계명대학교가 참가한 제1회 전국대학총학생회 회장단 회의. 대구의 경북대학교와 계명대학교 총학생회 대표는 1980년 5월 16일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전국 55개 대학의 총학생회 대표들이 참가한 가운데 개최된 제1회 전국대학총학생회회장단 회의에 참석하였다. 제1회 전국대학총학생회회장단 회의는 1980년 5월 14일 전국 27개 총학생회 회장단이 모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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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5월 계명대학교와 영남대학교 학생운동권에서 영남대학교 축제 기간 중 전개하기로 하였으나 미수에 그친 학생 시위. 1979년 5월 계명대학교와 영남대학교 학생운동권은 카터 방한 반대와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 반대운동을 전개하기로 로 하였다. 그리고 이를 위한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하여 각 대학에서 사전 행사를 진행하기로 하였다. 계명대학교에서는 축제 기간에 「백골난망이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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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대구 지역에서 한일회담 개최 및 비준을 반대하기 위하여 전개한 민주화운동. 1964년 박정희 정부는 경제개발에 필요한 자금과 기술을 일본으로부터 들여오기 위하여 한일회담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였다. 대일 협상의 진행 과정을 비밀에 부쳐 온 박정희 정부는 1964년 3월 한일회담의 타결, 조인, 비준을 5월까지 마친다는 방침을 밝혔다. 박정희 정부는 일본의 식민 지배에 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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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대구에서 교육 민주화운동을 전개한 교사들의 교육운동 단체. YMCA중등교육자협의회대구지역회는 1981년 12월 대구에서 기독교 정신과 교육자적 신념에서 출발한 학습 소모임에서 대구·경상북도 지역의 교육 민주화운동을 펼치기 위한 교육운동 단체로 전환하며 대구·경상북도 교육 운동의 한 축을 담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