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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1408
한자 白馬江 水陸齋
영어공식명칭 Baengmagang Suryukjae
이칭/별칭 부여 수륙재,백제 수륙재,백제문화재 수륙재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종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55년 - 백마강 수륙재 전신인 삼천궁녀제 개시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2년 10월 8일연표보기 - 백마강 수륙재 봉행
의례 장소 정림사지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지도보기
성격 불교 의례
의례 시기/일시 백제문화제 기간 중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에 있는 부여 정림사지백마강 일대에서 무주고혼의 천도를 위하여 해마다 백제문화제 기간에 베푸는 불교 의례.

[개설]

수륙재(水陸齋)는 말 그대로 강과 육지에서 올리는 불교의 재(齋) 의식이다. 불교의 재는 유교의 제사와 같으며, 백마강 수륙재백마강 인근의 육지와 강에서 올리는 불교의 제사 의례인 것이다. 충청남도 부여군에서 백마강 수륙재를 지내는 이유는 백제 때 전장에서 전사한 백제군의 혼령을 위로하고자 함이다. 여기에 무고한 백성이나 궁녀들의 혼령까지 두루 위로하고 극락으로 천도하려는 것이 수륙재를 지내는 참뜻이다.

백마강 수륙재는 불가의 의식인 만큼 운용 주체가 승려들이며 백제부여불교수륙대재보존회를 중심으로 전승되고 있다. 아미타불이나 지장보살이 모두 저승세계의 지존이라고 하는 점에서 안타까운 영혼들을 수용해 달라는 염원으로 볼 수 있다.

[연원 및 변천]

백마강 수륙재의 전신은 ‘삼천궁녀위령제’이다. 부여군의 삼천궁녀위령제는 1955년에 처음 시작되었다. 그런데 백제대제[현재의 백제문화제]에 포함되어 시행되던 삼천궁녀위령제는 나중에 여러 이름으로 바뀌면서 언제부터인지 수륙재로 전환되었다. 삼천궁녀위령제의 본질은 백제가 패망할 때 낙화암에서 자결한 삼천궁녀를 기리고자 함이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삼천’이라는 숫자가 사료 같은 기록에 의하여 확인되지 않은 채 쓰여, 역사적 근거가 없고 현실성도 없다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이처럼 삼천궁녀위령제가 비판의 대상이 되면서, 나라를 지키려다 전사한 백제군과 백성에 대한 위로 제의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그리고 이에 호응하여 수륙재가 대안으로 채택되었는데, 그 뒤로 ‘백제문화제 수륙재’, ‘부여 수륙재’, ‘백제 수륙재’ 등으로 불리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당시 백마강 수륙재를 통하여 백제군과 유민을 추모하려 한 시민들은 고란사, 청룡사 등에서 덕이 높다고 이름난 승려들을 모시고 지역 사회의 호응을 받아 수륙재를 거행하였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백제문화제 행사로 자리 잡게 되었다.

[절차]

백마강 수륙재는 첫머리에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에 있는 부여 정림사지에서 사시불공(巳時佛供)과 상단불공(上壇佛供)을 거행한다. 이때 백마강 수륙재에 대한 해설과 함께 「회심곡」과 바라춤이 시연된다. 이후 수륙재 무대가 준비된 곳으로 여러 위패를 이동하여 나머지 수륙재 의식을 거행한다. 대중들을 대상으로 한 수륙재 무대에서 승무, 바라춤, 법요식(法要式) 등을 수행한다. 이들 춤이나 설법 등은 모두 불우한 영혼을 위로하는 의례 표현이다. 무대에서 의식이 끝나면 부여군의 거리를 도는 대재 행렬이 이어져 백마강으로 이동한다. 의례를 주도하는 이들은 백마강에 준비된 용선에 올라 강으로 나아간다. 그러고는 강 가운데에서 회향봉송(廻向奉送)을 거행하고 나서 유등을 강에 띄운다. 일종의 천도의식이라 할 수 있는 유등띄우기에서는 『아미타경(阿彌陀經)』과 『지장경(地藏經)』이 독송된다.

[현황]

백마강 수륙재는 2022년 10월 8일 제68회 백제문화제 기간 중에도 시행되었다.

[의의]

백마강 수륙재는 강 위에서 베푸는 우리나라 유일의 불교 의례이다. 60년 이상 전통을 이어온 의례로서 각각 기준이 되는 의례집이 존재하고, 고유의 특징까지 갖추고 있다. 백제문화제가 성립되기 전인 20세기 초반에도 부여 지역에서 수륙재가 봉행되었고 수륙재를 준비하는 범패 교육까지 이루어졌다는 기록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 따라서 백마강 수륙재의 실제 연원은 100년을 상회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공식 기록이 포착되는 수륙재는 매우 드물어 문화적·역사적 자료로서 가치가 크다.

또한, 물로 대표되는 백마강과 육지로 대표되는 부여 정림사지백마강 수륙재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는 데에 적합하다. 또한 부여 정림사지에서 수륙재 본편을 베풂으로써 영혼의 천도를 이룬 후, 백마강이라는 상징 공간을 통하여 영혼의 천도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한다는 데에도 의미가 있다. 따라서 백마강에서 회향봉송을 베푸는 것은 차안과 피안을 나누는 강 위에서 육지와 물에 있는 모든 외로운 혼령을 천도한다는 의미를 잘 보여 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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