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0774
한자 金光岳
영어공식명칭 Kim Kwangak
이칭/별칭 동첨(東瞻),수이(秀而),독좌와(獨坐窩)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근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94년 2월 2일연표보기 - 김광악 출생
활동 시기/일시 1726년 - 김광악 생원시와 진사시 합격
활동 시기/일시 1733년 - 김광악 알성시 문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733년 10월 - 김광악 승정원가주서 제수
활동 시기/일시 1734년 1월 - 김광악 황산찰방 제수
활동 시기/일시 1736년 - 김광악 성균관전적 역임
활동 시기/일시 1737년 - 김광악 황해도도사 역임
활동 시기/일시 1747년 7월 - 김광악 흡곡현령 제수
몰년 시기/일시 1759년 12월 16일연표보기 - 김광악 사망
추모 시기/일시 1790년 1월 - 김광악 효자로 정려
출생지 여주 - 경기도 여주시
거주|이주지 부여 - 충청남도 부여군
외가|처가 부여 - 충청남도 부여
부임|활동지 흡곡 - 북한 강원도 통천군
성격 문신
성별 남성
본관 경주(慶州)
대표 관직 흡곡현령

[정의]

조선 후기 부여 지역에 거주한 문신.

[가계]

김광악(金光岳)[1694~1759]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동첨(東瞻) 또는 수이(秀而), 호는 독좌와(獨坐窩)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병조의 낭관을 지낸 김시현(金時鉉)이고, 할아버지는 김빈(金彬)이다. 아버지는 김정상(金鼎相)이고, 어머니는 부사 이적(李菂)의 딸 전주 이씨(全州 李氏)이다. 첫 번째 부인은 조영걸(趙英傑)의 딸이고, 임이규(任以逵)의 딸, 신구(申構)의 딸이다.

[활동 사항]

김광악은 1694년(숙종 20) 2월 2일 여주(驪州)[현 경기도 여주시]에서 태어나 1726년(영조 2) 생원시와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1733년 알성시 문과에 급제하여 10월에 승정원가주서가 되었고, 1734년 1월 황산찰방에 제수되었다. 1736년 성균관전적·사헌부감찰을 거쳐 1737년 현릉령(顯陵令)·황해도도사 등을 역임하다가 체직된 후 한동안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

1748년 충청도관찰사로 재직하였던 서종급(徐宗伋)이 조정에 돌아와서 김광악을 인재로 추천하였고, 김광악은 7월에 흡곡현령에 제수되어 약 5년간 봉직하였다. 흡곡현령 재직 시에는 고을에 서당을 세워 학생들을 교육하였고, 고을의 노인들을 우대하여 계절마다 음식을 올리고 잔치를 베풀기도 하였다.

김광악은 ‘김효자(金孝子)’라고 불릴 정도로 부모에게 효성을 다하였으며, 친지들의 상장례를 예법대로 치렀다고 한다. 여주 지역에 있었던 토지와 집을 두 숙부에게 나눠 준 뒤에는 어머니를 모시고 외가인 부여에서 살았는데, 어머니의 마음을 위로해 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연로한 어머니가 병석에 눕자 6개월 동안이나 옷의 띠를 풀지 않고 지내면서 병 치료에 전심전력을 다하였고, 어머니의 병세가 위급해지자 자신의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흘려 넣어 생명을 연장시켰다고 한다. 김광악은 1759년 12월 16일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김광악은 선조인 김세필(金世弼)의 글을 수집한 뒤 판각하여 『십청선생집(十淸先生集)』을 간행하였다.

[상훈과 추모]

김광악은 1790년(정조 14) 1월 효행으로 추천되어 정려를 하사받았다. 부여 김광악 정려는 부여군 부여읍 가증리에 있으며, 2008년 12월 15일 부여군 향토문화유산 제98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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