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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개신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기와가마터[瓦窯址]. 청주 개신지구 택지개발 과정에서 확인되어 1998년 충북대학교 박물관에 의하여 발굴되었다. 와요지[瓦窯址]는 택지개발지역 남쪽으로 치우친 해발 53m의 낮은 구릉사면부에 위치하며, 경작과정에서 유구의 대부분이 파괴되었고 연소실·소성실 및 벽면 일부만이 남아 있었다. 낮은 구릉사면의 풍화암반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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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에 있었던 관청 자리. 산성동은 본래 청주군 산내이하면(山內二下面)에 속해 있던 지역이며, 상당산성의 안이 되므로 산성이라 한다. 지금의 산성동에 있었던 관터는 창말 북편 옛날 관아(官衙)가 있던 자리이다. 공남문에서 현재의 저수지를 통하여 북쪽 방향의 산 중턱에 남향의 다섯 칸 짜리 동헌(東軒)이 자리잡고 있었다. 동헌 앞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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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구룡사가 있었던 터. 『여지도서(輿地圖書)』를 비롯한 조선 후기의 각종 지리지에 남악사(南岳寺), 청심사(淸心寺)와 함께 상당산성 안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1744년(영조 20)에 상당산성의 승장 영휴(靈休)가 지은 필사본인『상당산성고금사적기(上黨山城古今事蹟記)』에 의하면 1720년(숙종 46)에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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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에 있었던 남악사의 절터. 『여지도서(輿地圖書)』를 비롯한 조선 후기의 각종 지리지에 구룡사(九龍寺), 청심사(淸心寺)와 함께 상당산성 안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1744년(영조 20년)에 상당산성의 승장 영휴(靈休)가 지은 필사본인『상당산성고금사적기(上黨山城古今事蹟記)』에 의하면 1725년에 절도사 이태망(李台望)과 우후 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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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내곡동에 있는 조선 말기의 절터. 1986년 중부고속도로 건설 당시 머리 부분을 잃은 석조여래입상이 남아 있어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석조여래입상의 주변지역은 조선 말기에 세운 작은 절터로 밝혀졌고, 석불을 봉안하였던 원래의 절터는 38-1번지의 건물지로 확인되었다. 출토유물은 연꽃무늬와 해무리무늬가 베풀어진 수막새와 당초무늬, 해무리무늬 등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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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대성동, 현재 청주향교 자리에 있었던 고려시대 사찰의 터. 지금의 청주향교 자리에 있었던 고려시대의 사찰의 터인데, 문헌기록과 명문유물이 없어 절 이름과 유래를 알 수 없으나, 향교 일대에서 발견된 사찰과 관련된 기와 조각과 석조물들로보아 향교가 세워지기 이전에는 비교적 큰 규모의 사찰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청주향교의 여러 건물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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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수동에 있는 대한불교수도원 자리에서 발견된 옛 절터. 문헌기록과 명문유물이 없어 절 이름과 연혁은 전혀 알 수 없으나, 주변에서 통일신라시대에서 고려시대에 이르는 기와 조각과 석조물 등이 발견되어 대략 사찰의 시기를 짐작할 수 있다. 지금의 대한불교수도원은 일제강점기에 일본 신사가 있었던 곳에 1952년에 신용화사(新龍華寺)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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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수동에 있었던 절터. 『여지도서(輿地圖書)』를 비롯한 조선 후기의 각종 지리지에 ‘목암(牧菴)’ 또는 ‘목우암(牧牛菴)’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고 있다. 창건시기에 대한 문헌기록은 없으나, 출토유물로 보아 통일신라에 창건되어 조선 말기까지 번창하였음을 알 수 있다. 고려의 막새기와, 해무리굽 청자, 토기편 등이 다량으로 수습되고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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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사직동에 있는 고려시대 사찰 사뇌사의 터. 『조계진각국사어록(曹溪眞覺國師語錄)』에 "서원부사뇌사하안거(西原府思惱寺夏安居: 서원부 사뇌사에서 여름철 안거하였다)"라는 기록이 보여서 고려에 청주에 있던 대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유물이 발견된 곳은 대찰이 있을만한 곳이 아니어서 원 사지는 지금의 용화사 주변 지역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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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사직동에 위치한, 조선시대의 사직단이 있었던 자리. 사직단은 천자(天子)나 제후(諸侯)가 토신(土神)인 사(社)와 곡신인 직(稷)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조선시대에는 한 해 농사의 풍년과 국태민안을 기원하기 위해 각 고을의 주, 군, 현에 사직단을 두었다. 청주의 사직단은 고려시대 공민왕(恭愍王)이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청주에 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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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사창동에 있었던 사창(社倉) 자리. ‘사창(社倉)’은 조선시대에 각 고을의 환곡을 저장하여 두던 곳집(창고)으로서, ‘사창터‘는 이 사창이 있던 자리를 일컫는 이름이다. 1914년 일제 때 이 지역에 사창리(司倉里)라는 행정구역 명을 붙이면서 ‘사창’의 한자표기가 ‘司倉’으로 달라졌다. 사창 주변에는 ‘창말’이라는 마을이 있었다. 옛날 사창의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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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상당산성 남문 진입로 부근에서 조사된 조선시대의 기와가마. 조사된 유구는 기와가마 1기이다. 가마는 북동쪽에서 남서 방향으로 경사진 지형의 화강암 부식토층을 굴착하여 만든 반지하식 등요로서, 연소실과 소성실 사이에 는 낮은 단벽이 설치된 일반적인 구조이다. 가마의 전체 형태는 장타원형이며 소성실은 너비의 큰 변화없이 직선적으로 연도에 이어진다.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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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에 있었던 충청병마절도영(忠淸兵馬節度營)의 건물. 조선시대 충청병마절도영에 세워졌던 건물이다. 병영의 군무를 수행하는데 있어 병영소속의 군관들이, ‘백성들에게 세 가지를 베풀어주라’는 뜻으로 건물의 명칭을 삼석당(三錫堂)이라 한 것으로 보인다. 영조(英祖)년간에 간행된 『여지도서(輿地圖書)』 공해(公廨), ‘삼석당, 십이간(十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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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을 저장하기 위해 만든 창고인 석빙고가 있었던 자리. 석빙고는 조선시대 고을마다 있었던 공용의 얼음 창고로, 겨울철에 얼음을 떠서 저장하였다가 여름 더위 때 사용하기 때문에 얼음이 녹지 않게 하기 위하여 지하에 설치하였다. 냉매(冷媒)는 주로 소금과 겨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록에 의하면 얼음을 채취하여 저장하는 일은 신라 때부터 있었으나 당시에 축조된 빙고는 현재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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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화동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당집. 조선시대에 고을 백성들의 안녕을 위하여 성황신을 모셨던 당집이다. 조선조에 들어와서 중앙집권화의 한 방식으로 산천(山川), 성황(城隍), 풍운(風雲), 뇌우(雷雨) 등 여러 명칭으로 부르던 민간신앙의 단(壇)들을 하나의 성황사(城隍祠)로 통합하여 주·부·군·현의 행정 단위마다 하나씩 설치하여 지방관으로 하여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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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송절동에 위치한 고려시대 사찰의 터. 이 절터에 대한 문헌기록이 전혀 없어 사찰의 명칭은 물론 창건 및 폐사시기를 알 수 없으며, 단지 주변에서 발견되는 유물을 통하여 대략 고려시대에 작은 절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청주도축장에서 남쪽으로 통하는 덤박골고개에서 남쪽으로 약 200m 지점으로 신봉동과 송절동 사이에 형성된 야산의 북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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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시대의 생활유적. 청주 신봉·봉명동 지구 토지구획정리사업 추진계획에 따라 1993년 11월~12월에 걸쳐 지표조사를 실시하였고, 지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1998년 3월~5월에 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시굴조사를 통하여 확인된 유적의 성격·시대·분포범위 등에 따라 전체 조사대상지역을 Ⅰ~Ⅴ 지구로 구분하였다. 이중 Ⅳ지구는 원삼국기의 널무덤유고가 조밀하게 분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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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수곡동 쑥골에 위치한 조선시대 제방의 터. 이 제방은 기록으로 보아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여지도서(輿地圖書)』청주목 제언조에 ‘재주남오리주위칠백구십일척수심삼척(在州南五里周圍七百九十一尺水深三尺)’이라 하여 청주 남쪽 5리에 있으며 둘레가 7백 91척, 수심 3척으로 기록되어 있다. 택지개발과 함께 현재 청주 한솔초등학교의 운동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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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숙박시설인 오근원이 있었던 자리. 상당구 오동동에 해당하는 곳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본래 오근부곡의 옛터를 오근원이라 한다 하였다. 오근부곡은 청주의 북쪽에 있으며, 동쪽으로는 청안현과 사십리 거리이고, 북쪽으로는 진천현과 삼십리, 서쪽으로는 목천현과 오십리, 남쪽으로는 청주와 삼십리 거리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옛날에 오근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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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에 위치한 고려시대 사찰 용두사의 터. 청주시내의 중심지에 자리하고 있는 용두사지(龍頭寺址)는 국보 제41호인 철당간이 남아 있는 관계로 널리 알려져 있다. 용두사의 창건과 폐사에 대한 문헌기록이 없어 자세한 연혁은 알 수 없다. 단지 1천년 이상을 제자리에 서있는 철당간의 당간기가 있어 절 이름뿐만 아니라 고려 초기의 상황을 어느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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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 무심천변에 위치한 절터. 문헌기록(文獻記錄)에 전혀 나타나지 않아 절 이름과 연혁은 알 수 없어 이 절터가 위치한 동명을 따서 ‘운천동사지(雲泉洞寺址)’라고 부르고 있다. 운천동사지(雲泉洞寺址)는 1970년에 이곳에 민가(民家)를 건축하던 중 청동으로 만든 범종(梵鐘) 안에 금동보살입상(金銅菩薩立像), 구양사명(句陽寺銘) 금고(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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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 속칭 산직말에 위치한 절터. 택지개발 전에는 마을의 민가(民家)에서 절터(寺址)의 유구(遺構)로 보이는 치석(治石)한 주초석(柱礎石)들이 있었다. 이곳은 1982년 3월 운천동 449번지에서 사적비(寺蹟碑)가 발견되면서 알려졌다. 청주 운천동 사적비(淸州雲泉洞寺蹟碑)라고 명명된 이 사적비는 원래의 위치에서 자주 옮겨진 상태로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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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율량동에 있는 신당 터. 산신제를 올리던 산제당이었다. 상당구 율량동 율상리 상당산성 서쪽 사면 중턱에 있다. 율상리에서 동제를 올리지 않게 된 후 보암사에서 산신제를 올린다. 자연암벽 밑에 3~4평 정도를 평지로 다듬어 앞면에 축대로 단을 쌓았다. 현재는 폐허가 되어 흔적을 찾기 어렵고, 주변에 기와조각이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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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에 있었던 충청병마절도영(忠淸兵馬節度營)의 건물. 조선 중기 무렵 충청병마절도영의 중영(中營)에 세워졌던 건물로 목사(牧使) 최상정(崔尙鼎)이 개축하였다. 병영의 군무를 수행하는데 있어, 병영소속의 군관들이 청렴결백하게 업무를 집행해야한다는 뜻을 담아 건물의 명칭을 읍청당(挹淸堂)이라 한 것으로 보인다. 윤동형(尹東衡)[1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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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주성동에 있었던 정자터. ‘이유당터’는 이유당(怡愉堂)이 있던 자리로 ‘이유당(怡愉堂)’은 청주 북쪽 10리되는 백화산 아래에 있었다. 참의(參議) 이덕수(李德洙)가 세웠다. 이유당(怡愉堂)이 세운 정자 이름이 ‘이유당(怡愉堂)’이다. 청원군 내수읍 구성리의 동쪽에 있는 주성동의 백화산 아래에 당이 있던 자리로 율량동과 주중동 사이에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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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숙박시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인제원은 청주성 남쪽 6리에 있다.’라고 되어있고, 『청주읍지(淸州邑誌)』에는 ‘고을남쪽 6리에 있다. 16개의 원(院)이 옛날에 있었다. 옛터의 옆에 창(倉)을 세우고 객사를 두었다. 지금은 모두 폐하고 다만 신원(薪阮), 오근(吳根)이 사성(使星)을 보내고 맞는 장소이다.’고 한다. 현재 흥덕구 분평동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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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숙박시설 정진원(情盡院)이 있던 터 원(院)이란 전국 각 역(驛)에 둔 숙박시설로 정진원(情盡院)이 이에 해당한다. 원의 설치목적은 공무연락자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공적임무를 띤 사람에게 편의를 제공하는데 있었다. 정진원은 청주에서 회인-보은- 문의-부강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숙박시설이었다. 정진원은 청주읍성(淸州邑城)의 남쪽 남석교 건너에 있었다. 『신증동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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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수동에 위치한 고려시대 사찰 터. 이 절터에 대한 문헌자료의 기록이 없어 연혁을 알 수 없으나 1980년의 지표조사에서 ‘천흥사(天興寺)’라 쓰인 기와 조각이 수습되어 절터와 함께 옛 절의 이름을 확인하게 되었다. 이 절터에 대한 학술조사가 이루어지 않아 사역의 범위와 가람의 구조 등을 알 수 없지만, 주변에서 고려의 기와편이 다수 발견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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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에 위치한 조선 후기의 사찰 터. 조선 후기의 절터로 자세한 연혁은 알 수 없으나 『여지도서(輿地圖書)』를 비롯한 조선 후기의 각종 지리지에 구룡사(九龍寺), 남악사(南岳寺)와 함께 상당산성 안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에는 청심암(淸心菴)으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작은 암자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여지도서(輿地圖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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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대성동에 있는 급수 및 수질검사를 위한 시설물. 제1, 2, 3 배수지시설은 우암산(牛岩山)[338m] 끝자락 8부 능선 정도에 위치하여 수압을 통해 시내에 수돗물을 공급하도록 하였다. 건축적으로 우수한 배수탑은 배수지 물의 수질을 검사하기 위해 출입하던 시설물이었으며, 시멘트로 만든 종 같은 모양을 엎어놓은 듯한 시설물이다. 종탑은 자갈이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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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북문로2가에 위치한, 옛날 청주역이 있었던 자리. 1921년 11월 1일 조치원과 청주간의 충북선 개통으로 서문철교가 건설되었고 지금의 도청 방향의 사직로를 지나 중앙로와 교차하는 부근에서 북쪽으로 철로가 놓이면서 청주역이 건설되었다. 지금의 시청사거리 부근에 해당한다. ‘역전(驛前)’은 ‘구 역전 근처’로서 현재의 북문로2가와 북문로3가 사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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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읍성의 남쪽 문이 있던 자리. 상당구 남문로 2가 남단에 있는 청주읍성 남문터는 청남문(淸南門)이라 하였으며, 홍예문·문루·옹성이 있었으나 일제 강점기에 모두 헐리어 성안에 있던 관아와 충청병영의 시설들도 없어졌다. 본래 남문 앞 옹성리(甕城里) 마을은 성안길의 남쪽 끝이며, 성곽도시였던 청주의 관문으로서 역할을 하였다. 남문터를 알리기 위해 1994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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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읍성의 동쪽 문이 있던 자리. 청주읍성(淸州邑城)의 동문터는 개인문(開寅門 혹은 闢寅門)이라하였으며, 1910년대에 이른바 시구(市區) 개정사업 때 헐리었다. 동문의 안쪽에는 감옥과 용두사지(龍頭寺址) 철당간이 가까이 있었고, 홍살문을 지나는 큰 길이 청주목 관아와 연결되었으며, 문밖에는 잉어배미라 불리던 논과 그 동쪽으로 문외리 마을이 있었다. 성문 밖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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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읍성의 북쪽 문이 있던 자리. 상당구 북문로 1가와 2가의 경계에 있는 청주읍성의 북문터로 현무문(玄武門)이라고 하였으며, 홍예문과 문루, 옹성을 갖추고 있었으나 일제 강점기에 모두 헐렸고 북문 안쪽에 있던 표충사(表忠祠)는 수동으로 옮겨졌다. 1921년 북문 밖으로는 충북선 철로가 놓여졌었고, 지금은 청주의 중심로가 되었다. 1994년에 청주 문화사랑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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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읍성의 서쪽 문이 있던 자리. 상당구 서문동 96번지에 있는 청주읍성 서문터는 서문동 오거리에서 성안길로 통하는 속칭 족발골목의 입구에 있다. 이곳은 청주읍성(淸州邑城)의 서문인 청추문(淸秋門)이 있었던 곳이나 일제 강점기인 1910년대에 이른바 시구 개정사업으로 헐리었다. 서문의 안에는 충청병영이 있었고 문밖에는 대교천 즉 지금의 무심천(無心川)이 흘렀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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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주치(州治)의 서문(西門) 밖에 있던 군인을 사열하던 장소. 현재까지 치부당(治賦堂)의 존재에 대해 전혀 알려진 기록이 없다. 즉 치부당이 무엇이었는지, 어디에 있었는지, 언제까지 남아 있었는지, 건물이었는지 등, 현재 청주에 살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이 유적 혹은 유물에 대해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다만, 조선 후기에 발간된 『청주읍지(淸州邑誌)』에 기록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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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탑동에 있는 고려시대 사찰의 터. 청주시 상당구 탑동의 일신여자고등학교 북쪽의 주택가에 있는 고려시대 사찰의 터이다.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5호로 지정된 오층석탑이 개인주택 안마당에 남아 있다. 문헌기록이 없어 절의 이름과 연혁은 알 수 없으나 절터에 남아있는 오층석탑으로 보아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시대에 이르는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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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수동에 위치한 고려시대 사찰의 터. 1980년의 지표조사에서 발견된 「흥천(興泉)」명 기와 조각을 통하여 이 절터가 고려에 있었던 ‘흥천사(興泉寺)’의 터였음이 밝혀졌다. 옛 절의 이름이 흥천사로 밝혀지기는 하였으나 흥천사가 어떠한 절이었는지는 역사의 기록이 전혀 없어 알 수 없다. 단지 이곳에서 출토되는 유물들이 대개 고려시대의 기와 파편들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