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0500
한자 田得雨墓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능묘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봉정리 산12-1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행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조성 시기/일시 1427년 - 전득우묘 묘비 하사
이장 시기/일시 1565년 이후 - 전득우묘 이장
문화재 지정 일시 1980년 10월 23일연표보기 - 전득우묘 충청남도 기념물 제25호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1년 11월 19일 - 전득우묘 충청남도 기념물로 변경 지정
현 소재지 전득우묘 -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봉정리 산12-1 지도보기
원소재지 전득우묘 -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우곤리
성격 능묘
관련 인물 전득우
소유자 종중
관리자 종중
문화재 지정 번호 충청남도 기념물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봉정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무신 전득우의 묘.

[개설]

전득우묘(田得雨墓)는 조선 전기 무신 전득우(田得雨)의 묘이다. 전득우는 본관이 남양(南陽)이며, 아버지 전주(田柱)는 고려가 망할 때 조선의 건국을 반대하여 공주로 유배되었다. 전득우의 아들 전흥(田興)은 태종 즉위 이후 원종공신에 녹훈되었으며, 세종 대에도 의금부제조, 형조참판 등을 지냈다. 1427년(세종 9) 세종은 전흥의 아버지 전득우를 가선대부 한성부윤에 증직하고, 어머니는 정부인에 제수하여 비석을 하사하고 준예장(準禮葬)하였다. 1980년 10월 23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25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충청남도 기념물로 변경되었다.

[위치]

전득우묘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봉정리 산12-1번지에 있다.

[변천]

전득우묘는 원래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우곤리에 있었는데, 1565년(명종 20) 이후 아들 전흥의 묘 위쪽인 현재 위치로 이장하였다.

[형태]

전득우묘는 전체적으로 고려 말에서 조선 초의 양식을 보인다. 봉토 하단에 화강암을 다듬어 직사각형으로 호석을 둘렀는데, 앞쪽의 호석은 길이 227㎝, 두께 20㎝ 가량의 판석 1매를 세웠으며, 동서 측면에는 길이 407㎝의 판석 3매를 나란히 세웠다. 북쪽에는 2매의 판석을 세우고 위에 방형 봉분을 만들었다. 봉분 주위에는 2단의 낮은 방풍석을 둘렀으며, 봉분의 전면에는 세종이 하사한 묘비가 있다. 묘역은 전체적으로 3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봉분 바로 아래에는 좌우에 석상이 세워져 있다.

[금석문]

전득우묘 앞쪽에 있는 묘비에는 ‘선덕2년(宣德二年) 정미3월초8일(丁未三月初八日) 증가선대부(贈嘉善大夫) 한성부윤전득우(漢城府尹田得雨) 처증정부인정씨지묘(妻贈貞夫人鄭氏之墓)’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는데, 마멸이 심하여 선명하지 않다. ‘선덕2년’과 ‘정미’는 1427년(세종 9)이므로 1427년 3월 8일 묘비를 하사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의 내용만 보면 전득우의 부인 정씨의 묘인데, 묘비 앞쪽의 상석 전면에는 ‘형조참의(刑曹參議) 증가선대부(贈嘉善大夫)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 남양전공휘득우지묘(南陽田公諱得雨之墓) 배정부인정씨(配貞夫人鄭氏) 부좌(祔左)’라고 되어 있어 전득우가 나중에 사망한 뒤 합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황]

전득우묘를 중심으로 위쪽에는 아버지 전주, 아래쪽에는 아들 전흥 등 3대의 묘역이 조성되어 있다. 전득우묘 오른쪽에는 묘비를 새로 만들어 놓았다. 묘역 아래쪽에 조금 떨어져 있는 곳에는 후손들이 조성한 남양 전씨 재실과 신도비가 있다.

[의의와 평가]

국가에서 공을 세운 신하에게 행하는 준예장으로 예가 드물어 문화재적 가치가 크다. 또한 묘 및 묘비의 양식은 조선 전기 묘제 양상을 잘 보여 준다. 부여 지역에 세거한 남양 전씨의 존재와 장례 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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