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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고와리에서 펼쳐진 의병 전투. 고와실전투(高臥室戰鬪)는 1910년 경상북도 경주·영천·의흥·청송 지역의 일본군 수비대로 편성된 합동 토벌대를 맞이한 산남의진(山南義陣)의 청송동부진 서종락부대가 청송군 안덕면 고와리에서 치른 전투이다. 이 전투에서 청송동부진 서종락부대는 큰 피해를 입고 해산되었다. 1908년 4월 26일 청송군 현서면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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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으로 전국 각처에서 일본의 조선 침략 야욕을 타도하기 위한 의병들의 창의가 일어났다. 청송 지역에서도 의진들이 결성되어 1896년 3월 결성된 청송의진과 진보의진, 그리고 을사늑약 이후 경상북도 영천에서 결성된 산남의진에 참여한 청송 출신의 의병 및 1908년 2월경부터 청송 지역에서 의병장 서종락(徐鍾洛)이 지휘하던 청송 동부진과 의병장 남석구(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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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김재수(金在洙)[1876~1909]는 1906년 3월 경상북도 영천에서 일어난 산남의진(山南義陣)에서 활동하였다. 1907년 10월 포항 죽장면 입암전투(立巖戰鬪)에서 일본군에게 크게 패하자 의성의 박연백(朴淵伯) 의진에 들어가 소모장(召募將)으로 영천, 안동, 신녕 등 여러 지역에서 군자금 확보에 주력하다 체포되어 1909년 4월 교수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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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김진영(金震榮)[1876~1921]은 1906년 산남의진(山南義陣)에 참여하여 장영집사(將營執事)에 이어 군문집사(軍門執事)로 활동하였고, 1908년 청송 동부진 서종락(徐鍾洛) 부대에 소속되어 활동하였다.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중옥(重玉), 호는 벽초(碧樵), 이명은 김해영(金海榮). 1876년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신성리에서 출생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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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남복수(南福洙)[1880~1931]는 1906년 3월 영양남씨(英陽南氏) 일족인 남석우(南錫祐) 등과 산남의진(山南義陣)에 참여하여 군자금 모집과 군수품 수집에 크게 공헌하였으나 부상을 입고 귀향하였다.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경도(景都). 이명은 남수복(南洙卜). 1880년 5월 9일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월매리 523번지에서 아버지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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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남석광(南錫光)[1881~1952]은 1906년 3월 남석우, 남석인 등과 함께 산남의진에 참여하였다. 1908년 2월 의병장 최세윤이 소부대를 단위로 한 유격전을 전개하자 청송으로 귀향하여 서종락부대에 참여하였다. 1910년 고와실전투에서 패한 뒤, 각처를 전전하며 은신 생활을 하였다.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이박(而珀). 188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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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남석구(南錫球)[1875~1911]는 1906년 3월 창의한 산남의진에 참가하였다가 1908년 3월 산남의진의 3대 대장 최세윤 휘하의 청송 서부 지역 책임자로 활동하였다.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응서(應瑞). 1875년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도평리에서 아버지 남광하(南光夏)와 어머니 김해김씨(金海金氏)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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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남석술(南錫述)[1872~1907]은 1896년 청송의진(靑松義陣)에 입진하여 감은리 전투를 수행하였고, 1907년 산남의진(山南義陣)에 들어가 청송·흥해·영덕 등지에서 큰 공을 세웠으나 영덕 유암전투에서 전사하였다.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경숙(敬叔), 이명은 남경규(南景圭). 1872년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도평리에서 아버지 남문철(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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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남석우(南錫佑)[1869~1906]는 1896년 3월 청송의진(靑松義陣)에 참여하여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의병 해산 이후 각처에서 활동하던 화적(火賊) 토벌에 참여하여 약포장(約砲將)으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1906년 3월 경상북도 영천에서 결성된 산남의진(山南義陣)의 우익장(右翼將)으로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사망하였다. 본관은 영양(英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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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남석우(南錫祐)[1871~1933]는 1906년 3월 산남의진에 참여하였으며, 1908년 2월경 편성된 남석구부대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덕여(德汝). 1871년 9월 9일 경상북도 청송군 부남면 중기리 327번지에서 아버지 남성하(南成夏)와 어머니 전주유씨(全州柳氏) 사이에서 4남 3녀 중 삼남으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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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남석태(南錫台)[1879~1961]는 1896년 경상북도 영천 신녕의 화산의진(華山義陣)과 1906년 3월 산남의진에 참여하였다. 1908년 2월 의병장 최세윤이 소부대를 단위로 한 유격전을 전개하자 청송으로 귀향하여 서종락부대에 참여하였다. 1910년 청송 고와실전투 패전 후 은신 생활을 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본관은 영양(英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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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남승하(南昇夏)[1872~1907]는 1896년 청송의진(靑松義陣)과 1906년 3월 산남의진(山南義陣)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06년 4월 산남의진 대장 정용기(鄭鏞基)가 체포된 뒤 귀향하였다가, 1907년 4월 정용기가 재기하자 청송 지역에서 의병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순국하였다.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우성(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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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남정철(南井喆)[1888~1970]은 1906년 3월 산남의진(山南義陣)에 참여하여 종사(從事)로 활동하였으며. 1908년 2월 의병장 최세윤(崔世允)이 소부대 단위로 유격전을 전개하자, 청송으로 귀향하여 청송동부진 서종락부대의 종사로 의병 항전을 전개하였다.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극삼(極三), 호는 청강(靑江), 이칭은 남정철(南定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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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청송 지역에서 전개되었던 민족 항일운동. 독립운동은 일제의 식민 통치를 극복하고자 전개한 민족적 항일운동을 말한다. 일제의 침략과 강점에 대항하여 민족의 자주성을 회복하고 사회경제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전개되었다. 경상북도 청송 지역의 독립운동은 청송 출신 인물들이 벌인 활동을 말한다. 독립운동은 한말 의병운동과 계몽운동으로 전개된 구국운동을 선행 단계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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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배연집(裵淵集)[1878~1953]은 1906년 산남의진(山南義陣)에 참여하여 장영수위(將營守衛)를 역임하였으며, 1908년 2월부터 서종락(徐鍾洛) 부대에서 활동하였다. 본관은 흥해(興海). 자는 원서(元序), 이명은 배연집(裵淵楫) 혹은 배상언(裵尙彦). 1878년 5월 5일 경상북도 청송군 부남면 하속리 925번지에서 아버지 배선화(裵善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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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상북도 영천, 청송, 영일, 경주 및 경상남도 울산, 밀양 일대에서 활동한 항일 의병부대. 산남의진(山南義陣)은 1906년 3월부터 1910년경까지 경상북도 영천, 청송, 영일 일대를 중심으로 정용기(鄭鏞基), 정환직(鄭煥直), 최세윤(崔世允) 의병장이 이끌던 의병부대였다. 의진은 처음부터 관동(關東)을 향한 북상을 목표로 정하고 활동하다 1907년 9월 입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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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서종락(徐鍾洛)[1874~1940]은 1906년 3월 산남의진(山南義陣)이 결성되는 과정에서 청송 지역의 소모(召募)를 담당하였으며, 창의(倡義) 이후에는 1차 산남의진의 후봉장(後鋒將)에 이어 선봉장(先鋒將)으로 추대되어 활동하였다. 그 후에는 청송 지역 유격대를 맡아 활동하였다. 특히 제3대 대장 최세윤(崔世允)이 지역 분대를 중심으로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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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9월 21일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신성리에서 벌어진 의병 전투. 신성전투(薪城戰鬪)는 1907년 9월 21일[음력 8월 14일] 추석 전날 밤 추석 명절을 보내기 위해 고향에 들어온 산남의진의 청송 지역 유격대와 일본군이 청송군 안덕면 신성리 건너 추강마을에서 벌인 전투이다. 1907년은 의병 전쟁에서 커다란 분수령이 되는 시기로 7월 19일 고종의 강제 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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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우영조(禹永朝)[1870~1963]는 1906년 3월 결성된 산남의진(山南義陣)에 참여하여 진보 지역의 소모(召募)를 담당하였다. 1907년 10월 9일 입암전투(立巖戰鬪) 이후, 서종락(徐鍾洛)과 함께 청송 지역 유격대를 맡아 활동하였다. 제3대 대장 최세윤(崔世允)이 지역 분대를 중심으로 한 유격전을 구상하자 청송동부진을 맡아서 불굴의 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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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장. 윤기열(尹基烈)[1878~1917]은 1906년 3월 결성된 산남의진(山南義陣)의 창의 과정에서 지례(知禮)·고령(高靈) 지역의 소모(召募)를 담당하였으며, 그 후 2초장(哨將)·도포장(都砲將) 등을 맡았다. 1908년 1월 이후에는 이세기(李世紀)의 휘하에서 포항 장기읍(長鬐邑)을 공격하는 등의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본관은 파평(坡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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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이세기(李世紀)[1882~1911]는 1896년 심성지(沈誠之)의 청송의진(靑松義陣)에 들어가 활동하였고, 1906년 정용기(鄭鏞基)의 산남의진(山南義陣)에 입진하여 활동하였으며, 1908년 최세윤(崔世允) 대장이 잡힌 뒤부터는 독자적으로 의병부대를 이끌었다. 하지만 1909년 7월 일본군에게 잡혀 30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19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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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청송 출신의 의병. 조근백(趙根伯)[1872~1908]은 1906년 3월 경상북도 영천에서 정용기(鄭鏞基)가 일으킨 산남의진(山南義陣)의 참모장(參謀將)이 되어 의진을 이끌었다. 그 뒤 1907년 10월 입암전투(立巖戰鬪)에서 일본군에게 패하고 은신하였다가 1908년 6월 자택에서 일본군에게 피살당해 순국하였다. 본관은 함안(咸安). 이명은 조근백(趙勤伯) 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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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경상북도 청송군 동부 지역에서 편성된 의병 부대. 청송동부진 서종락부대(靑松東部陣徐鍾洛部隊)는 최세윤(崔世允)의 산남의진(山南義陣)의 지대(支隊)로서 1908년 2월부터 1910년경까지 경상북도 청송 지역에서 활동하다 고와실전투(高臥室戰鬪)에서 패하고 해산되었다. 1905년 11월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이에 반대하는 의병 항쟁이 전국에서 일어났다. 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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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경상북도 청송군 서부 지역에서 편성된 의병 부대. 청송서부진 남석구부대(靑松西部陣南錫球部隊)는 1908년 3월 철령(鐵嶺)을 근거지로 경상북도 청송 서부 지역을 지키기 위해 편성된 산남의진(山南義陣)의 지역 부대였다. 일본군과 여러 차례 격전을 벌인 뒤 1910년 청송군 안덕면 고와실전투(高臥室戰鬪)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1905년 을사늑약과 1907년 고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