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렉토리분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0145
한자 軍守里
영어공식명칭 Gunsu-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군수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강전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충청남도 부여군 현내면 군수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17년 - 충청남도 부여군 현내면 군수리에서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면 군수리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60년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면 군수리에서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군수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면적 2.87㎢
가구수 343가구
인구[남/여] 672명[남 353명|여 319명]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백제 때는 주로 군사 주둔지여서 지역적으로 번창하였지만, 백제 멸망 당시 나당 연합군에 의하여 황폐화되었다가 조선 시대 촌락이 다시 형성되었다. 백제 때 군사들이 주둔하던 곳이라 하여 군수들(軍守들) 혹은 군수평(軍守坪)이라 부른 데서 군수리(軍守里)라는 지명이 유래되었다. 백제 때 여성들이 찬란한 옷차림으로 해당 지역을 왕래하였다 하여 꽃정 혹은 꽃노들이라고도 불렸다고도 한다.

[형성 및 변천]

백제 소부리[사비] 지역으로 통일 신라 시대에는 671년(문무왕 11) 소부리주[사비주], 686년(신문왕 6) 소부리군, 경덕왕 때 부여군 지역이었다. 고려 시대에는 부여군과 부여현 지역이었다. 조선 시대 부여현 현내면(縣內面) 군수리, 조선 말에는 부여군 현내면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그대로 충청남도 부여군 현내면 군수리로 개설되었다. 1917년 현내면이 부여면으로 개칭되어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면 군수리로 개편되었다. 1960년 부여면이 부여읍으로 승격되어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군수리로 개편되었다.

[자연환경]

마을 대부분은 농지로 활용되고 있는 평탄한 지형이다. 저지대여서 금강으로 인한 침수 피해를 많이 받았지만 현재 제방 공사로 인하여 넓은 농지를 확보하였다.

[현황]

군수리는 충청남도 부여군 북서부에 있는 부여읍의 22개 법정리 가운데 하나이며, 부여읍의 남서쪽에 위치한다. 동쪽으로 동남리, 남쪽으로 왕포리, 북쪽으로 구교리와 접하며, 남서쪽에서 북서 방향은 금강과 인접하여 있다. 행정리로는 군수1리, 군수2리가 있다. 자연 마을로는 군수뜰, 성말, 신기정이 있다.

2023년 5월 현재 면적은 2.87㎢이며, 인구는 343가구, 672명[남자 353명, 여자 319명]이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마을의 넓은 농지를 활용하여 수박과 단무지를 생산하고 있다. 주요 시설로는 백마강테마파크가 있다. 마을 중심부로 국도 제4호가 지나가는데, 금강을 건너는 부여대교와 이어져 있다. 문화유산으로는 부여 군수리 사지[사적]가 있다. 부여 군수리 사지에서는 백제 시대의 부여 군수리 석조여래좌상과 부여 군수리 금동미륵보살입상이 출토되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