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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뜸과 계백 장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1463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천당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광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2년 - 「표뜸과 계백 장군」 한민에서 발행한 『여기가 부여다』에 수록
관련 지명 표뜸 -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천당리 지도보기
채록지 천당리 -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천당리 지도보기
성격 설화
주요 등장 인물 여인|호랑이|계백
모티프 유형 역사 인물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천당리에서 계백과 관련하여 전하는 이야기.

[개설]

「표뜸과 계백 장군」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천당리에서 백제의 장군 계백(階伯)[?~660]과 계백이 태어나서 자란 표뜸마을과 관련하여 전하는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표뜸과 계백 장군」은 1992년 한민에서 발행한 『여기가 부여다』에 수록되어 있다.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천당리에서 마을 주민이 구술한 내용이 채록되어 있다.

[내용]

옛날 백제에 한 부부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군졸이었던 남편이 신라군과 싸우다가 화살이 다리에 박혀 겨우 목숨만 건져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은 집에 돌아와서도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화살촉을 만드는 일을 하였다. 그러다가 농사를 지어 군량을 생산하는 일 역시 나라를 위한다고 여기어 열심히 논밭을 일구었다. 부지런히 일하여 나라에 충분한 군량을 바칠 정도가 되었을 때 그만 남편이 죽고 말았다. 그 무렵 아내는 만삭이었다. 남편은 유언으로 아들을 낳으면 장수로 키워 나라와 집안을 평안하게 만들어 달라는 말을 남겼다.

어느 날 산에 안개가 끼더니 하늘에 오색 무지개가 깔렸다. 죽은 군졸의 아내인 여인이 무지개를 보며 신기해하던 차에 산통이 느껴졌다. 여인은 기쁜 마음으로 방 안에 짚단을 깐 뒤 누워서 아이를 낳기 시작하였다. 산통이 심하여 매우 고통스러웠으나 여인은 어떠한 소리도 내지 않고 버티다가 아이가 나오자마자 정신을 잃어버렸다. 한참 정신을 잃었던 여인이 정신이 들어 주위를 살피자 아이가 사라지고 없었다. 여인은 놀라서 여기저기를 찾아 나섰다. 집 근처에는 어떠한 인기척도 없었고 호랑이 발자국만 남아 있었다. 여인은 잠시 몸을 푼 뒤 호랑이 발자국을 따라갔다.

산꼭대기에 이르러 보니 여인의 아들이 짚단 위에 놓여 있었는데, 호랑이가 여인을 보고는 으르렁대며 접근하지 못하게 하였다. 여인은 아이를 데려올 방도가 없어 제발 아이를 돌려 달라고 호랑이에게 애원하였다. 호랑이는 여인의 말을 알아들은 듯 산에서 내려가라고 앞발로 산 아래를 가리킬 뿐이었다. 그 후로 여인은 아들을 보기 위하여서 매일 산을 올랐다. 아이는 호랑이 젖을 먹고 자랐으며, 조금 자라 음식을 먹을 수 있을 때에는 짐승의 생고기를 먹고 자랐다.

어느새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어느 정도 아이가 자라자, 호랑이가 아이를 집에 데려다주고 매일 밤마다 집을 지켜 주었다. 아이는 자라며 무예를 익혔고, 열다섯이 지나자 훌륭한 장수가 되었다. 궁궐에서도 소문을 듣고 사비성(泗沘城)으로 소년을 부른 뒤, 나라의 장수로 삼아 어머니와 함께 사비성 안에 살게 하였다. 이 장수의 이름이 바로 ‘계백’이다. 계백이 싸울 때는 항상 호랑이가 나타나 적진을 먼저 교란시켰다고 한다. 싸움이 없을 때는 호랑이가 계백이 예전에 어머니와 살던 집터 부근에서 살았다고 한다. 계백이 황산벌에서 전사할 때에도 호랑이가 집터에 와서 사흘을 울다 죽었다고 한다. 이러한 연유로 계백 장군이 자란 집터에서 호랑이가 살다가 죽은 마을이라 하여 ‘표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한다.

[모티프 분석]

「표뜸과 계백 장군」계백이라는 역사적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주요 모티프는 ‘역사 인물’이다. 「표뜸과 계백 장군」에서는 계백이 전쟁에서 지기는 하였으나 신통력을 지닌 장수임을 보여 주고 있어, 전쟁에서 진 것은 계백의 능력이 부족하여서가 아니라 당대의 실정과 역사적 상황 때문이라는 의식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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