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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0610
한자 扶餘舊衙里百濟遺蹟
이칭/별칭 천왕사지,구아리,천왕사,목탑 심초석,소조불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구아리 64
시대 고대/삼국 시대/백제
집필자 소재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43년 - 부여구아리백제유적 유물 출토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2년 - 부여구아리백제유적 발굴 조사
문화재 지정 일시 1993년 7월 20일연표보기 - 부여구아리백제유적 충청남도 기념물 제88호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1년 11월 19일 - 부여구아리백제유적 충청남도 기념물로 변경 지정
현 소재지 부여구아리백제유적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구아리 64 지도보기
성격 건물 유적
면적 5,445㎡
소유자 국가
관리자 부여군청
문화재 지정 번호 충청남도 기념물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구아리에 있는 백제 시대 유적.

[개설]

부여구아리백제유적(扶餘舊衙里百濟遺蹟)은 1943년 수습 조사 중 천왕명 기와가 수습되고, 유적 북쪽 인근에서 국립부여박물관으로 이전한 목탑 심초석이 발견되었다고 알려져 있어 천왕사지로도 불렸다. 그러나 이후 발굴 조사에서는 절터로 추정할 만한 흔적을 확인하지 못하였다. 면적은 5,445㎡이다. 부여구아리백제유적은 1993년 7월 20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88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충청남도 기념물로 변경되었다.

[위치]

부여구아리백제유적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구아리 64번지에 있다. 옛날 경찰서 부지 안을 신축하는 과정 중에 확인되었다. 부여 소방서 로타리 북쪽이며 대형 전각 건물지 남쪽 일대에 해당한다.

[형태]

부여구아리백제유적의 북쪽 우물은 석축으로 쌓아 올렸고, 남쪽 우물은 하부의 석축과 상부의 목조가 혼합된 구조를 갖추고 있다. 두 개의 우물은 나무홈통으로 연결되어 있어 북쪽 우물에서 일정 수위에 도달하면 아래로 흘러 보내는 구조로 추정된다. 우물 안에서는 백제 기와와 씨앗류, 토기, 가락바퀴 등이 출토되었고, 주변에서 소조불과 석제보살입상, 나한상, 철제초두 등이 출토되기도 하였다. 북쪽 우물지 바닥에서 곱돌로 만든 석제 거푸집이 출토되었다. 크기는 가로 7.3㎝, 세로 12.7㎝, 두께 1.6㎝로 안쪽 평탄한 면에 일근(一斤)이라는 명문을 새겨 넣었다. 백제 시대에 무게를 재기 위한 저울의 형태를 가늠하여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현황]

1942년 부여경찰서를 신축하기 위하여 터파기 공사 중 건물지 초석열 등이 확인되어 1943년 후지사와 가즈오[藤澤一夫]에 의하여 시유 도제불상편, 도가니편, 그리고 다량의 연화문수막새 등을 수습 조사하였다. 당시 조사 기록은 알려져 있지 않아 정확한 가람의 규모나 위치는 확인되지 않으나, 주변 구아리 대지 남쪽 채토장에서 중앙에 네모난 구멍이 있는 목탑 심초석이 나와 일대를 목탑지와 금당지 등이 있는 절터로 인식하였다. 심초석은 현재 국립부여박물관으로 이전하여 전시하고 있다. 이후 1992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 의하여 인접한 지점에 대하여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으나 절터와 관련된 건물 흔적은 확인하지 못하고 도랑유구와 두 개의 우물터만 확인되었다.

[의의와 평가]

부여구아리백제유적에서는 목탑 심초석과 소조불, 다량의 와당 등이 발견된 점으로 미루어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 전하는 천왕사일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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